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9. 3. 7. 02:08


연수구에서 미추홀구 용현동의 한 환경교육 시설로 오후에 걸었다. 미세먼지가 지독해 흔쾌하지 않아도 만보를 채우려고 회의 시작보다 많이 앞선 시각에 집을 나섰는데 오랜만이라 그런가? 동양화학 공장 자리를 지나는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철제 펜스가 두른 넓은 부지의 공장은 모두 헐렸다. ‘용현지구, 머지않아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모양이다. 오랜 공장을 하나라도 살려 지역 젊은이를 위한 문화와 창작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제 유효할 수 없으리라.


수인선 해당 지역에 용현역을 만들어놓았으니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기정사실이더라도 내심 아쉬웠다. 지역의 유서 깊은 대학과 가까우니 새로운 전통과 문화 창조의 등용문이 되면 지역 정서에 긍정적으로 자리매김했을 텐데, 머지않아 철근콘크리트로 가득하겠지. 그것도 초고층으로 삭막하게. 요즘 신축 아파트는 한결같이 40층을 넘나든다. 50층이 넘으면 안전 규제가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라는데, 49층 이하면 괜찮다는 겐가? 아무튼, 같은 길을 다음에 걸을 즈음, 공장 냄새는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겠지. 시끄러운 공사판에서 초고층 빌딩숲으로 화려하게 변모하겠군.


일제의 수탈용이던 수인선은 복선 표준궤로 복원된 뒤 지하와 지상구간을 달리며 승객만 운송한다. 중국산 석탄을 수송하지 않으니 연수구민에게 다행인데, 출퇴근시간마다 용현역부터 북새통을 이루는 건 아닐까? 명칭과 달리 인천역에서 아직 수원 근처의 노선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오이도역에서 갈아타면 안산과 서울 복판을 지나 노원으로 연결되므로. 하지만 수인선만으로 늘어날 인파는 감당하기 어려울 거 같다. 벌써부터 정체된 제2고속도로는 민원의 대상으로 등극하겠지.


10여 년 전까지 대기업의 공장과 석유비축기지였던 인하대학교 주변은 이미 고층아파트로 빼곡히 점령되었다. 새로 올라온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시민 대부분은 어디로 출퇴근할까? 인천 지역일까? 인천을 벗어나야 할까? 도로에 승용차가 무척 늘었겠다. 청년 중 일부를 제외하면 통학을 위해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테니 아침은 교통지옥이겠지. 동양화학 자리마저 초고층으로 메운다면? 상상하기 두렵다. 연수구도 복잡한데, 그 지역으로 이사해야 하는 불행이 없기를 기대하면서 걸었다. 초미세먼지 90% 이상 거른다는 마스크 때문에 가슴이 답답한 게 아니다. 하늘은 아직 연수구보다 넓지만, 곧 비좁아지겠지.


국제도시라는 걸 앞세우길 좋아하는 청라 아파트단지의 주민들은 지역의 문화행사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워한다. 마음이 없기보다 출퇴근에 몸이 지치지 때문이다. 퇴근 이후 마음 맞는 이웃과 이따금 살가운 시간을 갖더라도 금방 일어나야 한다. 직장이 인천이 아니므로 이어지는 술자리를 서둘러 마쳐야 하는데, 용현동은 어떨까? 인천시 곳곳에 아파트가 초고층으로 다닥다닥, 경쟁하듯 늘어나지만, 그에 발맞춰 일자리가 확보되는 건 아니다. 더욱 비좁아지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피곤하다. 부쩍부쩍 늘어나는 인구는 제가 사는 지역에 자긍심을 만들기 어렵다. 지방세를 아깝게 생각하겠다.


하늘 비좁게 올라서는 아파트마다 전기와 수도, 가스와 통신을 요구하고 그만큼 하수와 쓰레기를 추가로 내놓을 것이다. 초미세먼지 펑펑 쏟아내는 화력으로 생산하는 전기 이외에 인천이 제공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전기도 인천시가 능동적으로 공급하는 건 아니다.


음식은 어떤가? 강화와 옹진군이 같은 광역시 권내에 있지만 아파트단지와 거리가 멀다. 갯벌을 잃었을 뿐 아니라 바닷모래를 빼앗기는 인천 앞바다는 어획고의 대부분을 벌써 잃었다. 자급 가능한 강화의 쌀이 인천의 아파트 단지에 쌓이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20%에 그치니 대부분 수입산일 것이다. 그만큼 석유를 낭비한다.


일본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이끄는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FEC자급권을 주창한다. 식량(food), 에너지(energy), 그리고 돌봄(care)는 지역에서 어떡해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인데, 그 점에서 인천은 낙제다. 지속 가능할 수 없는 만큼 온실가스는 넘치고, 정주의식은 낮아지겠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들끓는 만큼 한시바삐 인천을 떠나고 싶을 것이다. 시민의 행복보다 지방세 증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사업자에게 도시계획을 맡기는 행정은 제발 중단해야 옳지 않겠나. (인천in, 2019.2.6.)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8. 7. 1. 21:44


 

이번 지방선거는 사전투표로 유권자의 도리를 지켰다. 선거일을 지켰던 지난 총선이나 대선과 달랐던 것은 여야 정당의 적극적인 홍보와 무관했다. 1980년대 이전의 군부대에서 겪은 강압적 분위기가 내상을 남겨 망설이게 했는데, 이번 선거부터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사무소 4층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들어서니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젊은이가 동춘3동 거주자는 오른쪽 줄에서 투표용지를 받으라고 안내를 했다. “동춘3? ! 내가 사는 곳이지?” 오랜만에 듣는 동네 이름이었다. 주민의 의지를 전혀 묻지 않은 정권에 의해 바뀐 도로명주소에 어렵싸리 익숙해지면서 동네의 이름이 뇌리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이웃은 젊은이의 안내를 바로 이해했을까? 유권자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다음 사전투표부터 도로명 주소로 안내해야 하는 건 아닐까?


지금 강화에 큰집의 사촌형은 살지 않는다. 물려받은 땅에서 농사짓던 사촌형이 경상도 어딘가로 거처를 옮겼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 생각해보니, 그간 참 무심했다. 사촌이면 참 가까운 사인데, 이리 연락 없이 살아도 되나? 그러고 보니 가끔 연락하는 사촌누이에게 소식도 묻지 않았다. 누이도 왕래를 끊은 제 오빠 소식을 언급한 적이 없다. 왜 정든 마을을 떠난 걸까? 정 떨어지게 만든 사연은 무엇일까?


언제였던가? 수원청개구리를 채집하던 대학원 시절이니, 1980년대 중반이겠지. 귀띔도 없이 불쑥 찾아간 강화의 시골 마을은 참 야심했다. 멀리 개구리 소리만 들렸는데, 잠자리에 들려던 사촌형은 장독대에 오르더니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인천에서 사촌동생이 왔으니 모이라는 거였다. 그 시간에? 웬걸! 안줏감을 챙긴 젊은 농부 예닐곱이 모였고 우리는 거나한 밤을 지낼 수 있었는데, 그때 농부들, 지금 그 마을에 없다. 뜻 모를 이름의 펜션이 줄을 잇는 요즘, 마을은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녀석이 무척 활발하던 위층이 조용해졌다. 친구들 초대할 적이면 준비한 음식 일부를 담아와 양해를 구하곤 했는데, 이사한 걸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던 아래층은 이사했다. 낡은 난방 파이프에서 새어나온 물이 아래층 천장을 적신 이후 가까워졌지만 집을 자주 비우니 배웅할 기회가 없었다. 10년 넘게 한 아파트를 지키지만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두 차례 이상 바뀌었는데, 아무도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다는 걸 알 따름이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기 이전 동촌3동은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어촌 겸 농촌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아파트에 남아 갯일을 잠시 이어갔지만, 지금 동촌3동에 갯일과 농사는 없다. 남동공단으로 매립된 이후에도 남은 갯벌이 송도신도시 아래 대부분 매립되면서 어촌의 냄새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조개 캘 때 입는 옷을 버렸을 주민들은 요즘 왕래할까? 갯일에서 떠난 마당이라 같은 단지의 아파트에 살지라도 도우며 지낼 거리를 찾기 어려울 거 같다. 그러다 이사하면 소식이 끊어지겠지. 아파트에 익숙해지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이른바 비닐 대란으로 환경부장관이 교체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국에서 재활용 명분으로 수입하던 외국의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를 더는 받지 않겠다고 이미 6개월 전에 선언했지만 대비 없이 허송하다 대란을 맞게 했다는 국무총리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그게 장관이 책임질 일인가? 무사안일에 길든 관료주의와 무관할까? 뿌리 깊은 관료주의는 시민운동가 출신인 환경운동가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귀찮았을 텐데, 관료주의가 환경부에 없다면 비닐 대란은 일어날 리 없었을까?


비닐 대란은 명분일 뿐이고 사실상 다른 이유가 있다는 설도 유력해 보인다. 국립공원인 흑산도에 비행장을 조성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다는 게 아닌가. 감히 환경부장관 주제에 그것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항 신설을 반대하다니! 환경부보다 예산이 막대할 뿐 아니라 권력이 막강하다고 자부하는 건설이나 경제부서에서 눈을 부라렸을 게 분명하다. 얌전하길 기대했을 여성 환경부장관을 국무총리는 경질 대상으로 주목했을지 모르지만 비닐 대란은 환경부의 책임일 수 없다. 생각해보라. 비닐을 마구 사용하는 분위기는 결코 환경부가 만들지 않았다. 만류하기도 벅찼을 게 틀림없다.



사진: 배곶 신도시를 알리는 광고의 한 페이지 사진(인터넷에서 찾음)


요즘 플라스틱과 비닐봉투가 없으면 두부를 구입할 수 없다. 아파트에서 나온 승용차들이 밀려들어가는 양판점을 보자. 양판점의 지하 식품매장에서 구입하는 두부는 비닐 덮개를 씌운 작은 플라스틱 상자에 담겼다. 양판점뿐이 아니다. 생활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유기농업 콩으로 생산한 두부도 플라스틱과 비닐이 없으면 유통이 불가능하다. 콩을 직접 갈아 만든 두부를 파는 가게나 두부 전문점이 드물게 동네 어귀에 있지만 거기도 비닐로 포장해서 내놓는다. 예전처럼 신문지에 싸서 파는 가게는 동네에 없다. 포장에 쓸 신문지도 없다.


예전, 적어도 1960년대 이전의 마을은 달랐다. 두부를 파는 가게 주인은 밭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밭에서 생산한 콩이 모자라면 이웃의 밭에서 구입해 두부를 만들었다. 가게 주인은 누가 자신의 두부를 많이 사는지 잘 알았고 신문지가 모자라면 단골인 이웃에게 얻었다. 어떤 콩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두부를 만들었는지 잘 아는 고객은 이웃을 신뢰했다. 냉장고가 없었어도 두부의 신선도를 믿었다,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할지 잘 아는 가게에서 남아 버리는 두부는 없었다. 요즘 양판점보다 낭비하지 않았다.


이웃이 생산한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이웃에게 팔던 1960년대 마을이 확장되는 도시에 편입되면서 살가운 이웃은 정들었던 마을을 떠났다.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한 동네로 변하면서 주민이 들어오고 살가움은 사라졌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긴장감이 살가움을 대신했다, 다세대주택이 고층아파트로, 개선된 기술에 힙 입어 30층 이상의 초고층아파트 바뀌자, 우리는 마을과 이웃을 잃었다. 살가움이 사라졌다. 주위에 사람은 늘었지만 얼굴을 기억하는 이 드물다. 얼굴을 기억해도 서먹하다, 아파트와 자동차 크기로 비교하는 주민은 음식 나누기 흔쾌하지 않다. 장애인 학교의 건립을 반대할 거라면 모를까.


다세대주택마저 드문 골목도 도시에 존재한다.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이 대개 그런데, 다소 헝클어진 듯 보이는 골목에서 주민들은 지나치며 인사를 나눈다. 양판점이 멀고 편의점이 드문 지역의 가게 앞은 주민이 음료수를 나누는 공간이다. 잠시 살가운데, 그 살가움은 초고층아파트가 들어와 거리가 번듯해지면 사라질 것이다.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를 동네라고 한다던데, 요즘 동네에서 소리 지르면 고발당한다. 마음이 오고가는 마을은 휴대전화 속의 가상공동체, ‘커뮤니티에 묶였다.


아파트로 점철되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외롭다. 살가운 이웃이 그립다. 휘발성이 강한 휴대전화 속의 이웃은 살갑지 않다. 인천 연수구의 어떤 고급 아파트에 사는 10대 소녀는 휴대전화 커뮤니티에 빠져 어린 소녀를 사냥했다. 소리 지른다고 두부안주를 들고 친구가 찾아오지 않는 회색도시에서 살가운 이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웃의 손길이 다정했던 논밭이 다세대주택으로, 다세대주택이 초고층아파트로 바뀌니 언감생심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을까? 아파트를 논밭으로 환원할 수 없다면 주변에 텃밭을 확보해보자. 사는 아파트가 달라도 텃밭 농사를 함께 짓는 주민은 씨앗과 수확한 농작물을 나눈다. 살가운 이웃으로 잠시 만나는 거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작은책, 20187월호)

항암치료중인 한 자원봉사자가 원적산 자락의 텃밭을 빌려 이웃과 함께 야채를 키우고 그 소출로 저소득노인에게 밑반찬을 만들어드리고 있었요 5년 넘게... 동네를 살갑게 만드는 분들이시죠 ^^

 
 
 

도시·인천

디딤돌 2018. 5. 25. 15:58


어릴 적 살던 주안 일원을 최근 걸었다. 첫 기억이 어린 지역은 오래 전에 사라져 지금은 다세대주택이 빼곡한 골목으로 특징 없게 변했는데, 주민들의 숙원이던 재개발이 하나 둘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웃의 왕래로 살가웠던 예전의 마을로 되돌아갈까? 전혀 기대하기 어렵다. 옆집과 머쓱한 눈인사를 나눴던 다세대주택을 헐어낸 자리를 한결같은 초고층 아파트로 채울 예정이라고 한다. 송도와 청라신도시의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그렇듯, 낯모를 주민들이 스쳐지나갈 따름이겠지.


연수구 기존 주거지와 송도신도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제3경인고속도로를 달리다 남동공단을 지나 논현동 아파트단지를 지나면 느닷없이 높다란 콘크리트 건물들이 나타난다. 30층이 훨씬 넘어 보이는 배곶아파트단지로 꽤 질서정연하다. 매립한 갯벌 위에 같은 높이로 절도 있게 배열했기에 절벽으로 솟아오른 자세가 제법 당당하다. 단지 안에 들어서면 어떤 변화를 연출할지 궁금한데, 고속도로를 지나며 보이는 모습은 거의 혈거주택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바위에 똑 같은 주거 장치를 갖춘 천편일률의 주택.


맑은 날 미국 애리조나에서 LA까지 비행기 창에서 내려다보면 사막 한가운데 똑 같이 배열된 주택들을 무수히 확인한다. 주택 사이에 상가와 학교가 전혀 없다. 오로지 주택인 마을에서 가늘게 이어진 도로는 고속도로로 향하는데, 주 사이를 잇는 고속도로 양 옆은 양판점이 늘어서 있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게 거대한 양판점은 막대한 주차장을 펼쳐놓았고 온갖 편의시설과 상점으로 떠들썩한 양판점 안에 인파가 넘친다.


땅 넓은 미국에서 주택단지는 도시에서 점점 멀어져지며 확산된다. 승용차가 없다면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스프롤현상이다. 석유가격이 저렴하므로 가능한 미국의 스프롤 현상은 인적이 없는 교외에 단독주택단지를 밀집시켰는데, 우리의 스프롤 현상은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기본이다. 30층 내외까지 건설단가가 상승하지 않는 기술을 바탕으로 건설업체는 가구 수를 늘렸지만 지나치다. 주민은 획일적 높이의 주거단지에 금방 지겨워할 테고, 어이와 청소년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추억을 남기기 어려울 것이다.


초고층 아파트단지는 석유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면 존립이 불가능하다. 집에서 학교나 직장의 거리가 미국보다 가까우므로 교통에 들어가는 석유는 적지만 아파트를 초고층으로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가 적지 않다. 전기와 석유 가격이 오른다면 관리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미 세계 원유의 공급은 소비를 감당하지 못한다. 대형 양판점에서 일제히 구입하는 식자재와 생필품도 마찬가지다. 석유 없이 적시 적량 공급할 수 없는데, 지하 매장에 쌓인 세계 각국의 음식은 대략 1주일 분량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로 도로가 마비된 후쿠시마 시민들은 한동안 구호식량에 의존해야 했다.


주변 논밭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구입하며 살가웠던 주안에 다세대주택이 빼곡해지면서 이웃은 서먹해졌다. 보급에 매진한 정부정책은 골목을 똑 같은 다세대주택으로 채웠지만 아파트가 인근에 들어서자 불편해졌다. 그런데 재개발로 허문 다세대주택 자리는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볼썽사납게 차지한다. 주안의 재개발이 완료된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해질까? 신도시처럼 얼굴 익었던 세입자가 소외된 공간에 입주한 낯모르는 주민과 아이들은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크기를 서로 비교하며 경계할지 모른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높이로 집을 켜켜이 짓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한데, 획일적 구조의 아파트를 비슷하게 배열한 건설자본은 공원과 어린이놀이터까지 천편일률적으로 납품하려고 한다. 법적 요인을 충족하는 녹지에 화학제품을 푹신하게 깔고 그 위에 비슷한 조합놀이시설과 개성 없는 산책로는 주민을 이내 식상하게 만들 텐데, 그런 공간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추억은 얼마나 빈약할까?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은 생길까? 주택단지는 수용시설이 아니다. 다세대주택에 지친 우리는 건설자본의 이익에 최적화된 아파트를 원할 리 없다. 초고층 아파트단지에 지친 시민들을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기호일보, 2018.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