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2. 11. 1. 14:19

     땅과 책을 놓지 않은 홍천강변의 지리학자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 최영준 지음, 한길사, 2010.

 

강원도 홍천이라. 졸병 시절 그 주변을 돌아다녀 그런지, 깊은 산골이라는 기억이 남아 있다. 대학원 시절 채집을 위해 이따금 찾던 오지, 두어 차례 다니는 군내 버스를 놓치면 하루를 허송하거나 무거운 장비를 들고 터덜터덜 걷다 트럭을 얻어 타야했던 홍천은 수도권과 거리는 가까워도 꽤 먼 곳이었는데, 거기에서 교수가 농사를 지었다고? 그것도 주말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궁금한 일이다.


하필 왜 홍천이었을까. 땅이 특별히 좋았을까. 지리학자가 좋은 땅이야 쉽게 구별할 텐데, 좋은 땅은 홍천까지 가지 않아도 많았을 터. 1980년대 말이면 투기바람이 산골까지 번지지 않았다. 주말농사 짓겠다는 현직 교수가 굳이 산골을 향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마흔아홉을 맞은 최영준은 남은 인생 동안 욕심 버리고 좋은 글 읽겠다고 주말마다 홍천강변의 산골로 들어갔다. 궁벽한 적막강산에서 서울 생활의 떼를 씻고 책상머리에 앉길 원했다. 도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에 일부러 택한 건 아닐까.


신혼 초, 도심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도예 전공하는 아내의 작업실과 자신의 서재를 꾸미고 작은 텃밭에서 채소와 화초를 가꾸고 싶었다. 그런 최영준의 소박한 꿈은 젊은 교수가 벌써 안주하려 든다.”면서 공부를 뒷전으로 미룬다는 주위의 힐난에 아랑곳하지 않고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저러다 말겠지하는 의구심을 떨치며 1365일의 적어도 3분의1120일은 홍천강변에서 보냈다. 1990년부터 농가가 딸린 7000여 평의 토지에서 밭농사와 논농사, 그리고 나무를 심고 잉어를 키우며 30년 넘게 살았다. 아니 정년한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거기에 산다. 그러니 희로애락이 오죽하랴. 연필을 놓지 않은 최영준은 일기를 꾸준히 썼고, 그 중 20년 기록을 정리해 책으로 남겼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이 그것이다.


자동차 길이 없어 풀숲을 헤치며 들어가 주말을 보낸 곳인데, 이젠 아스팔트가 번듯한 전원마을이 되었다. 그러자 들어온 건 도시의 자가용 족이고, 그들을 불러들이는 온갖 놀이터였다. 궁벽한 산골에서 낮에 농사짓고 밤에 좋은 글 읽으려던 서생에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루탄이 난무하는 캠퍼스를 잠시 벗어나 물 맑고 공기 맑으며 조용한 산골에서 낮에 땀 흠뻑 적시며 일하고, 밤에 책을 읽는 삶을 만끽하고 싶던 최영준은 안타까워도 홍천강변을 떠날 수 없었다. 부딪혀야 했다.


홍천의 집에 오니 웬 사내가 낚싯대를 떡 드리우고 앉아 떠나라는 집주인의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틴다. 커다랗게 자란 잉어가 사는 남의 집 저수지에서 선점권을 주장하는 경우는 애교에 가까웠다. 자물쇠를 뜯고 들어와 냉장고를 비우고 안방과 부엌을 차지하다 집주인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쓰레기 남기고 달아나는 관광객도 부지기수다. 아스팔트가 가져온 발전의 대가인가? 영남대로를 쓴 지리학자지만 도로에 도무지 긍정적일 수 없었다. 산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아스팔트는 지리학자의 조용한 삶을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연못에 내리는 오리 놀랄까 까치발로 걷던 최영준은 모터보트를 동원해 다슬기를 쓸어담는 상인들과 차 세우자마자 투망 꺼내며 왁자지껄한 도시 사람들에 진저리를 친다.


오리에 총질하고 산에 너구리 올무 놓는 자들만이 아니다. 이웃하는 땅을 구입한 한 사업가는 빗물의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축대를 쌓아 남의 농경지를 망가뜨리지 않나, 텃밭에 콩을 심는 데 찾아온 낯선 방문객은 소득 적은 농토보다 지기들에게 땅을 맡겨 정기적으로 큰돈 받는 게 어떠냐.”고 은근히 떠본다. 전망 좋은 땅을 자신들에게 거저로 주면 펜션을 짓고 그 이익을 나눠주겠다는 개발업자의 투기 심보. 산골의 촌로 속이는 사기꾼과 다름없는데, 그들은 지리학자를 몰라보았다.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하숙집에 불과한 펜션이 어떻게 최고급 숙박시설로 둔갑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꽁무니를 뺐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교수 농부는 흙으로 귀를 닦아내고 싶어 한다.


몇 차례 당부도 소용없이 흑염소를 풀어놓아 기껏 심은 묘목들 뜯어먹게 하는 이웃 농부들, 다 자란 장뇌삼을 모조리 가져가는 이웃 마을 사람들이 땅을 지키려는 지리학자를 괴롭히지만, “학자가 연구하지 않고 어찌 땅이나 파는 천한 일을 하느냐는 선배 학자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농사야 말로 가장 좋은 수신의 길로 생각하는 최영준은 강의와 연구는 물론, 대학원생 지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홍천강변을 떠나지 않았다. 가뭄에 양동이를 들고 홍천강에서 밭을 오르내리다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었지만, 지렁이와 굼벵이가 늘어난 논밭에서 누리는 수확의 기쁨, 가끔 찾아오는 제자, 그리고 친지들과 농사를 함께 짓고 나누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가련하게 바싹 마르던 홍천강이 어느 해는 주위를 집어삼킬 듯 무섭다. 그때마다 배수로의 낙엽들을 드러내고 빗물에 패인 농로와 논밭을 정비하며 힘에 부쳐하지만, 홍수와 가뭄은 강의 생명현상이다. 그런 생명현상에 기대며 온갖 생물들이 산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도 마찬가지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 동안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은 군 생활을 마치고, 어엿한 사회인에 되어 유학도 떠났고, 며느리도 데리고 왔다. 자신을 격려하며 자주 들리던 장인도 세상을 떠났다. 정년을 맞은 최영준 내외는 아예 홍천강으로 세간과 주민등록을 옮겼다.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교수 생활하던 지리학자가 산골에 뿌리내린 것이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을 읽으니 섣불리 귀농할 생각이 쑥 들어갔다. 개발의 삽날이 산골이라고 예외가 아니기 때문만이 아니다. 땅에 뿌리내릴 다짐이 없다면, 근육이 파열되고 발이 부러지며 온갖 방해꾼들과 싸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어진다. 농사는 무식한 촌로의 저급한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땅과 내일을 살리고 조상의 기억과 문화, 그리고 수많은 당대 사람들과 후손의 생명을 살리는 땀과 희생이 아닌가.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을 읽으며 귀한 농산물 쉽게 얻는 도시인들은 농민에 대해, 최소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반니, 2012111)

이제사 이 책 대했네요(!)
서평 감사히 대하고 감다(!)(!)

 
 
 

서평·추억

디딤돌 2011. 2. 5. 15:26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 최영준 지음, 한길사, 2010.

 

강화는 섬 치고 논이 상당히 넓은데 그런 논에 물을 대는 커다란 방죽이 제법 높은 산 아래 반드시 만들어져 있다. 해수면보다 그리 높지 않은 논의 가장자리는 단단한 제방으로 바다와 단호하게 차단돼 있다. 간척의 흔적이다. 바닷가의 만곡부를 둘러쌓은 그 논들이 고려조 때 간척되었다는 걸 국토와 민족생활사를 보고 알았다. 지리학은 재미있는 학문이다. 국토의 구석구석에 알알이 맺힌 문화와 역사, 그리고 변화를 읽는 지리학은 어지간한 발품을 팔지 않으면 그 재미를 속속 깊이 알아내지 못할 터. 국토와 민족생활사의 저자 최영준은 발품을 팔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통곡리의 논골마을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신혼 초 도심에서 20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터 잡아 아내의 작업실과 자신의 서재를 겸할 수 있는 아담한 집 한 채를 짓고, 작은 텃밭에서 채소와 화초를 가꾸고 싶던 지리학자는 80에서 90년대 대학가의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군사독재를 혐오한 딸깍발이 지리학자는 투사연하며 교수를 헐뜯는데 용감한 반면 학업을 팽개치는 학생에게 회의를 느꼈고 최루가스로 가득하던 교정을 잠시라도 벗어나야 맑은 정신에 책을 대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70년대 마음에 두었던 양재천 일원은 이미 개발되었다. 49세를 넘긴 조상이 없었다는 선친의 말씀을 기억한 딸깍발이는 욕심 버리고 좋은 책 읽으며 덤으로 살자고 만 49세에 S자로 굽이치는 협곡 안쪽,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홍천강변 논골마을에 터를 잡았다.

 

최루가스, 군홧발, 그리고 틀림없이 잡상인이 들끓었을 90년대 초반의 교정을 주말마다 떨치고 나간 최영준이 일기 형식으로 쓴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1990421일 토요일부터 시작된다. 일기를 쓰되 절대 사실이 아닌 것은 한 줄도 적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은 일기가 그리 진솔하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지리학을 연구, 강의하는 직분이라 주말이나 방학이 아니면 자주 찾을 수 없는 딸깍발이는 낮에 주위 농부에게 농사를 배우며 밭을 갈고 늦은 밤까지 책을 읽다 일기장을 펼쳐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마음 깊은 곳을 드러내면서.

 

초보농군의 격에 맞지 않게 넓은 땅을 구입한 지리학자는 살 집을 수선하고 나무를 심으며 산골에 맞는 농사를 시작했다. 농약을 회피하자 늘어난 굼벵이와 지렁이를 반기고, 지렁이를 따라 들어오는 여러 생물들을 눈여기며 회복되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가뭄이 들면 실오라기처럼 흐르는 홍천강도 큰물이 들면 주위 농경지를 집어삼킬 듯 거침없는데, 큰비에 무너지는 논둑과 밭둑과 연못을 그때그때 고치고 퇴비를 만들어 땅을 기름지게 가꾸는 과정에서 이웃과 마음을 나누고 가깝게 지내는 친지에게 수확한 농작물을 나누는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마음 상하게 만드는 존재는 언제나 도시의 불청객이다.

 

아내가 정성껏 심은 붓꽃을 함부로 캐내며 야생화에 임자가 따로 있느냐!”며 대드는 전문 사냥꾼들, 십여 년 키워 팔뚝만큼 자란 잉어를 잡으려 남의 집 연못에 버젓이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집주인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함, 수확 직전의 농산물을 가져가거나 익은 밤을 몽땅 털어가는 좀도둑은 해마다 어김이 없고 심어놓은 산삼을 몽땅 캐가는 자도 부끄러움이라곤 몰랐다. 기껏 심어놓은 나무를 이웃 염소가 죄 뜯어먹는 일은 참을 만한데, 근사한 승용차를 타고 느닷없이 다가와 펜션사업에 투자해 편히 큰돈을 벌라며 거룩한 표정을 짓는 이를 참고 대하는 일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을 거다. 밀짚모자에 장화를 심은 모습에 촌무지렁이 취급하며 다가오는 찰거머리 같은 도시 사기꾼들은 예나 지금이나 농촌의 기생충이다.

 

자동차로 접근할 수 없던 궁벽한 논골마을에 도로가 뚫리자 고즈넉한 풍경을 사마귀처럼 어지럽히는 펜션이 들어섰고 급기야 고속도로가 주말마다 농사꾼이 되는 지리학자의 애틋한 땅 상당 부분을 대뜸 집어삼키려들지만 딸깍발이는 선선히 물러선다. 20년 주말을 거의 빠지지 않고 찾아와 봄에 땅을 갈아 씨를 뿌리며 다가오는 산새와 풍락 인파를 번갈아 바라보고, 여름에 큰비로 무너지는 논둑밭둑을 수리하다 근육이 파열되며, 가을 갈무리로 뿌듯하기 전에 도둑의 손이 먼저 다녀간 논밭을 허탈하게 마주하면서도 별이 쏟아지는 밤에 많은 책을 읽고 사색을 잠길 수 있었다. 주중에 강의와 연구로 바쁘게 보내다 주말이면 논골마을까지 찾아오는 손님을 맞으며 시골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두 아들이 군과 대학을 마치자 어느새 정년을 맞은 지리학자는 주저없이 주민등록을 홍천강변으로 바꾸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농부가 된 거다. 한데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이면 찾아갈 수 있게 된 논골마을은 수도권의 교외가 되고 있다. 복선이 된 경춘선이 수도권전철과 연결된 이후 수도권 시민들이 번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한 게 아닌가. 20년 전보다 훨씬 더러워진 홍천강이 언제까지 안녕할 수 있을까. 고즈넉한 정취 안에서 이마에 땀 흘리며 논밭을 일구는 기쁨, 별이 쏟아지는 밤에 접어 두었던 책을 펼쳐 읽는 호사는 도예를 전공하고 은퇴한 부인과 함께하려는 지리학자의 여생 내내 행복하게 이어질 수 있을까.

 

최영준의 책을 두세 권 읽고 그가 인천 출신이라는 걸 알았다. 논골마을을 불쑥 찾아가 무조건 고맙다 인사하고 밤새 이야기 나누고 싶은 16년 선배인 그 딸깍발이 지리학자. 하지만 찾아갈 자격이 내겐 없을 것 같다. 초면에 어색하기 때문이 아니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을 읽은 뒤, 자신에게 정직하고 땅에 충직한 태도로 시골에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탓이다. ‘주경야독말이 아름답지 실상은 지칠 수 없는 땀과 동반하지 않던가. 조용히 책을 읽으며 원고를 다듬고, 햇살 맑을 때 이따금 텃밭을 일구는 그림은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에서 보인 최영준의 자세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내공 부족한 도시의 서생이 섣불리 도전할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골마을을 찾아갈 엄두를 감히 내지 못하지만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을 덮으며 딸깍발이 지리학자의 여생이 내내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그의 행복한 시골살이는 그이 뿐 아니라 도시 후배의 몸과 마음의 안정을 안내하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인천in, 20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