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6. 2. 28. 12:00

스스로 찾아오는 겨울의 진객, 가창오리

 

가창오리는 겁이 많은가


매를 만난 유럽의 찌르레기 떼가 들판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현란하게 날아오르듯, 아침저녁으로 호수의 어스름 하늘을 수놓는다. 철새가 모인 호수를 기웃거리는 맹금류는 보통 낮에 활동하는데, 수십만을 헤아리는 가창오리는 장엄하면서 변화무쌍한 군무를 해질녘이나 해뜰녘에 펼친다. 수면 가득 새까맣게 점점이 앉은 무리. 가는 실처럼 녹은 한 숟가락의 설탕이 커다란 솜사탕으로 부풀 듯, 몇 마리가 물을 박차고 오르면 기다렸다는 양, 수면을 연이어 스치어 일제히 날아오르며 거대하게 덩어리지는 가창오리 떼. 아까부터 그 순간을 기다리던 탐조객은 그만 넋을 잃는다.


가없는 호수를 덮을 듯 퍼졌다 앞선 무리를 따라 물결치듯 솟아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주저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군무. 부셔지는 파도 같은 날개소리를 하늘에 퍼뜨리며 호수를 휘감으며 물결치다 소용돌이치며 솟아오르더니 비단치마 폭처럼 수면 닿을 듯 펴진다. 한줄기 짙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블랙홀에 휩쓸리던 군무는 이내 뭉게구름이 되어 너울거리다 하늘로 던진 투망처럼 흩어지고, 두 개의 강력한 자석에 끌리며 나누어지던 거대한 무리는 이내 방향을 바꾸며 느닷없이 교차하더니 다시 물결치며 치솟다 어머니 치마폭처럼 수면을 덮을 듯 퍼진다.


어스름하거나 여명이 밝아오는 호수의 하늘을 맘껏 수놓던 가창오리 떼는 누구의 지휘를 받는지 한 마리 부딪히지 않는 5분 여 군무를 마치고 어둠 저편 하늘로 고요하게 사라진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경이로움에 탄식하던 탐조객은 시려오는 뺨을 그제야 두 손으로 감싸며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기억을 뇌리에 남긴다. 벅차오른 감동을 주체할 길 없는 탐조객은 비로소 발길 돌리는데, 문득 시장기를 느낀다. 가창오리들도 멀지 않은 농경지로 낙곡 주우러 떠났을 터.


동 트기 전, 적막해진 호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가창오리들은 화려한 군무를 다시 펼칠 텐데, 그때까지 쌀쌀한 호숫가에 머물 수 없는 탐조객은 삼삼오오 버스에 올라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압도되었던 연속 장면을 지우지 못하는 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생태관광 안내자에게 말문을 연다. “몇 마리나 되었을까요?” 가창오리 떼가 모두 몇 마리로 구성돼 있는 게 궁금한 건 아닐지 모른다. 군무에 참여한 가창오리 수의 크기보다 조금 전의 감동을 되새기고 싶은 표현이지만, 안내자인들 정확히 알겠나? “20만 마리 쯤 될까요?” 20만 마리가 겨울철 우리나라로 날아온 가창오리의 전부는 아니다.


시베리아의 크고 작은 호수, 특히 바이칼호 주변에 흩어져 사는 가창오리는 혹한이 시작되기 전, 90퍼센트 이상의 개체들이 우리 서해안의 호수에 내려앉는다. 전북 고창의 동림저수지에 20만 마리 넘더니 찬바람이 며칠 일자 일제히 영암으로 날아가는 가창오리는 따뜻하고 먹이가 풍부한 지역으로 이동한다. 천수만과 삽교호 주변에 머물다 금강 하구둑으로 이동하고 주남저수지에서 추위가 물러갈 즈음까지 머물다 번식지 시베리아로 돌아가던 가창오리의 군무는 천수만이 유명하다. 주남저수지의 수위가 오르면서 먹잇감을 찾을 수 없어 인근에 들판이 넓은 천수만으로 모이기 때문이라는데,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평야가 드넓은 천수만은 내내 괜찮을 수 있을까?


20041,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댄 한국 조류학자들은 전국 14군데 월동지역에 658천 마리의 가창오리가 우리나라를 찾았고 그 중 90퍼센트 이상이 금강에 내려앉았다고 보고했으니 실로 대단한 숫자다. 저어새는 고작 3천 마리 남짓한데, 가창오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포함돼 있으며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희귀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어읜 영문일까? 멸종위기라니. 우리의 대표적 겨울 진객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한때 세계적으로 4만 마리까지 위축된 가창오리가 2007182만 마리가 우리나라로 날아왔다고 국립환경과학원이 밝힌 적 있다. 2006년의 3배가 넘는 수라고 말했는데, 우리나라를 찾는 가창오리의 수는 해마다 현기증 나게 들쭉날쭉하다. 눈 덮인 시베리아에 남는 건 물론 아니고 다른 나라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라는데, 집단 크기의 변동이 원래 심한 걸까? 여러 조류학자들이 동시에 모니터링에 나서 이번 겨울 우리나라를 찾아온 무리의 크기를 추정하는데, 이동이 잦아 파악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20만 마리가 머물던 동림저수지가 얼어붙자 15만 마리가 군무도 없이 떠나 영암호에 20여만 마리가 모여들었다는데, 또 어디로 갈지. 그곳은 안전할지.


모니터링에 나선 전문가는 저수지 주변의 논습지에 먹이가 되는 낙곡이 많지 않다고 걱정한다. 멀리 이동하며 먹이를 찾아 헤매다보니 저수지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는 게 아닌가. 그때 군무는 물론 생략하겠지. 비교적 최근에 우리나라를 찾기 시작한 가창오리는 주로 갯벌을 매립해 만든 너른 평야와 그 평야 주변에 조성한 호수에 내려앉는데, 그런 평야는 화학농법에 의존하고, 호수는 지속적으로 오염된다. 그래도 기계로 농사짓는 까닭에 낙곡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볏짚 사이에 유산균을 듬뿍 넣고 비닐로 둘둘 말아 축사에 사료로 넘기는 곤포사일로때문이다.


20141월 동림저수지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발생 농장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닭과 오리, 그리고 메추리와 같은 가금을 모조리 살처분하는 고역이 반복되었는데, 그해 겨울, 조류독감으로 전국에서 무려 1천만 마리의 가금이 알락사와 거리가 멀게 도살되었다. 방역당국은 동림저수지의 가창오리를 고병원성 조류독감 H5N8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목했는데, 떼죽음했다던 가창오리는 동의했을까? 환경부는 서슬 퍼렇게 청새 먹이주기 행사를 금지했는데, 죽은 가창오리는 20만 마리 중 고작 100여 마리. 책임을 뒤집어쓴 가창오리는 억울하지 않았을까?


광범위한 갯벌 매립이 걷잡을 수 없자 겨울철새들은 내려앉아 먹이 구할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수천 킬로미터를 쉼 없이 날아와 몸무게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허기지건만 먹이가 풍부하던 갯고랑이 통 보이지 않는다. 충분한 먹이를 먹으며 봄까지 허약해진 몸을 추스르고 시베리아의 얼음이 풀릴 즈음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가 새끼들을 낳아야하지만 쉽지 않다. 어쩌다 독감에 걸려 내려앉아도 먹이를 먹으며 금방 회복되었지만 먹이를 찾지 못한다. 잡식이라도 주로 낙곡을 찾는 가창오리의 사정도 비슷하다. 갯벌이 농토로 바뀌면서 먹이가 늘어난 덕분에 커다란 저수지를 다른 겨울철새와 공유하며 해마다 수를 늘릴 수 있었는데, 이런! 낙곡이 줄었다.


몸이 40센티미터인 가창오리는 암수가 확연히 다르다. 멀리서 보아도 쉽게 구별할 정도로 얼굴이 화려한 수컷은 갈색 눈의 앞과 뒷부분을 반달 같은 노란색 깃이 태극처럼 휘감고 그 뒤를 흰 테두리가 있는 초록색 깃으로 감싸 태극오리로 불리지만 온몸이 갈색인 암컷은 수수하기 그지없다. 눈 아래 흰 점과 턱이 특색인 암컷은 수컷 무리와 섞이지 않는다면 다른 오리 종류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수십만 마리가 모이니 천적의 위협에서 집단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어도 군집성인 까닭에 집단이 줄어들면 생존하기 어려워지는 특징을 가진다.


100억 마리에 달했던 북미의 나그네비둘기는 백인들의 광포한 사냥으로 70만 마리로 줄었다. 미 당국은 뒤늦게 보호에 나섰지만 그 크기로는 집단이 회복되지 못하고 멸종하고 말았다. 가창오리는 어떤가? 좁은 월동지에 너무 많은 개체가 몰려 국제자연보전연맹은 취약종으로 지정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20125월 개체수가 많다며 멸종위기종에서 해제했다. 게다가 조류독감 유포 혐의를 씌우며 먹이주기까지 엄금했다. 멀리서 스스로 찾아온 진객을 반갑게 맞기는커녕 내쫓으려 성화다. 가창오리는 진정 조류독감을 퍼뜨렸을까?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로 협력기구’(EAAFP)는 성명을 내며 가창오리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H5N8 같은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비좁은 공간에서 가혹하게 사육되는 가금에서 흔한 질병이며 철새 무리가 가금에 전파한 사례는 없다면서 감염된 철새들은 매우 빠르게 죽기 때문에 이들에 의한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은 가금이나 사람 이동과 비교하면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가창오리가 원인이라면 도래하기 시작하는 12월 초 이전에 폐사해야 옳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군집성이 강한 까닭에 가금 콜레라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희생된 적은 있지만 조류독감 협의는 생뚱맞았다.


200810, 우포늪이 있는 경남 창원에서 제10차 람사총회가 열렸다. 우리도 철새가 찾는 습지를 보전하겠다고 세계에 천명한 것인데, 가창오리는 만족스러웠을까? 동아시아-대양주 이동 철새의 주요 월동지인 한국의 환경부는 이들 철새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는데, 여태 조류독감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창오리가 올겨울도 잊지 않고 찾아와 군무를 펼쳐주니 고맙고 반갑다. 염치없지만, 내년 이후에도 계속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중앙Sunday, 2016.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