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6. 4. 14:23

 

개표 결과가 나온 뒤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뜨겁게 외치던 펼침막들이 기운을 잃고 떼어질 시간을 기다리는 거리에서 본 시민들의 표정은 어쩐지 뿌듯해 보인다. 냄새부터 달라진 거리도 어딘가 모르게 밝아진 느낌이다. 아파트단지를 크게 돌아 집으로 돌아올 즈음, 당선사례 펼침막이 네거리에 붙었다. 곧 ‘채찍으로 여기고 다시 정진하겠다.’는 낙선자의 펼침막도 나붙겠지.

 

언제나 그렇듯, 신문들은 논객의 분석들을 토해낸다. 논객의 성향과 무관하게 두드러진 견해는 한 마디로 ‘심판’이라는 거다. 시민의 의사를 대의하지 않은 정권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 언론과 권력기관을 은근히 통제하고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 세종시 원안 파기, 노동조합 탄압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투표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른바 ‘부자동네’의 몰표가 아니었다면 더 큰 변화가 일었을 거라며 획기적인 정책 변화를 주문한다. 동의할 수 있는 견해다. 비록 지방의 자치를 위한 선거일지라도 중앙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의 의사가 분명하게 표시된 결과이리라.

 

인천도 예외가 아니다. 낙선되지 않으리라 믿었던 현 시장의 3선이 제지된 가장 큰 이유도 독선과 오만으로 점철되는 현 정권의 자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인데, 인천 지방정부의 독선과 오만도 커다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앙 정권과 큰 차이를 찾기 어렵지 않았던가. 진산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기업을 두둔하는 행정, 지역의 상징이자 온난화되는 환경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갯벌을 남김없이 매립하려는 행정은 시민의 의견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충실한 사전조사와 시민 동의 없이 개설한 자전거도로는 또 어떤가. 3선이 되었다면 독선과 오만은 하늘을 찌를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민들의 의견이 투표로 반영되었다는 걸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선거에 참여한 모든 후보와 정당 관계자들은 무섭게 인식해야 한다.

 

지방자치 선거든 총선이나 대선이든, 선출된 자는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반드시 유권자의 생각을 물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강력하지만 지나치게 번거롭기에 시민들의 생각을 대신 전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던가. 대의제민주주의의 본령이 그렇다. 그런데 현 정부는 어떤가. 유권자, 다시 말해 주권을 가진 시민의 생각을 귀담아 들으려 얼마나 노력했나. 시민을 어린아이로 취급하려는 건지, 의사 표시의 광장을 폐쇄한 가운데 그저 홍보의 문제로 치부하며 반대의견을 힘으로 묵살하지 않았던가. 3천명 가까운 대학교수들이 문제를 제기한 4대강 사업이 특히 그렇다. 건설회사 사장 출신의 단순한 발상이 강과 생태계 전공학자의 논리적인 주장을 차단하며 ‘강 죽이기’를 밤낮없이 강행하지 않던가.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빨리 포기하고 4대강 사업도 신중히 조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던데 현 정권을 끌어가는 이는 강행하려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대의제민주주의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겠다는 뜻이다. 기존 언론 매체는 물론이고 인터넷까지 통제했어도 이번 지방선거는 현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심판했건만 여전히 시민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다니. 하늘을 찌르는 독선과 오만은 2년 뒤 총선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겐가. 오직 선거라는 알량한 수단으로 귀를 열라고 시민들이 명령했건만 꿈쩍도 하지 않겠다고? 기억까지 억압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한 자를 다시 심판할 게 분명한데.

 

시민단체는 회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시민이 스스로 찾아와 가입해 직접 행동하며 대의제민주주의를 보완한다. 인천의 시민단체들은 선거가 끝난 뒤 선거에 앞서 맺은 약속을 지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작성했다. 당연한 요구인데, 시민들의 합리적인 의견이 소중하게 청취되고 투명하게 논의된 뒤 정책에 반영되는 마당이 펼쳐진다면 앞으로 성명서의 내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당선된 선량들은 다음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은 대의하겠다는 자를 뽑았다. 군림하려는 자를 선발한 게 아니다. (인천신문, 2010.6.8)

인천만이라도 야당시장이 당선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