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5. 28. 01:40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5월의 연둣빛이 좋다. 겨우내 움츠리며 준비한 잎눈을 부드럽게 펼치는 계절이다. 때를 맞춰 삼라만상의 생명은 기지개를 편다. 알을 뚫고 나온 애벌레들이 잎사귀를 옮기며 자랄 즈음, 새들은 먹이 달라 보채는 둥지의 새끼들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른다. 연둣빛 잎사귀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 이맘때 펼쳐진다. 그런데, 내복을 벗은 아이들이 몰려나올 때, 근린공원의 나무들은 살충제 샤워를 받는다.


대학에서 조교할 때, 사환학생이 물었다. “오빠, 왜 간첩은 카세트를 노린다는 건가요?” 연둣빛이 녹색으로 우거지는 1980년대 6월이면 거리에 살벌한 현수막이 나붙었다. “간첩은 녹음기를 노린다!”. 5월의 파릇파릇했던 잎사귀들이 두터워지며 산자락에 그늘을 드리우면 간첩이 카세트녹음기를 노렸다던 시절이었다. 녹음이 우거지기 전, 햇양파가 시장에 나오지 않아 가격이 비싸고 보리이삭이 채 익지 않은 5월이면 권정생 선생은 고달팠던 춘궁기를 회고했지만, 요즘 우리는 청소년 비만을 걱정한다.


민원이 만만치 않은 요사이 아파트단지에서 운동회하는 학교를 보기 어렵다. 아기 손잡고 나온 할머니와 일감 벌이는 청소년들이 차지했던 단지 내 놀이터가 주차장으로 바뀌기 전부터 특기생이 아닌 아이들은 운동을 거의 모른다. 컴퓨터게임과 과도한 학습에 빠진 아이들에게 운동량이 턱없이 부족한 게 비만의 원인이라고 언론은 분석했다. 비만 때문에 병원을 찾은 아이는 감량을 다음 시험 석차처럼 약속했다는데, 의사는 호르몬 이상일 수 있으니 전문가와 상담을 요구한다. 호르몬 이상이라면 의사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겐가?


200518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결과에서 전문가는 어머니가 직장에 다닐 경우 아동 비만이 11.9%, 아닌 경우 5.7%의 두 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컴퓨터 앞에 하루 2시간미만 앉았을 때에 비해 8시간 이상 앉았을 때 비만 가능성이 4배 이상 높았으며 부모가 과체중일수록 아이의 비만이 많았다. 아침을 안 먹거나 외식이 잦을수록 비만 비율이 높았고 부모가 모두 비만일 때 아이의 비만 가능성이 12.3%로 정상일 때 5.7%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짐작 가능한 결과였는데, 유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움직이지 않게 하는 성장 환경이 주요 원인이었다.


얼마 전 한국방송공사는 어린이 독서왕으로 이름을 붙인 초등학생 독서 퀴즈대회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선정 과정이 선명하지 않은 책 40권을 교재로 퀴즈왕을 뽑는 대회였지만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출판계의 강력한 반발로 방송 관계자는 고집을 꺾은 모양이다. 한국방송공사는 독서 활성화를 주장했지만 학원가를 전전하면서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역효과라는 주장이 끓어올랐다. 오로지 점수 따기 위한 책읽기는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서 암기 과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것이다. 한데, 암기로 맞춰야 하는 정답이 책읽기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 저자의 생각과 읽는 이의 감각은 절대적일 수 없는데, 암기라니. 도대체 책 속의 무엇을 달달 외울 뻔했을까.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서 최근 전국 초등학교 4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 7104명을 대상으로 ‘2013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 비교에 관한 설문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행복지수는 조사한 국가 중 최하위였고 초등학생 7명 중에서 1명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밝혔다. 진학할수록 자살 충동 끔찍하게 높아졌다. 고등학생의 무려 70%가 자살과 가출 충동을 느낀다는 게 아닌가.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일 텐데, 누가, 어떻게, , 많은 젊은이를 좌절하게 만드는가. 자신의 개성을 꽃피우며 창창하게 살아갈 앞날을 누가 저토록 짓밟는가.


개개인은 물론이고 대학의 개성마저 말살하는 기준에 의해 우리 교육은 왜곡되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냥 외워야 하는 이 땅의 아이와 청소년들은 땀나도록 몸을 움직일 틈이 없다. 단단해지지 않은 뼈와 근육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성장해야하는데, 입시를 위한 반복 학습과 스펙 쌓기로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배가 고프니 학원가를 전전하는 사이에 패스트푸드로 때운다. 학원비 벌어야 하는 부모가 귀가하지 못한 집에 들어가면 이내 곯아떨어지지만 잠시 시간이 나면 컴퓨터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먹는다. 옥수수 사료를 넘치게 먹은 가축의 고기는 끊임없이 소비된다.


텔레비전에서 살아남기 게임하듯 학교마다 경쟁적으로 독서왕을 선발한다면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책에 진저리치고 말 것이다. 경쟁은 개성을 무시한다. 개개인의 개성이 존중될 때 서로 어울리며 격려할 수 있다. 청소년이든 장년이든,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때 닥친 문제를 능히 풀어낸다. 이른바 다중지성의 능력이다. 개성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다중지성은 발휘될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이 다양하듯 하고 싶은 공부도 다양해야 옳건만, 개성이 사라져 획일화된 대학을 목표로 하는 입시도 획일화와 서열화되었다. 더 높은 서열로 올라서려는 경쟁에서 청소년들의 개성은 배려되지 않는다. 비만은 필연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식구와 찾는 식당이 다를 뿐 의미의 차별은 그다지 없다. 의례적 행사를 마치면 그만인 어린이날보다 언제나 행복한 하루하루가 중요하다. 입시 위주의 억지 공부에서 해방되는 시간, 자신의 끼를 만끽하는 시간을 구가할 수 있어야 한다. 석차를 비교하는 일제고사를 학교에서 사라지게 하자는 어떤 학자는 학과수업은 주 5일 오전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텃밭을 체험하거니 원하는 일에 빠지게 하자고 제안한다. 자살 충동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가족이 이해한다면 가출 충동도 사라질 것이다. 비만도 당연히 줄겠지.


연둣빛이 아름답다는 부모의 말을 청소년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한다. 우뚝 서는 내일을 꿈꾸는 청소년들은 미처 신록에 눈을 두지 못할 것이다. 건강한 산록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신록부터 어우러진다. 신록의 계절이 지나 이제 6, 녹음기가 되었다. 청소년의 비만은 장년으로 이어지기 쉽다. 친구와 어울려 뛰놀며 청소년 시절을 보낸 이는 개성이 배려되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존중되며 살아갈 게 틀림없다. 비만 여부와 그리 관계없이. (작은책, 20136월호)

그러게요. 왜 글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제한하고 특정인들이 내 놓은 해석을 외워야 하나요. 이상한 교육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