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2. 1. 08:50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거기는 우리의 고향이다. 거기에 엄마소를 닮은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칡소가 살았다. 칡소? 칡을 먹여 키웠나? 1930년대 이전에 10마리 중 한 마리였다는 칡소는 지금은 보존이 필요해질 정도로 매우 희귀해졌다.

 

우리가 쉽사리 생각하던 얼룩송아지는 어린 젖소다. 젖소에도 당연히 수컷이 있고, 종우로 간택되는 행운을 건지든 그렇지 못해 태어나자마자 고기용으로 팔려나가든, 그 수컷도 대비되는 희고 검은 무늬가 두드러진다. 한데 정지용의 ‘향수’에서 해설피 우는 얼룩빼기 황소는 우유 생산용 홀스타인 품종의 젖소 수컷이 아니다. 몸에 칡을 감은 듯 거무튀튀한 호랑이 무늬가 세로로 얼룩거린다. 그래서 칡소이며 호반우(虎斑牛)다.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1920년대 정지용의 기억에 뿌리내린 얼룩빼기 황소와 1916년에 태어난 박목월이 1930년대 노래한 얼룩송아지는 우리의 고향인 농촌을 상징한다. 칡소가 몹시 드물어졌다는 건 우리가 자신의 고향에 대한 관심을 그만큼 잃었다는 의미다.

 

가을걷이 마치고 볏짚은 물론이고 쌀겨와 콩깍지, 가끔 식욕 당기게 하려 고구마 순이나 무청을 잘 말려 보관하던 시절, 고향의 소는 오랜 살림 밑천이었는데, 우골탑이 농촌 공동체를 무너뜨리면서 소는 한낱 음식 재료가 되고 말았다. 우시장에서 들여온 비쩍 마른 수송아지를 밭이랑 갈고 써레질 도맡을 수 있을 만큼 듬직하게 살찌웠을 즈음, 맏상제 학자금으로 잘 키운 소 팔아넘겨야 했던 우리네 농군의 가슴은 미어졌을지 모른다. 그래서 당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했다. 고향을 발전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우골탑을 졸업한 청년이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에 최첨단 과학농산을 도입하면서 적막해진 농촌은 돈 앞에 무력해졌다. 이윽고 얼룩송아지를 어린 젖소라 생각하게 되었고.

 

전국에 몇 마리 남아 있지 않은 칡소는 호랑이 무늬가 어색하지 않게 용맹할 뿐 아니라 힘이 장사라서 소싸움에서 진가를 발휘하지만 사람에게 더 없이 온순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창원에서 열린 ‘전국 민속 소싸움 대회’에서 우승한 6살 칠성이가 바로 칡소 아닌가. 한우보다 사나워 사료를 먼저 차지하지만 초기 성장속도는 느린 칡소는 20개월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몸집이 불어나 800킬로그램 이상 나가는데, 육질이 좋고 고기 맛이 빼어나 수라상에 오를 정도라고 사육농가는 힘을 준다. 칡소에 대한 자부심이겠으나 비육 경제성에 한계도 있다. 번식은 빠르지만 사육 기간이 길어 사료값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칡소는 한우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니 보급이 쉽지 않은 것이다. 희귀하다 못해 차라리 멸종 위기인 칡소의 보존과 보급은 차원이 달라야 한다.

 

칡소를 모르는 육유 종사자에 의해 잡종 취급받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소연하는 10여 칡소 농가들은 ‘전통칡한우협의체’를 꾸려 보존과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 전국에 300두 남짓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와 동의보감에 기록돼 있으며 서기 357년 축조된 평양 소재 고구려 16대 고국원왕 안학3호분 벽화에 흑우와 황우 사이에 등장하는 칡소는 왜 자취를 감춘 것일까. 고구려 이전부터 일제 강점기 초기에도 두루 사육했던 칡소가 갑자기 사라진 연유는 삽살개가 자취를 감춘 까닭과 비슷할지 모른다. 어쩌면 삽살개보다 더욱 철저했을 수 있다. 화우(和牛)의 개량을 위해 흑우와 함께 칡소를 반출했다는 기록이 일본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일제가 물러간 이후에도 칡소는 정부에 의해 잡종 취급을 받았다. 1960년대 황우 단일화 정책으로 칡소의 씨를 말렸다는 게 아닌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강원도 영월, 정선, 태백과 같은 오지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칡소가 이제 토종의 존재로 인식돼 보급되기 시작한 데에는 고집스레 칡소를 사육해온 농가의 힘겨운 노력이 기반이었으며 그와 더불어 유전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축산위생연구소의 공로가 크다 하겠다. 그 연구소의 품질인증서 덕분에 고급 한우에 필적하는 가격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개체수가 적은만큼 유전자원이 절대 부족한 칡소의 안정된 보전을 위한다면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수정란을 이용한 인공증식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런 짝짓기를 유도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우울하다. 과학을 앞세우는 축산업은 칡소를 고급 한우 이상의 비육우로 품종을 개량해 보급하려 들기 때문이다.

 

볏짚과 고구마 순이 쇠죽이 되고 쇠똥이 거름이 되던 시절, 학교 다녀온 아이들이 방죽으로 몰고나가야 했던 소는 우리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나 경운기와 콤바인이 보급된 이후, 오늘의 소는 다음 세대를 스스로 이을 권리마저 빼앗겼다. 출산하자마자 한 방울의 우유도 제 새끼에 줄 수 없는 젖소와 달리 고기용 소는 젖니가 빠질 20개월 무렵이면 일제히 도살되지 않던가. 송아지에 성장호르몬을 주사하는 사람은 되새김질을 불가능하게 하는 옥수수와 콩을 먹일 뿐 아니라 심지어 먼저 죽은 소의 내장과 뼈까지 강제로 넘기게 했다. 그래서 소와 그 쇠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광우병이 거푸 발생했지만 과학이 진두지휘하는 축산업은 도무지 관성을 버리지 않는다. 떼죽나무를 구부린 코뚜레 대신 번호표를 귀에 다는 요즘, 소는 차라리 ‘숨 쉬는 햄버거’라고 한 시인은 탄식한다.

 

이중섭의 역동적인 그림에 숱하게 나타나는 칡소를 기억하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2008년 11월 16일 “쇠잔등의 파리를 쫓아주는 마음을 담아” 제14회 풀꽃상 본상을 칡소에 드리면서 칡소의 명맥을 잇느라 10년 이상 애써온 젊은 농부에게 그 부상을 전했다. “소가 풀을 뜯는 세상이 참세상”이라고 주장하는 환경단체답게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수천 년에 걸친 농경문화를 함께 일궈온 소를 오직 식용으로 취급하며 동물사료를 먹이는 만행을 저지른데 반성하면서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회원과 되새긴다. 2009 기축(己丑)년은 소띠의 해다. 이제라도 칡소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전원생활, 200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