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6. 10. 12. 00:10

추석에 승용차로 고향에 가는 이유

 

추석연휴가 끝났다. 이제 일상이다. 고속도로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다시 텅 빌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고속도로는 지나치다. 미국과 같이 국가도 바둑판처럼 가로와 세로로 놓은 고속도로가 많다고 여기는데,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바둑판 식 고속도로는 생태계 파괴 요인이고 과잉이다. 실제 산허리를 뚫고 골짜기를 메운 고속도로를 평일 달려보자. 앞뒤에 한 대의 자동차도 한동안 보이지 않는 구간이 미안할 정도로 많다.


명절 일부 구간에 극도로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고향에 다녀온 분들, 자동차 안에서 어지간히 지루한 게 아니었을 텐데, 가족과 같이 가는 게 아니라면 대중교통을 선택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달프더라도 굳이 승용차를 몰고 가야할 이유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 부모님이 도시의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재배해 놓고 정성스레 싸놓은 여러 농작물을 트렁크 가득 싣고 와야 하므로.


힘겹게 농사지어 벌어들인 돈으로, 돈이 모자라면 소를 팔거나 땅을 줄이면서 공부하라고 자식들을 도시로 보낸 부모는 이제 농사지을 힘이 부족하다. 도시에 직장을 잡은 자식들이 보내는 돈으로 그럭저럭 살지만 그렇다고 농사를 손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명절에 찾아올 자식들에게 농작물을 내주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다. 고향에 땅과 부모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제 자식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먹을 농작물이기에 백화점처럼 포장이 요란하지 않아도 온갖 정성이 담겼다.


고향의 부모는 늙어가고 농촌은 점점 위축된다. 빈집이 늘어나고 농토가 줄어든다. 농토를 메워 공장을 짓는 걸 바라는 지주는 대도시에 산다. 자식을 대학에 보내느라 땅을 판 부모가 물려받은 고향의 땅에서 여전히 농사를 지어도 그 땅의 임자는 따로 있다. 농사짓다 홀로된 늙은 농부는 살갑던 이가 보이지 않는 농촌을 떠나게 된다. 도시의 자식네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더 나이가 들면 자식들이 돈 모아서 보내는 요양원을 가게 된다.


농촌은 요즘 적막강산이다. 귀농과 귀촌하는 사람이 낳은 아기가 농촌에 웃음을 선사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농촌이 허전해지는 현상에 비해 무척 드물다. 명절이 아니라면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손주들이 어른이 되어 찾을 고향은 어디일까? 부모의 고향? 옥수수와 수수를 구별하지 못하는 도시 어린이들은 부모 따라 시골 다녀오는 일이 그리 흔쾌하지 않을 텐데, 도시의 손주들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손주들은 시골이나 고향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중국의 경제는 농민공의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경기가 주춤하자 그들은 낙향했다. 낙향할 고향이 있으므로. 낙향할 고향이 없는 도시의 노동자는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자 목숨을 끊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불행이다. 고향, 농사짓는 분이 남은 시골은 도시의 비빌언덕이다. 고향이 우리 손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비빌언덕의 위축을 막아야 한다.


농촌과 농민, 그리고 농사가 건강해야 한다. 이른바 삼농이다. 삼농이 건강해야 명절마다 승용차로 막히는 고속도로를 기는 자식들이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다. (살림이야기, 2016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