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8. 10. 19:31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한 손에 작은 개를 끌어안고 아파트단지 내 상가를 나온다. 거긴 가까운 전철과 이어주는 마을버스의 출발점. 출발에 앞서 잠시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쉬던 기사는 지나치는 할머니를 보고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강아지가 참 귀엽네요!” 그러자 반색하던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투를 흔들며 묻지 않은 말까지 대답한다. “이래 뵈도 이 얘는 쇠고기 안심만 먹어! 안심!” 그리곤 총총걸음으로 아파트 현관으로 사라지는 할머니. 박봉의 월급을 받으며 하루 종일 시달리는 기사들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저런 개들은 몽땅 잡아먹어야 혀!” 다 마신 일회용 컵을 구겨 버리던 옆의 동료는 “저 한 탕기도 안 되는 거 누구 코에 붙이나!” 맞장구친다.

 

언니와 모처럼 새벽 산행을 나서자 당연하다는 듯 조용히 뒤따르던 개였다. 아무도 없는 산길. 있는 듯 없는 듯, 언니 발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르는 개에 신경 쓰지 않고 수다 떨며 산길을 오르다 그만 언니는 몸이 휘청했다. 혼자 걷던 길을 동생과 나란히 걷다 그만 비탈 아래의 허공으로 중심을 잃은 것이다. 순간. 뒤에서 무언가 언니의 허리를 묵직하게 들이받았고, 절벽 아래로 몸이 쏠리던 언니는 가파른 산길에 덥석 주저앉을 수 있었는데, 짖지도 않고 따라오던 개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나뒹굴고 말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동생은 개고기를 먹는 이를 혐오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한데, 개의 먹이는 대부분 육식이다.

 

“생명을 끊은 뒤 먹는 동물의 시체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런 선언은 함께 밥 먹으려던 이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다. 아니 동물만 시첸가. 배추나 무, 밥이나 고추장도 분명히 살아 있던 식물을 따서 자르고 발효시키거나 끓이며 죽인 시체가 아닌가. 졸지에 피도 눈물도 없는 백정이나 흡혈귀가 돼버린 이들은 채식주의자의 유별난 식성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저들이 신은 구두는 뭔가. 지갑은. 동물을 죽인 뒤 벗긴 가죽 아닌가. 어럽쇼. 계란과 우유는 먹네. 계란과 우유는 육식이 아닌가. 멸치나 물고기를 먹는 채식주의자도 있고 어떤 녀석들은 닭고기도 먹는다던데, 뭐 그런 채식주의가 다 있나. 혹시 집에 가선 불고기와 갈비 재놓고 먹는 거 아냐?

 

채식에 대한 오해와 반감이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한 게 사실이다. 그건 채식을 하는 이의 일부가 육식을 즐기는 이를 야만스레 바라보는 시각에 노여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채식주의자라고 하지만 ‘주의자’라는 교조적이며 배타적인 이데올로기까지 앞세우며 채식을 고집하는 이는 사실 드물다. 그저 자신을 ‘채식인’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따라서 채식을 고집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즐기는 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채식인을 배려해주길 바랄 뿐이다. 채식인도 다채롭다. 고기는 물론이고 약간의 고기국물도 손사래 치는 채식인이 있는가 하면 붉은색 고기만 사양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닭고기는 먹는다. 어떤 채식인은 실크나 가죽도 거부한다.

 

동물 성분을 전혀 먹지 않는 채식부터 우유는 먹는 채식, 거기에 계란까지 먹는 채식, 해산물과 민물고기도 먹는 채식, 그리고 붉은 살코기만 먹지 않는 채식까지 5단계로 나누는데 반드시 그렇게 엄격하게 분류되는 건 아니다. 집에서 개를 키울 때에는 개고기를 삼가지만 다른 고기를 먹는 이도 있고 종교 때문에 돼지나 쇠고기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새 연구자는 철새가 먹는 갯벌의 어패류는 일체 먹지 않지만 식육으로 사육한 고기는 즐기고 어떤 환경운동가는 유기농으로 사육해 얻은 고기는 먹어도 지나치게 어리거나 멸종위기에 몰린 동물은 먹지 않는다. 남들 보는 앞에서 김밥 속의 소시지를 쏙쏙 빼내는 채식인이 있는가 하면, 어른이 권하면 고기를 덥석 받아먹는 채식인도 있다.

 

사람의 개성이 다양하듯 채식의 요령과 고집도 개인에 따라 다른데, 채식을 하게 된 동기도 여러 가지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키우면서 육식을 포기한 사례와 지나친 육식으로 몸이 엉망이 된 이후 채식으로 식단을 바꾼 예가 많지만 명상으로 채식인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어려서부터 고기 씹는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아 자연스레 채식을 선택하게 된 사연과 고기를 먹지 않는 집안 분위기로 채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는데 불심이 깊어 고기를 회피하게 된 이유도 적지 않을 테고 상업축산이 일으키는 육식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책을 읽은 뒤 채식인의 삶을 걸은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유가 어떻던, 육식을 즐기다 채식으로 식단을 바꾼 이들은 몸이 한결 좋아졌다는 데 서로 동의한다.

 

배고픈 개나 고양이가 밥을 거부하지 않듯 소나 양도 사료에 고기를 섞으면 먹을 수밖에 없지만 익숙지 않은 만큼 몸에서 부담을 느낄 것이다. 풀을 천천히 소화시키기 적당할 만큼 길이가 긴 장은 고기를 소화흡수하는 기능이 약할 터이므로. 상대적으로 짧은 장에서 강력한 소화효소가 나와 고기는 물론이고 뼈까지 순간적으로 흡수하는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도 소화가 잘 안 될 때 풀을 뜯기도 한다던데, 채식동물이라고 반드시 채식만 해야 하고, 육식동물이므로 채식을 하면 큰일이 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방울새는 주로 단단한 곡식을 깨먹지만 새끼에게 곤충을 먹이기도 한다. 자라는 시기와 몸 상태에 따라 식성을 바꾸는 건데, 고기를 모른 채 태국의 한 사원에서 자란 호랑이는 눈망울까지 순해 터졌고 사람이 버린 닭 뼈를 갉아먹던 여의도 공원의 버림받은 토끼는 사납기 그지없다고 한다. 그렇듯, 식성은 먹는 자의 습성을 좌우하는지 모른다. 장의 길이가 육식동물보다 길고 초식동물보다 짧은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채식으로 밥을 차려 천천히 먹는 이는 마음이 선할 것 같다.

 

목표와 속도가 숭상되는 철근 콘크리트 도시에 인구가 밀집된 요즘, 사람들은 전에 비해 고기를 많이 먹는다. 누가 어떻게 사육했는지 모르는 고기를 냉동한 뒤 조리해 먹는데 긴 시간이 필요 없으니 일에 파묻혀 사는 도시인에게 적당할지 모르는데, 고기 소비량과 관계없이, 주어진 원칙에 따를 것이 종용되는 시민들이 속도와 경쟁에 지쳐가는 도시일수록 스트레스는 증가하고 범죄가 많을 것이다. 흔히 도시를 전쟁터에 비유하는데, 전쟁터에는 채식보다 육식이 어울릴 것 같다. 전쟁이 잦은 유럽을 공포에 질리게 했던 몽골군은 전적으로 육식에 의존했다지 않던가. 인구가 드문드문한 시골은 어떤 일을 공동으로 처리해야 할 때 규칙을 앞세우기보다 다른 이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며 의논하려 애쓴다. 그런 시골에는 함께 채소를 다듬고 요리해 먹는 식단이 어울려 보인다. 서로 얼굴을 아는 이들이 뿌리내리고 사는 시골에는 범죄가 드물다. 물론 식단과 직접 관련이 있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해치려는 자를 경계하고 나름대로 저항한다. 저항할 때 특별한 호르몬이 배출될지 모르는데 어릴수록 그 호르몬의 양이 많을 게 틀림없다. 분노와 공포 속에서 목숨을 잃은 동물의 몸을 먹으면 비슷한 감정을 유도하는 호르몬을 함께 먹을 테고, 먹는 이의 성격을 포악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채식주의자가 있다. 어린 초식동물을 즐겨 잡아먹는 육식동물에게 그런 포악성이 자연스럽고 중요한 일이기는 한데, 사람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동물과 달리 식물은 누가 자신을 먹어주길 바랄 때가 많다. 탐스러운 향과 색을 과시하는 과일을 보라. 동물이 먹어 씨를 뱉어주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하나. 새나 초식동물이 씨앗을 퍼뜨려주는 걸 반기는 식물은 잎과 열매를 풍성하게 내놓지 않던가. 언제나 제 자리에서 찾는 이를 맞는 다양한 식물을 축나지 않게 먹는 일은 초식동물에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경쟁이나 공포보다 느긋한 삶을 좋아하고 포악한 자보다 선량한 이가 훨씬 많은 사람은 초식동물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잡식동물이다. 소나 말처럼 풀만 뜯거나 사자나 호랑이처럼 동물만 잡아먹지 않고 풀이나 곡식, 과일과 버섯도 먹고 계란과 고기도 잘 먹는다. 송곳니와 어금니가 잘 발달된 턱 구조가 그를 잘 반영한다. 앞니를 제외하면 전부 어금니인 소, 앞니와 어금니도 송곳니처럼 뾰족한 고양이와 분명히 다르다. 위아래 8개인 앞니는 채소를 자르기 쉽고 바로 뒤 4개의 송곳니는 고기를 찢기 쉬우며 송곳니 뒤로 이어지는 16개의 어금니는 곡식을 갈고 빻기 쉽게 생겼다. 영구치가 없는 어린이는 어금니가 좌우와 위아래 턱에 각 2개 씩 모두 8개, 어른은 5개 씩 모두 20개이지만 사춘기 때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랑니는 씹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니 뺀다면 송곳니 하나에 어금니가 4개 꼴이다. 그러면 사람에게 육식보다 채식이 더 자연스러운 까닭, 장의 길이나 송곳니에 대한 어금니의 비율 때문일까. (사이언스올, 2009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