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7. 24. 11:15

 

“누가 내가 마실 물에 똥 눴어!” 누구의 시(詩)인지 모르지만, 그 비슷한 시구가 있다는 그 시의 제목은 ‘양변기’다. 적어도 도시 아파트의 양변기에 모이는 물은 그냥 마셔도 아무 탈이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시청에서 안전을 자부하는 수돗물이 아닌가. 팔당호나 한강에서 원수를 끌어와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투입해 충분히 정화 처리한 비싼 물이다. 비록 심심산천의 계곡 물처럼 살아있지 않아도 안전은 보장하기에 비온 뒤 마시는 동네 뒷산의 약수와 달리 청색증이나 수인선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데 그런 물을 변기에 채우는 건 아무래도 아까운 일이다.

 

가느다란 안장에 걸터앉아 볼일을 보는 양변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어색하기보다 무척 난감했다. 변기의 구조가 우리와 터무니없이 달랐기 때문인데, 사실 서양은 19세기만 해도 건물에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적당히 후미진 장소에 가운데 뚫은 안장을 단 의자를 놓고 그 아래 놓은 통에 받아 꽉 차면 아무데나 버렸다. 교향곡 <비창> 초연을 성황리에 마친 차이코프스키가 콜레라로 숨진 이유는 냉수였다.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들이킨 물에 콜레라균이 만연돼 있던 건데, 수인선 전염병이 많을 만큼 유럽의 거리에 인분과 말 배설물이 흩어졌고, 그래서 구두 굽이 높아졌다고 한다. 양변기는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유럽인은 꼽는다. 수인성 전염병을 몰아낸 일등공신이 아닌가.

 

“황해는 똥바다!” 한 인류학자가 오래 전에 한 신문에 기고한 짧은 글의 제목이다. 인구 대부분이 몰려 사는 중국 동해의 도시들도 머지않아 양변기를 전면적으로 사용할 텐데, 수질 정화 없이 그 물이 쏟아진다면 황해는 그렇게 될 거라는 유비였다. 10년 이상 지난 지금이야 다르겠지만 당시 중국은 우리가 전에 그랬듯 도시의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를 바다로 그냥 버렸고, 지금도 그 상흔이 바다에 남아 인공위성에서 보는 중국 연안은 몹시 오염돼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우리나 양변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바다나 강물은 물론, 거리도 깨끗했다. 이웃 사이에도 따뜻했을 텐데, 이유는 유럽과 본질적으로 다른 인분 활용에 있었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 미국 농무부 고위 관료인 프랭클린 H. 킹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을 다녀가 유작 《4천년의 농부》(들녘, 2006)를 남겼다. 유럽인이 정착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 지 100년 만에 기름졌던 땅이 황폐화된 미국과 달리 왜 아시아 3개국은 4000년 이상 같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데 여전히 풍요로운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결론은 인분이었다. 좁은 농토에 조밀한 인구가 많은 수의 가축을 먹이면서도 풍족하게 살아온 비밀은 가축의 배설물을 퇴비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배설물을 더럽다며 외면해오던 유럽식의 빗나간 순환과 다른, ‘정직한 순환’의 진면목을 확인한 것이다.

 

사실 1960년대까지 만해도 우리 농촌은 밭 가장자리에 인분을 모아 썩히던 구덩이가 있었다. 온 동네 인분을 모은 뒤 김장배추와 무를 심은 밭에 뿌렸고, 우린 그 밭에서 나온 채소를 해마다 먹어왔다. 다만 여름철에 그 구덩이 옆을 지나는 일은 고역이었고 삭은 인분을 뿌린 밭고랑은 잠시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제외되었을 따름이었는데, 최근 미국의 유기농부 조셉 젠킨스는 자신의 비용으로 출간한 《똥 살리기 땅 살리기》(녹색평론사, 2004)에서 인분을 냄새나지 않게 발효시켜 퇴비로 활용하는 방법을 책으로 안내했다. 어떤 출판사도 출판해주길 거부했지만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절찬리에 번역된 그 책은 톱밥이나 왕겨를 가득 넣은 통에 배설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그 방법대로 발효시킨 퇴비로 생산한 한 지인의 하지감자는 꿀맛이었다. 주변의 유기농업을 지원하는 남원 실상사를 비롯해 많은 농촌에서 톱밥과 왕겨를 이용하는 화장실이 우리나라에도 꽤 확산되고 있다.

 

독일의 한 도시는 발생하는 음식 쓰레기로 친환경 전기와 질 좋은 퇴비를 동시에 생산하고 있다. 냄새도 물론이지만 보기에 불쾌한 음식 쓰레기를 발효시키며 얻는 바이오가스로 발전을 하면 검은 가루가 남는데, 흰 와이셔츠에 뿌려도 툭툭 털면 그만인 그 가루는 지역 농부에게 무상으로 제공된다고 했다. 따라서 악취로 인한 민원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농촌이 넓은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음식 쓰레기를 퇴비로 발효시키거나 지렁이를 키워 얻는 분변토를 농촌에 보급하지만 민원이 발생해 고충이 따른다고 한다. 인천 경서동의 수도권 생활쓰레기 매립장에서 음식 쓰레기를 거부한 이후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음식 쓰레기도 가축의 사료나 퇴비로 활용되기 시작했지만 투자비에 비해 경제성이 모자라서 그런지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은 아직 없다.

 

아이에게 독이 있는 농산물을 줄 수 없다는 강화의 한 목사부부는 양계장에서 버리는 암탉을 마당에 풀어놓고 도시의 지원자가 보낸 음식 쓰레기를 먹였다. 죽어라고 계란만 낳다 효율이 떨어져 내버린 닭은 이내 기운을 차리고 밭에서 벌레를 쪼다 도시에서 나온 음식 쓰레기를 먹고 실한 계란을 다시 낳았는데, 그 계란은 음식 쓰레기를 보낸 도시로 나가곤 했던 거다. 그러자면 음식 쓰레기에 독소가 없어야 한다. 식품 첨가물이나 농약 성분은 물론이고 소금기가 적은 음식 쓰레기를 사료로 사용해야하건만 드물어 한참 애를 먹은 그 목사 부부는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그 사업을 얼마 안 가 포기하고 말았지만 유기농으로 제공하는 집단급식소와 손을 잡는 방법은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목사 부부는 오리 농법으로 도시의 음식 쓰레기를 해결했는데, 음식 쓰레기로 오리 알을 얻고 오리 배설물로 과수를 키우는 농가도 있다. 지렁이를 키워 베란다의 화분이나 텃밭을 가꾸는 시민도 늘어나고 있다.

 

마실 수 있게 정화된 물에 자신의 배설물을 외면한 채 빠뜨린 다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보내고 마는 양변기는 음식 쓰레기의 윤회를 가로막는다. 농촌이 화학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라고 지적하는 귀농인도 있다. 역으로, 화학비료를 제한한다면 사람의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할 방안을 찾을 거라고 그는 덧붙인다. 겨울에도 모기가 끓는 아파트의 대형 정화조에서 변두리의 분뇨처리장으로 모았다 공해의 투기장에 한꺼번에 버리는 행위는 해양오염에 일조할 뿐 아니라 런던협약에 위배된다. 물고기에 먹이를 주는 거라고 아무리 너스레를 떨고 실제 많은 생선들이 몰려든다고 해도 아까운 자원을 낭비하는 셈이다. 그 생선이 다시 우리 밥상에 오른다지만 정직한 순환과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분뇨처리장에 막대하게 모인 인분으로 전기와 퇴비를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규모가 큰 만큼 경제성도 있을 텐데.

 

남의 집에서 밥을 먹어도 뒤는 꼭 집에서 보라던 조상. 그들은 내 집에서 밥 먹고 뒤를 보러 자기 집으로 가는 녀석이 그리 미웠다던데, 농작물을 조리하는 음식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제대로 된 순환이다. 남은 밥을 먹는 토종돼지가 몸에 좋듯, 인분을 뿌려 생산한 지역의 채소가 우리의 몸과 땅을 살린다. 음식의 ‘정직한 윤회’다. 거기에 하나 더. 음식 쓰레기를 퇴비나 사료로 활용하는 순환보다 중요한 건, 발생 자체를 줄이는 일이다. 냉장고가 작으면 음식 쓰레기는 기꺼이 줄어든다. 내 밭과 이웃의 밭에서 필요한 채소들을 가져와 먹을 만큼의 밥을 차렸던 부뚜막을 생각해보자. (사이언스올, 2009년 8월)

북한에 비료를 보내는 대신 공해상에 버려지는 인분을 가공해서 보내자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그리하면 북한의 지력이 살아나서 비료도 그만큼 필요없어질텐데요.. 언젠가는 인분을 비료로 활용해서 사용하는 날이 오겠지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