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12. 8. 20:04

   

지난해 10월 10일,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200년만 버티면 인류는 안전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우리 언론들은 일제히 보도했다. 자신의 블랙홀 이론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던 스티븐 호킹의 이번 발언도 분명히 근거를 가지고 있을 텐데, 그가 주목한 ‘인류’는 과연 누구일까. 현재 온난화되는 지구 환경에서 간신히 버티는 우리는 그의 주장에서 어떤 위안을 찾아야 할까.

 

“우주에서 생활하는 법을 배운다면 나중에 우주로 흩어져서 멸망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한 호킹은 “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이 자주 닥칠 것으로 보이지만 인류가 그것을 피하기는 어려워” 것이라면서 한 바구니에 모든 걸 담으면 안 되니 우주로 흩어져 멸망하지 말자고 당부했다고 한다. 우주 곳곳으로 흩어지면 200년 후 살아남는 인류가 반드시 있을 테니, 인류는 명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에 누구의 가슴이 벅찰 것인지 알 수 없다. 인류 생존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우주 연구를 게을리 하는 것은 어리석고 편협한 일로 규정한 그의 역설에 감동했다면 제 자식을 입시학원에 보내는 우리는 우주학원부터 노크해야 옳은 게 아닌가.

 

200년을 버티는 요령을 스티븐 호킹이 자상하게 알려주었는지 CNN과 가진 인터뷰 원전을 읽지 않았지만, 호킹의 권고에 부응할 수 있는 인류의 명단에 이미 고령에 접어든 자신은 포함시키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의 주장은 우리 언론이 지적했듯 인류의 안위를 걱정한 ‘충정’일 게 틀림없다. 그런데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인류 생존을 위협했던 사례로 지적하는 대목에서 문득, 그가 지칭한 인류는 누구인지 쓸데없이 궁금해진다.

 

개개의 인간으로 구성된 인류는 집합명사다. 몇 명의 인간만 남아도 인류는 사라진 게 아니다. 호킹의 권고를 받아들인 인간 덕분에 인류가 200년을 버티는데 성공했다고 치자. 우주에 흩어진 수많은 바구니 중 살아남은 인간은 매우 적을 텐데, 나머지 바구니의 인간과 바구니조차 탈 수 없었던 지구의 대다수 인간의 운명은 어찌 될까. 46억년 존재했고 수억 년 이상 푸른 행성이었던 지구는 50억년 이상 태양 주위를 더 돌 텐데, 고작 10여 만 년 전에 출현한 인류는 자신이 망가뜨린 지구를 버려야 하나.

 

1722년 부활절, 네덜란드 배는 태평양의 이스터 섬을 찾았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한 섬에서 먹을 게 없어 식인을 마다하지 않는 주민은 힘겹게 연명하고 있었으나 섬 곳곳에 모아이라는 거대한 석상이 즐비했다. 허가 없이 방문한 섬을 마음대로 이스터라 명명한 18세기 유럽인은 6미터가 넘는 600여 석상이 태평양을 걸어 들어왔다는 주민의 설명을 믿을 수 없어 불가사이로 처리하고 말았지만, 최근 탄소동위원소를 분석해 모아이와 섬이 황량해진 이유를 밝혔다.

 

아프리카에서 지구를 돌아 퍼져나가던 인류는 서기 500년 경, 굵은 야자나무가 울창했던 섬에 들어가 씨족이 둘로 갈라질 정도로 번성했다고 매장된 씨앗과 음식쓰레기를 조사한 과학기술은 풀어냈다. 카누로 고래를 잡아먹고 경작도 활발했다는데 자족 범위 이상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씀씀이가 커지자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섬에 살 수밖에 없는 두 씨족은 모아이를 제단에 올리려는 경쟁에 치달았다는 거다. 환경이 혹독해질수록 더욱 무거워진 석상을 제단까지 옮기려 한 주민들은 굴림대와 밧줄로 사용할 야자나무가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늘과 과실을 내주고 카누의 재료였던 야자나무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무가 사라지자 바람과 빗물에 토양이 휩쓸려버린 섬은 형편없이 황폐해졌고 급기야 주민들은 조상의 문화와 언어까지 잃게 되었다고 과학은 해석한다.

 

“마지막 나무를 자르던 주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학생의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미국의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풍경기억상실’이라는 개념을 펼친다(《문명의 붕괴》, 김영사, 2005). 섬은 이미 황량해졌을 터. 마지막 나무를 자른다고 특별히 안타까워할 이유가 없었을 거라고 본다. 토양이 황폐해진 지 오래라 농사를 잊었고, 카누를 모르니 고래나 물고기 사냥은 생각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기아와 질병으로 조상이 대거 사라진 섬에 겨우 버티던 주민들의 기억에 풍요롭던 풍경은 없어졌을 거라는 풀이다.

 

김포공항에 접근할 때 시커먼 대기로 자맥질하며 먼저 착륙하는 비행기를 본다. 괜찮을까 염려하던 나도 잠시 후 공항을 빠져나간다. 공기가 맑은 서해안의 작은 섬에 며칠을 머물다 육지로 돌아오면 머리가 잠시 지끈거리지만 이내 괜찮아진다. 유기농업에 오래 종사하는 농부를 즉각 배탈나게 만들던 포도에 농약이 얼마나 많은지 껍질에 파리가 달라붙지 않지만 파리마저 외면하는 포도를 한 박스나 먹은 우리는 아무렇지 않았다. 진정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걸까. 뜨거운 물로 들어간 개구리는 후다닥 튀어나가지만 개구리가 담긴 물을 서서히 데우면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는다. 역시 풍경기억상실이다. 나이와 계층을 망라하는 최근의 온갖 성인병, 원인을 모르는 아토피는 풍경기억상실이 빚은 현상이다.

 

2007년 4월,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인류를 포함한 지구의 생태계는 100년 이내에 괴멸할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 5천여 연구원이 2007년에 “지구 살릴 수 있는 기한이 10년” 남았다고 결론을 냈다니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8년인 셈인데, 위기 징후가 흉흉한 지구촌에서 절박함을 호소하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징후는 지구온난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꿀벌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불길한 소식이 유럽과 미국에서 전해온다. 전문가는 농약과 온난화, 그리고 급증하는 휴대전화의 전자파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온난화와 농약도 해결이 어려운데 시민은 휴대전화를 버리려 할까.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을 버틸 수 없다는데 이동전화 관련 회사들은 사업을 정리할까.

 

지구라는 이스터도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면 지구촌은 개발과 경제 규모를 자급 가능한 수준 이하로 줄여야 하는데, 현실은 모아이 경쟁이다. 석유가 바닥을 드러낸다니 식량을 기름으로 전용해 자급기반을 잃은 국가의 저소득계층을 항구적 굶주림으로 몬다.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자본은 엉뚱한 대안을 속삭인다. 온난화? 우주에 커튼을 치자! 이산화탄소? 굴뚝에서 모아 심해에 빠뜨리자! 핵폐기물? 유리에 집어넣어 우주로 날려보내자! 이미 1만개가 넘는 우주 쓰레기? 우주는 넓다!

 

안락한 생활에 길들어진 인류는 여름을 춥게 겨울을 덥게 보낸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복입고 불편하게 어기적거리며 200년 이후를 살자고 권유한 걸까. 막대한 에너지와 자본을 퍼부어 우주에 고급아파트와 골프장을 조성할 요량이 아니라면 상처받고 있는 지구를 되살리는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는 우주에서 살 수 없다. 어찌되든 지구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작은책, 2009년 1월호)

풍경기억상실.... 처음 배우는 단어입니다. 마음이 편치 않네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