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2. 22. 12:31

 

유럽에서 마주오던 트럭이 충돌했다. 서로 이웃 나라를 향해 출발한 트럭이었는데, 쏟아낸 화물은 똑같은 농작물이었다. 자국의 농산물을 나라 안에서 자급한다면 그런 일이 생길 리 없는데, 제 나라 농산물로 자급하지 않고 같은 농산물을 굳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슨 속사정이 있겠지만, 그런 부합리가 유럽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지방의 오랜 날씨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농산물은 일찍이 지역에서 자급했다. 남은 농산물을 이웃 지역에 내다 파는 일이야 더러 있어도 국가 사이에 수출입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는데, 무역 상품이 된 요즘 농산물은 지역을 잃었다. 음식 문화와 식생활과 입맛까지 세계가 표준화되면서 농산물까지 획일화되었고, 다양성을 잃은 농산물은 다량 생산하는 공산품으로 전락했다. 농산물마저 돈벌이를 위한 상품이 되면서 한 국가의 식량 자급률은 큰 의미를 잃었다. 식량은 요즘 모자라서 수입하는 게 아니다. 선점하기 위해 투기한다. 어찌되든, 돈만 넉넉하면 식량 자급률은 신경 쓸 일 아니라지만, 식량 주권도 그럴까.

 

젖소의 수송아지 가격이 헐값이라고 아우성이다.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젖소 수컷은 송아지 때부터 고기용 육우로 사육하는데, 다 자란 육우의 가격이 내다 팔 정도로 키우는데 들어가는 사료의 가격보다 훨씬 낮아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일각에서 정부의 수급 예측 실패를 탓하지만, 남보다 우유를 더 생산하려는 경쟁이 빚은 과잉 생산도 한몫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이웃 농장보다 양질의 우유를 더 생산해야 하지 않은가. 우리 농가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입 사료는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 사료 재료인 곡물의 생산비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인데, 농부는 저렴한 국내 사료를 찾지 못한다.

 

재료를 수출입하는 세상에서 국내산 여부가 애매해진 요즘, 국내산 사료가 소개되었다. 20095월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청보리를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수입 사료 가격의 앙등으로 고통을 받는 축산농가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것이다. 청보리 사료를 사용할 경우 몸무게가 빨리 늘고 육질이 개선돼 소 한 마리 당 764천원의 소득증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농촌진흥청은 앞으로 사료를 자급하는 한편, 수출산업으로 성장시킬 것을 약속했는데 현실은 어떤가.

 

사료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죽어갈 정도로 소를 굶기는 농부가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축산업은 자포자기인데, 국내의 청보리 사료 제조업체는 농촌진흥청의 포부와 다른 생각에 젖어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자국의 목초를 기피하는 일본 농민에게 수출하려 고민한다는 게 아닌가. 우리 농가에 파는 가격의 두 배 이상이라는데, 유혹받지 않을 기업이 몇이나 될까. 청보리 사료업체 대표는 청보리 재배 농가의 소득향상을 배려한 고육지책인 양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는 기업인일 따름이다. 그의 귀에 축산농가의 고통 소리, 그의 눈에 굶주리는 가축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는다.

 

2010년 혹독한 가뭄이 든 러시아는 밀 수출에 관세를 매겼다. 수출보다 국내에 파는 편이 이익이도록 러시아 정부가 조치를 취한 것인데, 덕분에 러시아는 굶주리는 민중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지만 엉뚱하게 러시아 밀을 저렴하게 수입하던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자국인이 굶주리든 말든, 수출하는 편이 더 이익이면 기업주는 냉정하게 판로를 바꾼다. 밀이든 청보리 사료든 관계없다. 콩과 옥수수, 감자와 바나나, 고기와 올리브, 예외가 없다. 돈을 향해 판로를 바꾸는 기업은 돈 없는 자를 철저히 외면한다. 자동차와 반도체가 잘 나가는 우리나라는 걱정 따위는 잊어도 될까.

 

정부 보조금을 받은 미국 옥수수가 헐값에 수출되면서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는 자급 기반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과 FTA를 맺은 지금은 어떤가. 옥수수를 바이오 연료로 가공하는 기업이 정부 보조금 덕분으로 늘어나면서 미국계 국제 곡물상은 수익이 많은 바이오 연료에 판매량을 늘렸다. 그러자 연이은 옥수수 가격 앙등을 견딜 수 없는 멕시코 민중은 폭동을 일으켜야 했다. 멕시코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었는데 지구온난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요즘, 미국의 옥수수 농장은 언제까지 풍작을 약속할 수 있을까. 화학비료와 농약 없으면 재배가 불가능한 미국의 광활한 농장은 가뭄에 아주 취약하다. 옥수수만이 아니다. 콩과 밀도 걱정인데, 겨우내 내린 눈이 상수원인 캘리포니아에 겨울비가 늘어나면서 포도와 아몬드 수확도 전 같지 않다.

 

세금이 면제된 농업용 기름 가격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면서 농부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겨울철 방울토마토와 딸기를 포기한다고 최근 언론이 전했다. 작년에 비해 20퍼센트가 올랐기 때문이라는데, 세계 산유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농업용 면세유 가격이 내년이라고 낮아질 가능성은 없다. 이미 전문가는 세계 석유 생산량이 감소 추세로 바뀌었다고 분석하는 마당이다. 생산보다 소비가 늘면 가격은 오른다. 석유는 투기 자본이 지배하고, 중국과 인도와 브라질의 석유 소비는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더라도 석유 가격은 결코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는 석유 가격이 치솟을 시대를 서둘러 대비하라고 각국에 충고한다.

 

제철을 포기하고 제 고장까지 잃은 획일적인 농작물은 석유 없이 다량생산이 불가능하다. 대형 콤바인이나 트랙터를 사용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화학비료와 농약도 석유로 가공해 얻는다.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려면 거대한 선박을 동원해야 한다. 석유 가격이 계속 오르는 한, 해외에서 재배한 그런 농작물을 값싸게 다량으로 수입할 수 있는 날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식량 자급률이 26퍼센트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쌀을 빼면 5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변화 추이에 따라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요동친다. 일찍이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식량을 자급할 때부터 진정한 독립이라고 주장했는데, 우리나라는 독립국인가. 돈 없는 식량 안보는 쉽지 않은 세상에서 국제 석유는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데, 우리는 과연 식량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가.

 

이미 지구촌의 많은 국가들이 수출관세로 곡물 수출 금지로 돌아서고 있다. 투기 자본이 개입하는 세계 농작물과 가공식품은 가격을 내릴 줄 모르는데, 입맛이 고급화된 인구가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품 물가 상승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우리는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정부든 기업이든, 농경지를 매립해 아파트와 공단을 짓느라고 성화다. 우리 농산물을 수출하라고 성화다. 제정신인가. 3월은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이고, 올해는 흑룡의 해다. 용은 농경사회의 상징이고 흑룡은 큰비를 의미한다는데, 징후가 더 흉흉해지지 전에 정신을 차려야 옳지 않겠나. 남은 시간은 이미 충분하지 않은데. (작은책, 20123월호)

자주 이 블로거에 와야 겠습니다. 여기서 공부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