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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16. 5. 15. 10:12

매보다 사람이 두려운 흑염소

 

굴업도에서 천남성을 만났다. 그것도 한 차례 여행에서 여럿 종류를. “첫 남성이 아니다. 첫 남성은 여럿일 수 없는 노릇. 작아도 화사한 들꽃들이 자신의 자태를 부끄럽게 펼치는 5, 서해안의 진주,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서포3리 굴업도의 햇빛이 잘 닿지 않는 기슭에 웅크린 그는 남쪽 하늘의 별, 천남성(天南星)이라는 들풀이다.


천남성은 독초다. 임금이 내리는 사약으로 사용하던 천남성에 섣불리 접근하는 초식동물이라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린 뒤 죽었다지만 천남성은 차원이 다르다. 릴케는 백혈병을 앓았기에 장미 가시에 쓰러졌지만 천남성은 가시가 없어도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응달에 숨은 자태가 순수하기 이를 데 없다. 섣부른 첫 남성에게 팜므파탈의 고혹적 유혹일까?


들풀마다 새순을 펼치는 계절에 긴 꽃대를 내밀고 원통 깔때기 모양의 녹색 꽃을 비스듬하게 펼치는 천남성은 첫 남성에게 팜므파탈일지 모르지만 굴업도에서 주인 행세하는 흑염소에게 유혹은 통하지 않는다. 철저히 외면을 받는다. 어미젖 보채는 새끼 때문에 아무리 허기지더라도 말랑말랑한 천남성 잎사귀에 입도 대지 않는다. 젖 물리던 어미에게 일찍이 그렇게 학습되었다.


5월 바닷바람이 싱그러운 덕적도에서 연락선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닿는 작은 섬 굴업도는 마을 진입로부터 하얀 민들레 군락이 방문객의 눈을 끌어 모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흑염소가 뜯어낸 건 아니다. 경관을 즐기려 모여든 방문객의 등쌀로 하얀 민들레가 자취를 감춘 것인데 마침 연두색 잎사귀를 펼친 바닷가의 소사나무 군락은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한다. 봄이 무르익을 때, 새 생명은 저마다 나래를 편다.





잎을 막 펼친 소사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두드러지는데, 커다란 매들이 천천히 맴도는 모습이 한가롭다. 봄볕을 받으며 산등성이로 오르는 사람들이 나른해질 오후, 무리지은 흑염소들은 기슭마다 부산하다. 매가 떴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끼를 먹이랴 보호하랴 흑염소 어미는 바쁘다.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 사람에게 5월은 계절의 여왕이지만, 새끼들을 걷어 먹여야하는 매와 흑염소는 한가로울 수 없다. 마른 억새 사이로 파릇하게 움터 오르는 부드러운 풀을 뜯는 흑염소 가족, 그 중 어미의 품에서 멀어진 새끼에게 매는 치명적 천적이다. 새끼가 천남성에 입을 댈지 몰라 어미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에 벼락 같이 내려와 새끼를 채가지 않던가.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흑염소가 만든 굴업도 산등성이의 오솔길로 들어서면 여기저기 어린 흑염소의 잔해가 눈에 띈다. 서해안의 작은 섬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흑염소는 저렇듯 매를 불러들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요사이 특히 드물어진 매를 보려면 서해안의 작은 섬을 찾아야 할 정도라는데, 무인도가 아니라면 주민도 흑염소 증가를 억제한다.


2천 년 전 중국에서 들여와 서해연안부터 사육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흑염소는 덕적도 인근의 작은 섬에 흔하고 굴업도도 예외가 아니다. 절해고도를 지키는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정부가 일찌감치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땅콩 밖에 심을 게 없어 엎드려 일해야 목구멍에 풀칠할 수 있었다는 굴업도는 예나 지금이나 척박한 모래섬이다. 산등성이 말잔등처럼 완만하게 이어지는 경관이 더 없이 빼어나지만 조기도 민어도 두 세대 전의 전설로 남았을 따름이다.


굴업도 주민들은 절대 엽총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솔길 바닥에 주변 나무에 묶은 나일론 올무를 여러 개 펼쳐놓고 기다리면 영락없을 터. 발목이 걸렸어도 겉보기에 당황하지 않는 녀석이 오솔길을 지키고 있다. 당황? 눈을 치켜뜨며 뿔 달린 이마를 앞세워 달려들겠지. 그렇다고 땅콩농사를 접은 주민들이 당황할 소냐! 억센 두 손으로 뿔을 움켜쥔 뒤, 인천 연안부두의 식당에 탕 거리로 팔겠지.





포유강 우제목 소과 염소속에 속하지만 흑염소가 그걸 따지랴. 암수 모두 뿔이 있지만 수염은 수컷만 가진 흑염소는 몸무게가 30킬로그램 정도에 불과해 염소 무리 중에서 작은 편이다. 추위에 잘 견디며 독초를 제외하면 아무거나 잘 먹어 섬 지방 주민의 수익을 도모하는 흑염소는 늦은 가을 짝짓기를 해 새싹이 파릇파릇한 계절에 2마리의 새끼를 낳는 분명한 가축이지만 다른 축산업과 달리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 특성을 살려 서해안의 유인도와 무인도에 방생했는데 뒤늦게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도서 주민이 줄고 몰이꾼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허락 없이 섬 지방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터줏대감이 됐다.


초식동물의 눈매는 대개 선하다. 소를 보라. 사람들이 아무리 가혹하게 사육해도 눈매가 그리 무던할 수 없다. 반면, 육식동물의 눈매는 사납다. 흑염소 새끼를 낚아채는 매는 말할 것도 없고 개구리를 노리는 때까치의 눈매도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닌데, 흑염소는 예외다. 바위투성이 절벽, 천적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난공불락 계곡, 햇살 강한 절벽에서 고독 속에 거친 풀을 뜯는 흑염소가 서글서글해야할 이유는 없겠지.


노려보는 듯 치켜 뜬 눈은 거만해 보이기까지 해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래서 그런가? 흑염소를 집 가까이에서 사육하는 농가는 드물다. 거친 사료는 물론, 소나무 잎이나 나무줄기까지 거뜬히 소화시키므로 인적이 드문 임야나 외딴섬에 방목해도 사람의 수입에 이바지해왔는데, 이제와 아우성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유해동물이라는 게 아닌가.


엽총을 들자 매가 접근하지 않고, 천적이 사라지자 거침없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사람이 제공했건만, 천남성이 아니라 나무껍질과 가지까지 뜯는다고 난리다. 설마, 사람을 노려본다는 죄목이 덧씌워진 건 아니겠지? 절벽에 은둔하는 염소를 굳이 데리고 와 가축으로 개량한 건 사람이었다. 살쾡이도 접근할 수 없는 환경에서 표정이 선하든 험하든 사람이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람 세계로 다가온 흑염소는 치명적 곤혹을 강요받아야 했다.





1970년대 방생된 흑염소가 마음껏 늘어난 198112, 국내에서 1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다도해국립공원은 참다못해 엽총을 들었다. 2011년 연구로 생태계에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확보한 환경부가 생태계 위해성 2급 종으로 분류하자 다도해와 한려해상국립공원 17개 섬에 퍼진 흑염소를 포획하기로 화답한 것인가?


2007년부터 2500마리가 넘는 흑염소를 생포해 주인에게 넘긴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 4월 경남 통영시의 매물도에서 엽총 쏘았다. 그물을 이용한 생포가 원칙이지만 절벽으로 숨어드니 어쩔 수 없었다면서. 껍질 잃은 나무와 뿌리까지 뜯긴 풀이 국립공원에서 사라지자 산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매물도의 마지막 수컷마저 사살했으니 흑염소가 지배한 국립공원 생태계의 흑역사는 지워졌지만 사료 한 톨 얻어먹지 못한 흑염소는 몹시 억울할 것이다.


사람에게 큰 이익을 안겨줄 거라 환호를 받다 억울해진 흑염소는 더 있다. 1998년 한국과학기술원은 사람의 백혈구 증식인자를 젖으로 분비하는 흑염소를 개발했다고 자랑했다. 이름하여 메디’. 1그램에 9억 원을 호가하는 치료제를 정제하면 국가 부가가치를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금 어떤 신세인가? 메디의 후손들은 부가가치를 여전히 약속하는가? 2001년에 임상시험에 들어갈 거로 장담한 백혈구 증식인자는 여태 감감무소식인데, 분명한 사실은 메디 후손은 굴업도의 흑염소보다 결코 높은 부가가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칼슘과 철분이 많을 뿐 아니라 근육까지 연해 소화흡수가 잘 되므로 예로부터 환자의 보양식으로 애용되는 흑염소는 왕실의 약용동물이었다. 소가 건드리지 않는 “100가지의 풀과 1만 가지의 꽃을 고루 먹는 매우 신비한 동물이라는 게 아닌가. 동의보감에서 양기의 으뜸으로 치켜세운 흑염소는 왕실보다 오히려 백성에게 적합할지 모른다. 사육하느라 큰돈 들이지 않아도 되는 가축이므로.


구우면 딱딱해지는 흑염소는 온갖 약재와 과일, 심지어 파인애플까지 넣고 조리거나 중탕으로 먹는 편이 좋다는데,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어서 체열이 많은 사람에게 두드러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민간의료 전문가들은 귀띔한다. 식욕을 돋우니 살이 심하게 오를 수 있다는 진단도 등장한다. 살찌고 싶은 사람들 솔깃해지겠다. 민간의료 왈, 비타민E가 많아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새살을 돋게 해 수술 뒤 회복하는 환자에 좋으며 불임을 예방하니 임산부에게 이롭다는데, 결혼을 앞둔 요즘 자녀들이 관심을 보이려나.


간에 비타민A가 풍부하니 시력감퇴에 효과가 좋고 동맥경화, 고혈압, 심장병, 신경통을 비롯해 성인병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지만, 그게 어디 흑염소만의 특징이던가. 아무튼, 그런 이유로 해마다 100만 마리의 흑염소가 세상에 태어났다 등지는데, 봄이 무르익은 굴업도에는 천남성이 군락을 이뤘다. 천남성을 외면하는 흑염소는 매를 조심해야 할 계절을 다시 맞았는데, 100세 수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굴업도에 인산인해다. 매가 떠나면 흑염소가 늘어나겠지. (중앙Sunday, 2016.5.15.)

잘 보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흑염소가 가엽군요.
굴업도엔 이제 흑염소가 없나보죠.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3. 1. 13:54

 

굴업도에서 ‘첫 남성’을 만났다. 키 작은 들꽃들이 작지만 화사한 자기만의 색을 부끄럽게 피어올리는 4월 중순, 햇빛이 잘 닿지 않는 기슭에 웅크린 그를 1994년과 1995년 뜨거웠던 핵폐기장 반대투쟁으로 간신히 지켜낸 서해안의 진주,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서포3리 굴업도에서 만날 줄이야.

 

첫 남성? 아니, 천남성이다. 남쪽 하늘의 별, 천남성(天南星). 근사한 이름을 가졌지만 섣불리 접근하다 자칫 생명이 빼앗길 수 있는 따뜻한 지방의 독초. 가시를 숨긴 장미와 차원이 다르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찔린 뒤 죽었다지만 그건 백혈병이 있었기 때문이고, 첫 남성, 아니 천남성은 자신을 무턱대고 탐하던 생태계의 백성을 수도 없이 응징했을 것이다. 우리 땅에서 천남성은 첫 남성을 치명적으로 유혹하는 팜므파탈이었는지 모른다. 응달에 고개 숙이고 피어오른 천남성에 멋모르고 접근했던 의기양양한 사내는 후회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들풀들이 저마다 새순을 내보내려 애쓰는 4월 중순, 긴 꽃대를 밀고 원통의 깔때기 모양의 녹색 꽃을 비스듬하게 내미는 천남성은 굴업도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흑염소에게 철저히 외면 받는다. 마침 젖을 보채는 새끼를 낳아 허기질 텐데, 하얀 선들이 세로로 평행선을 그으며 부드럽게 올라오는 꽃잎과 말랑말랑한 잎사귀에 입도 대지 않는 흑염소는 천남성의 첫 남성이 아닌 게 분명하다. 천식이나 소염, 거담과 중풍에 효과가 있다지만 그건 약을 아는 사람들 이야기고, 조금만 먹어도 피부에 알레르기가 나타나게 하는 천남성은 사약의 원료가 아니던가. 사람은 배워서 알지만 흑염소는 경험을 물려주며 각인했을 것이다.

 

바닷바람이 싱그러운 4월, 덕적도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닿는 작은 섬 굴업도에는 새 생명의 향기가 가득하다. 이따금 이장네 작은 트럭이 방문자를 실어나르는 길가에 하얗게 피어난 민들레가 반가운 굴업도의 산록은 잎눈에 생기가 도는 소사나무가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두드러지게 파란 하늘에는 커다란 매들이 천천히 맴돈다. 어릴 적 기억의 세계로 되돌아간 착각에 빠질 즈음, 문득 한 무리의 검은 눈동자들의 무심한 시선을 느낀다. 굴업도의 터줏대감 흑염소다.

 

마을이라야 대여섯 가구가 전부인 굴업도에서 이장 집에 짐을 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성이를 오르면 옅은 해무에 싸인 해변이 신비롭게 드러나는 굴업도는 과연 서해안의 진주답다. 동섬과 서섬을 잇는 두개의 넓은 백사장은 등을 맞댄 채 한가롭게 드리워지는데, 높은 하늘을 맴도는 매나, 사람들의 발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흑염소는 한가로울 수 없다. 방금 세상에 태어난 제 새끼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까닭이다. 마른 억새 사이로 파릇한 풀을 뜯던 흑염소 가족에게 매는 치명적이다. 천남성에 입을 댈지 몰라 어미가 안절부절 못하는 틈에 벼락 같이 내려와 새끼를 채가는 까닭이다.

 

다가오는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는 흑염소가 만들어 놓은 오솔길로 발을 옮기다보면 여기저기 매에 희생된 어린 흑염소의 잔해가 눈에 띄는데, 굴업도와 같은 서해안 작은 섬의 하층 생태계를 왜곡시킨다며 지탄받는 흑염소는 저렇듯 매를 불러들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매를 보려면 굴업도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주민도 흑염소 증가를 억제하는데 한몫을 담당한다. 총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길목에 직경 10센티미터 이하로 오므린 나일론 끈 올무를 여러 개 펼쳐놓고 며칠을 기다리면 필시 발목이 걸려 달아나지 못하는 녀석이 있을 터. 집에서 잡아 저민 고기를 원하는 손님상에 올리거나 연안부두로 판다.

 

몸무게가 30킬로그램 남짓에 불과해 염소 무리 중에서 작은 편인 흑염소는 한국 토종이다. 토종답게 추위에 잘 견디며 독초를 제외하면 아무거나 잘 먹어 섬 지방 주민의 수익을 위해 오래 전에 정부가 풀어놓은 가축이었다. 늦은 가을 짝짓기를 해 새싹이 파릇파릇한 계절에 2마리의 새끼를 낳는 흑염소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아 무인도에도 방목했지만, 섬 지방에 주민이 줄어들고 몰이꾼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터줏대감이 됐다. 그러자 팔색조가 분포하는 섬에도 마구잡이로 풀어주었던 사람들이 뒤늦게 아우성이다. 유해동물이라며 엽총을 드는 게 아닌가. 엽총을 들자 매가 접근하지 않고, 천적이 사라지자 거침없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사람이 제공했건만, 굶주릴 수 없어 발굽으로 풀뿌리를 파먹고 여린 나무껍질과 나뭇가지까지 뜯는다고 난리를 친다. 흑염소 성장호르몬을 개발했다고 소문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죽이잔다.

 

사람의 난소암 치료 성분을 젖으로 생산할 거룩한 임무를 씌우고 흑염소의 유전자를 조작한 생명공학자는 한 때 ‘메디’라 이름붙인 그 흑염소만 있으면 세계 시장을 평정할 것처럼 언론에 떠벌였지만 메디는 소리 소문도 없이 죽었다. 사료 첨가제, 안약, 식품과 화장품의 방부제로 사용하기 위해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유전자를 조작한 흑염소는 항균력을 가진 락토페린을 생산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언론이 이름을 주목하지 않은 그 흑염소와 후예는 특허권자에게 기대만큼의 이익을 보장했고 여전히 보장하고 있을까.

 

땅콩 심은 모래땅에서 엎드려 일하던 주민에게 짭짤한 소득을 보장해준 굴업도 흑염소의 운명이 시방 바람 앞에 등불이다. 제 새끼들을 키우려 하늘을 맴도는 매나 발목 올무로 부수입을 올리는 주민 때문이 아니다. 핵폐기장 위기에서 벗어난 뒤 찾아간 방문객들의 적극적인 입소문으로 아름다운 자태가 세상에 알려진 작은 섬에 18홀 정규코스 골프장이 포함된 관광단지를 만들려고 우리나라의 한 굴지의 대기업에서 52만 평 거의 대부분을 사들인 것이다. 흑염소는 골프장과 공존할 수 없다. 흑염소만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파란 하늘을 맴돌던 매도, 방문객에게 방을 내주던 주민의 운명도 언제 꺼질지 모른다.

 

천남성을 무심하게 피하는 흑염소는 하늘을 천천히 맴도는 매와 눈이 휘둥그레진 방문객을 맞는 주민과 더불어 오늘도 서해안의 진주, 굴업도를 지킨다. 시민들은 골프장을 위해 핵폐기장을 반대한 게 아닌데, 사활을 걸고 알려야 하는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를 굳이 골프장으로 더럽혀야 할까. (전원생활, 200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