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2. 12. 01:01

유난했던 올 겨울의 추위도 이제 물러앉았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이상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이 아무리 남하해도 봄기운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어린이는 “어둠이 비키면 내일”이라고 했는데, 눈이 녹으며 오는 봄은 겨울이 비켰기 때문일까. 얼었던 땅이 풀려 나무와 풀들이 물을 흡수하기 시작하면 삼라만상의 생명체들은 비로소 기지개를 편다. 벌과 나비는 꿀을 찾아 날개를 펴고 초식동물은 막 피어난 잎사귀를 먹으려 움츠렸던 몸을 움직일 것이다. 곧 태어날 새끼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

 

초식동물이 새끼 낳을 때가 가까워지면 육식동물은 태기를 느낀다. 새끼들은 어미가 곁에 있어도 행동이 굼뜨니 쉽게 잡아먹을 수 있다. 육식동물도 제 새끼들을 무럭무럭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한다. 어미젖을 때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제 새끼의 식성을 감당하려면 아무래도 초식동물 새끼들의 동작이 날렵해지기 전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가. 육식동물에 새끼를 잃을 확률이 높은 초식동물들은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초식동물에 여린 잎사귀를 뜯길 나무와 풀도 마찬가지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만큼 이상의 잎사귀를 자꾸 펼쳐낸다.

 

영양가 넘치는 먹이가 흔전만전한 인간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 시궁쥐나 생쥐와 달리 산록과 이어진 논밭이나 크고 작은 산등성이에서 살아가는 등줄쥐는 봄이 오기 무섭게 번식에 들어가 해마다 너덧 번 새끼들을 낳는다. 한배에 적으면 서너 마리, 많으면 열 마리 가깝게 잉태한다. 3개월만 지나면 성숙하니 이론적으로 등줄쥐 한 쌍이면 한 해 1200마리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셈이다. 곤충도 먹지만 식물의 씨앗을 즐기는 등줄쥐가 죽지 않고 새끼를 거푸 낳아댄다면? 온 세상의 식물은 씨앗 한 톨 남기지 못하고 산간은 등줄쥐 천지일 테지만, 실상은 아니다. 눈이 여간 밝지 않으면 자연에서 등줄쥐를 만나기 어렵다.

 

우리 산천에 분포하는 들쥐 종류 중에서 가장 개체가 많아 십중팔구를 차지하는 등줄쥐는 다 자란 몸이 10여 센티미터에 몸무게가 고작 60그램에 불과한 보잘것없는 설치류다. 이마 뒤에서 꼬리 앞 몸통까지, 붉은 색이 도는 갈색 등판의 한가운데를 검은 줄이 지나가 등줄쥐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동작을 일순 멈추면 주위의 잘 마른 낙엽과 구별하기 어렵지만 사방에 천적이 많은지라 초조한 듯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는 습성을 지녔다. 습하지 않은 땅 밑 40센티미터에 복잡한 굴을 뚫고 지내지만 다람쥐와 달리 먹이를 저장하지 않으므로 수시로 굴 밖에 고개를 내밀어야 하는데, 영악한 천적들은 그때를 노린다.

 

천적을 몹시 두려워하는 등줄쥐가 드물거나 없어지면 산록의 초목들은 무성해질까. 그렇지 않다. 등줄쥐가 식물의 천적인 곤충을 잡아먹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등줄쥐가 드물어지는 만큼 육식동물이 배를 곯아야 하므로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한 쌍의 등줄쥐가 새끼를 무섭게 낳아야 포식자들이 어느 정도 버티며 다른 초식동물의 수를 조절해주지 않던가. 햇볕이 스미는 비탈을 독차지하는 조릿대가 다른 식물의 씨앗이 흙에 파묻히는 걸 방해하는 건 토끼와 산양이 자취를 감춘 까닭이다. 겨울철 잎사귀가 뜯기지 않자 빼곡해진 탓이다. 칡넝쿨이 나무를 뒤덮어 탄소동화작용을 방해하는 건 뿌리를 캐먹는 멧돼지의 서식이 도로와 엽총 때문에 불안해진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등줄쥐의 의지와 관계없지만, 등줄쥐는 구렁이를 지켜준다. 초가지붕에 똬리 틀고 앉아 천장을 쿵쾅거리고 곳간을 파고드는 집쥐를 잡아먹어 농약 모르던 농부들이 보호해주었지만 정작 구렁이는 등줄쥐를 주로 잡아먹는다. 툰드라 지대의 늑대가 순록보다 들쥐를 잡아먹는다는 사실만큼 놀랍지 않을지언정, 구렁이는 등줄쥐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다. 어디 구렁이 뿐인가. 이 땅에서 여우와 늑대는 자취를 감췄으니 빼도, 족제비와 대륙목도리담비가 등줄쥐를 노리고 쇠부엉이와 큰소쩍새, 까치살모사와 누룩뱀, 하다못해 때까치와 황소개구리까지 등줄쥐를 먹이로 삼지 않던가. 그런 등줄쥐를 어찌 해롭다 할 것인가. 차라리 금수강산의 기둥이지.

 

치사율이 7퍼센트에 달하는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데, 당치도 않은가. 방심하면 치명적일 수 있는 쯔쯔가무시와 렙토스피라 증의 원인을 제공하는데 어찌 해롭지 않다 호도하는지 의아한가. 사실 그 점에서 등줄쥐는 억울할 게다. 배설물과 침에 바이러스가 있는 거, 어디 등줄쥐만의 사정이던가. 남북 대치 상황에서 시야를 확보하려고 서로 키 큰 나무들을 베어버리자 햇살에 마른 등줄쥐의 배설물은 바람을 타고 군부대나 마을로 쉽게 날아간다. 그래서 한타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는 거야 등줄쥐의 잘못이 아니다.

 

쯔쯔가무시? 그건 등줄쥐 털에 기생하는 털진드기의 유충에 물려 생긴다. 백두대간과 이어지는 정간과 정맥들을 골프장과 스키장, 그리고 그 놀이시설로 빨리 이어주는 아스팔트로 사방팔방 끊어 놓은 게 누군데. 인간과 자동차와 아스팔트 냄새를 혐오하는 등줄쥐의 천적이 고립되자 등줄쥐는 물론이고 털진드기까지 늘어난 거다. 그 책임을 어떻게 등줄쥐에게 물으려 드나. 오염된 물과 흙에 퍼지는 렙토스피라 증의 세균이 등줄쥐만 먼저 감염시키고 그 다음에 인간에게 전단한다던가. 등줄쥐에게 화살이 집중되지만 다른 들쥐는 물론 가축도, 경우에 따라 인간 사이에도 세균이 전달되지 않던가. 등줄쥐를 의심하기에 앞서 당신의 강아지에게 먼저 백신을 투여하는 건 어떨까.

 

겨우내 비웠던 농막의 아궁이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쌓아둔 나무 사이로 머리를 쏘옥 내민 등줄쥐와 눈동자가 마주친 한 농부는 굳이 달아나려 하지 않는 등줄쥐를 안쓰러워한다. 데리고 온 고양이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란 건데, 깊은 산의 암자에서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땔 때면 국수 한 가닥을 얻어먹고파 한 스님을 기다리던 등줄쥐가 있었다고 한다. 부엌 밖에서 다른 이의 인기척이 다가오면 냉큼 굴로 몸을 숨기던 그 등줄쥐는 스님의 등과 어깨를 타고 노는 친구였다는데, 등줄쥐는 사람에게 해로울까. 굳이 보호하지 않아도 불평불만 없이 잘 지내는 자연의 이웃이 아닌가. 질병? 사람이 생태계에 옮기는 게 훨씬 많다. (물푸레골에서, 2010년 4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1. 17. 17:58

 

요즘 도시는 물론 시골에도 보기 어려워졌지만 어릴 적 도심에서 떨어진 마을에 참중나무가 많았다. 안방과 건넛방 사이에 마루가 있고 마루 뒤에 부엌이 있는 낮은 기와지붕 집은 동네에서 흔하디흔했는데, 기억에 그런 우리집 뒤에 참중나무가 담벼락을 따라 여러 그루 심겨 있었다. 집장사에게 샀으니 아버지가 심었을 리 없는데, 해 질 무렵 어디선가 수백 마리의 참새들이 떼 지어 날아들고 아침이면 모두 종알대니 도저히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집이었다. 꽃밭에 서리 내릴 즈음, 담 높이로 배추를 절여놓고 김장하던 그 집은 참중나무와 더불어 사라진 지 오래다.

 

참중나무와 아주 비슷한 나무가 가중나무다. 도시든 시골이든 요즘 보이지 않는 곳이 없는 가중나무는 중국이 원산이지만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럽에도 많은데, 번식력이 보통이 아니다. 일단 뿌리를 내리면 줄기가 금방 두툼해지며 20미터 이상 자라올라 회색도시를 얼른 녹화하는데 초기 유용했지만, 그것 참! 잘 가꾸어 놓은 공원의 조경수마저 집어삼킬 태세로 늘어나는 게 아닌가. 담당 공무원들을 여간 골치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는데, 전문가들은 가중나무와 같이 우리 땅에 완전히 적응한 식물을 ‘귀화식물’이라고 말한다. 같은 개념으로 귀화동물도 있다.

 

봄철 어린잎을 나물로 무쳐먹고 새순을 죽순처럼 먹을 수 있어 ‘죽나무’ 또는 스님들이 즐겨 ‘중나무’ 했다는 참중나무는 우리 땅에 오래 살아오며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저녁 무렵 참새들에게 잠자리를 펼쳐주었으며 수많은 애벌레들이 잎을 먹으며 내일을 기약하게 베풀었을 텐데, 중국에서 넘어온 가중나무는 우리 땅에 들어온 초창기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사람에게 나물은커녕 이 땅의 어떤 곤충에게 이파리 하나도 배려하지 않았던 거다. 민원에 민감한 담당 공무원은 애초 그 점이 마음에 든 것일까. 벌레가 없다고 가로수로 심기까지 했으니.

 

한데 웬걸! 가중나무에 천적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수액을 빨아먹는 녀석들. 흔히 ‘중국매미’라 하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일대에 주로 분포하는 주홍날개꽃매미가 그들이다. 삼사년 전, 남쪽 지방에 한두 마리 보여 희한하게 만들더니 작년에 중부지방에도 드물지 않게 퍼졌고 올해는 도시나 시골 가리지 않고 전국 어디에나 눈에 띌 정도로 흔해진 주홍날개꽃매미는 가중나무가 많아 그런지 이제 귀화동물로 분류해야 할 정도다. 가중나무 뿐이 아니다. 가중나무보다 당분이 훨씬 많을 뿐 아니라 밀집돼 심겨 있는 복숭아, 사과, 자두와 포도를 비롯해 감귤과 탱자나무도 얼씨구나 줄기와 가지를 뒤덮을 듯 앉더니 버드나무조차 가리지 않는다.

 

3센티미터 남짓 도톰한 몸을 가진 주홍날개꽃매미는 등딱지의 투명한 날개로 넓적한 몸을 위에서 덮는 우리의 매미와 아주 다르다. 온몸을 연갈색 날개로 감싸 언뜻 나방처럼 보이지만 더듬이가 돌출되지 않은 꽃매미다. 밝은 나무껍질과 엇비슷하게 보이는 두 장의 연갈색 겉날개는 수십 개의 검은 점무늬가 산재하는 윗부분과 미꾸라지 뒷지느러미처럼 촘촘한 세로 잔 점들이 옆으로 펼쳐지는 아랫부분이 뚜렷이 구별되는데, 사람 눈에 두드러지는 건 주홍색 속날개다. 나무껍질에 침을 꽂고 꼼짝도 않고 앉아있다 사람이 다가오면 마지못해 팔랑팔랑 낮게 달아나는 주홍날개꽃매미는 분홍 속날개를 섬뜩하게 드러낸다. 경계색이라 그런가, 흔해빠진 주홍날개꽃매미를 축내는 천적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선선해지는 9월경 짝짓기를 해 포도나 가중나무 껍질에 500개 가까운 알을 2에서 3센티미터 정도 뭉쳐 낳는데, 이듬해 5월 부화하는 유생은 나무껍질을 휘감듯 뒤덮고 수액을 빨아먹으며 성장한다. 그러다 나무를 말라죽이며 일찍이 없었던 민원을 발생시키는 까닭에 충청북도 보은군은 희망근로 프로젝트 참가자와 산불진화대원 170명을 동원, 포도 줄기의 알을 대대적으로 수거해 불사르는 방제작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데, 알을 제거하는 만큼 효과가 있을 테지만 일부 지역에서 손으로 일일이 방제하는 일은 살충제 살포 이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70년대 말 목격된 이래 2006년 경 가죽나무 주변에서 조금씩 보이던 주홍날개꽃매미가 이처럼 늘어난 건,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지역에 자생하다 태풍이나 선박을 타고 드문드문 들어와도 제대로 번식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따뜻해졌을 뿐 아니라 가중나무까지 도처에 흔하니 늘어날 조건은 완비되지 않았던가. 게다가 천적까지 없으니 낳은 알이 대부분 성체로 성장하는 건, 식은 죽 먹기! 개체가 늘자 가중나무가 모자라졌고 조심스레 과일나무를 건드려보니 그 또한 별식이라, 주홍날개꽃매미는 마음껏 퍼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살충제를 뿌려도 소용없자 팔 걷어붙이고 손으로 주홍날개꽃매미를 떼어내던 농부는 그만 피부병에 걸리고 말았고.

 

주홍날개꽃매미의 자생지에는 천적이 없을까. 그럴 리 없다. 우리나라에 그 천적을 당장 들여오자는 뜻이 아니다. 그 지역 주홍날개꽃매미의 천적과 유사한 동물이 우리나라에도 틀림없이 있을 테니 그 동물이 주홍날개꽃매미가 들끓는 과수원과 도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내주자는 제안이다. 살충제를 뿌리면 주홍날개꽃매미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다른 곤충도 자리를 뜰 테니 주홍날개꽃매미를 먹을 만한 새와 도마뱀 종류가 접근할 리 없다. 도시에도 농약을 치지 않는 가로수와 자투리녹지가 녹지축으로 이어진다면 주홍날개꽃매미를 신이 나서 먹어치울 천적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요사이 황소개구리가 조용하다. 사라진 건 아니다. 커다란 덩치에 섬뜩해 건드리지 않았던 동물들이 덩치가 큰 황소개구리와 그 올챙이를 푸짐하게 먹으며 개체수를 조절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달과 너구리는 황소개구리를 얼마나 반기는지 모른다. 물가를 성큼성큼 걷는 백로와 왜가리는 숟가락만큼 커다란 황소개구리 올챙이를 잡아 새끼들을 든든하게 먹인다. 한때 흐름이 막힌 강을 석권했던 배스나 블루길이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니만큼, 주홍날개꽃매미도 머지않아 새롭게 나타난 천적이 적절하게 조절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사마귀와 커다란 잠자리가 주홍날개꽃매미를 잡아먹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데 어떤가. 지구 평균보다 온난화 속도가 빠른 우리 땅에 느닷없이 나타나 늘어나는 귀화동식물의 명단은 이미 길고 계속 길어질 텐데, 섬뜩한 동물이 주홍날개꽃매미에서 그칠까. 생태계 보전 못지않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에 더욱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물푸레골에서, 2009년 11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5. 30. 15:44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가는 7월.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적 드문 산기슭에 앉아 땀을 식히려는데 계곡 가장가리의 키 작은 나무 사이에서 작디작은 대나무 가지 하나가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조릿대가 밀고 올라온 건가. 큰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내리는 숲의 한쪽 사면을 빼곡히 채우는 조릿대는 계곡 가장자리의 응달에 여간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상한 일이다. 다시 눈을 돌리니 대나무 가지가 안 보인다.

 

충청도에서 강원도 강릉으로 이어지는 대나무 북방한계선은 지구가 더워지면서 벌써 올라갔을 것이니 수도권에도 조릿대가 무성할 수 있을 텐데, 앙증맞은 대나무는 산들바람에도 나무 뒤로 밀려난 건가. 가만, 이번엔 나뭇잎 뒤에서 그 대나무 가지가 머뭇거린다. 앞으로 갈까 말까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그랬다. 그 여린 대나무 가지는 분명히 머뭇거렸다. 대나무 가지가 아니라 대벌레인 거였다.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니 나뭇잎 뒤에서 머뭇거리는 녀석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산딸기가 더없이 탐스러운 작은 계곡은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을 뒤따르는 대벌레들이 이른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대벌레는 영어로 워킹스틱(walkingstick)이다. ‘걸어 다니는 막대기’라, 그럴싸하다. 대나무처럼 변장한 대벌레는 새와 같은 천적에게 발각되면 마디가 도드라지는 몸을 바람에 흔들리듯 앞뒤로 머뭇거리고 도마뱀과 같은 천적이 다가오면 지나가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버틴다. 어쩌다 천적에게 발이 잡히면 잽싸게 떼놓고 줄행랑을 치는데, 가늘지만 말랑말랑한 대나무 줄기를 물었다 아차 싶은 천적은 잠시 허탈해도 어쩔 수 없을 터. 대벌레는 실 같은 대나무 다리를 금방 재생해낼 것이다.

 

곤충의 변장술은 유별나다. 돌출한 작은 나뭇가지인 양, 가지를 한쪽 발로 단단히 부여잡고 꼼짝 않는 자벌레를 비롯해 낙엽을 닮은 날개를 가진 네발나비, 알에서 갓 깨어났을 때 새똥으로 위장하다 나비로 변하기 직전이면 부릅뜬 눈 무늬를 꼬리에 드러내는 호랑나비 애벌레도 변장술로 자신을 보호한다. 한자로 죽절충(竹節蟲)이라 칭하는 대벌레는 날아가는 것보다 효과가 좋았던지 날개는 퇴화돼 사라졌고, 가는 대나무 다리에 얹은 10센티미터 불과한 녹색이나 황갈색 몸은 산들바람에도 갈듯 말듯 흔들린다.

 

낙엽이나 부드러운 흙에서 알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작은 성체로 깨어나는 대벌레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투명한 연녹색을 띈 어린 대벌레는 새순이나 잎을 갉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 여름이 완연해지면서 성체가 되는데 늦은 가을까지 조릿대 주변에 서성이며 주변 활엽수의 잎사귀를 지분거리다 낙엽이 깔린 흙에 700개 가까운 알을 무더기로 낳고 죽는다. 그런데, 어쩌다 조건이 좋아 무리지어 깨어난 대벌레들이 산림을 좀 축내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산림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난리다. 하지만 그건 대벌레의 탓이 아니다. 하도 많은 농약을 뿌려 산림을 단조롭게 망쳐놓는 건 누군가.

 

사실 숲 속의 다채로운 활엽수들은 대벌레를 비롯한 수많은 곤충과 애벌레들에 뜯기고 뜯겨도 견뎌낼 만큼 충분한 잎사귀를 매달았고, 나무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도마뱀이나 새들은 대벌레와 애벌레들이 무작정 늘어나지 못하도록 솎아주었다. 어디 그뿐이랴. 낙엽 속의 톡톡이들이 대벌레의 알을 가만 두지 않았을 터. 눈이 밝지 않으면 여간해서 보이지 않던 게 대벌레였건만 농약은 대벌레의 천적을 숲에서 일거에 사라지게 만들었고, 숲 여기저기를 파헤치던 사람이 감나무나 밤나무를 양팔간격으로 심거나 땅을 갈아엎어 한 가지 농작물을 바투 심었다. 보드라운 게 영양도 그만인 농작물을 굳이 마다할 리 없는 대벌레는 덕분에 전에 없이 수가 늘었을 따름이다.

 

대벌레가 많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만이 농약을 뿌리는 건 아니다. 솔잎혹파리나 재선충을 방제하려는 공무원들이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지만 온갖 생물이 다채롭게 보전되어야 하는 국립공원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1990년대 후반, 천적이 뜸한 국립공원에서 무럭무럭 자란 대벌레가 하계생태조사에 나선 대학원생의 눈에 띄어 모처럼 흔쾌히 생태 모델이 되어주려는 찰나였다. 느닷없이 적막을 깨는 모터 소음과 함께 안개처럼 분무되는 농약이 등산로 인근의 숲을 맹렬하게 집어삼키는 게 아닌가. 놀란 대학원생은 카메라 방향을 농약 분무차량으로 바꿨고, 대학원생의 서슴없는 카메라에 놀란 인부는 드잡이가 통하지 않자 양식장 주인을 냉큼 불러왔다.

 

공원 당국에 겨우 허가를 받아 “송어회를 드시는 손님들 모기 물릴세라 농약을 뿌리는 게” 잘못되었냐며 펄펄뛰는 무지개송어 양식장 주인은 필름을 내놓으라며 근육질의 몸을 함부로 드러내는 게 아닌가. 국립공원에 그것도 미국산 송어를 상업용으로 양식해도 무방한 것인지 단호하게 묻던 대학원생은 협박에 굴하지 않았는데, 그날 저녁, 양식장 주인은 물론이고 국립공원 책임자까지 대학원생의 지도교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이번만 봐달라면서. 이후 그 국립공원에 대벌레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다시 찾을 기회가 없어 알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 강원도와 충청도 일원의 숲에 대벌레가 크게 발생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고 관련학자들은 전한다. 정확한 원인은 구체적으로 연구하지 못했지만, 이미 몇 차례 아열대성 산림병해충이 늘어났던 사례를 비추어 지구온난화로 겨울철 온도와 습도가 높아지면서 부화 성공률이 높아진 걸 그 원인으로 짐작한다. 다행인 것은 대벌레의 급증이 아직 부정기적 현상이라는 점인데, 온난화 진전으로 산림 황폐화가 내륙으로 번져나갈지 전문가는 걱정한다. 온대지방에 아열대곤충이 늘어나는 현상의 원인을 단순히 지구온난화로 돌릴 수는 없다. 우리 산림에 천적까지 유입되지 못했기 때문일 테지만 그에 앞서 균형이 깨긴 생태 공간에 천적이 없는 곤충이 먼저 자리를 잡은 까닭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대벌레는 여전히 머뭇거리는데 사람은 자신의 터전을 파괴하는데 더없이 과감하다. 천적 없는 세상이 반드시 안전할까. 천적을 모조리 없애는 사람은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아열대 경쟁자를 맞이할 대벌레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전원생활, 2009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