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8. 10. 19:33

 

채식인들은 채식주의를 지칭하는 영어 베지터리어니즘(vegetarianism)은 채소의 베지터블(vegetable)이 아니라 ‘온전한’과 ‘건강한’을 의미하는 라틴어 ‘베게투스(Vegetus)’에서 왔다는 걸 강조한다. “채식은 우리에 온전한 육체와 정신을, 지구에 온전한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2000년 1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국제 채식주의자 모임’에서 “인간에 동물성을 길러 공격적으로 만들고 지구와 끊이지 않는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육식을 피하면서 “광범위하게 퍼지는 기아와 질병,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채식 중심의 식생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천명한 채식주의자들은 ‘채식 천년 선언’을 했다.

 

진화된 이후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취 시절, 인류는 월등하게 수렵보다 채취에 의존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대략 수렵이 1이라면 채취가 4, 식단의 20퍼센트만 육식이고 80퍼센트는 채식이었다는 거다. 송곳니와 어금니의 비율과 꼭 같다. 그렇다면 영구치가 없는 어린이는 어른보다 고기를 더 먹는 게 나을까. 한참 자라는 나이에 단백질과 지질, 석회질과 철분은 아무래도 고기로 보충하는 게 편할 테니 그럴지 모른다. 같은 이유로 더 자랄 일이 없는 어른에게 육식은 20퍼센트 정도가 적당하다는 건데, 육식에는 우유와 계란, 해산 어패류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유럽에는 채식인을 위한 식단이 잘 개발돼 있고 채식인을 배려하는 식당이 많다고 한다. 워낙에 고기를 많이 먹어와 발생한 부작용이 채식의 가치를 인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유럽에서는 채식인들을 별스럽게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러워한다. 철학자나 정치인은 물론이고 발군의 기록을 가진 체육인 가운데 채식인이 있다는 걸 홍보하며 채식의 가치를 알리려는 노력이 효과를 발했을지 모른다. 반면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던 아시아에는 채식인을 위한 별도의 식단이 거의 없다. 물론 채식인을 배려하는 식당도 드물다. 이제야 마음껏 고기를 먹기 시작한 마당이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거부현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일본이 그렇다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우리 전통 음식을 보면 대부분 채식이다. 밥과 국, 김치와 깍두기, 각종 나물들, 가끔 찌게와 부침개에 고기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거기에도 채소와 곡물이 압도적이다. 채식인이 따로 없을 정도다. 조리 방법도 아주 바람직하다.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려면 채소를 그대로 먹는 게 가장 좋고 발효시켜 먹는 게 다음으로 좋다던데, 깨끗이 씻어 그대로 먹는 각종 쌈과 고추는 발효시킨 된장 고추장이나 간장과 곁들여 먹었다. 신선한 채소를 발효시키면서 먹는 김치 종류는 어떤가. 끓이기보다 데치는 게 낫고, 튀기는 거보다 굽는 게 낫다는데, 우리의 숱한 나물들은 대부분 데치고 국은 끓인다. 생일이나 명절이 되어야 고기를 굽고 전을 부치지만 기름에 풍덩 빠뜨려 튀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식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튀기는 음식이 가장 나쁘다고.

 

바람직한 전통 음식을 가진 우리도 최근 튀기거나 굽는 고기를 먹는 비율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 동경을 넘어 교과서를 활용하면서까지 서구식 음식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채식 위주의 전통 음식은 고급 식당에서 그만 설자리를 잃었다. 식당은 물론이고 가정마저 국과 나물에 고기를 넣기 시작하더니 고기 없는 쌈은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상식이 어느새 주입되면서 채식인을 회식자리를 귀찮게 만드는 유난스러운 자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장이 더 짧은 우리에게 부작용은 피할 수 없는 법. 예전에 없던 질병이 감당하기 어렵게 늘어나면서 채식의 가치를 인식하고 채식인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는 있는데, 아직 손님에게 고기를 대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약해진 건 아니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지 않고, 어울려 들어간 식당에서 주문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채식인들이지만 그들이 육식을 즐기는 이를 비난하거나 백안시하는 건 아니다. 식문화를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걸 인식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식성은 존중해야 할 개인의 취향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다만, 우리가 현재 먹는 육식이 어떤 과정으로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지 알고 먹기를 희망한다. 동물의 본성을 억압하는 공장식 축산만이 아니다. 아무리 입맛이 당겨도 자주 과식할 경우 몸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육식이 채식에 비해 높다는 점을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요즘과 같은 에너지와 환경위기,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내일을 위협할 때에는 낮은 단계의 먹이사슬, 다시 말해 육식보다 채식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권하고 싶어 한다.

 

많은 이들이 채식만으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지 묻는다. 물론 가능하다고 대답하면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고기를 먹여야하는 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주입된 상식의 집요한 허점이다. 필요한 아미노산을 쉽게 충당하려면 아무래도 고기가 편하기야 하지만 고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면 견과류나 두부로 충분할 수 있다. 차리는 데 다소 수고롭거나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고, 고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잠시 꺼릴 수 있지만 그건 식재료의 공급을 다양하게 늘리고 맛과 영양을 개선하면서 극복할 수 있고, 현재 극복되고 있다. 채식만 고집한다면 비타민12의 결핍이 우려되지만 전통 발효식품으로 필요한 만큼 섭취할 수 있고 약간의 젓갈이면 충분하다고 채식인들은 주장한다. 어떤 이는 수술 후 단백질 보충을 위한 고기까지 만류할 것인지 묻는데, 그런 고기라면 약이다. 확실한 진단에 근거하는 치료를 반대할 채식인은 없을 것이다.

 

채식이므로 모두 바람직하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술이나 담배는 물론 아니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다량 투입해 대규모로 재배한 농작물은 에너지를 과소비했으니 피하는 게 낫지만 그보다 그렇게 재배한 곡물을 산업적으로 정제한 탄수화물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대량으로 가공한 옥수수시럽이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인데, 맥아를 뺀 흰 밀가루와 쌀눈을 제거한 흰 쌀도 통밀이나 현미보다 나을 게 없다. 대량으로 수확한 곡물을 한꺼번에 저장해 놓고 이 나라 저 나라에 팔아넘기는 국제곡물상은 변질이 쉬운 맥아와 쌀눈을 제거하고자 하므로 수입곡물에 의존한다면 정제 탄수화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지역에서 생산한 곡물을 먹는다면 영양이 풍부한 곡식을 먹을 수 있다. 수입 과정에서 농약을 살포해야하는 과일이나 채소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해야 한다.

 

자연스런 음식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2008)에 이어 《행복한 밥상》(다른세상, 2009)을 쓴 마이클 폴란은 암호 같은 표시가 붙은 ‘제품’이 아니라 ‘음식’을 먹자고 제안한다. 정제된 탄수화물의 문제를 덮거나 벌충하려 알쏭달쏭한 물질을 넣어서 파는 슈퍼마켓의 상품은 음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는 영양소가 살아 있는 음식을 직접 조리해 먹자면서도 주로 채식을 하되 과식하지 말자고 당부한다. 마이클 폴란도 지적하듯, 내가 재배하는 농산물이 최선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내 식구를 아는 이웃이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먹자는 거다. 나는 물론이고 함께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와 이웃, 그리고 후손을 살리기 위해, 또한 농부와 땅을 살리는 ‘행복한 밥상’을 차리자는 마이클 폴란은 경험에 의한 전통 식단을 제안하는 것이다. 마이클 폴란만이 아니다. 우리의 많은 음식 전문가들도 전부터 권하는 밥상이 대개 그렇다. 가장 자연스런 밥이 먹는 이의 몸을 가장 건강하게 하고, 채식이 자연스런 밥상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리라. (사이언스올, 2009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