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4. 16. 00:23
 

겨우내 얼었던 논에 개구리가 울고, 올챙이가 어느덧 자라 다리를 내밀 때가 되면 천수답의 물웅덩이 주변에 온갖 생물이 모여든다. 한여름을 앞두고 짝짓기가 활발하고 꽃들은 나비와 벌을 유혹한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미꾸라지 잡으러 논둑으로 몰려나갔다. 모내기를 마친 논에 먹이가 줄어들면 논고랑에 버글대던 미꾸라지들이 어디론가 숨어들기 때문이다.

 

미꾸라지 잡는 건 쉬웠다. 작은 족대로 논둑 옆 고랑을 막고, 저만치서 첨벙대며 맨발로 몰아 족대를 들어올리면 됐다. 조무래기들도 쭈그러진 양은주전자로 하나 가득 잡을 수 있었다. 그날 어머니는 추어탕을 끓여주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잡아들여 어머니는 여간 귀찮아 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때 먹은 추어탕 맛이 기억나지 않을까. 요즘 들깨와 산초 듬뿍 넣고 푹 끓여 내놓는 체인점의 껄쭉한 맛에 길이 든 탓이겠다.

 

어떤 때는 족대 없이 잡았다. 논둑에 엎드려 숨죽이다 고무신으로 별안간 집어넣으며 진흙 바닥을 훑으면 고무신 코 안에 한두 마리 들어가곤 했다. 맨손도 가능했다. 바지 걷고 들어가 흙탕물이 잠잠해질 즈음 손을 냅다 들이밀고 움켜쥐곤 했는데, 그땐 손가락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놈과 한바탕 씨름을 해야 했다. 다잡은 미꾸라지를 놓친 우리야 약이 올랐지만 작은 손을 빠져나간 녀석은 목숨을 건졌다. 그렇게 빠져나간 녀석이 있어 논고랑에는 미꾸라지가 넘쳤고 하늘은 파랬다.

 

얼마나 미끄러우면 미꾸라지라 했을까. 조무래기 손가락 사이를 보기 좋게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는 어른들의 억센 손도 용케 빠져나간다. 대학원에 가서 알았지만 학자들은 그 부분을 골질판이라고 하는데, 조금 아프더라도 아가미 속의 갈퀴 같은 골질판을 눌러 쥐어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골질판이 잡힌 녀석은 경악과 공포의 연속이었겠지.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보리쌀도 다 떨어져가던 계절, 머릿니와 버짐으로 덮인 우리에게 논고랑의 미꾸라지는 간절한 육식이었으니 양해했으려나. 그땐 사람만 먹겠다고 논에 화학비료에 살충제와 제초제는 뿌리지 않았으므로.

 

개중에 미꾸리도 있었을 테지만 우리는 암갈색에 거무튀튀한 무늬가 지저분하게 배열된 녀석들을 통틀어 미꾸라지라 했다. 미꾸리는 분류학적으로 미꾸라지와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사는 곳도 같아 전문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렵다. 입 주변 5쌍의 수염이 미꾸라지보다 짧고 비늘도 작으며 몸이 날씬한 편이라지만 그 정도로 부정확하다. 성능 좋은 돋보기로 옆줄의 비늘을 세어 150개가 넘으면 미꾸리, 모자라면 미꾸라지라고 전문가는 판정할 것이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창자호흡을 한다. 그래서 항문으로 공기방울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을 보고 ‘밑이 구리다’ 했고, 그래서 미꾸리가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창자호흡에 많이 의존하는 모양이다.

 

동의보감에서 ‘믿구리’라 하는 미꾸라지 종류는 단백질은 물론 비타민A와 칼슘이 많고 미끈미끈한 점액에 콘드로이친황산이 있어 노화를 막아준다고 한다. 피부의 탄력을 보전할 뿐 아니라 호흡기를 비롯한 내장에 생기를 넣어준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포함된 고급 불포화지방산은 고혈압과 동맥경화에 도움을 주어 비만으로 인한 질환을 막아준다는 게 아닌가. 중국의 의학서적인 본초강목이 “속을 덥히고 숙취를 해소하며 스태미나를 보한다.”고 전하는 미꾸라지는 농번기에 지친 가난한 농부에게 몇 안 되는 보양식이었다.

 

두부와 같이 육수에 넣고 불을 댕기면 미꾸라지들은 두부 속으로 몽땅 들어가고, 그때 고추장과 된장과 갖은 양념, 그리고 숙주, 파, 시래기들을 잔뜩 넣어 푹 끓이면 구수한 추어탕이 후각을 자극한다. 한데 높은 인기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찾는 고객보다 식당이 더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에 불이 붙었고, 미꾸라지 수입은 더욱 늘어나더니, 아뿔싸, 양식 장어에 이어 중국에서 수입하는 미꾸라지에도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된 게 아닌가. 영세 양식장에서 수입한 까닭이라지만, 어쩌면 자업자득인지 모른다. 논고랑에서 미꾸라지를 내쫓은데 따른 인과응보인지 모른다.

 

같은 기름종개 과에 속하는 종개 종류와 달리 진흙 바닥만 고집하는 미꾸라지는 15센티미터 내외의 몸을 탁한 물속에 숨긴다. 고인 물이 지저분해 보이는 하천이나 연못에 살면서 수온이 맞지 않으면 진흙 속에 들어가 꼼짝 안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미꾸라지에 빚지고 산다. 추어탕이 아니다. 이른 여름부터 3급수에서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를 먹어치울 뿐 아니라 축사에서 내려온 유기물질을 처리하고, 오염된 하천을 더욱 지저분하게 하는 해캄을 뜯어 하천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옛이야기다. 맹독성 농약으로 격감한 미꾸라지를 치명적으로 만든 건 이기적 개발이었다. 강둑과 바닥이 콘크리트로 싸바르자 미꾸라지는 하천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같은 양식 기간 동안 길이가 4배, 몸무게 25배 이상 자라는 이른바 ‘슈퍼미꾸라지’가 개발되었다고 1997년 언론은 열광했다. 유전자 조작으로 분리한 성장호르몬을 알에 이식해 250그램까지 성장하는 가물치 크기의 미꾸라지를 세상에 내놓은 연구진은 장차 식용으로 판매할 시대를 조심스레 예고했는데, 당시 언론은 식량증산 가능성의 예로 보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생태계 교란을 염려한 연구진은 불임처리한 후 양식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주장하는데,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환경과 인체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하며 시중 판매는 물론 연구도 반대한다. 그런데, 슈퍼미꾸라지는 과연 식량증산을 약속할까.

 

25배 커진 슈퍼미꾸라지는 사료를 25배 이상 먹고 조작된 유전자를 배설할 것이므로 25배 이상 관리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불임처리와 관계없이 생태계로 빠져나간 슈퍼미꾸라지는 자신의 조작된 유전자를 생태계에 퍼뜨릴 수 있다. 유전자의 수평이동으로 토종 미꾸라지가 커지고, 가물치와 배스나 블루길 같은 외래 어종마저 커지면 고유 생태계는 어찌될 것인가. 유전자 조작한 연어를 ‘생물 시한폭탄’으로 규정하는 시민단체의 걱정처럼 슈퍼미꾸라지는 25배 이상 생태계와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할 가능성을 지울 수 없다.

 

모내기 전후, 농부들의 체력보강에 없어서 안 되었던 미꾸라지가 논고랑을 다시 찾아오게 우리가 배려할 때다. 슈퍼미꾸라지의 퇴출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수입보다 국내 양식이 바람직하겠지만, 사료와 항생제가 투입되는 양식은 결코 생태적이지 않다. 고유 미꾸라지가 우리 하천과 논고랑을 지킬 때 사람도 건강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가 논고랑에서 첨벙대던 시절, 하늘이 파랬던 것처럼.

수퍼미꾸라지까지 나온다니 참으로 무서운 세상입니다. 갯벌에서 먹을 것이 지천인 변산에서 미꾸라지는 쳐다보지도 않았지요. 갯것이 안나오는 남원 같은 내륙 산간지대에서나 미꾸라지를 식용으로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태계의 모든 동물을 먹이로 하는 인간이 그것도 모자라 수퍼미꾸라지라니... 식량이 모자라는 춘궁기에는 좀 굶어가면서 사는 것이 정상이라는 도시농업의 안철환 선생의 말씀이 와닿습니다.
너무 길긴 하지만 슈퍼미꾸라지가 나오는걸 보니 세상이 많이 변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