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3. 1. 02:32

 

지구온난화는 34온마저 몰아냈던가. 예년에 없던 맹추위가 물러선 2월에도 북태평양과 시베리아 기단이 밀고 밀리며 교대하던 34온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1월 추위를 벌충하려는 듯, 설 지나자마자 3월 초 꽃샘추위가 심술부리기 전까지 포근한 겨울이 지속되었는데, 동창생들은 부고장을 돌렸다. 긴장이 풀리자 면역력이 떨어진 어르신이 후손에게 바통을 넘기는 마지막 행차인가.

 

폭우를 예고한 2월 마지막 주말, ‘333프로젝트의 인천과 부천 팀이 낙동강 일부 지역을 다녀왔다. ‘운하 반대 교수모임이 주관하는 333프로젝트는 333대의 버스로 ‘4대강 사업구간을 답사하는 시민행동이다. 상류의 일부 지역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대형보가 흐름을 차단하는 구간은 철저하게 파괴되는 4대 강을 전국에서 1만 명이 체험토록 배려한 뒤 보전의 가치를 스스로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333프로젝트는 지난 226일을 계기로 5000명을 돌파했다.

 

5000명 돌파하는데 기여한 일행은 시리도록 맑은 강에 감탄했고 참혹하게 변한 공사 현장에서 고통스러워했다. 한반도에 빗물이 흐른 이래 최근까지 금빛 모래를 드넓게 펼치며 굽이쳐 흘렸던 낙동강은 수심 6미터를 위한 밤낮없는 삽질로 스러져가고, 혹한에도 떠낸 모래가 마구 쌓인 강변과 인근 마을은 낙동강에 기대 살던 숱한 생명체들의 공동묘지 같았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구제역 방역약품 세례를 받아야 했는데, 많은 축사들은 을씨년스럽게 비어 있었다.

 

산비탈 잔설이 봄을 채근하자 삼천리강산은 2월말 봄비에 흥건하게 젖었다. 비가 억수 같던 날이면 간혹 매장 문화재가 경사면에서 출토되는 일이 보도되곤 하는데, 그때 전국이 지레 겁먹었다. 구제역 핑계로 살처분한 소와 돼지의 매몰지에서 새어나올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킬 가능성, 끔찍하게 부패한 사체들이 땅을 뚫고나와 하천으로 쏟아져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염려 말라는 정부의 광고가 신문 1면 하단의 비싼 지면을 차지했어도 미더워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허둥댄 정부는 참담한 결과 앞에서 남 탓하기 바쁘지 않았던가.

 

동물에 감성이 없다는 말, 이제 아무도 입에 담을 수 없게 되었다. 2011111일 경기도 이천시 일원에서 펼쳐진 돼지 생매장 현장의 동영상은 보는 이에게 견디기 어려운 충격을 안겼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왜 불편하기 짝이 없는 동영상을 공개한 걸까. 고기 게걸스레 먹는 우리에게 제발 가축의 실상을 알고 분별없는 육식 풍토를 반성하자는 데 있다고 했다. 그 영상에서 우리는 극단의 공포에 몸서리치는 돼지의 참상을 목도했다. 아비규환의 공포 속에 일그러진 돼지들은 카메라를 보며 분명하게 소리쳤다. 다음은 당신들 차례라고.

 

그런데 카메라맨이 울며 촬영한 화면에 새끼 돼지는 한 마리도 없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어떤 농민운동가는 신문 기고문에서 가족처럼 가축을 키웠다는 말, 함부로 꺼내지 말라고 일갈했다. 진정 가족처럼 키웠다면 송아지나 어린 돼지가 한 울타리에 있어야했건만 많은 생매장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 까닭은 축산업의 폭력에 있다. 눈발이 휘날리는 축사 밖으로 느닷없이 쫓겨나왔다 거친 굴삭기 삽날에 떠밀려 10미터 구덩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돼지들의 몸집은 한결같았다. 몇 마리 안 되는 종돈의 정액을 받은 모돈의 새끼, 다시 말해 자돈들로 생후 9개월이면 도살될 운명의 어린 돼지였다.

 

심리학자는 어미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동물은 그렇지 않은 동물보다 제 새끼들을 가혹하게 키운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선도한 축산업을 흔히 공장식 축산이라 말한다. 공장식 축산은 죽어라고 정액만 쏟는 종우와 종돈, 새끼들을 죽을 때까지 낳아야 하는 암소와 모돈, 그리고 젖 떼자마자 좁은 공간에 밀집 사육되다 사료 양에 비해 불어나는 몸무게가 줄어들기 직전에 일제히 도살하는 송아지와 자돈으로 나눈다. 사람으로 따지면 7살에 불과할 때 도살하지만 덩치는 어미 못지않다. 젖소도 닭도 마찬가지다. 새끼를 낳고 기르는 본성은 철두철미하게 거세한 것도 한결같다. 그런 폭력으로 챙기는 육식을 인간은 전에 없이 탐한다. 내내 편안할 수 있을까.

 

새끼 때부터 채식으로 키운 태국 어떤 사원의 호랑이는 개가 그렁대며 다가오기만 해도 슬며시 피한다고 한다. 그 호랑이는 자연에서 살 수 없을 텐데, 키우다 귀찮아 내버린 여의도 공원의 토끼들은 쓰레기봉투에서 닭 뼈다귀를 찾아먹다 닭다리를 든 아이를 공격한다고 한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타고난 습성도 달리지는 모양인데, 우리는 시방 어떤 살코기를 탐닉하는가. 굶주린 코끼리가 인도에서 사람 17명을 잡아먹은 이유를 전문가는 숲에 먹이가 남지 않은 데 있다고 주장했다. 코끼리를 그리 만든 건 결국 생태계를 남기지 않고 파괴한 사람이었다.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정부는 전국의 소와 돼지에 대한 구제역 2차 예방접종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곧 진정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내년엔 어떨까. 태어나자마자 모든 가축에 접종한다면 그 구제역 바이러스야 차단하겠지만 그 이상 치명적으로 다가올 질병에 대처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산업축산을 고집하는 한, 조류독감과 신종플루, 광우병과 O157대장균보다 치명적인 질병을 사람에게 안길 수 있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내일의 환경을 점치지 못하게 하는데, 가축의 품종과 사육하는 방식을 기계에 맞게 획일화시킨 공장식 축산은 내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게 틀림없다.

 

333프로젝트는 시민행동이다. 콘크리트로 싸바른 생명 없는 물길을 반대하고, 삼라만상이 굽이굽이 의존하는 생태공간의 회복을 위한 생명평화 운동이다. 생태계에 가장 늦게 동참한 인간도 자연에 기대지 않으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스스로 자연의 청지기라 여기는 인간도 안정된 생태계 안에서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멧돼지와 철새를 거의 쓰러뜨리지 못하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을 가축에게 무섭게 전파한 인간은 제 후손에게 어떤 내일을 물려주려 하는가. 늦기 전에 벌레 눈 멀까봐 물을 식혀 수체구멍에 조금씩 버린 조상의 소박한 삶에서 생명평화의 대안을 구해야 옳지 않을까. (정의평화위원회, 20113월보?)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2. 18. 15:37

 

우리나라 바둑의 기반을 닦은 당대의 최고수 고 조남철 국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겼다. 정계의 실력자를 포함해 만나는 이마다 어떻게 해야 바둑 실력을 높일 수 있는가묻는다면서 자신도 그 게 가장 궁금한데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면 자신의 일에 천착할수록 어려워지나 본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이어지는 이른바 ‘MB화법은 그 원리를 부정한다.

 

MB화법은 측근에 쉽게 전염되는 모양이다. 1월의 유래 없던 엄동설한이 위력을 잃자 구제역 전파가 주춤해진 2월 중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인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위 위원장 정운천 최고위원은 농사를 20년 지어봐서 아는데, 침출수는 화학적 폐기물이 아니라 유기물이므로 잘 활용하면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게 아닌가. 정치 입문 전에 키위 재배로 재미를 본 그가 죽은 가축의 침출수로 농사를 지었다는 소문은 없었다.

 

구제역에 감염된 농장은 물론이고 거기와 가깝다는 이유로 멀쩡한 상태에서 살처분된 돼지와 소들이 전국 4000군데에 매립되었다. 소는 알락사가 아니라 근육이완제로 죽인 뒤 매립했고 대부분의 돼지는 생매장했다. 그러자 썩어가는 사체가 침출수를 내놓는데 그치지 않았다. 혹한이 불리자 생매장된 돼지의 사체 내부에서 가스가 차오르며 부풀었고, 급기야 표층을 뚫으며 튀어나와 인간이 저지른 만행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50년 이래 최악의 전파속도를 보인 한국의 구제역에 대한 경계령을 세계 각국에 전했다. 50년 전에도 발굽이 두개인 가축 사이에 발생하는 구제역이 있어도 그리 무섭지 않았으니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이번 한국의 구제역을 사상 최악으로 판단한 것인데, 그도 그럴 게, 허둥대다 전국에 전파한 초동대처의 실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침출수가 식수원을 오염시킬 정도로 엉망인 매립과 그 관리, 썩어 노출된 가축을 먹자고 덤벼드는 독수리가 전파할 바이러스와 세균은 얼마나 들끓었겠는가.

 

한 국회의원은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의 양을 500밀리리터 생수병 12천만 개라고 계산했다. 그 매립지의 절반 이상이 하천과 가까운데, 해빙기 이후 흉흉하게 발생할 일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안일하기만 했다. 엄동설한에 허둥대며 매립한 돼지 300만 마리, 15만 마리, 그리고 조류독감으로 400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까지 생매장한 매립지를 해빙기에 한꺼번에 안전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1997년 대만과 2001년 영국에서 살처분된 가축이 우리보다 많았는데, 우리나라 구제역의 감염속도가 더 빨랐던 이유는 뭘까. 바이러스의 특징일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우리 농정당국의 어설픈 대처가 크게 작용했을 터. 하지만 다른 데에서 더 큰 원인을 찾아야 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가축들을 좁은 축사에 밀집시켜 사육하는 농장들이 근접해 있지 않았나. 일단 한 농장에 감염되면 순식간에 주변으로 전파될 조건이므로 끔찍한 결과를 빚었을 것이다. ‘공장식 축산의 필연적인 부작용이었다.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고 많은 가축을 난폭하게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은 가축의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한 뒤 새끼를 낳고 키우는 일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그저 종축장에서 자돈을 사와 특수 배합사료로 살을 찌울 따름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돼지는 3가지로 구별한다. 죽어라고 정액만 쏟아내는 종돈과 하염없이 임신만 거듭하는 모돈, 그리고 사육장에서 금세 몸이 불어나면 도살장으로 직행하는 자돈이 그것인데, 소와 닭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과학축산이 그리 빚었다.

 

우리는 시방 어느 지역의 역대 황제보다 잘 먹는다. 한겨울에 계란만큼 큰 딸기를 먹고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쇠고기를 언제든 즐길 수 있다. 그를 위해 화학비료를 막대하게 뿌리는 광활한 농토에 끝 간 데 없이 옥수수를 심었고, 잡초와 해충을 죽이려고 농약을 듬뿍 뿌려야 했다. 그 뿐인가. 옥수수의 유전자까지 조작했다. 그런 옥수수는 석유를 마구 들이키는 농기계를 사용해야 하고 거대한 트럭과 선박에 실려 오대양 육대주를 달려야 한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전문가는 옥수수에서 1칼로리를 얻기 위해 석유 10칼로리를 부어야 한다고 분석한다. 그런 옥수수 16킬로그램을 먹이면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는다. 돼지고기는 9킬로그램, 닭은 4킬로그램의 옥수수를 먹어야 1킬로그램의 살코기를 내준다.

 

기상이변을 연출하는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식량위기를 예고하는 요즘, 전문가들은 석유위기가 멀지 않았다고 걱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기를 지나치게 먹는다. 어린이 성인병과 젊은이의 퇴행성질환이 증가하는 원인이기도 한데, 10억 인구는 여전히 굶주린다. 가축은 넘치지만 자연의 동식물은 연실 절종된다. 지독한 역설이다. 이번 구제역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강력한 경고다. 늦기 전에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철 제고장 농산물을 유기적으로 재배해 이웃과 나누고 고기를 특별할 날에만 먹던 시절로. (야곱의우물, 2011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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