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1. 3. 23:54

 

요즘 포장마차에 참새구이는 없지만 1970년대엔 드물지 않았다. 그것 참. 껍질 홀랑 벗기고 내장 훑어낸 참새들을 고치에 나란히 끼워 화덕에 구워 내놓았는데, 소주 한 잔에 한 마리 씩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드득 아드득 부셔먹어야 했다. 아파트단지 사이에서 더러 꾀죄죄하게 보이는 참새가 그땐 그리 많았나? 주위에 논과 밭이 많았고 농약도 지금보다 덜 뿌렸을 테니 적지 않았겠지만, 당시 언론은 참새구이에 참새보다 박새가 많고 심지어 막 태어난 수평아리가 대부분이라고 보도하곤 했다.

 

병아리 감별사의 억센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죽어야 하는 수평아리의 여린 껍질을 용케도 벗겨 포장마차에 파는 사람은 자원 활용이라고 너스레떨었을지 모르는데, 박새를 잡아 판 이는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합리화했을까. 생태계에 그만큼 피해를 주었다고 반성했을지 알 수 없지만 아무리 많은 그물로 둘러쳐도 참새를 잡을 수 없었다는 걸 내세우고 싶었을지 모른다. 산록과 이어지는 가을철 들판 어귀에 그물을 쳐놓고 빈 깡통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몰아도 참새는 여간해서 걸려들지 않는다. 대신, 양지바른 곳에서 익은 풀씨를 따다 놀란 박새 가족들이 애꿎게 대롱대롱 매달릴 따름이었을 거다.

 

박새. 박새는 운명이 박해서 박샐까. 급한 성격 때문에 가끔 참새그물에 걸려들긴 해도 운명이 그리 박한 건 아닌데, 왜 박샐까. 뺨이 하얗기 때문이라고 조류학자 이우신은 주장한다. 예로부터 얼굴이 하얀 새, ‘백협조’(白頰鳥)라 했다지 않던가. 백협조가 빚죽새로, 다시 박새가 되었다는 거다. 뺨이 도드라지게 희지만 그건 친척인 쇠박새와 진박새도 마찬가지다. 등과 접은 날개가 잿빛이고 눈 위부터 머리까지 검은 것도 마찬가진데, 두드러진 차이는 배에 있다. 흰 가슴과 배 한가운데를 세로로 가르는 검은 띠, 문상 갈 때 매는 남정네의 넥타이처럼 검은 띠가 선명해 턱받침만 가진 친척들과 구별된다. 한데 박새 암컷의 넥타이는 좁고 짧지만 수컷은 길고 넓다.

 

한겨울이면 곤줄박이와 오목눈이 무리와 섞여 산기슭과 인가의 양지바른 덤불이나 나뭇가지 사이를 바삐 날며 먹이를 찾는 박새는 잎눈과 꽃눈에 생기가 도는 이른 봄이면 일찌감치 짝짓기에 돌입한다. 그 밤중에 그물을 친다면 녀석들이 매달린 모습을 새벽에 실컷 볼 수 있을 것이다. 제 세력권을 지키기 시작한 녀석들은 그물에 매달려 우는 다른 수컷을 내쫓으려다 그만 그 옆에 걸려들기도 할 테니. 새매나 때까치가 접근하기 어려운 바위틈이나 나무줄기의 구멍에 둥지를 만들어 다음세대를 이어야하는 계절이 아닌가. 그때 사람이 걸어둔 새집도 흔쾌히 사용해준다. 마른 이끼들을 밥그릇처럼 모은 뒤 분홍으로 발그스레한 알을 10개 내외 낳아 2주일 쯤 품을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 넓게 분포하는 박새는 지역에 따라 아종으로 구별한다. 우리나라까지 예외가 아니라서, 육지의 박새는 제주도와 울릉도의 박새와 아종 사이라고 분류학자들은 1920년 이래 주장했다. 작디작은 박새가 제주도와 울릉도를 오랜 세월 자유자재로 다녀갈 수 없었을 테니 그럴싸하다. 학자들이 아종을 “지리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형태가 다른 집단”으로 규정했으니 울릉도와 제주도 박새가 육지의 박새와 다른 구석을 찾아내면 아종이라 주장할 수 있지 않은가. 다만 조사한 박새의 수가 지나치게 적다면 의미를 잃는다. 암수의 차이, 성장에 따를 차이, 어쩌다 잡힌 특이한 개체가 아종 사이의 차이로 부각될 여지가 있기 때문인데, 아종을 새로 분류해 제 이름을 알리려는 분류학자가 유난히 많았던 일제 강점기 때, 제주도와 울릉도의 박새를 각각 육지와 비교한 일본 학자들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을 정도의 박새들을 채집해서 조사했을까.

 

2009년 11월 말, 울릉도와 육지 박새의 형태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살펴본 우리 학자들은 아종으로 구별할 정도의 차이를 찾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울릉도 박새는 육지의 박새와 같은 종이라고 밝혔는데, 89년 만이다. 제주도 박새는 아직 비교하지 않은 모양인데, 형태 연구도 소중하지만 먹이와 번식행동과 같은 생태의 차이, 유전자의 차이를 추가로 조사한다면 연구 결과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형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섬 특유의 생태적 특징과 더불어 울릉도로 넘어간 박새 무리의 유전적 다양성의 특이점을 찾아낸다면 향후 진행될 수 있는 진화의 과정까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지와 1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울릉도를 14센티미터의 박새가 일상적으로 건너갈 가능성은 없겠지만 태풍을 편승한다면 의외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태풍이 부는 경우는 없지만 울릉도는 드물지 않다. 맹렬한 바람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일은 매우 위험천만해도 일단 건너간다면 짝짓기는 일어날 게다. 그런 일이 몇 년 주기로 발생하더라도 육지의 유전자는 계속 보충될 거다. 용오름 현상도 빼놓을 수 없겠다. 깔때기 모양으로 휘감고 오르는 회오리바람은 집과 자동차는 물론이고 승객이 가득한 열차까지 들어올린다는데, 회오리를 동반하는 태풍이 울릉도로 분다면 박새 정도야 쉽게 옮길 수 있지 않겠나. 다행히 화산섬인 울릉도에 아직 뱀은 이동하지 않았으니 둥지를 지키는 박새는 육지보다 걱정거리가 적을 것이다.

 

전국 여느 숲에도 흔하다고 조류도감은 주장하지만, 그건 전문가의 시각이다. 찬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옷깃을 저미고 종종걸음치는 시민들의 눈에 박새가 잘 띄는 건 아니다. 사실 박새와 참새를 구별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이런 시민들을 불쌍히 여겼는지, 서울의 난지한강공원은 시민이 참여하는 생태프로그램을 이른 겨울에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강을 찾은 겨울철새와 더불어 1995년까지 쓰레기매립장이었던 난지도, 다시 말해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에서 박새를 비롯한 텃새를 관찰하는 행사를 진행한 거다. 공원의 숲에 터 잡은 박새는 내년 행사 때에도 모습을 드러낼 테니, 기회는 어이진다.

 

승용차보다 박새의 생김새를 기억하는 시민이 늘어날수록 박새의 터전은 넓어질 터. 울릉도와 육지의 박새도 가끔 만나는 모양이니, 회색도시의 시민들이여. 굳이 겨울이 아니라도, 난지한강공원이 아니라도,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아, 사시사철 열린 가까운 공원을 가보자. 큰마음 먹고 울릉도를 찾아도 좋겠다. 해바라기 씨앗이나 땅콩 부스러기를 던져주면 박새는 금방 가까워질 거다. (물푸레골에서, 201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