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2. 26. 17:50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억압했던 유신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이라면 요즘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할 시대의 모습을 여럿 기억할 것이다. 요즘도 민방위 훈련할 때 사이렌이 사방에서 울리듯, 등하교 때 애국가가 들리면 바삐 걷던 모든 이들이 돌연 얼어붙어야 했다. 부동자세로. 지금 생각하면 우스꽝스럽게 엉거주춤 섰는데, 어떤 이는 소명감 넘치는 모습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가슴에 손을 얹고 서있었다. 온 국민에게 하면 된다!”, “총화단결!”을 국가에서 부르짖던 시절의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의 서늘한 편린이다.


비행기에 폭탄을 실은 이래, 여차하면 다른 나라를 공습해온 미국은 하와이를 제외하고 전쟁 중에 자국의 영토가 공습되지 않은 어쩌면 유일한 국가일지 모른다. 그런 미국도 공습을 대비한 반공훈련을 했다. 게다가 이차대전이 끝난 1950년대에. 국민을 길들이려는 속셈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시절부터 우리는 그렇게 길이 들었다. 그 결과, 애국가는 따라 부르지 않더라도 가끔 서 있는 사람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이가 보이면 눈을 흘겼다. 한데 1950년대 미국 뉴욕의 거리에는 피난처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속지 말라외쳐대는 이가 있었다.


애먼 헤나시. 리 호이나키가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소개한 그는 방공훈련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되었지만 풀려나면 계속 같은 행동을 했고, 헤나시를 지지하다 구속되는 인파가 늘어나면서 결국 1961년 미국은 국민 길들이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가 피켓을 들고 이리저리 뛰는 사람 사이를 반대로 뛸 때, 한 사람이 물었다고 한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오?” 헤나시의 대답이 가슴을 방망이질하게 한다. 그는 웃으며, “아뇨,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나는 확신합니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이 땅의 젊은이이게 대들라고 했다. 답답한 기성세대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의가 아니라면 피가 뜨거운 젊은이답게 직접행동하라는 당부였다. 비폭력으로.


110일 오전 10, 민방위 하던 15일도 아닌데 느닷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10분 전 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지직거리는 스피커를 통해 국민에게 전기를 절약하자 어쩌고 하는 정부의 발표문을 성의 없이 읽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앵 앵 자극적으로 울어대는 사이렌은 순간 기분 상하게 했다. 정전을 대비해 필요하거든 미리 만든 계획에 따라 정부와 기업과 대형 건물이 훈련하면 될 일이다. 왜 애꿎게 주택에 방송하고 아파트 단지에 사이렌을 틀어대고 난린가. ? 전기가 갑자기 나가면 어떻게 된다고? 산업이 마비되고 직장을 잃어 자식들 굶주린다고? 그런다고?


누구의 의도에 왜 길 들어졌든, 권력에 맞게 길든 우리 주류 언론의 기자들이 현장, 또는 보도자료가 깔린 관련 기관의 따뜻한 기자실에서 겨울철 정전 대비 위기 대응 절전훈련이 차분하게 진행되었다는 기사를 쓸 무렵, 인터넷 공간은 부글부글 끓었다. 산업 마비 운운하며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더 지으려는 속셈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도 그럴 게,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이 거세질 때마다 반복한 절차가 아니었던가. 역시나, 이후 열흘도 못돼, 정부는 신규 핵발전소 부지 지정 절차에 들어갔고, 화력발전소를 넉넉하게 짖겠다고 선언했다.


전기 절약을 위한 절전운동. 당연히 좋은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전기를 무척 낭비한다. 우리보다 소득이 거의 두 배인 유럽의 국가보다 일인 당 소비량은 더 많다. 한데 이상스럽게 가정 소비량은 우리가 훨씬 적다. 무슨 뜻일까. 누진세가 무서운 가정보다 터무니없게 싼 전기를 무한히 공급받는 큰 영역이 있다. 기업, 상가, 커다란 건물이 낭비 주체라는 의미가 아닌가. 값이 싼 전기 덕분에 원가를 절감한 기업들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지 모르지만, 엉뚱하게 절전 책임은 가정에 씌웠다. 경쟁력? 다시 생각하니 아니다. 지구온난화 시기에 온실가스 배출을 수출입 기준으로 삼자는 주장이 대두되는데, 우리 기업은 경쟁력이 오히려 없다. 전기 절약이나 효율화에 기술투자를 외면하지 않았나.


전기만이 아니다. 4대강을 틀어막은 대형 보를 짓고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얼마인가. 지구온난화를 효율적으로 억제하는 갯벌을 메우는 일은 누가 해왔나. 전기 뿐 아니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의 적극적인 절약과 효율화에 정부가 앞장서야하지만 시큰둥했다. 국민을 협박하는 만큼 기업에 솔선수범을 제안한 적 있던가. 2020년까지 핵발전소 17기를 전부 끄는 대신 햇빛이나 바람을 이용한 발전으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한 독일은 기한을 앞당기려 한다. 2020년까지 1176만 킬로와트를 화력으로 더 만들겠다는 우리 정부는 추가할 전기의 70퍼센트를 민간 발전소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럼 지금도 적자라는 전기요금은 결국 오를 테지. 이익을 기업에게 몰아주려는 겐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자국의 핵발전소 52기 중 50기를 끈 일본에서 전기 공급 중단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전기의 4분의3을 핵발전소에 의존하는 프랑스가 독일에서 전기를 긴급 수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될수록 위험하지만 수리가 어렵고, 폐기물이 감당할 수 없게 발생하는 핵발전소가 그만큼 불안한 탓이다. 한데 우리 정부와 기업, 관련 학자와 언론은 핵발전소의 안전을 상투적으로 장담하면서 추가건설을 당연시한다. 더 짓지 않으면 산업이 마비되고 직장을 잃는 가장을 둔 가정은 굶주린단다. 그렇게 거짓은 신화가 되었다. 독일의 나치 선전장관이던 파울 요셉 괴벨스는 선동적으로 말했다. 한두 차례의 거짓말을 부정하던 사람도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고.


     11020분 동안의 정전으로 핵발전소 8기를 끈 효과가 있었다던데, 그렇다면 국민 협박하지 않고 산업설비 가동 시간만 미리 조절해도 충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분간 전기요금 인상 없다던 말을 여지없이 뒤집은 정부는 기업 전기요금 고작 4퍼센트 인상하면서 가정용까지 덩달아 2퍼센트로 올렸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려는 의지가 턱없이 부족한 정부는 절전훈련을 기회로 발전소를 증설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반대하면 산업마비를 획책하는 분자가 되도록 국민들 열심히 길들이려 할 텐데, 괜스레 헤나시의 행동 같은 저항이 커질 때마다 총화단결을 부르짖었던 박정희 군사정권이 떠오른다. 불안하다. (작은책, 2013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