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5. 19. 22:32

 

요즘이야 조개구이 집에 가면 실컷 주문할 수 있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가리비를 쉽게 먹게 되었을까. 1995년, 일본의 환경단체의 초청으로 동북부 아오모리에 갔을 때, 그들은 해안의 양식장에서 막 건져 올린 가리비를 즉석에서 구워주었다. 인천에서 대합이라며 삶아먹던 두툼한 조개가 가장 근사하다 믿던 우리는 그때 가리비를 처음 맛보았고, 멋진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반 뼘 부채를 활짝 펼쳐놓은 듯 동글납작한 가리비의 맛보다 바구니 하나 가득 담긴 그 조개를 구우며 밤새 이야기하던 분위기가 아직 새롭다.

 

이후 우리나라 전국에 들불처럼 번진 조개구이 좌판. 지금은 바닷가 이외에 거의 사라졌지만 동네 빈터마다 천막 펼치고 판 벌렸던 당시 조개구이 집에 가리비는 찾을 수 없었다. 요즘처럼 가리비가 많아진 건, 아무래도 양식이 그만큼 활발해졌기 때문이겠지. 찾는 이가 늘자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하는 물량도 늘었다고 하니. 고급 조개임에도 희소가치가 사라지니 전날 회식에서 술이 과했던 말단사원도 후배 몫의 가리비버섯국을 흔쾌히 주문할 정도가 되었다. 웬만한 중산층도 수산시장에서 한 아름 사와 가족과 배불리 먹는데 큰 부담이 느끼지 않을 것이다.

 

가리비는 주로 동해안에서 양식한다.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수입한 기술을 동해안에 적용, 온갖 시행착오 끝에 1996년에 2천 톤에 이를 정도로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점점 줄어 2000년 말에는 2백 톤으로 크게 감소하고 말았다. 조간대에서 수심이 깊은 바다의 바닥에서 주로 플랑크톤을 먹으며 성장 번식하는 가리비에게 이따금 바다를 뒤집는 태풍이 중요한데, 조용하기만 했던 동해에서 플랑크톤이 고갈되자 기껏 뿌린 종패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식당에 싼값에 공급되는 가리비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도보순례를 위해 즐겨 찾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가리비가 길을 안내한다. 배에 실린 야곱의 시신이 스페인에 왔을 때 그의 몸을 가리비가 덮어 보호하고 있었다는 전설이 그 산티아고 길의 상징으로 간택된 것이리라. 서양 최고 미인의 상징인 비너스도 가리비에서 찬란한 몸을 드러냈듯, 가리비는 유럽에서 최고의 귀한 대접을 받은 조개였다. 지체가 높은 귀족이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가리비. 그 가리비가 사실 갯벌이 광활한 서해안에 자생한다. 무수히 많은 갯벌 속의 플랑크톤은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 밀고 썰 때마다 지천으로 일 테고, 우리 서해안의 가리비는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게다.

 

자연산 가리비와 양식 가리비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 맛으로? 글쎄, 양식이라도 따로 먹이를 주는 게 아니니 터무니없이 민감한 이가 아니라면 헷갈릴 게 틀림없다. 겉모습은 역시 다르다. 모진 세파에 부딪히는 자연산은 아무래도 사람의 보호 하에 자라는 양식과 다를 테니까. 부챗살 껍질에 따개비와 바닷말이 지저분하게 붙였다면 자연산, 깨끗하고 매끄럽다면 양식산이다. 하지만 그 것만으로 부족하다. 간혹 집에서 접시로 쓰고 싶을 만큼 깨끗한 자연산도 있고, 양식산도 지저분할 수 있지 않겠나. 그깟 그물망을 피할 따개비와 바닷말이 어디 있을쏘냐. 하지만 반드시 구별되는 건, 가리비 속의 작은 게다. 공생인지 기생인지 알 수 없지만 가리비 속살처럼 투명한 작은 게가 반드시 한두 마리 보인다. 연탄불 위의 석쇠에 올려놓으면 1분 이내에 입이 벌어지는 가리비 속의 게도 맛이 그만이라고 주당들은 너나없이 동의하는데, 그 게의 종류와 생태는 누가 연구했을까.

 

인당수의 심청이 연꽃이 아니라 가리비에서 환생했다고? 비너스 설화를 흉내낸 게 아니라고 강변하는 이가 있다. 인류문화를 전공하는 그는 바다에 빠진 심청이 어떻게 흐름이 없는 민물에 떠 있는 연꽃에서 나타날 수 있느냐는 거다. 하긴, 바다 밑에서 두 장의 껍질을 벌렸다 순식간에 딱딱 다물며 물을 제트 엔진처럼 내뿜어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가리비는 백령도 근처 인당수에도 없지 않았을 터. 실제 백령도 연해에서 가리비를 양식하기도 한다. 깊고 맑은 바다의 여신 심청은 자태가 고운 가리비를 타고 떠올라왔지만 어떤 불심 깊은 이가 연꽃으로 윤색했을 거로 짐작한다.

 

그 가리비를 잔점박이물범이 축내 양식 어민들은 볼멘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겨우내 얼음이 뒤덮이는 발해만으로 새끼를 낳으러 가는 백령도의 잔점박이물범이 그물에 걸린 까나리를 잡아먹다 식상하면 가리비도 깨먹는 모양이다. 천연기념물인 잔점박이물범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수산당국의 적절한 보상을 기대하는 건데, 1940년대 8천 마리였지만 무슨 영문인지 500여 마리만 남은 잔점박이물범의 보존과 백령도 어민과 인당수와 심청까지 생각한다면 어민들의 하소연 정도는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동해안의 양식어민과 수산 관련 연구소는 가리비 양식의 발전과 안정화를 위한 협의회를 구성하고 가리비 양식을 장차 2만 톤까지 늘릴 연구에 돌입했다고 하는데, 일본과 중국산보다 질이 뛰어난 동해안의 가리비가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흘러든 흙탕물로 폐사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미세한 흙이 떠다니다 아마미를 막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바다가 깨끗하고 플랑크톤이 풍부해야 살아갈 수 있는 가리비를 우리는 주로 구이로 먹는데 그친다. 그건 뜨겁다 입 벌리는 가리비의 거센 항의와 달리, 서양 귀족과 우리 심청도 고개를 흔들 일이다.

 

단단한 껍질을 강력하게 여닫는 가리비의 둥근 근육은 생으로 먹어도 좋지만 살짝 익혀 반으로 얇게 자른 뒤 치즈를 입혀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라고 말한다. 치즈라고? 가리비가 입을 벌릴 때 잘 드는 칼을 잽싸게 밀어 넣어 반으로 가르면 껍질을 완전히 열 수 있을 터, 그때 졸깃한 근육과 육질을 잘게 썰고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얹으면 그라탕이 완성된다고 한다. 그때 적포도주가 어울린다나 뭐라나. 그건 우리 취향이 아니라는 소주파 주당들은 소금물에 잘 닦은 가리비를 껍질 째 넣고 파 마늘과 끓여내는 가리비탕이면 행복할 따름이다. 가끔 가리비 속을 다져 갖은 양념과 버무린 회무침을 들고 나중에 팽이버섯과 끓이는 가리비버섯죽까지 먹으면 속이 든든하지 않던가.

 

깨끗한 바다의 가리비가 유혹하는 봄이 왔다. 우리 바다가 많은 플랑크톤과 더불어 내내 깨끗했으면 좋겠다.(사이언스타임즈, 201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