서평·추억

디딤돌 2010. 5. 28. 07:58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문학동네, 2010.

 

 

 

전왕, 다시 말해 제 아비의 후궁에 관심을 보이는데 실망하여 낙향하고 말았다는 고려 충렬왕 때의 선비, 우탁이 남긴 시조를 이 시대의 언어로 읊어보자. 후대의 문장가는 탄로가(嘆老歌)라 하였다.

 

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하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평균수명이 요즘과 달랐을 당시 우탁은 80세까지 살아 장수했는데, 미국의 딸깍발이 선비인 스코트 니어링은 100살 하고 3주일을 아주 건강하게 살았다. 그는 죽음을 항구를 떠나는 배에 비유했다. 배웅 나온 이의 아쉬움 속에 이쪽 항구를 떠나는 배는 돛대가 사라질 즈음, 마중 나온 이의 환호를 받으며 저쪽 항구에 들어설 거라면서. 아내를 위해 장작을 팰 수 없다는 걸 알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스코트의 아내 헬렌 니어링은 말했다. 미화된 감이 없지 않지만 곡기 대신 주스를 마시다 주스와 물마저 끊은 스코트는 아주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Good!”이라고 말한 뒤 삶을 정리했다고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헬렌은 남편을 기렸다. 남편보다 20살 아래인 헬렌도 만족스럽던 91세의 삶을 많은 이의 축복 속에 거두었고.

 

삶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많다. 태어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이야기, 청춘남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 도전하는 인생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흔하고 또 흔하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독자가 많지 않을 테니 펴내려는 출판사도 많을 리 없겠지. 한데 스코트 니어링과 동화작가 권정생의 예가 그랬듯, 죽음은 삶이 아름다웠을 때 아름다울 수 있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온 사람이 많지 않으니 아름다운 죽음을 이야기할 만한 이도 드물겠지. 굳이 유명한 사람의 죽음만 회자할 필요는 없겠다. 자신의 삶을 잘 관리하며 살아간 사람이라면 죽음도 부끄럽지 않으리라.

 

데이비드 실즈는 소설가다. 미국에서 얼마나 알려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버지는 무명일 것이다. 기력이 많이 쇠진하긴 했어도 여전히 정정한 아버지는 데이비드 실즈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 때 97세가 지났다. 아들이 “죽음을 받아들이세요!” 하면 아버지는 “예야, 삶을 받아들이거라!” 대꾸하시리라 여기는 저자는 아버지를 닮아 아주 건강했지만 운동하다 다친 이후 허약해졌다는 걸 느끼며 늘 죽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운동을 즐기는 아버지는 삶을 집착한다. 그런 아버지와 시합을 시작하겠다면서 책장을 여는 데이비드 실즈는 아버지를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계속 건강하길 바라면서 돌아가시길 원한다며 자신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엮이는 가족사를 유쾌하게 펼친다. 태어나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육체와 정신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해가는 생물학적 과정을 통계로 곁들이는 과학과 인문의 촌철살인이다.

 

25만 년 전부터 존재해 900억 명이 거쳐 갔고 현재 65억 명이 사는 지구촌의 인간들은 유전자의 99.9퍼센트가 똑같다. 태어날 때 350개였던 뼈가 자라면서 붙어 어른이 되면 206개가 남는 인간의 몸에서 물이 70퍼센트를 차지해 지표면의 비율과 비슷한데, 태아기름막을 뒤집어쓴 신생아는 피부도 늘어지고 엉덩이는 자그마한 게 객관적으로 예쁘지 않다고 데이비드 실즈는 덧붙인다. 앞의 말은 알려진 통계수치고 뒤의 말은 자신의 경험담이다. 이어지는 통계는 생후 한 달이 되면 머리를 흔들고 석 달이 지나면 고개를 가누는 이기는 태어났을 때 어른 4분의1의 뇌를 갖지만 첫돌이 되면 4분의3까지 자란다고 설명하는데, 실즈의 경험담이 백미다. 미식축구, 야구, 달리기, 다이빙도 잘 하지만 겁이 많아 이따금 사고를 쳤던 자신은 딸이 태어났을 때 울었다는 거다.

 

8에서 10살 사이에 봉긋해지는 소녀의 가슴은 12에서 18살 사이에 완전히 부풀고, 1830년대 17살 쯤 경험하던 초경은 요즘 12살이면 늦지 않다. 데이비드 실즈는 영양과 생활환경 개선을 이유로 들었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에 여성호르몬과 그 유사체인 환경호르몬이 적지 않게 포함되기 때문이라는 건 언급하지 않았다. 9에서 10살 사이에 고환이 커지고 17살이면 음경이 성인 크기로 성장하는 소년은 14살 이후 2주일에 한 번 이상 몽정을 경험한다고 통계 자료를 들추는 실즈는 계란과 유제품에 함유된 여성호르몬과 가공식품에 들어간 환경호르몬으로 젊은 남성일수록 기형 정자가 많고 생식기가 기형으로 태어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저는 여드름투성이였단다. 프랑수아 사강이 “불행한 연예를 하기 마련”이라고 한 17살을 셰익스피어는 “계집애들에게 애를 배게 하거나 어른들에게 대들거나 훔치거나 싸운다.”고 했고 스콧 피트제럴드는 “18에서 19살에 술을 마신 남자애들은 지금 다들 안전하게 무덤에 누워”있다고 제 딸에게 말했다고 귀띔하는 실즈는 17살이었을 때 자신은 첫 경험에 실패했지만 아버지는 23세부터 모든 걸 알기 시작했다고 여성편력을 일러바친다.

 

20세 전후에 최고가 되는 근력은 이후 차차 떨어지고 호흡 능력은 60살까지 해마다 1퍼센트 씩 줄어들며 소리에 대한 반응도 20살에 비해 2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는데 결혼 전에 잠시 테니스코치를 했던 아버지는 관능적인 수강생과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는 걸 굳이 까발리는 실즈는 유명인의 언어를 되새긴다. 미국의 철학자 니컬러스 머리는 “30살에 죽었으나 60살에 묻혔다”는 묘비명을 쓸 사람이 많다고 했고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첫 40년이 텍스트라면 나머지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이라 했으며 루소는 “10살에 사탕에 휘둘리고, 20살에는 이성에, 30살에는 쾌락에, 40살에는 야망에, 50살에는 탐욕에 휘둘린 뒤에는 남는 게 없으니 지혜를 추구한다.”고 했다는 거다. 한데 아버지는 10살이든 90세든 미사일처럼 정확하게 쾌락을 추구했다고 실즈는 폭로한다. 아니 자랑하는 겐가. 프랑스의 작가는 나이 먹느라 바쁘다 했다는데, 예수는 33세에, 엘리스 프레슬리는 42세에, 존 F. 케네디는 46세에 죽었지만 56세였던 아버지는 어찌나 세게 야구공을 던졌던지 타자였던 자신이 겁을 집어먹을 지경이었다고 혀를 내두른다. 그뿐인가. 어머니 사후에 만난 여성과 청년처럼 뜨거웠던 걸 아직도 자식 앞에서 자랑한다니, 원.

 

“50살에서 57살 사이가 가장 혹독하다”면서 그 이유를 “이런저런 일들을 하라고 요구를 받는데, 아직 충분히 노쇠하지 않아서 그것들을 거절할 수가 없다”고 T.S. 엘리엇은 말했고 조지 오웰은 “50살에는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충고했다는데, 늙으면 사람은 어떻게 변할까. 실즈가 늘어놓는 통계를 들어보자. 70세면 근력과 심폐기능이 20살의 40퍼센트에 불과하고 뇌 운동영역의 뉴런이 절반으로 줄어들며 90세가 되면 3살 뇌 정도로 줄어들건만 86세에 심장발작을 치료한 아버지는 아직 운동도 가능하고 운동경기 관전평을 신문에 기고하며 돈을 벌 수 있으니 인생의 종착역인 퇴직자 주택에 입주하는 걸 완고하게 거부했다고 아들은 고마워한다. 죽기 한 달 전인 97세에 아내에게 “세상을 떠나는 게 정말 싫소!”라고 했던 버트런드 러셀처럼 죽음을 혐오하는 아버지는 95세에 1.5킬러미터를 걸어서 도서관을 다녔다고 한다. 90세가 지나 골반에 골절이 생기면 절반은 걷지 못하게 된다던데. 반면 50대 중반인 실즈는 죽기보다 싫은 요통에 시달린다.

 

89세에 죽은 소설가 헨리 밀러는 “두려워하며 몸을 사리며 의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끌려가는 삶보다 짧고 행복한 삶이 훨씬 낫다”고 말한 반면 아직 생존해 있는 75세 우디 알렌은 “작품을 통해서 불멸을 얻기는 싫다. 나는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을 얻고 싶다.” 했다. 죽음 앞에서 18세기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이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손실인가!” 외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나는 신통치 못한 업적을 남겨 신과 인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자탄했는데 마키아벨리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가고 싶다. 지옥에서는 교황들과 왕들과 군주들과 함께 즐기겠지만 천국에는 거지들과 수사들과 사도들만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는데, 아버지는 “내가 죽고 나면…”이라 말하는 법이 없다고 실즈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는다. 그저 “때가 된다면…” 할 뿐.

 

죽는 순간, 피가 극도의 산성이 되어 근육이 경란하고 기쁜 숨을 몰아쉬다 가슴과 어깨가 한두 번 들썩이며 짧게 경련하다 사망에 이른다는데, 그때 속설과 달리 몸무게가 21그램 줄어드는 일이 없다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의 저자는 말한다. 영혼의 무게는 없다는 건데, 97세에 테니스 엘보 말고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아버지는 가끔 바지 지퍼 올리는 걸 잊지만 여전히 건강하다. 그래도 결국 세월 앞에 무릎을 꿇을 터. 가시와 막대로 쫓아내려 해도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온다지 않던가. 죽음을 피하려 아등바등하지 않았지만 굳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아버지나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두면서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데이비드 실즈는 참 행복해 보인다.

 

좋은 죽음은 내공이다. 대쪽 같던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죽음으로 마무리한 스코트 니어링도 그렇지만 죽는 날 제자와 바둑 한 수 나누고 자식들 모두 불러 모은 뒤 조용히 자리에 들어 숨을 거둔 친구의 아버지의 죽음도 내공이 있기에 가능했다. 조용하면서 환한 분위기를 보인 친구 상가에서 무언가 뿌듯해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긴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뒤의 성취감 같은. 젊었을 때 하늘을 우러러 별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한 친구 아버지의 삶이 새삼 부러웠다. 실즈와 비슷한 50대 중반, 아직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지 않은 나이다. 청소년기의 끄트머리를 지나는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못하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읽고 나니 남은 삶이라도 정신과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사이언스타임즈, 20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