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6. 12. 08:44

 

1970년대 후반. 대청봉 정상까지 한걸음에 오른 청년들이 화채봉으로 향했다. 가본 적도, 가는 길도 몰랐지만 좋다더라는 소문을 믿고 막연히 걸음을 재촉했던 사내들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당황했다. 슬금슬금 좁아지던 길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돌아나가야 옳았지만, 누가 앞장섰는지 건각들은 내친 김에 덤불을 헤치며 계곡을 내려갔다. 그러길 두어 시간. 날은 어둑해졌고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적 없는 물길을 첨벙이다 넓은 바위가 편평해지면 계곡은 꼭 낭떠러지로 이어졌다. 양손에 든 기타와 가방을 진작 내버린 일행은 배낭과 엉덩이를 질질 끌며 한발 한발 내려가는데 썩은 나무에 발을 의탁하던 친구가 그만 머리와 다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아래로 떨어져 박히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우리는 거의 울상이 되었는데, 어리둥절한 채 허공을 바라보는 친구. 배낭 덕분에 멀쩡했다며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이튿날 반나절을 더 헤맨 끝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인적 없던 계곡을 벗어났지만, 헤진 바지에 엉덩이를 드러내며 첨벙이는 순간에도 청년들은 생생한 기억을 전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 친구들은 지금 흩어져 살지만 자주 만나 술잔 기울인다. 누구라도 심각하게 다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치러야했다면, 다시는 마음 편하게 만나지 못했으리라.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물쭈물하다가라고 썼다던데, 우리는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치거나 독선으로 치달아 일을 그르칠 때가 잦다. ‘아라뱃길로 이름을 분칠한 경인운하가 그렇다. 기획 단계부터 비판적 검토가 빗발쳤지만 정부는 독선으로 밀어붙였다. 경인운하에 현재 화물을 실은 배가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18킬로미터에 불과한 경인운하를 오가는 화물선에 화물을 실으려는 화주가 없기 때문이다. 인근 잘 뚫린 도로로 20분이면 넉넉한데 어떤 화주가 트럭과 화물선에 물건을 거듭 옮기며 하루 이상의 시간을 버리고 초과운임을 받아들이겠나.


경인운하는 애초 계양산 일원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예방하려 계획된 굴포천 방수로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자. 수해가 빈번한 곳에 마을은 형성될 리 없다. 계양산 인근의 다남동과 벌말은 김포평야가 주변에 온전할 때 수해는 거의 없었다. 드넓은 논이 빗물을 완충했던 건데, 부천시 중동과 상동 신시가지의 대단위 아파트, 인천시 삼산동과 계산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김포평야가 개발되면서 사정이 바꿨다.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에 쏟아진 빗물은 낮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휩쓸리기 시작한 것이다.


갯벌 매립으로 공업단지나 신도시를 조성할 때 충분한 면적의 유수지를 확보하듯, 아파트단지를 넓게 만들 때 반드시 수해를 완충하는 습지를 확보해야 했지만 외면했다. 아파트를 더 지어 분양했을 따름이다. 그러자 수해는 애꿎은 지역으로 전가되었다. 신문 1면을 장식할 사고가 여태 발생하지 않은 4대강의 16개 대형 보 역시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도도하던 강물을 틀어막았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어떤 물폭탄을 상류지역에 떨어뜨릴지 모르는데, 신중하게 관리한다면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가 시장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20091, 주민 5명과 경찰 1명을 불에 타죽게 한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어떤 논의로 진행될까? 초고층 빌딩이 화려했던 애초 계획은 희생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투자자에게 보장되는 돈벌이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사업 규모와 내용이 바뀌면 다시 진행될까?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규모가 비슷한 독일 베를린의 화물철도터미널 개발의 예와 크게 대비된다.


동서로 분단된 이후 50년 동안 사용하지 않자 우리의 비무장지대처럼 온갖 풀과 나무들이 가득 들어왔지만 다시 철도화물터미널로 환원하는데 이견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쉬움을 표시하며 보전을 제안했고, 절차는 중단되었다. 이후 개발과 보전의 타당성과 방향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졌고 논의 과정에 베를린 시민의 참여는 당연히 배려되었다. 수십 차례의 공청회 끝에 철도 환원과 녹지 보전을 반영하는 최종 2안을 상정하기로 했고, 시민들은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합의를 이뤄냈다. 현재 녹지는 보전돼 있다.


논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다른 의견을 납득 가능하게 절충한 2개 안을 민주적으로 만들어냈고, 논의가 충분한 만큼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개발을 선호했던 시민들도 즐겨 찾을 만큼 철도화물터미널 부지의 녹지는 베를린의 자부심이 되었다는데, 위험사회를 펴낸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시민의 민주적인 참여가 위험사회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개발 방향과 시기를 결정했다면 용산역 주변의 주민과 경찰의 생명은 희생되지 않고 투자자의 적정 이익도 보장되었을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었을 게 틀림없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반대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해 잔뜩 만든 프랑스의 핵발전소들은 시방 낡았다. 아무리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해도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니 가동을 급작스레 중단해야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7등급 규모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의 원인은 제각각이었다. 앞으로 어떤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할지 점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관리와 운영이 투명하다면 사고 확률은 줄어든다. 부정과 비리가 발을 붙이지 못할 뿐 아니라 수명연장이나 폐쇄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므로.


기계가 낡으면 고장은 필연이다. 구조가 복잡한 기계는 고치기 어려운데, 핵발전소가 특히 그렇다. 후쿠시마에서 보았듯, 낡은 핵발전소의 사고와 고장이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불허한다. 시민들이 납득할 정도의 민주적 토론 끝에 자국 핵발전소의 가동을 즉각 멈추거나 차례로 폐쇄하고 있는 독일은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햇빛과 바람으로 전기를 충분하게 생산하는 까닭에 핵발전소가 멈출 때마다 전기가 부족해지는 프랑스에 수출할 수 있다는 거다.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 태양과 바람은 간단한 발전설비만 요구한다. 사고 규모가 작아 주민들도 쉽게 고칠 수 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대부분의 인공 구조물은 금방 부서지거나 고장을 일으키겠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유러터널은 예외적으로 천년 정도 버틸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지역의 환경이 안정적이고 시공이 철저했다는 건데, 유러터널은 공사 전부터 철두철미한 검토를 거쳤다. 기술과 경제 측면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는 물론 인문과 사회 영역까지 놓치지 않았기에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관리하는 까닭에 사고가 없었다.


완공되었지만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은 내세운 애초의 목적을 충족시킬 구조물이 아니다. 그 시설은 토목자본에 경이로운 이익을 안겼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설계 시공하고 관리 운영하는 발전소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피해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치룰 수밖에 없다는 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배웠다. 노후해 폐기해야 선박을 적당히 수리해 규정 이상의 화물을 대충 싣고 안전조항을 무시할 때 어떤 참사를 빚을 수 있는지 우리는 세월호에서 보고야 말았다.


지하수가 넘쳐흐르는 땅은 핵폐기물 처분장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지금 핵폐기물 처분장을 짓는 경주가 그렇다. 장차 어떤 사고를 일으킬까? 지구온난화는 해수면 상승 뿐 아니라 태풍과 해일을 거세게 만드는데, 파고를 완충해오는 갯벌은 끊임없이 매립된다. 우리 내일은 안녕할까? 사고 가능성을 외면하는 개발은 눈앞의 탐욕에 충실하지만 내일의 안전을 백안시한다. 이제 안전을 등한시하는 독선적 개발은 멈춰야 한다. 시민과 함께 다시 검토해 개발의 방향과 성격을 바꿔야 한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작아, 20146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10. 7. 2. 02:32

 

장마전선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월드컵은 막바지에 다가갔다. 남의 잔치만 남은 월드컵의 상업주의는 어느새 잠잠해졌다. 올해의 절반이 지나면서 새롭게 지방정부를 구성한 자치단체마다 초심을 다짐하는 취임식이 열리고, 취임한 단체장은 소통을 강조했다. 예상 밖의 선거 결과가 웅변하는 유권자의 정언명령을 절절하게 느꼈을 것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지방정부든, 아슬아슬하게 자리가 보전된 지방정부든, 그리고 2년 뒤 총선을 맞이할 정당이든,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출직 공무원이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무엇인지 새삼 명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월드컵 열기 속에 경기 관련 이외의 뉴스가 대폭 줄어든 상태에서 걱정스러운 소식도 들렸다. 정부의 민간인 사찰도 그 중의 하나다. 많은 이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어렵게 궤도에 오른 민주주의가 현 정권 들어 노골적으로 퇴보하는 현상 앞에서 실망한 이 땅의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이번 62지방선거의 결과는 웅변하는데, 월드컵 열기를 틈타 여전히 시민의 정언명령을 외면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주요 여론을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걸까, 아니면 교활하게도 유권자보다 임명권자의 눈치를 더 살펴 그런가. 보궐선거와 2년 뒤 총선을 앞둔 유권자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려는 건지, 못내 궁금하다.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던 선거기간에 선량 후보들은 시민사회에서 분출하는 단체의 다양한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천이 특히 그랬을 터. 7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인천시장과 대부분의 구청장이 후보일 때, 마음이 급해 받아들인 공약의 내용과 성격을 미처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때, 새로운 단체장들은 조금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해당 인수위원회에서 관심을 쏟으며 가중치를 두며 나름대로 걸러냈겠지만 충분했을 리 없다. 임기 시작을 계기로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야 하리라.

 

소통을 강조하며 출범하자마자 인천시에 굵직한 민원이 생겼다. 2014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신설에 관련하여 불거진 서구민의 항의가 그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몇 가지 사항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건 사실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출범한 인천시가 주경기장의 신설을 확실히 취소한 건지, 시 재정이 파탄 나든 말든 주경기장의 신설을 서구민들이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건지, 아직 모른다. 시민과 소통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시장은 민원을 제기한 서구민과 투명하고 민주적인 논의를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한데 말하기 쉬운 그 논의를 어떻게 실시할 수 있나.

 

서구의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의 건만이 아니다. 송도11공구 갯벌의 보전, 아라뱃길로 작명된 경인운하, 정부가 추진하는 인천만 조력발전이 그렇고, 그 이외에도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첨예하게 충돌할 뿐 아니라 이해 관계자가 다양한 여러 민원 뿐 아니라 당선을 염두에 두고 내세운 수많은 공약들을 모두 어떻게 처리하고 추진할 것인가. 납득할 수 있는 소통과 논의로 공직자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싹트고, 진정성 있는 민원 해결과 동의할 수 있는 정책 수행으로 시민들의 정주의식이 인천에 뿌리내리는 계기를 만들 수 없을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관여하는 일에 관심이 높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참여민주주의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자세, 다시 말해 제기된 민원에 대한 처리를 알려주는 정도는 소극적이다. 진정한 소통과 거리가 멀다. 민원과 정책을 공개한 뒤, 관심을 가진 시민이나 그들이 추천하는 인사가 논의 구조에 직접 참여해 심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제기되는 민원과 정책을 모두 논의할 수 없다면, 가중치에 따른 우선순위를 정하는 사전 장치는 필요할 것이다. 그런 장치를 제도적으로 만들어 시민의 구속력 있는 참여를 배려할 수 있다. 나이, 성별, 계층, 그리고 보수와 진보에 치우치거나 배척되지 않는 인물의 투명한 참여다. 참여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일찍이 도입한 ‘심의민주주의’에서 합리적인 예를 구할 수 있다. 차분하게.(기호일보, 2010.7.9)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6. 7. 17:04

 

눈에 잘 띄는 펼침막 하나를 만들어 붙인 뒤 떼어내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까. 자동차와 보행자의 이동이 많은 네거리가 전국에 몇 군데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번 선거 전후로 네거리에 펼쳐진 펼침막의 수와 그 비용이 상당하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개인도 부담이 꽤 컸을 텐데, 인천의 한 교육감 후보는 자신의 의지를 접어야 했다. 펼침막의 선정적 구호 말고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유권자에게 능동적으로 전할 수 없는 선거판에서 뜻을 같이하는 이의 획기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표가 끝난지 벌써 1주일. 네거리마다 소리 잃은 펼침막들이 여전한데 그 옆으로 당선사례를 알리는 펼침막이 새로 붙더니 다음 선거를 기약하고픈 펼침막까지 자신을 알리려 기를 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펼침막이 전국을 뒤덮었을까. 상상하기 어려운데, 선거관리위원회는 아직도 철거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펼침막 업자들은 이번 기회에 한밑천 단단히 잡았을 텐데 4년 뒤에도 이러려나. 출마를 계획하려는 자는 펼침막 비용부터 확보해야 할지 모르겠다.

 

후보가 자신을 알릴 수단은 펼침막과 벽보 이외에 알량한 명함이 있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집으로 보내는 유인물이 추가되지만 큰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 자신의 장점만 늘어놓은 유인물을 액면 그대로 믿는 유권자가 몇이나 되겠나. 뜯지 않은 유인물이 내버려지는 현실을 보라. 연설 현장과 인터넷 누리집을 일부러 찾아가 비교한 유권자는 드물었을 테고, 대개는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웠을 게다. 지난번처럼 바람을 반영한 선거 결과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노릇이지만, 짧은 선거 운동 기간 안에 후보의 됨됨이와 정당의 차별성도 제대로 인식할 방법이 현재까지 없다.

 

승리에 환호하고 패배에 당혹해 하는 정치권과 별도로 유권자, 다시 말해 시민들이 어리둥절한 건 언론마다 다투어 발표한 여론조사과 다른 결과를 자신들이 이끌어내었다는 뿌듯함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선거처럼 한 정당에 당선자들이 몰린 데 다소 불편해 할 것이다. 단체장과 의원의 소속 정당이 일방적일 때 빚어지는 독선과 오만의 폐해를 진저리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현 지방정부의 실정을 심판의 차원에서 한표 행사한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민, 다시 말해 시민이 헌법에 보장된 주권을 행사하는 세상을 말한다. 그런 민주주의는 쉽게 형성된 게 아니다. 왕이나 독재정권의 압제를 허물고 주권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커다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시민들은 투표일을 제외하면 노예에 불과하다고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냉소한다. 자신의 삶을 규제하는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더러 있지만 저들이 끼워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나 끼워주는 게 아닌데, 끼어보아도 별 구속력도 없다. 민원을 띄워도 수렴, 해결되는 과정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시민들은 소외될 따름이다. 기껏 할 수 있는 건, 실망한 뒤 표로 심판하고 다시 실망하는 일이다.

 

선거 결과를 놓고 정치권은 말버릇처럼 두렵다고 했는데, 이번엔 성찰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시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심판 이외의 시각으로 후보와 정당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러려면 유권자들은 후보로 나서는 인물의 됨됨이와 정당의 차별성을 진작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와 관계없이 시민이 정상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 체제가 늘 열어 있어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당원으로 참여해 정부 보조금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정당을 키우자는 의미가 아니다. 시민의 힘으로 정당을 키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주권자인 시민의 다양한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뿐 아니라 배려해야 한다는 거다.

 

모든 시민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순수하게 작동하겠지만 참여하려는 자가 많으면 그만큼 번거로울 것이다.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다.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스위스 같은 국가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효율적 정책 결정을 위해 시민들이 흔쾌히 유권자가 되어 대의원을 선출한다. 정책 결정에 앞서 대의원은 자신을 선출한 시민의 의견을 들어야하는 바로 그 대의제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의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다. 지방의회와 국회가 그렇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선출된 자들은 반드시 유권자의 의견을 확인하고 논의에 들어가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그렇게 민의가 수렵된 정책은 불편부당하게 시행해야 한다. 한데 현실은 어떤가.

 

정치권은 걸핏하면 국민이 어쩌고 민의가 어쩌고 들먹이며 자신들의 태도에 정당성을 과시하려들지만 과문한 탓인가, 사전에 시민의 의견을 충실하게 묻고 정책에 반영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다. 대의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는 선출된 자는 투표 행위를 마친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 든다. 적반하장이다. 이럴 때 대의제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참여민주주의다. 한데 주권자가 직접 참여하므로 민주주의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학자들이 말하는 참여민주주의에 누가 어떻게 참여해야 하나. 시민운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시민단체는 회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에 맞는 단체에 스스로 찾아와 가입하고 행동할 수 있다. 한 개인이 같은 마음을 가진 시민들과 모여 의기투합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길고 깊은 국가들은 시민단체가 참여민주주의의 역할을 기꺼이 맡고 정치권은 투명하게 배려한다. 선거 기간과 관계없이 정당과 정부의 정책들을 살펴보며 질의하고 그 대답을 공개한 뒤 대응한다. 시민단체의 종류는 다양하다. 여성정책을 모니터링한 뒤 진정성을 인물과 정당별로 차별화해 공개하면 회원들은 선거 전에 파악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이고 환경과 노동, 복지와 평화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시민단체가 그렇게 행동하는 한, 어떤 정당도 시민사회에서 불신의 대상인 자를 후보로 내세울 수 없다. 지지받지 않는 정책을 선보일 수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의 회원이 유권자의 수와 비슷한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시민단체의 역사가 일천하고 뿌리도 깊지 않다. 언론이 제몫을 다하지 못하는 마당에 시민단체의 행동이 미약하니 우리의 참여민주주의는 아직 불충분하다. 그래서 시민들은 중앙과 지방정권에 반복적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평소 민의를 파악하고 반영하려 정치권이 노력해왔다면, 시소를 타는 선거 결과는 심각하게 빚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 않아 그런지 아직 대의제민주주의에 대한 준비와 연습도 부실하다. 언제까지 반목할 겐가. 소통을 차단한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심판한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의사 결정 과정에 투명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민원을 띄워 정부나 의회의 답변을 듣는 정도에서 그칠 수 없다. 참여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어떤 절차로 누가 어떻게 논의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논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의회나 정부에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약하다. 시민단체의 일원이 되어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에 참여는 편이 강하다. 따라서 정치권은 강한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제 목소리를 가진 시민단체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 내일의 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한계를 가진 대의제민주주의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세금을 내는 시민은 참여의 자격이 충분하다. 종교나 정치 성향과 무관하고 인종과 계층을 구별할 이유가 없다. 공무원이라도 관계가 없어야 한다. 자식을 키우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부모도 오늘보다 내일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다. 시민들은 대의원을 뽑았지 군림하려는 자를 선발하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 사실을 새삼 강조했지만,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이나 권력으로 재단될 수 없는 민주주의를 위해 역시 시민이 한발 더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일을 위해, 가입할 시민단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인천in, 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