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7. 9. 16:10


채식주의자까지 아니지만 여지가 있으면 피해온 지 만 10년이 훌쩍 넘었다. 물고기는 여전히 즐기고 가끔 낙농제품도 먹으며 김밥이나 짜장면에 들어간 고기를 골라내지 않으니 고기를 철저히 사양하는 건 아니다. 내색하기 싫어 고기집이나 설렁탕집에 어울릴 때 가끔 입으로 들어오는 고기가 있지만, 예전처럼 반기지 않는다.


무사 계급 이외에 고기를 먹지 못한 일본에 채식 위주로 메뉴가 많을 텐데, 의외로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선보이는 식당은 없다고 한다. 우리도 비슷하다. 채식주의자들이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식당 이외에서 완전한 채식 메뉴를 찾기 어렵다. 일본처럼 백성에게 고기를 금지하지 않았어도 평소 푸성귀 위주로 먹어왔던 우리에게 어느새 육식이 자유로워졌는데, 그 때문일까? 채식 고집하는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생겼다.


반면 고기를 많이 먹어온 서양에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 적지 않고, 웬만한 식당에 채식인을 위한 메뉴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고기 소비량이 많은 만큼 축산의 비윤리적이고 생태적인 문제를 인식하는 이가 많다. 그러니 채식주의자도 많겠지. 고기를 편히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와 일본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하지만 아직 참을만하다. 고기집이라도 곁들이는 채식 식단이 풍부하다. 과식도 피할 수 있다.


명절이나 생일 때 쇠고기를 겨우 맛보았던 우리는 가정의 식탁에 고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식구가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건 핑계로 보인다. 나물과 국을 위해 푸성귀 다듬고 양념하기 귀찮아하지 않은가. 그러니 수입고기의 양이 많은데, 광우병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미국산도 적지 않게 들어온다.


광우병 위험 요인이 많은 소의 도축 부산물을 돼지와 닭의 사료에 섞는 미국은 돼지와 닭 도축 부산물을 소에게 먹인다. 따라서 광우병 교차위험이 쇠고기에 도사리고 있다. 지난 64일 미국에서 4번째 광우병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언론이 밝혔지만, 문제의식을 가진 미국의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그보다 훨씬 많은 광우병 사망자가 치매로 진단돼 은폐되었을 거로 의심한다.


광우병은 생후 30개월이 훨씬 넘은 소에 특히 많다. 노쇠해 우유 생산이 준 젖소나 송아지를 낳다 기력을 잃은 소가 그렇다. 그런 소에서 얻는 고기는 부드럽지 않아 지방과 섞어 분쇄해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에 들어가는데, 양이 많은 만큼 무척 남는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게 그 고기를 수입하라고 오래 동안 압박해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가입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미국은 30개월이 넘은 자국 쇠고기 수입을 그 조건으로 걸었다. 미국이 요구하면 응하기만 했던 우리 정부는 촛불집회를 기억하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수입할지 모른다. 미국산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은 광우병 수입과 다르지 않다. 미국처럼 젊은이의 치매까지 늘어날 수 있다.


무시무시한 광우병을 피하려면 미국산 쇠고기를 외면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응하더라도 소비자가 현명하면 그뿐이다. 나아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육식을 줄일 것을 권한다. 성인병 거의 없던 조상이 증명하듯, 친지의 생일이나 명절에 먹는 정도로 만족하면 어떨까. 우리 몸은 송곳니와 어금니 비율 이상의 육식을 원하지 않으므로. (푸른두레생협 소식지, 20147월호)

잘난 채식주의자가 육식주의자 비난하는거 보기 불편하네요.
멋진 서양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 메뉴가 있다고 잘난척이지만
일인당 육류소비량은 한국을 압도하는게 현실이구만...
이면을 보지 못하고 생색내기용 채식은 보기 불편합니다.
인천대학교 평생교욱원 기후.에너지교육 정말 좋았습니다. 네이버를 사용하다 보니 이제야 찾아보게 되었네요... 좋은 정보들 앞으로도 잘 읽고 느끼고 가겠습니다..^^
반성하세요

나라 혼란 일으키는 광우병 사태 논란

유머, 그리고 거짓선동으로 된 광우병
민주당의 정치 수단으로 가져간 나라혼란 광우병

제발 간첩새기들 꺼지시길

글삭하세요, 부끄러운줄알아야지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아니시죠?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8. 10. 19:33

 

채식인들은 채식주의를 지칭하는 영어 베지터리어니즘(vegetarianism)은 채소의 베지터블(vegetable)이 아니라 ‘온전한’과 ‘건강한’을 의미하는 라틴어 ‘베게투스(Vegetus)’에서 왔다는 걸 강조한다. “채식은 우리에 온전한 육체와 정신을, 지구에 온전한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2000년 1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국제 채식주의자 모임’에서 “인간에 동물성을 길러 공격적으로 만들고 지구와 끊이지 않는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육식을 피하면서 “광범위하게 퍼지는 기아와 질병,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채식 중심의 식생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천명한 채식주의자들은 ‘채식 천년 선언’을 했다.

 

진화된 이후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취 시절, 인류는 월등하게 수렵보다 채취에 의존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대략 수렵이 1이라면 채취가 4, 식단의 20퍼센트만 육식이고 80퍼센트는 채식이었다는 거다. 송곳니와 어금니의 비율과 꼭 같다. 그렇다면 영구치가 없는 어린이는 어른보다 고기를 더 먹는 게 나을까. 한참 자라는 나이에 단백질과 지질, 석회질과 철분은 아무래도 고기로 보충하는 게 편할 테니 그럴지 모른다. 같은 이유로 더 자랄 일이 없는 어른에게 육식은 20퍼센트 정도가 적당하다는 건데, 육식에는 우유와 계란, 해산 어패류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유럽에는 채식인을 위한 식단이 잘 개발돼 있고 채식인을 배려하는 식당이 많다고 한다. 워낙에 고기를 많이 먹어와 발생한 부작용이 채식의 가치를 인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유럽에서는 채식인들을 별스럽게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러워한다. 철학자나 정치인은 물론이고 발군의 기록을 가진 체육인 가운데 채식인이 있다는 걸 홍보하며 채식의 가치를 알리려는 노력이 효과를 발했을지 모른다. 반면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던 아시아에는 채식인을 위한 별도의 식단이 거의 없다. 물론 채식인을 배려하는 식당도 드물다. 이제야 마음껏 고기를 먹기 시작한 마당이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거부현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일본이 그렇다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우리 전통 음식을 보면 대부분 채식이다. 밥과 국, 김치와 깍두기, 각종 나물들, 가끔 찌게와 부침개에 고기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거기에도 채소와 곡물이 압도적이다. 채식인이 따로 없을 정도다. 조리 방법도 아주 바람직하다.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려면 채소를 그대로 먹는 게 가장 좋고 발효시켜 먹는 게 다음으로 좋다던데, 깨끗이 씻어 그대로 먹는 각종 쌈과 고추는 발효시킨 된장 고추장이나 간장과 곁들여 먹었다. 신선한 채소를 발효시키면서 먹는 김치 종류는 어떤가. 끓이기보다 데치는 게 낫고, 튀기는 거보다 굽는 게 낫다는데, 우리의 숱한 나물들은 대부분 데치고 국은 끓인다. 생일이나 명절이 되어야 고기를 굽고 전을 부치지만 기름에 풍덩 빠뜨려 튀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식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튀기는 음식이 가장 나쁘다고.

 

바람직한 전통 음식을 가진 우리도 최근 튀기거나 굽는 고기를 먹는 비율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 동경을 넘어 교과서를 활용하면서까지 서구식 음식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채식 위주의 전통 음식은 고급 식당에서 그만 설자리를 잃었다. 식당은 물론이고 가정마저 국과 나물에 고기를 넣기 시작하더니 고기 없는 쌈은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상식이 어느새 주입되면서 채식인을 회식자리를 귀찮게 만드는 유난스러운 자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장이 더 짧은 우리에게 부작용은 피할 수 없는 법. 예전에 없던 질병이 감당하기 어렵게 늘어나면서 채식의 가치를 인식하고 채식인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는 있는데, 아직 손님에게 고기를 대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약해진 건 아니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지 않고, 어울려 들어간 식당에서 주문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채식인들이지만 그들이 육식을 즐기는 이를 비난하거나 백안시하는 건 아니다. 식문화를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걸 인식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식성은 존중해야 할 개인의 취향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다만, 우리가 현재 먹는 육식이 어떤 과정으로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지 알고 먹기를 희망한다. 동물의 본성을 억압하는 공장식 축산만이 아니다. 아무리 입맛이 당겨도 자주 과식할 경우 몸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육식이 채식에 비해 높다는 점을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요즘과 같은 에너지와 환경위기,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내일을 위협할 때에는 낮은 단계의 먹이사슬, 다시 말해 육식보다 채식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권하고 싶어 한다.

 

많은 이들이 채식만으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지 묻는다. 물론 가능하다고 대답하면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고기를 먹여야하는 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주입된 상식의 집요한 허점이다. 필요한 아미노산을 쉽게 충당하려면 아무래도 고기가 편하기야 하지만 고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면 견과류나 두부로 충분할 수 있다. 차리는 데 다소 수고롭거나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고, 고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잠시 꺼릴 수 있지만 그건 식재료의 공급을 다양하게 늘리고 맛과 영양을 개선하면서 극복할 수 있고, 현재 극복되고 있다. 채식만 고집한다면 비타민12의 결핍이 우려되지만 전통 발효식품으로 필요한 만큼 섭취할 수 있고 약간의 젓갈이면 충분하다고 채식인들은 주장한다. 어떤 이는 수술 후 단백질 보충을 위한 고기까지 만류할 것인지 묻는데, 그런 고기라면 약이다. 확실한 진단에 근거하는 치료를 반대할 채식인은 없을 것이다.

 

채식이므로 모두 바람직하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술이나 담배는 물론 아니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다량 투입해 대규모로 재배한 농작물은 에너지를 과소비했으니 피하는 게 낫지만 그보다 그렇게 재배한 곡물을 산업적으로 정제한 탄수화물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대량으로 가공한 옥수수시럽이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인데, 맥아를 뺀 흰 밀가루와 쌀눈을 제거한 흰 쌀도 통밀이나 현미보다 나을 게 없다. 대량으로 수확한 곡물을 한꺼번에 저장해 놓고 이 나라 저 나라에 팔아넘기는 국제곡물상은 변질이 쉬운 맥아와 쌀눈을 제거하고자 하므로 수입곡물에 의존한다면 정제 탄수화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지역에서 생산한 곡물을 먹는다면 영양이 풍부한 곡식을 먹을 수 있다. 수입 과정에서 농약을 살포해야하는 과일이나 채소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해야 한다.

 

자연스런 음식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2008)에 이어 《행복한 밥상》(다른세상, 2009)을 쓴 마이클 폴란은 암호 같은 표시가 붙은 ‘제품’이 아니라 ‘음식’을 먹자고 제안한다. 정제된 탄수화물의 문제를 덮거나 벌충하려 알쏭달쏭한 물질을 넣어서 파는 슈퍼마켓의 상품은 음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는 영양소가 살아 있는 음식을 직접 조리해 먹자면서도 주로 채식을 하되 과식하지 말자고 당부한다. 마이클 폴란도 지적하듯, 내가 재배하는 농산물이 최선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내 식구를 아는 이웃이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먹자는 거다. 나는 물론이고 함께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와 이웃, 그리고 후손을 살리기 위해, 또한 농부와 땅을 살리는 ‘행복한 밥상’을 차리자는 마이클 폴란은 경험에 의한 전통 식단을 제안하는 것이다. 마이클 폴란만이 아니다. 우리의 많은 음식 전문가들도 전부터 권하는 밥상이 대개 그렇다. 가장 자연스런 밥이 먹는 이의 몸을 가장 건강하게 하고, 채식이 자연스런 밥상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리라. (사이언스올, 2009년 8월)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5. 3. 10:52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간밤에 고 방울 어디서 사왔니, 쪼로롱 고 방울 어디서 사왔니” 지금 어른들이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동요는 방울새를 쪼로롱 방울새라고 노래했다. 방울처럼 쪼로롱 울어 그런 이름을 받은 방울새는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라고 조류도감은 건조하게 기록한다, 그런데, 야생조류동호회 회원 외에 방울새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방울새 동요를 배우지 않기 때문일까. 햇살이 따사로운 늦가을, 탈곡 때 떨어진 낱알이 흩어져 있는 마른 논에 ‘쪼로롱, 쪼로롱’ 옹기종기 모여 나직하게 울던 방울새는 인가에서 멀리 떠난 까닭일 게다.


방울새는 거의 채식주의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농작물을 먹을 테니 해로울까. 방울새보다 늦게 진화해 세상에 나왔을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자연의 생물을 이분법으로 구별하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그런 다분히 사람 위주의 편의적 기준으로 보아도 방울새는 이롭다. 되새과 조류들이 대개 그렇듯이 묵직하고 단단한 부리를 가진 방울새는 인적 없이 방치된 가을철의 잘 익은 곡식과 봄철의 새싹도 가끔 마다하지 않지만 껍질이 두꺼운 들풀의 씨앗을 주로 으깨 먹기 때문이다. 못된 이분법으로 ‘잡초’라고 규정한 풀의 종자를 축내지 않는가. 하지만 아니다. 방울새는 사람에게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다.


들풀은 방울새에게 내줄 것을 감안해 씨를 맺는다. 우리가 특별 대우하는 곡식도 알고 보면 들풀의 일종이다. 아직 들풀일 적에 방울새는 물론 수렵채취하는 사람에게 빼앗겨도 남을 정도의 알곡을 생산했다. 하지만, 곡식이라며 한 군데 모야 심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한 톨의 낱알도 방울새에게 주지 않으려 눈을 부라린다. 예전의 농부는 힘찬 발로 구른 탈곡기로 벼를 털어 낱알을 마른 논바닥에 남기기도 했지만 콤바인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면서 그런 일은 없어졌다. 볏짚 채 싹 쓸어가 버리고 그나마 낱알 달린 볏짚은 기계로 둘둘 말려 축사로 팔려나간다. 그러자 방울새는 떠났다. 어디 그뿐인가. 논둑에 콩도 심지 않는 요즘 농부는 풀만 돋아나면 제초제를 뿌리니 잘 익은 들풀의 열매는 구경조차 어렵게 되었다. 방울새는 저를 부르는 동요마저 사라진 인가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월에서 8월, 부화한 새끼에게 줄 먹이가 많으면 한 해 두 번까지 번식하는 방울새는 번식기가 지나고 새끼들이 독립할 때면 드디어 단체생활로 들어간다. 겨울철 지리산 쌍계사 주변 대숲에 수십만 마리로 몰려드는 되새와 달리 방울새의 단체는 소담하다. 30여 마리로 무리지어 생활하는데, 이때 사람의 눈에 잘 띈다. 숲 가장자리에서 양지바른 곳으로 낮게 날아다닐 때 노란 날개깃이 활짝 펴져 부챗살처럼 팔랑거리는 까닭이다. 그러면서 제가 방울새 아니랄까봐 쪼로롱, 쪼로롱, 운다.


“채식을 하면 힘이 없다면서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을 먹일 수 없다던데…” 그리 묻는 사람에게 방울새는 뭐라 할까. 뭐라 하긴, 쪼로롱 한다. 뽀로통한 것은 아닐까. 평상시 채식에 의존하는 방울새지만 번식기를 전후해 가끔 육식도 즐긴다. 밥주발 모양의 둥지에 4개 내외의 청백색 알을 낳을 때 약간의 곤충을 먹고, 2주가 채 못돼 부화된 새끼에게 먹이를 먹을 때 이따금 곤충을 물어 나를 정도다. 안간힘을 다해 노오란 주둥이를 벌리는 새끼들도 거의 채식단을 받는다. 어미는 반쯤 소화시켜 토해내거나 더 자랐을 땐 물고 온 풀씨를 뭉뚝한 부리로 잘게 부수어 새끼에게 준다.


날씨가 찬 북부 유럽에 번식하다 겨울을 나러 우리나라에 날아오는 검은머리방울새는 텃새인 방울새와 사촌간이고 방울새처럼 채식에 의존하지만 먼 거리를 이동한다. 올림픽 4관왕에 빛나는 단거리 육상선수 칼 루이스가 채식주의자라는 걸 방울새나 검은머리방울새는 관심 없어 하겠지만, 채식으로 얼마든지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동물성 식단에 국한되는 비타민 비12를 어찌하느냐고 다그친다면, 채식주의자는 젓갈로 담근 김치로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쪼로롱 우는 방울새는? 그야 곤충을 조금 먹자고 할 테지. 육식으로 쉽게 보충할 수 있는 단백질을 위한다면 송곳니 대 어금니의 비율인 1:4 정도로 유기 육식단을 고려할 수 있으리. 방울새의 의견은 여전히 뽀로통일까.


방울새는 내륙지방보다 해안에서 자주 눈에 띄는데, 조류학자들은 경작지가 밀집된 내륙은 살충제와 제초제에 절었기 때문으로 것으로 추측한다. 경작지로 연결되는 내륙의 숲 가장자리는 농약 농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방울새가 좋아하는 소나무 숲은 솔잎혹파리와 소나무 에이즈라 칭하는 재선충이 활개친다며 방제를 서두르고, 해충이 몰려나오는 숲에서 잡초 씨가 날아온다며 주변 경작지에 살충제와 제초제를 흥건히 뿌리지 않던가. 먹이가 좀 부족하더라도 방울새는 해안을 찾을 수밖에. 그걸 짐작한 것일까. 산탄총으로 무장한 포수는 방울새의 길목을 노린다. 화본과식물의 종자를 즐겨먹어 그런지 울음소리가 예뻐 애완용으로 각광받기도 하는 검은머리방울새는 맛도 좋아 알량한 몸집은 식용으로 그만이라 한다. 한때 곡식을 축낸다며 수렵조로 지정된 적 있던 방울새는 자비심 없는 사람 앞에서 무력할 따름이다.


20대 청년인 다윈은 남미 에콰도르 서쪽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핀치라는 방울새 무리를 잔뜩 잡아와 ‘자연선택에 의하는 진화’에 대한 이론을 이끌어냈다. 사람을 처음 만나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들은 가만히 다가가 손으로 잡으려 해도 달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하늘에 매가 뜨면 조사 나온 과학자들의 옷깃에 몸을 숨긴다고 한다. 핀치 종류를 손쉽게 잡은 다윈은 진화론으로 위인 반열에 올랐는데, 오늘날, 우리의 방울새는 내일을 걱정해야 한다. 흔한 텃새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기 직전이다.


얼마 전, 포항의 한 경찰서 앞마당에서 방울새 부모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이 연출돼 세간의 흥미를 끌어냈다. 이틀간 몰아친 강풍으로 둥지를 잃은 방울새 어미가 눈도 채 뜨지 않은 새끼 두 마리에게 먹이를 물어주는 걸 텔레비전 화면으로 전국의 시청자에게 보여준 것이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새끼 방울새를 나뭇가지에 올려준 경찰은 어조원에서 짚으로 만든 둥지를 구해 매달아주었다는데, 방울새 부모는 제 새끼들을 구해주고 둥지까지 선사한 경찰이 못내 고마워 쪼로롱 인사했을 것이다.


강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오르내렸던 4월은 그렇게 지나갔고, 따뜻한 5월이 시작됐다. 포항의 방울새는 구출된 새끼를 잘 키우고 있을 것인데, 자비심 있는 사람도 이따금 나타난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는 좀 곁을 주려나. 방울새가 파란 하늘 아래 노란 깃 펄럭거려 더욱 따뜻한 봄을 자주 만끽했으면 좋겠다. (물푸레골에서, 200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