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2. 9. 11:12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 일원에 걸쳐 있는 광릉숲은 201062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멸종되기 전 크낙새가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의정부에서 남양주시 진접읍을 왕래하는 21번 버스는 그 숲을 가로지르는 광를내길을 달리며 해방 직후 춘원 이광수가 잠시 몸을 숨겼던 봉선사를 스친다. 1980년대 4월 초순, 아직 광릉내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기 전, 21번 버스는 덜컹덜컹 직동리의 계단식 너른 논을 바라보며 봉선사를 향했다. 비포장도로에서 덜컹거릴 때마다 낡은 버스의 스프링들은 저마다 리드미컬한 비명을 질러댔는데, 마지막 버스가 떠나고 별이 총총해지자 버스에서 듣던 리드미컬한 소리가 논에서 다시 울려나왔다. 북방산개구리가 일제히 번식에 든 것이다.

 

광릉내길을 따라 포천에서 남양주로 이어지는 계곡의 들판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내려가고 그 옆에 흐르는 봉선사천은 진접읍에서 왕숙천으로 이어져 한강으로 흘러든다. 함흥차사를 일으키며 등청을 거부하던 태조가 8일 밤을 묵었다는 왕숙천은 지금 다가가기 싫게 오염되었지만 1980년대 만 해도 눈부시게 맑았다. 새벽이면 살얼음을 남기는 봉선사천의 4, 시리도록 맑은 하천 바닥의 크고 작은 바위와 돌 아래에서 동면하던 북방산개구리들은 벌써 물이 고인 논으로 나갔다. 직동리 아이들이 겨우내 썰매 지치던 얼음이 녹자 그 자리에 모여들어 경쟁적으로 짝을 찾는다. 사실 경칩에 모든 개구리가 나오는 건 아니다. 얼어붙은 얼음이 2월 쩍쩍 갈라지다 가장자리에 틈을 보이며 녹을 때가 경칩이고, 골짜기의 북방산개구리부터 고개를 내민다.

 

2010년 경칩에 발족한 한국양서류보존네트워크는 경칩 이전부터 북방산개구리를 찾아나선다. 번식시기를 모니터링하는 거다. 35일 전후가 경칩이건만 2, 아니 1월부터 하천을 낀 산 아래 논들을 돌아다니는 건 예년과 달리 경칩이면 늦는 까닭이다. 30년 전, 오대산의 북방산개구리를 채집하려 3월 중순 월정사를 찾았다 두꺼운 얼음만 보고 돌아온 적 있는데, 지금은 2월부터 서둘러하다니. 한반도를 닥친 지구온난화가 그만큼 심각해진 모양이다. 사람의 탐욕이 빚은 결과일 텐데, 4월 중순 직동리 무논에서 양턱을 한껏 부풀리며 리드미컬하게 울어젖히던 북방산개구리들도 사라진지 오래다. 부자들을 위한 전원주택 단지와 국적 불명의 문화의 거리로 직동리 계곡의 들판마저 개발되었다.

 

직동리의 운 좋은 북방산개구리는 나중에 화석으로 발견될 테지만 다른 산 아래의 수컷 북방산개구리들은 이맘때 여전히 한밤의 세레나데를 리드미컬하게 부를 것인데, 요즘은 하루하루가 두렵고 혼란스러울 게 틀림없다. 겨울 끄트머리의 기상이변은 하루하루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얼마 남지 않은 무논은 올챙이로 부화되기도 전에 툭하면 얼어붙지 않던가. 지구온난화로 한겨울 북극해의 얼음이 녹자 시베리아에 눈 덮인 냉기를 퍼붓고, 그 여파로 우리 겨울은 삼한사온을 잃었다. 설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풀린 날씨는 동면중인 북방산개구리들을 서두르라 깨울 텐데, 무논에 흩어질 북방산개구리의 알들은 모내기 끝날 즈음 온전히 개구리로 변태돼 산으로 오를 수 있을까.

 

낙엽과 구별 안 되는 피부색을 가진 등 길이 8센티미터 내외의 북방산개구리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에서 동면하다 깨어나면 2000개 전후의 알을 덩어리로 낳고, 봄볕 받는 물에서 보름 정도 지나 부화하는 올챙이들은 이끼나 물벼룩들을 먹으며 무럭무럭 성장해 모내기 전후 꼬리를 감추곤 비 내리는 밤을 기다린다. 도마뱀과 유혈목이는 비를 피해 풀숲을 벗어나고 새들은 잠에 빠졌다. 알 낳자마자 무논을 떠난 부모를 따라 일제히 산으로 오르는 것인데, 그때 어린 북방산개구리들은 감당할 수 없는 천적을 거푸 만나 속수무책으로 스러지고 만다. 논과 산 사이에 새로 놓인 아스팔트에서 그만 무참해지는 것이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경칩 전후, 하천의 얇아진 얼음을 해머로 깬 산마을 청년들이 지렛대로 바위를 들썩이며 양동이로 잡아들일 때 북방산개구리는 산골의 보양식이었지만, 공장식 축산업으로 불고기와 삼겹살이 어디나 지천인 요즘은 아니다. 허우대가 멀쩡한 사내들이 구워먹자며 하천을 뒤집는 행위는 자제해야 옳건만 아직도 일부 지역의 북방산개구리는 한겨울부터 수난이다. 굴삭기를 동원해 가마니로 잡아들인 북방산개구리를 내 고장 명물 개구리 탕의 반열에 올리기 때문인데, 이제 그마저 애교가 되고 말았다. 뚝배기마다 한 마리 씩 들어가는 북방산개구리의 맛과 영양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뚝배기에 둥둥 뜨는 개구리보다 훨씬 타이어 아래 깔리는 수가 많다는 점이다. 변태하자마자 산으로 오르는 작은 개구리만이 아니다. 알을 낳으려 무논으로 기어가다 타이어 아래 밟히는 성체도 부지기수다.

 

아스팔트만이 아니다. 경지정리로 골짜기의 무논이 사라지니 알 낳을 곳을 찾지 못해 사방을 헤매는 북방산개구리들은 산허리를 감싸며 들어선 아파트 단지로, 산비탈과 주변 골짜기를 넓게 차지하는 골프장에 터전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도 인천의 진산 계양산의 한 자락에 터 잡은 북방산개구리는 드디어 한숨 쉬게 되었다. 지역 환경단체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골프장 개발을 호시탐탐 노리는 재벌의 손아귀에서 풀릴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날씨도 풀렸으니 곧 제 존재를 과시하겠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아래 매립될 뻔했던 서울 은평뉴타운의 극히 일부 북방산개구리도 남겨진 습지에 알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교보환경대상을 받은 한 환경단체의 노력 덕분이다.

 

청계산 한 기슭의 북방산개구리들은 한때 호강했다. 이른 봄부터 양동이를 든 회원들과 밤을 새우는 환경운동가 덕분에 아스팔트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이가 청계산을 떠났으니 걱정이다. 떠나기 전에 그는 동면에서 풀린 북방산개구리가 안전하게 무논으로 건너갈 생태통로를 만들었지만 모든 개구리가 그 통로를 이용하는 건 아닌 까닭이다. 어떤 나라는 거북이 알 낳을 때 통로를 가로지르는 아스팔트에 경고판을 세우고 경고판을 본 사람들은 최대한 서행하다 이동하는 거북을 손으로 옮겨준다던데, 우리는 아직 그 수준이 이르지 못했다. 이래저래 이 땅의 북방산개구리들은 경칩 전부터 세상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사이언스타임즈, 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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