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1. 1. 21. 00:39

 

미국은 주간고속도로가 국토를 바둑판같이 종횡으로 가르는 자동차의 나라다. 그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일반도로가 나란히 이어지고 대도시와 가까운 일반도로 옆에 상자 같은 거대한 건물이 무리지어 늘어서 있다. 영화관은 물론이고 축구장 서너 개도 너끈히 품어낼 수 있는 규모의 쇼핑몰들로, 그런 도로를 타고 집과 직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쇼핑몰에 수시로 들려 자동차 트렁크 가득 온갖 물건을 채운다. 덕분에 미국의 주택은 점점 도시에서 떨어져나가 정원을 잠식한다. ‘스프롤 현상이다.

 

따뜻하면서 건조해 나이든 이가 살기 좋다는 미국의 애리조나 주는 넉넉한 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유난히 많다. 주간고속도로에서 사막지대까지 멀리 이어지는 아스팔트의 끝에는 고급주택들이 즐비하지만 거기엔 상가도 학교도 없다. 오로지 주택들이다. 상하수도와 전기와 가스와 통신시설이 없다면 존재가 아예 불가능한 사막의 고급주택 단지는 어처구니없는 명분으로 중동을 선제공격한 역대 미국 정권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이른바 미국식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데, 석유위기 시대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외부 지원과 자동차와 낭비를 전제하는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대략 3.8리터인 1갤런의 휘발유 가격이 4달러 정도이므로 우리보다 미국이 조금 저렴한 편인데, 앞으로 갤런 당 6달러로 오른다면? 미국인들은 휘발유를 벌컥벌컥 마셔대는 SUV를 버리고 세단 형 승용차를 몰 것이라고 포브스 지의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기자는 석유 종말 시계에서 말했다. 인구 1000명 당 750대의 자동차를 소유하는 미국은 어이없게도 인구 1000명 당 4대에 불과한 중국의 마이카 시대를 걱정한다. 가구 당 한 대 꼴로 중국인들이 자동차를 굴린다면 적어도 4억 대가 늘어날 테고, 지금도 내릴 기미가 없는 국제 석유 가격은 더욱 치솟을 게 아닌가.

 

새롭게 발견돼 시추하는 석유 양의 10배를 뽑아대는 요즘, 석유 생산에 정점이 멀지 않았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아니 이미 지났을지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석유를 뽑아 올리는 양이 최고인 석유 정점이 지났다 해도 석유가 당장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늘어나기만 하는 소비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기 시작할 테고, 그러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요즘 국제 석유 가격은 심상치 않다. 만일 석유 가격이 갤런 당 12달러가 된다면? 미국인들은 교외의 집을 탈출하지 않을 수 없을 거로 석유 종말 시계의 저자는 예상한다. 그렇다고 독일의 역사가가 꼬집은 억겁의 세월 동안 쌓인 석유 자원을 200년 동안 다 써버리는 단발성의 짧은 중독성 발작까지 즉시 종료되는 건 아니다.

 

석유 종말 시계는 치솟으며 줄어들 석유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도시의 모형인 이른바 컴팩시티의 좋은 예로 송도신도시를 들었다. 그래서 작년 인천시장 후보였던 어떤 이는 2월에 번역 출간된 그 책이 송도신도시를 찬양하고 있다고 은근히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는데, 그는 석유 종말 시계를 처음부터 정독한 것 같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경제 전문지의 기자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는 홍보자료에 의존했을 테지만 송도신도시의 역사는 물론이고 참모습도 볼 기회가 없었을 게 틀림없다. 송도신도시가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는 갯벌을 파괴했다는 사실, 호화판으로 지은 지하철을 외면하고 고급 승용차를 고집하는 주민들은 엄청난 전기료 부담을 외부인이 알면 집값이 떨어질까 두려워한다는 사실, 투기에 힘입어 주택 가격은 높지만 전세 값이 싼 건 편의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들을 알 턱이 없을 것이다.

 

도넛 현상이라 했던가. 주말이 되면 도심이 도넛처럼 텅 비는 현상은 도심 외곽에 사는 시민들의 출퇴근 시 이동을 전제로 한다. 주말에 건물 현관의 셔터를 내리는 서울이 그렇다. 일본 동경도, 뉴욕 맨해튼도 그럴 것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에 위치한 주거시설은 아주 고급이거나 엉망일 텐데, 충분한 돈으로 외부에서 물자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내부의 쓰레기를 외부로 치워내지 못한다면 도심은 사람이 머물만한 공간일 수 없다. 면적이 확장되고 건물이 높아질수록 그 정도는 더할 것인데, 석유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석유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주거 방식, 다시 말해 컴팩시티를 구상할 것이다.

 

컴팩시티는 어떤 인천시장 후보가 오해하듯, 단순히 거주하는 시민들을 집적시키는데 의미를 두는 도시의 형태가 아니다. 거주하는 시민들의 이동을 최대한 줄여 지역 안에서 기초적인 교육과 상거래가 이루어지도록 구조를 개선하고 가능한 한 직장도 지역 안에서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승용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한 송도신도시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초고층으로 숲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번듯한 외관보다 이웃 사이의 따뜻한 소통을 중시하는 컴팩시티는 에너지나 농산물의 자급까지 지향하려 최대한 노력한다.

 

활기를 잃지 않는 도시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크든 작든 주기적인 재개발이 필요하게 된다. 재개발이라 해서 단독주택을 헐어 다세대주택을 짓고, 아직 멀쩡한 다세대주택과 저층 아파트를 투기 목적을 위해 헐어낸 뒤 고층, 또는 초고층으로 올리는 방식은 우리 이외의 국가에서 매우 보기 어렵다. 주변의 경관을 방해할 뿐 아니라 주민 사이의 왕래를 어렵게 만드는 고층빌딩은 인기가 없어 변두리에서 빈곤 계층에게 낮은 가격으로 임대되는 예가 대부분이다. 역사와 문화의 자취를 자랑스레 생각하는 도시일수록 기존 건물의 외관을 보전하려 무던히 애를 쓴다. 주거시설로 개조할 경우, 컴팩시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상가나 공장, 심지어 군부대 터를 주택단지로 재개발할 경우라도 기존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활용하며 내부를 보수하는 독일 컴팩시티의 원칙을 들여다보자. 독일에서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대 3층을 넘기지 않는 주택은 단열이 철저할 뿐 아니라 지붕마다 태양광 패널을 붙였고 작은 텃밭이나 화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당을 두는 것을 당연시한다. 주거단지의 외부에 주차장을 두어 노선버스와 공사용 차량을 제외한 일체의 승용차를 단지 내에 사용하지 못하게 배제하는 대신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도로를 완비하여 학교와 상가를 오고가는 주부와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하며 나무가 우거진 공원을 곳곳에 조성해 주민들의 소통공간을 확보한다.

 

폐기된 비행장 부지에 지열과 태양광 발전을 도입한 독일 뮌헨의 생태주택단지는 빗물을 재활용하거나 지하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었으며 사무공간을 확보해 가까운 곳에 직장을 잡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군부대를 주택으로 재개발한 프라이부르크의 경우, 기존 도심과 연결하는 철도가 입주 이전에 완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도심에서 누릴 수 없는 초원과 경작지를 가까이 두어 먹을거리의 자급을 지원하고 쾌적한 환경을 보장해주었다. 독일은 유럽에서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보행자와 자전거에 도로를 배려하고 대중교통이 편리한 교통정책을 펼치는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5분 걸어 반가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원을 도시 곳곳에 만든다. 재개발은 관공서와 사무공간과 시장과 학교를 가까운 지역으로 모아 주민들이 이동하느라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유도하고 외곽에 텃밭을 조성해 저렴하게 임대해주기도 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도시는 빗물을 전혀 완충하지 못하고 호수를 조성하지 않은 공원은 빗물을 저장하지 못해 지하수를 보전하지 못한다. 외곽의 농경지를 잠식하며 확장되는 도시는 먹을거리를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천이 그렇다. 근대화 이후 확장되기만 하다 그 한계를 절감한 일본도 2000년 들어 에너지 낭비구조의 도시를 컴팩시티로 변화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어떤가. 청량산과 문학산 일원의 전원지대를 잠식하는 것도 모자라 천혜의 갯벌을 막대하게 매립한 인천 연수구, 김포평야를 잠식한 계양구와 부천의 중동과 상동, 그리고 넓은 갯벌과 경작지를 맹렬하게 매립하는 인천의 서구, 심지어 절대농지까지 기웃거리는 강화군은 컴팩시티와 거리가 멀다. 인천만의 사정은 아닐 것인데, 직장과 상가를 찾아 시도 때도 없이 도로를 메우는 자동차로 시민들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질식된다. 에너지는 물론, 약간의 농작물의 자급도 꿈꾸지 못한다.

 

인천을 컴팩시티로 개발하겠다는 목소리가 한때 들렸는데, 요즘 잠잠하다. 고급 초고층빌딩을 밀집시켜 투기에 관심이 높은 시민들을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으로 들려 내심 불편했는데, 일단 조용해져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구도심의 오래된 주거지역은 컴팩시티로 재개발이 오히려 절실하지 않을까. 망국적 투기바람으로 외지인 현혹하는 초고층 아파트단지의 신기루에서 벗어나 다정한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주거단지에서 지역에 뿌리내린 문화와 역사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불필요한 이동을 줄일 수 있는 생태도시를 구상할 기회가 아닐까.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 때문에 출퇴근이나 등하교 길에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주거단지의 곳곳에 나무가 울창한 공원이나 텃밭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걷거나 자전가를 타고 모인 주민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도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보다 녹색이 완연한 공간은 빗물이 완충되어 지하수로 이어지는 도시, 태양이나 바람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도시, 그리고 그런 주거단지에서 이웃들과 삶을 뿌리내릴 수 있는 정주공간으로 거듭나지 않겠나. 낯모르는 직원이 기계적으로 인사하는 대형 양판점보다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며 반갑게 맞는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텃밭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컴팩시티는 쌀쌀맞은 초고층아파트 단지에서 도저히 꿈꿀 수 없는 구도심만의 기회가 된다. 그 실천을 위한 논의와 연구의 필요성이 인천에서 제기돼 시민사회로 널리 번져나갔으면 좋겠다.

 

도시의 아들이 기름보일러를 설치해준 시골 양옥집의 노인들은 겨울이면 한 집으로 모여 난방비를 아낀다는데, 지구온난화의 역설적 여파로 올 겨울은 예전에 없이 춥다. 국제 석유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요즘은 석유 위기를 염두에 둔 마음가짐과 행동을 요구한다. 흥청거리는 도시도 머지않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전기나 석유와 같은 에너지 과소비 없이 유지가 불가능한 초고층빌딩일수록 그 정도가 더할 것이고, 석유 없이 생산이 아예 불가능한 산업축산이나 산업농업도 곧 대안을 찾아야 한다.

 

석유 위기를 앞둔 농촌은 물론 도시도 최대한 에너지와 먹을거리의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기농업으로 노력한다면 석유 과소비 없어도 농촌은 버틸 수 있겠지만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도시는 발상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컴팩시티다.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야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친화적인 재개발로 가능하다. 다정한 이웃과 지역에 뿌리 내리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in 2011.1.27)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11. 15. 23:55

  

1

 

2007년 12월 7일 오전, 충남 태안 앞바다는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현대오일뱅크에 납품하는 원유를 가득 실은 홍콩 선적 14만6800톤 급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호를 인천대교 상판 공사를 마치고 귀환하는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이 들이받아 만 2천 톤의 원유를 바다에 흘린 대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원유의 피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경고였을까. 한 시사주간지는 ‘검은 시한폭탄’이라 말했다.

 

14년 전 여수 소리도 앞바다에서 좌초된 시프린스 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의 사고도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원인을 제공했다. 거센 풍랑 속에 거대한 크레인을 왜 두 척의 예인선이 그것도 야간에 끌었어야 했을까. 원래 4척이어야 한다던데. 사고의 원인은 철선이 끊어진 데 따른 충돌이라지만 충돌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겨울이 덥고 여름이 추운 에너지 과소비 시대에 원유 유출은 이미 예고된 게 아니었을까.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는 가운데 이윤에 눈이 먼 기업의 책임 회피는 아직도 이어지는데, 100만이 넘는 자원봉사자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겉보기 깨끗해진 태안에서, 주민의 가슴앓이는 끝나지 않았고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세계는 노벨상 수상자를 주목하는데, 그 중 평화상의 향방에 관심이 높다. 정치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현실 정치의 한 흐름을 반영하는 까닭일 텐데, 2007년 노벨 평화상은 미국인 엘 고어와 더불어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게 돌아갔다. 정치인을 수상자로 선정된 데 의미를 평가 절하한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앨 고어처럼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고민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IPCC는 기후변화에 관련된 과학적, 기술적 사실에 대한 평가를 제공하고 그 국제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보고서를 1990년부터 펴내고 있다.

 

엘 고어의 수상은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프리카 사막에 나무를 심은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이래 노벨평화상이 환경과 기후변화를 평화 차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를 반영한 걸까.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에 팔 걷고 나섰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품에 표시해 지구온난화 억제에 역행하는 제품의 시장 퇴출을 유도하고 아울러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관세를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네덜란드도 최근 자동차 세금을 주행거리에 따라 차등하겠다고 발표하며 신뢰성 있는 대책을 세우는 국가 대열에 동참했는데, ‘4대강 사업’을 지구온난화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우기는 우리나라는 시방 초고층빌딩 붐이다.

 

2007년 초, 수천 건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4번째 보고서를 채택한 IPCC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지구는 100년이 지나지 않아 대재앙을 맞을 수 있을 거라 주장했는데 이미 3년이 지났다. 그 보고서는 평균 기온이 섭씨 1.4도에서 6.4도 상승한 상황을 설명한다. 지금보다 1도가 높아지면 극지방을 비롯한 영구 동토층이 녹아 태평양의 군소국가연합은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미국의 곡창 지대가 황폐화되어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을 거로 예측한다. 지구 평균 온도보다 0.7도 이상 뜨거워진 우리나라는 안전할까.

 

2.4도가 오르면 북극해에 빙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견한다. 북극항로가 열리고 그 아래 원유가 퍼올려질 거로 기대하는 얼빠진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는 따지지 않기로 하고, 빙하가 사라지면 대양으로 흡수되는 태양열이 증가해 지구 온도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경고한 기후학자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물에 떠있으므로 북극 빙하가 녹는다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막대한 그린란드의 빙하다. 기후학자들은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는다면 해수면은 7미터 정도 상승하리라 추정한다. 그들은 획기적으로 노력해야 2.4도 상승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데, 7미터가 상승한다면 새만금 일원도 인천공항과 송도신도시와 더불어 바닷물에 잠길 것이다.

 

3.4도 이상 오르면 세계 곡창지대와 열대우림이 사막화되면서 기온 상승의 ‘양의 되물림 현상’(positive feedback)이 발생해 궁극적으로 6.4도 오르는 걸을 막을 수 없으며, 6.4도 상승하면 사람은 물론이고 일부 미생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물이 극지방 이외 지역에서 사라질 것으로 추측한다.

 

 

2

 

2년 전 겨울, 이경해 열사의 자결 장소로 세계 농업운동가에게 알려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세계적 휴양도시 칸쿤을 다녀왔다. 다국적 자본이 추구하는 거대한 무역 자유화의 파고에서 생명의 농업을 지켜내려고 이역 땅을 찾은 이경해 열사는 열패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는지, 이준 열사처럼 2004년 9월 이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역사의 땅 칸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파도가 부서지는 카리브의 투명한 바닷물, 그 파란 바다와 어우러지는 코발트 빛 하늘에는 보트가 끌어올린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더가 두둥실 떠있고, 한겨울을 피해 찾아온 세계 각 국의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하루 20만 이상의 관광객이 운집하는 칸쿤은 부서진 산호가 하얗게 빚은 해안과 세계 유명 호텔이 총집결한 구역을 자랑하지만 화려한 호텔의 상당수는 사실 얼마 전에 신축 또는 개축했다. 3년 전 10월에 강타한 시속 230킬로미터의 허리케인 윌마에 넘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그때의 상처가 남은 해변에는 완공을 서두르는 건물이 눈에 띄었고,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야자수도 키가 작았는데, 아무리 강해도 그렇지 허리케인이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넘어뜨릴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가 원인이었다. 3미터가 넘는 너울이 기반인 모래를 바닥에서 휩쓸자 호텔이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건데, 너울이 키우고 높인 건 바로 지구온난화였다. 기후가 전에 없이 더워지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로 칸쿤을 찾기 시작했고, 관광객이 몰려들자 자본은 해변 가득 호텔을 올렸는데, 건축물이 바람을 가로막자 해변은 여기저기 깎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 크고 작은 바람이 가져온 산호 가루 위에 지은 호텔은 그때도 지금처럼 에어컨을 거세게 틀어댔을 텐데, 깎여나간 해변에서 완충되지 않은 허리케인의 너울성 파고는 호텔을 순식간에 덮치고 만 것이다.

 

더욱 크고 화려하게 모습을 바꾼 호텔들은 북미와 유럽과 일본, 최근에 한국과 중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호황을 누리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먼 바다에서 뜨거운 에너지 거듭 받으며 파고를 둥글게 키우는 너울은 해안에서 시끄럽게 부서지는 파도와 차원이 다르다. 소리도 없이 다가와 바닷가 시설물을 한순간에 휩쓸어버린다. 칸쿤만이 아니다. 이미 동해안을 덮치며 아스팔트를 뜯어낸 적 있는 너울. 천만 명 이상 관람한 영화 <해운대>가 웅변하듯, 파고를 완충해주던 갯벌을 매립하고 해변에 높은 건물을 경쟁하며 짓는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3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100층 이상의 초고층빌딩 신축 붐을 그것 참 재미있다는 듯 소개했다. 우리도 초고층빌딩을 세울 수 있다는 과시욕은 선진국 진입에 대한 열광을 반영한다고 해석을 덧붙이면서.

 

인천 송도신도시에 예정된 151층 쌍둥이빌딩은 서울시의 자존심을 자극했는지, 용산역 부지에 인천보다 10미터 높은 620미터의 초고층을 예고한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국가안보를 기업 이익에 종속시킨 대기업 롯데는 서울 강남에만 112층의 빌딩을 세울 태세가 아니다. 부산에도 돛단배를 닮은 495미터에 달하는 롯데월드 107층 건물을 예정했다. 고양시를 비롯해 다른 지방도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인데, 서울 상암동에도 130층이 넘는 건물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흉물로 방치돼 있지만 북한에 이미 323미터에 이르는 105층 유경호텔이 있으니 현재까지 예정된 초고층빌딩이 모두 완공되면 대한민국은 100층 넘는 건물을 남부럽지 않게 보유하는 국가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걸까.

 

249미터의 높이로 한동안 남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영예를 차지했던 63빌딩이 서울의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목동의 하이페리온에 이어 3워를 달리지만, 얼마 못 가 3위마저 내주어야 한다. 고층이라 자랑하던 아파트를 헐고, 도심 하늘을 수놓으며 치솟을 아파트도 60층 이상의 초고층을 전국의 도시마다 지향하는 까닭이다. 천편일률적이었던 판상형 아파트 단지를 30년도 못돼 헐고 초고층 탑상형으로 돋아세우겠다며 자랑한다. 그것도 친환경으로 치장하면서.

 

구름을 뚫을 듯 솟는 초고층 아파트는 수려한 외관만큼이나 살기 편할까. 드넓은 지하 주차장 위에 조성한 녹지 사이로 드문드문 배열된 탑상형 아파트는 창문을 도무지 열 수 없는데, 실내가 쾌적할까. 그런 아파트에 살다 종합부동산 세금이 두려워 팔고 나왔다는 어떤 이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남다른 체질을 탓하는 이가 없지 않겠으나 바깥바람이 들어오지 않아 답답하다는 거다. 탑상형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둔 한 주부는 고액의 전기로 강제 순환시켜도 공기가 부엌에서 정체돼 가정주부의 건강이 특히 좋지 않다고 귀띔한다. 전기 누진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금전적 부담 뿐 아니라 건강 부담도 크다는 건데, 정작 돌이킬 수 없는 문제는 에너지 낭비다. 초고층 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도 만만치 않지만 짓는 과정과 장차 폐기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도 막대할 게 틀림없다.

 

걸핏하면 우리의 모델이라 떠받들었던 두바이가 흔들린다고 외신이 누차 보도했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두바이의 국가채무가 채무불이행 위기에 있는 아일랜드와 비슷한 수준의 부도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취재했다. 두바이의 상징으로 과시된 야자수 모양 인공 섬의 부동산 가격이 세계 경제 위기 이후 40퍼센트 가까이 곤두박질친 마당에 주택담보로 부동산을 구입한 계약자까지 중도금을 제 때 상환하지 못한다는 거다. 이럴 경우 애초 100만 명 이상을 기대했던 두바이는 주택 30퍼센트가 텅 빈 유령 도시로 전락할 것이라 언론들은 경고한다.

 

두바이에 사무실을 둔 기업의 잇단 해고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벌어진 경제 한파는 결과적으로 공급 과잉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부동산 전문가는 분석하지만, 그동안 두바이가 호화스럽게 유지된 것은 멕시코 원주민이 헐값으로 혹사당하는 칸쿤처럼 아시아에서 파견된 저임금의 노동력 덕분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경제가 다시 호전돼도 가난한 이에 대한 착취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두바이는 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데, 우리가 두바이를 흉내내야 할까.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번듯함을 과시할 수 없는 두바이를 송도신도시를 비롯한 전국이 뒤따라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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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층 아파트에서 남동산업단지를 내려다보며 살기 시작할 때 선물로 받은 난은 무성했던 잎을 잃으며 시들어갔는데, 3층으로 내려오자 다시 잎을 달며 생기가 돈다. 나무 높이보다 훨씬 올라온 콘크리트 위의 화초는 그렇다 치고, 허공을 딛는 사람은 괜찮을까. 바람이 몹시 부는 날, 18층의 베란다 새시가 떨어질 듯 흔들려 불안했던 적 말고 큰 문제는 없다고 느낄 테지만, 까마득히 높은 아파트에서 지구온난화로 더욱 거세지는 태풍을 맞아야 한다면 주민들은 불안해하지 않을까. 머지않아 석유와 에너지 위기 시대는 다가올 텐데, 생각해보자. 앞으로 석유와 전기 공급 가격이 치솟는다면, 에어컨과 공기정화기에 의존하는 초고층 건물들은 거주 공간으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건물의 높이를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5분 걸어 반가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녹지가 넓다는데 자부심을 가지므로 녹지를 가리는 건물을 혐오한다. 독일 하노버는 2000년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생태’를 표방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주택을 재개발하면서 건설업자의 이익을 위해 고층으로 올리는 법이 없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재를 활용해 지붕과 옥상을 녹화하고 틈이 보이면 나무를 심는다. 그 결과 그들은 여간해서 손 떼 묻은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거듭 개선된 기술은 거세질 태풍과 지진에도 견딜 초고층빌딩을 척척 짓겠지만, 전기와 물의 과소비 없이 유지하지 못하는 폐쇄 공간은 건물 내 이웃 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웃과 생태계에 위화감과 부담을 선사하지만, 결국 그 피해는 후손에 고스란히 안겨줄 것이다. 아직 조사가 충분하지 않다니, 주민들의 건강 문제는 여기에서 다루지 않기로 하고, 지구온난화에 역행하다 수명 마친 초고층 건물의 뒤처리도 후손에게 떠넘길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민망하게 지적했지만, 초고층빌딩은 우리의 허위의식을 반영한다. 지구온난화를 촉발하고 심화시킨 석유의 신기루에 불과한 두바이는 경제 위기를 맞자 그 본질인 사상누각이 드러나고 말았다. 경제가 다시 호황을 찾으면 잠시 번쩍일 수 있어도 석유 위기가 가속되고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 이내 침체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두바이는 극복의 대상이지 맹목적으로 좇아야 할 신기루가 아니다.

 

100년 전보다 이미 평균 기온이 0.7도 상승한 지구촌에서 태풍과 허리케인이 두세 배 이상 거세어지고, 파도와 해일도 전에 없이 강해졌다. 인구가 밀집되는 공업단지와 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갯벌을 무작정 매립하는 우리는 이제 가녀리게 남은 강화 일원의 갯벌마저 녹색이라 치장한 조력발전으로 파괴하려 든다. 세계 평균 기온이 섭씨 4도 이상 상승하면 한반도는 사막이 될 것으로 IPCC는 예측하는데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조롱한다. 하지만 초고층 빌딩은 죽은 갯벌 위의 송도신도시와 아파트 재개발의 현장에서 화려하게 치솟아 올라가기만 한다. 지구온난화를 앞둔 지금, 신기루에 불과한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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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진 가로수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시리도록 차가운 아침, 여기저기 흩어진 낙엽이 환경미화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거리를 걸으며 애국가 3절을 읊조린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높고 구름 없는 하늘은 가을에 나타나야 하지만 지금은 절기상 겨울이다. 언젠가부터 코스모스가 하늘거릴 때부터 파랬던 하늘이 지각하기 시작했다. 국지성호우가 장마철을 잇더니 얼토당토아니하게 ‘가을장마’가 빗발치면서 나타난 일이다. 이참에 애국가 3절을 바꿀까. “겨울 하늘 공활한데…”

 

하늘이 파란 날이면 하늘 가장자리를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청명한 가운데와 달리 가장자리는 붉으죽죽한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난방 연료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은 물론이지만 억수 같은 비가 한바탕 퍼부은 뒤 드러난 여름의 파란 하늘도 서너 시간만 지나면 이내 붉으죽죽해진다. 대기오염 물질이 금방 농축되기 때문일 텐데, 이 땅의 대기오염 물질은 그만큼 집요하고 드세다. 시베리아와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무리 세력을 확장하더라도 오염물질을 쉽사리 밀어내지 못한다.

 

어느 날 파란 하늘을 반기며 시화방조제를 지날 때였다. 문득 차창 너머 하늘을 살펴보니 왼편인 화성의 하늘은 쪽빛 그대로인데 오른편 인천의 연수구는 거무튀튀하다. 거기 내 집이 있는데. 갑자기 목이 칼칼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누군가 도시의 낙엽은 통 썩지 않는다 말한다. 대기오염 때문이라기보다 살충제를 하도 뒤집어써서 그렇다지만 그뿐일까. 나뭇잎에 눌어붙은 끈적끈적한 살충제는 가로수 낙엽이 썩는 걸 방해할 게 틀림없지만 빗물에 결국 씻길 텐데 왜 썩지 못하는 걸까. 대기오염, 산성비와 동반하는 지구온난화로 미생물이 사라지면서 나타난 현상은 아닐까. 그래도 마대자루에 담겨 도로 한 구석에 수북이 쌓인 저 낙엽들은 내년에도 볼 수 있겠지.

 

한 해가 저물어가는 계절,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걷는데, 파란 하늘 아래 청설모 한 마리 아파트단지의 잣나무 가지에서 부지런을 떤다. 어디에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아직 초고층이 아니기 때문일 테지만 청량산이나 문학산이겠지. 낙엽 떨어진 가로수 가지를 타고 넘어왔을 텐데, 기특하기도 하다. 검은 시한폭탄이 지구촌의 바다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만큼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이 땅의 하늘은 더욱 오염되는데, 언제까지 하늘이 파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저 청설모, 내년 이후에도 계속 만나고 싶다. (인천문화비평, 2009년 하반기, 잡지에 맞게 짧은 몇 꼭지를 편집)

 
 
 

도시·인천

디딤돌 2007. 5. 29. 00:48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지구온난화가 다른 곳에 비해 1.5배 빠르다는 소식이 들리기에 앞서 뉴욕타임스 최근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초고층빌딩 신축 붐을 소개했다. 우리도 초고층빌딩을 세울 수 있다는 과시욕은 선진국 진입에 대한 열광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한다.


인천 송도신도시에 예정된 151층 쌍둥이빌딩은 서울시의 자존심을 자극했는지, 용산역 부지에 인천보다 10미터 높은 620미터의 초고층을 예고한다. 부산도 돛단배를 닮은 495미터에 달하는 롯데월드 107층 건물을 예정했고, 인천시 송도유원지 근처에도 대우자판에서 105층 건물을 예고한지 오래다. 완공되지 않은 흉물로 방치돼 있지만 북한에 이미 323미터에 이르는 105층 유경호텔이 있으니, 현재까지 예정된 초고층빌딩이 모두 완공되면 대한민국은 100층 넘는 건물을 5채나 보유하는 국가 대열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249미터의 높이로 한동안 남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영예를 차지했던 63빌딩이 서울의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목동의 하이페리온에 이어 3워를 달리지만, 얼마 못가 3위마저 내주어야 한다. 고층이라 자랑하던 아파트를 헐고, 도심 하늘을 수놓으며 치솟을 아파트도 60층 이상의 초고층을 지향하는 까닭이다. 성냥갑을 늘어놓은 듯 천편일률적이었던 판상형 아파트 단지를 30년도 못돼 헐고, 초고층 탑상형으로 돋아세우는 게 전국의 추세다.


구름을 뚫을 듯 솟는 건물은 수려한 외관만큼이나 살기 편할까. 넓은 녹지 사이로 드문드문 배열된 탑상형 아파트는 실내가 쾌적할까. 그런 아파트에 살다 종합부동산 세금이 두려워 팔고 나왔다는 어떤 이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이의 남다른 체질을 탓할 수 있겠지만, 바깥바람이 들어오지 않아 답답하다는 거다. 탑상형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둔 한 주부는 강제 순환시키는 공기가 부엌에서 정체돼 가정주부의 건강이 특히 좋지 않다고 귀띔한다. 전기누진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금전적 부담 뿐 아니라 건강 부담도 크단다.


18층 아파트에서 공단을 내려다보며 살 때 선물로 받은 난은 무성했던 잎을 잃어가며 시들어갔다. 한데, 3층으로 내려오자 무수한 잎을 새로 달며 생기가 돈다. 나무보다 훨씬 올라온 콘크리트 위의 화초는 그렇다 치고, 땅과 멀리 떨어진 사람은 괜찮을까. 바람이 몹시 부는 날, 18층의 베란다 새시가 떨어질 듯 흔들려 불안했던 적 말고 큰 문제는 없었는데, 까마득히 높은 아파트에서 지구온난화로 더욱 거세지는 태풍을 맞아야 한다면 주민들은 불안해하지 않을까. 만에 하나 전기 공급이 중단된다면, 에어컨과 공기정화기에 의존하는 건물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을 텐데.


유럽의 많은 도시는 건물의 높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5분 걸어 반가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녹지가 넓다는데 자부심을 가진다. 독일 하노버는 2000년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생태’를 표방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엑스포를 위해 신축한 아파트는 5층이 넘지 않고, 빗물 재활용과 햇빛 에너지를 적극 활용한다. 주택을 재개발할 경우, 건설업자의 이익을 위해 고층으로 올리는 법은 없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재를 활용해 지붕과 옥상을 녹화하고 틈이 보이면 나무를 심는다. 그들은 여간해서 손 떼 묻은 집을 떠나지 않는다.


거듭 개선된 기술은 거세질 태풍과 지진에도 견딜 초고층빌딩을 척척 짓겠지만, 고층일수록 자연과 멀다. 전기와 물의 과소비 없이 유지하지 못하는 폐쇄공간은 건물 내 이웃 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웃과 생태계에 위화감과 부담을 선사하지만, 결국 후손에 피해를 안길 것이다. 아직 조사되지 않았을 테니, 주민들의 건강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고, 지구온난화에 역행하다 수명 마친 건물의 처리도 걱정을 안길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민망하게 지적했지만, 초고층빌딩은 우리의 허위의식을 반영한다. 현재 앞서가는 나라는 초고층빌딩을 과시하지 않는다. 숲으로 가득한 지평선이 보이는 걸 자랑스러워한다. 내일을 생각하는 도시는 이웃은 물론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 이제 우리도 깨달을 때가 되었다. (기호일보, 2007.6.8)

일종의 왜소콤플렉스겠지요. 작은 나라에서 건물도 세계최고, 불상도 세계최대 등등..
자본의 패악질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