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6. 22. 11:33

    자신에게 엄격했던 최성일

 

나는 최성일과 얼마나 가까웠을까. 무심한 세월은 벌써 1년을 훌쩍 지나가게 했건만, 부평가족묘지 만월당을 다시 찾지 못했다. 볕이 유난히 뜨거웠던 작년 여름, 최성일이 안치된 그곳, 집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마음 편히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을 내지 못했다. 진정 바빴기 때문일까. 더러 그랬지만, 기실 마음을 내지 못했던 게다. 떠나는 날까지 외로움을 자초하며 살아왔던 그는 자신의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까지 나를 포함한 몇 명은 기억하고 있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온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독일에 있었다. 자세한 보도가 나와 알고는 있어도 현장에서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핵발전소를 모두 끄자는 합의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애를 쓴 이들의 육성을 듣고자 자비를 털어서 간 일행에 끼어 있었다. 운하로 사용하고자 150년 전 직선으로 만든 강이 시시때때로 범람하자 이제와 범람원을 만들고 강을 곡선으로 바꾸느라 땀 흘리는 현장을 방문하고자 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 ‘4대강 사업의 부당성에 확신을 더하고, 귀국해 더욱 단단한 신념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긴 거다. 그 사이, 최성일은 병실에 남아 있길 바랐건만, 하필 그때, 그는 세상을 떴다.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하던 그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 예선이 한창이던,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벌어지던 2010617일 목요일이었다. 둘째 주 수요일마다 갖는 아침대화300회 이상 진행한 새얼문화재단에서 그 시간, 18국악의 밤행사를 인천예술문화회관에서 열었다. 초대권이 있기에, 입시지옥에 다가가는 고2 막내와 객석에 앉았는데, 3시간 정도 지나 객석을 등 떠밀려 빠져나가다 최성일을 만났다. 행사 뒤 리셉션을 마다한 우리는 막내를 먼저 보내고, 근처 찻집에서 평소 즐기지 않는 커피를 모처럼 홀짝이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차분하게, 뇌종양이 재발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나이로 마흔넷. 만으로 고작 42세에 뇌종양이라니. 자신의 일을 제대로 알고 한창 몰두할 시기가 아닌가. 현 정권이 들어서자 광고주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발행을 멈춘 계간지 환경과생명의 편집위원을 한때 함께 했던 그는 문득, 그야 말로 문득, 뇌에 종양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그때가 2004. 마치 남의 일처럼, 악성이라고, 수술해야 한다고, 전두엽을 뭉텅 잘라내야 할 거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두뇌노동을 하는 평론가에게, 게다가 30대 후반에 지나지 않은 나이에 뇌종양이라니. 놀란 눈을 크게 뜬 우리가 오히려 민망할 만큼 차분했던 그는 6년 후 재발했을 때에도 그랬다.


서울대학교 병원이므로 아무 일 없을 거라 믿었다. 그리 믿을 구석이 있었다. 최성일과 또래인 환경과생명사의 직원도 비슷한 부위를 수술한 적 있다고 귀띔했기 때문이었다. 군대 시절, 수술에 익숙하지 않은 군의관의 과감한 절개로 부작용을 염려했지만 여태 큰일은 없었고, 말이 약간 어눌해진 것 말고 정신노동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최성일을 안심시키지 않았던가. 그때보다 시설이 훨씬 개선되었을 뿐 아니라, 집도 의사는 명실상부한 서울대학교 교수다. 전처럼 무식하게 전두엽을 잘라내지 않을 테지. 수술 후 일상생활은 물론 평론에도 아무 문제가 없을 테지, 다짐에 가까운 확신을 나누며 최성일이 남은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최성일은 역시, 아무 탈 없이 퇴원했고 원고도 문제없이 써나갔다. 그 사이 막내 인해가 태어났고 야무지게 똑똑한 서해는 초등학교에 진학했다. 집도 조금 넓은 곳으로 옮겨, 가득 쌓인 책장을 모로 돌아다녀야 하는 고충에서 조금은 헤어날 수 있게 되었다. 스토커를 자칭하던 최성일답게, 새로 출판된 내 책을 여전히 평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슬그머니 자만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군대에서 뇌종양 수술했던 이가 여전히 건강하므로 최성일도 당연히 건강하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할 하등의 이유를 찾지 않았다.


2005년 환경과생명사에서 시민에게 권하는 환경책 100권을 선정하고, 그 책들의 서평을 나누어 쓸 때 몰랐는데, 그 서평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쓰던 최성일이 어려서부터 과학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미 그는 많은 과학자와 그들이 펴낸 책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뇌종양이 재발돼 희미한 기억도 거의 남지 않았을 때, 최성일을 아끼는 출판인이 묶은 서평집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는 그의 과학관을 잘 보여준다. 과학자에게 필요한 인문학의 소양, 그리고 인문학도가 가져야 할 과학철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최성일은 기업이나 국가에 종속된 과학, 이윤이나 패권을 위해 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과학자를 혐오했던 게 틀림없다.


기억에서 떠나게 내버릴 수 없다

늘 웃으며 대화하는 최성일은 사실 삶과 글이 치열했다. 그러니 책읽기라고 수월했을 리 없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지식인을 용납하지 않았다. 권력이라도 잡은 듯 거들먹거리는 인문학주의자도 그의 붓 끝에서 예외가 없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책이라도 서평에 응하지 않았지만, 언급할 있이 있다면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그의 글에 주례사 같은 구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여느 평론가에서 느낄 수 없는 내공이 담겨 있는데, 내공은 철저한 고독과 고통의 산물이었을지 모른다. 늘 웃어도 내면의 고통을 품었기에 서평은 엄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말과 행동에 흔들림이 없었고, 늘 외로웠다.


막 태어난 아기처럼 최성일이 누워있을 때, 집안을 달팽이 껍질처럼 휘감는 책에 치여 살던 그의 아내는 병원에서 공책 한 권을 보여주었다. 최성일은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냉정한 의견과 서지 내용을 빼곡하게 적은데 그치지 않았다. 그 책을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구했고, 가격이 얼마였는지 밝힌 메모 사이에 영수증이 질서정연하게 붙어 있었다. 오탈자까지 지적한 꼼꼼함과 어렵게 구한 책에 얽힌 고마움도 가지런히 적어 놓았다. 남편의 빈틈없는 삶을 존중해온 부인은 그리 꼼꼼하니 뇌가 견딜 수 없었을지 모른다 했다. 과학자의 길을 걸어도 분명했을 그는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여유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이에게 한없이 친절했지만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던 거였다.


최성일을 이해하고 가끔 마음 터놓던 사람들이 병실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남편을 들여다볼 때마다 반쪽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안타까워하는 부인이 보는 앞에서, 기억난다는 듯 2-3초 정도 상체를 일으키며 반가운 표정 짓던 그가 이승의 모든 의식을 뇌리에서 아예 치워냈을 때였다. 6인 병실의 한쪽에서 저자 대신 출판기념회에 모인 사람들의 사인이 담긴 책을 최성일의 가슴에 올려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최성일을 남겨두고 나오면서 그의 이름이 책으로 남아 있다는 걸 다행이라 여겼는데, 그것도 잠시. 그럼 뭐하나. 사랑하는 남편이, 따뜻한 아빠가, 소중한 후배가 다시 웃으며 다가오지 못하는데.


종양세포가 늘면서 커지는 뇌압을 줄이는 주사약으로 보름달처럼 커졌어도,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은 하얗기 그지없었는데, 다시 일어난다면 주문에 응하듯 쏟아내는 내 글을 뭐라고 평할까. 세상을 뜨기 전에 선배의 의무감처럼 병실을 몇 차례 찾아갔지만 적당히 타협하며 뭐 하나 치열하지 않은 삶을 사는 처지에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세속적 걱정은 가라앉지 않는다. 최성일과 일면식도 없으면서 굳이 인천까지 찾아온 출판인들이 장례식장에서 덕담을 주고받았을 텐데, 악화되고 가라앉는 남편을 차분하지만 안타깝게 바라보는 부인과 아직 아빠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하는 8살 막내, 그리고 자기 앞가림이 분명한 서해의 내일은 누가 어떻게 끌어주어야 할까.


     다행일까. 최성일이 떠나고 다시 출간한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 서점에 여태 진열돼 있다. 전자책 시장이 다가왔어도 종이책이 머리에 오래 남는다고 생각하는 독자층은 아직 많다. 그들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과 같이 엄격하고 친절한 안내를 반긴다. 하지만 세월은 흐를 테고, 최성일도 기억 속에서 조금씩 지워지겠지. 하지만 나는 그 대열에 낄 수 없다. 책이 나오면 맨 먼저 들고 가 전해주고 싶고, 글을 쓰며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염두에 두는 나에게 최성일은 되돌아보게 하던 후배인데, 기억에서 떠나게 내버릴 수 없다. 72일 기일이 오기 전에 다시 만월당을 찾아가야겠다. 엄격할 일이 이제 없는 최성일을 잠시라도 외롭지 않게. (기획회의 322, 2012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