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6. 29. 23:09

 

날이 더워지니 하루 만보를 걸으려면 오전이 좋다. 선선한 밤이 더 좋지만, 약속이 이어지면 건너뛰기 일쑤다. 약속 없으면 보통 아침 먹고 집을 나서는데, 온라인 강의 파일을 보내면 그만인 시간강사 처지라서 오전을 활용할 수 있다. 학교 방문할 기회를 잃었어도, 그나마 다행인가?

 

할머니의 코로나19 감염이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이어졌다는 인천발 뉴스가 나왔다. 해당 학교에 검사 설비가 급히 마련되고 전교생이 검사했다고 덧붙인 기자는 당분간 온라인 수업이 이어질 거라 전했다. 할머니는 어디에서 감염되었을까? 어설픈 물건 팔기 위해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들 불러모으는 방문판매 공간일까? 지하철 인천시청역 구내의 탁구장은 장년층이 주로 이용하는데, 탁구장도 코로나19 감염 통로가 되었다. 교회와 클럽, 콜센터와 택배회사. 우리네 세상의 약한 고리에서 연실 탈이 났다. 어디가 남았을까?

 

비말이 닿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고 공원이나 거리를 걸을 때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꼭 쓰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멀쩡해 보인다. 사실 그럴 것이다. “거짓말 강사로 알려진 젊은이가 나타난 이후, 인천이 감염 핵심지역처럼 오해받기도 했는데, 이제껏 300만 인구 중 코로나19 확진자는 300명이 안 된다. 대략 만분의 일이므로 방사능 허용기준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만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릴 확률인 1밀리시버트 이하의 방사능은 안전하다는데, 코로나19의 위험성은 암보다 분명히 낮다.

 

유전자가 DNA인 바이러스보다 100만 배 가깝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RNA로 구성된 코로나19는 갑자기 나타났지만, 없던 바이러스는 아니다. 1930년대 가축에서 존재를 알았어도 의학계가 주목하지 않았다. 치명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던데, 발견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가축 사이에 무증상으로 전파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데, 사람 사이에 증상 없이 빠르게 퍼지면서 무서워졌다. 작년 겨울에 중국 무한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코로나19는 올해 봄부터 세계 모든 국가의 뉴스를 잠식하고 말았다.

 

하루 확진자가 10명 아래로 이어지면서 마음을 놓았던 시민들은 거짓말 강사 이후 확연하게 늘어나는 상황에 적잖게 당황한다. 문제의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그 젊은이는 학원에서 강의한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우리의 탁월한 추적 시스템 덕분에 발각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가? 비말이 전달될 거리에서 마스크 없이 춤을 추었기에?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거리두기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거짓말을 해 역학조사를 더디게 했고 그로 인한 감염자가 늘어서? 거리두기 연장으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져서? 그렇긴 하겠다.

 

사진: 코로나19는 사회적 약자에 더 많은 피해를 안긴다. 또한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중앙집중 체제의 허점을 여실히 증명해낸다. (출처@인터넷)

 

한데 생각해보자. 거짓말이 죄가 되는가? 십계명이 분명하게 선언했듯, 거짓말은 만악의 근원임이 틀림없다. 거짓말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어느 전직 대통령은 어릴 적 가훈이 거짓말하지 말자!”였다고 토로한 적 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거짓말탐지기의 결과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를 판별하기에 탐지기의 성능이 정교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란다.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거라고 한 전문가가 풀이했다. 우리 법에 따뜻한 구석이 있는지 그때 알았는데, 한 젊은 학원강사의 거짓말은 확산에 다소 기여했을지언정, 코로나19 발생의 원인은 아니다.

 

이태원 클럽 감염자에 외국인도 있었다. 그가 주한미군인지 모르는데, 요즘 30명을 넘나드는 확진자 중에 해외 원인은 크게 줄었다. 14일 격리를 각오하고 입국하는 해외의 방문자는 98% 가깝게 줄었다지만, 주한미군은 어떤가? 우리가 그들의 입국에 앞서 인천공항처럼 검역할 수 있는가? 그 방면에 상식이 없어 섣불리 짐작할 수 없지만, 이태원 클럽에서 퍼져나간 코로나19는 그 이전과 유전자가 약간 다르다. 10명 이하로 확진자를 줄었을 시절의 코로나19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종식되었는지 모른다. 이번 바이러스는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G그룹이라고 질병관리본부가 밝혔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게 누적 확진자가 늘어나는 유럽과 미국에서 거리두기를 완화하겠다는 발표가 잇따른다. 노인과 기저질환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코로나19 때문에 굶어죽게 생겼다는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일까? 코로나19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막힌 경제의 문을 조금씩 열겠다 의지일 텐데, 걱정이 앞선다. 입국자 증가로 항공사의 숨통은 다소 풀리겠지만 검역과 치료에 헌신하는 모든 국가의 보건 관계자 부담은 무척 늘어나겠지. 확진자 발생으로 교문 닫는 학교도 늘어날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중국 무한의 화남시장이 근원지일까? 무한의 바이러스 관련 연구소가 시발점일까? 거액의 연구비를 미국에서 받아온 그 연구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미국은 위험도가 높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연구를 다른 나라에 의뢰하거나 비밀리에 남의 나라에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무한에서 코로나19 변형을 연구했는지 모른다. 그 연구에 미국의 지원이 있었는지 역시 모르고 알 도리도 없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탄저병을 미군 주도로 연구하는지 알 도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코로나19의 원인이 중국? 미국? 박쥐? 천산갑? 역시 모르는데, 꼭 알아야 하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건 따로 있다.

 

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증상으로 감염되는가? 원래 그랬을까? 변형된 결과일까? 그런 변형이 코로나19 이외에 없을까? 감기나 독감은 어떨까? 사라졌다 믿는 사스와 메르스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데, 백신은 물론이고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는 그 바이러스는 진정 사라졌을까? 드물게 남아있지만, 변형된 뒤 증상이 가볍고 뚜렷하지 않아 모르고 지나는 건 아닐까?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킨다는 인수공통바이러스는 얼마나 되고, 무섭게 변형될 가능성은 없을까? 티베트나 툰드라 지대의 영구동토층에 인수공통바이러스는 얼마나 얼어붙어 있을까? 온난화된 지구에 다시 창궐할 가능성은 무시해도 될까?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연구는 진행되고 있는가?

 

고양이와 애완견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하는데, 문제를 일으킬 만큼 자주 발생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데, 모피를 위해 밍크를 밀집 사육하는 네덜란드의 한 축사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비위생적인 축사에서 끔찍하게 사육하는 밍크까지 감염되었다는 소식은 없는데, 비참한 사육환경은 밍크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계란과 삼계탕을 위한 양계장은 어떤가? 걸핏하면 조류독감이 창궐하는 까닭은 동물복지는커녕 비위생적으로 밀집시킨 공장식 사육과 무관하지 않은데, 잊을만하면 구제역을 창궐하게 하는 공장식 돼지 축산은 어떤가? 젖소와 고기용 소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이 바이러스 무방비지대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볼 때, 인간은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했다. 퍼져나가기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일 텐데, 도시 주변을 농촌이 감싸고 건강한 생태계가 사람 거주 지역 밖에 드넓게 펼쳐졌던 예전에는 아니 그랬다. 현재 비행기와 고속도로를 타고 퍼지는 감염성 질병은 코로나19만이 아니다. 효율을 위해 타고난 다양성을 없앤 생명 산업에 예외가 없다. 공장과 다름없는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의 수경재배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소품종으로 광활한 농토를 채우는 미국의 옥수수밭과 콩밭도, 세계 소비량을 만족시키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밭도, 마치 한 그루처럼 똑같은 세계의 바나나농장도, 재선충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소나무도 비슷하다. 유전적 다양성과 더불어 환경 적응력마저 잃었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이동해보라. 차창 밖 풍경으로 어디가 인천이고 부천이며 의정부인지 분간이 어렵다.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거리두기 못하는 사람은 코로나19를 불러들였다. 만보 왕복하면 직접 빚은 만두를 내놓는 작은 식당이 있다. 식품회사 만두와 달리 예전 맛을 기억하게 하는 식당으로 걷는 길에 가로수라도 울창하면 좋을 텐데, 여름이 깊어지기 전부터 회색도시는 뜨겁다. 얇아 숨쉬기 편한 마스크가 나왔어도 반갑지 않다. 마스크보다 책임 있는 정책이 아쉽다. (작은책, 20207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20. 5. 2. 12:12


벌써 10여 년 전인데, 구청에서 주최한 강연에 나섰더니 담당자는 강사료라며 지역 상품권을 내밀었다. 전국 규모의 대형 도소매점이 아니라면 인천 어디서든 사용 가능한 그 상품권으로 무엇을 구매할까? 전통시장의 작은 주점에서 친구와 모처럼 잔을 기울이기로 했다. 몇 순배 주거니 받거니 하다 상품권을 내미니 주인이 처음이라며 당혹해했다. 단골인 친구의 설명을 듣고 억지로 받았어도, 낯설어했다.


다시 그 주점을 찾았다. 남은 상품권을 다 쓸 요량이었는데, 주인은 반색하며 같은 상품권을 모두 받았다. 지난번 상품권을 은행이 현금으로 바로 바꿔주었다면서. 이후 비슷한 상품권을 사용할 기회는 없었는데, 인천시의 상품권 발생은 일과성이었을까? 아쉬운 건 시장에 풀린 상품권이 일회용으로 그쳤다는 점이었다. 주점 주인은 언제나 시장의 단골 가게에서 식자재를 구매할 텐데, 그 상품권을 이용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역 상품권에 대한 홍보보다 지역 상품권이 가진 가치에 대한 인식이 당시 시청이나 시민이나, 부족했을 게 틀림없었다.


인천시 동구는 코로나19로 어려움 겪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동구사랑상품권을 지급했는데, 주민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액수보다 동구에 제한된 사용범위 때문이라는데, 다른 지역처럼 인천e전자상품권을 바란다고 언론은 주민 인터뷰를 소개했다. 인천e음 카드라면 인천 모든 지역에서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액 일부를 캐시백으로 되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부에서 거액의 예산을 할애해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전국 어느 곳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그 여부는 지금 알지 못하지만, 사용 기간은 한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확실하게 진정되지 않는 코로나19가 경제생활을 어렵게 할 때 소상공인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를 돕자는 취지일 테니까. 은행권처럼 예금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어떤 계층은 당장 소비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떤 이는 명품 구매하려 다른 지역을 방문할 수 있다. 지역으로 제한한다면 어떨까? 주변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먼저 눈에 띄지 않을까? 여유 있는 이는 절박한 이웃에게 흔쾌히 지원금을 양도하지 않을까?


원활한 동영상 촬영을 위해 스마트폰을 최신형으로 얼마 전 바꿨다. 거금이었는데, 어느새 대폭 할인광고가 나온다. 머지않아 신형이 나오려나? 곧 헐값일 텐데, 은행권은 다르다. 너덜너덜하고 찢어져도 액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예금하면 가치가 늘어난다. 그래서 그런가? 5만 원 권은 금고에 잠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환이 많은 돈일수록 지역의 경제효과가 높아진다고 경제학자는 지적하는데, 이번이 제공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교환되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


100여 년 전 실비오 게젤이라는 사업가는 스탬프화폐를 고안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액면 가치가 일정 비율로 감소하기에 그만큼 수수료를 은행에 내야 하는 돈이었다. 확인 도장이 찍혀야 액면가를 인정받는 스탬프화폐를 받은 사람은 기간 내에 사용해야 했기에 유통 속도가 5배나 빨랐고, 덕분에 빈곤했던 마을에 여유가 찾아왔다고 한다.


재난지원금의 가치를 스탬프화폐처럼 줄이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일정 기간 이내에 지역에서 교환이 많을수록 혜택을 늘이는 방식이라면 어떨까? 경제학에 전문성이 없으니 예견할 능력은 없지만, 100여 년 전의 경험을 참고해보자. 재난지원금이 주민과 자영업자, 그리고 소상공인 사이에 활발하게 소통되면서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을 상당히 회복하게 이끌지 않을까? 인천e음 카드도 비슷하게 운용된다면 크게 이바지하지 않을까? 교환하며 자주 만나는 주민들은 그만큼 살가워질 텐데.


재난지원금과 달리 지역 상품권이나 지역화폐는 계속 유용할 수 있다. 은행이자와 세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지역과 국가를 넘나드는 사업가에게 불이익이 없으니 국가와 지역 재정에 별 손실이 없다. 전문가의 분석을 듣고 싶다. (기호일보, 2020.5.1.)

 
 
 

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4. 28. 16:34

 

남녘에서 훈풍이 다가오는 5월이다. 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박재란은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꽃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밀 익는 5월이면 보리내음새가 남쪽에서 불어오니 좋다고 노래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5월에 어떤 바람이 다가올까?


이 원고를 쓰는 4월 초, 전국은 21대 국회의원 선거 열기로 뜨겁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마다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는 자신을 알리려는 후보들의 약속들로 요란하다. 패딩점퍼를 치웠으니 떠들썩한 아침 시간은 피하고, 오후 한적한 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 걷는다. 코로나19 창궐이 부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부분의 약속은 연기 또는 취소되었다. 대학의 시간강의도 온라인 영상수업으로 대체했으니 훈풍 불 때 만보를 걷는다.


복수초를 이은 진달래가 한창인 계절인데, 향기가 남에서 불어올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도 한낮은 제법 덥다. 일교차가 커서 그런지, 아파트단지 구석구석에 심은 진달래는 꽃잎을 접었고, 향기를 내놓지 못한다. 며칠 전 뉴스는 관측 이래 가장 빠르게 벚꽃이 꽃봉오리를 펼쳤다고 캐스터는 걱정했다. 작년보다 일주일 빨랐다는데, 양지바른 곳의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린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한바탕 바람이 불면 올 벚꽃도 어김없이 엔딩을 맞겠지. 내년이 궁금한데, 활짝 펼친 수선화 노란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조팝나무 하얀 꽃들이 앙상한 꽃대들을 도드라지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수선화와 조팝나무는 5월에 만개하는데, 이런! 5월의 여신, 라일락이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


며칠 전, 베란다 앞뜰의 매화에 부리를 밀어넣던 직박구리는 짝을 지었던데, 어디에 둥지를 쳤을까? 하수종말처리장 처리수가 흐르는 승기천의 가장자리는 이맘때 버드나무들이 연둣빛인데, 얼마 전 번잡스레 짝을 찾던 까치들은 집을 지었을까? 작년 가을 구청에서 가지를 친 가로수들은 잔가지를 볼썽사납게 잃었다. 가로수가 펼칠 잎사귀 수가 크게 줄어들 테니, 까치는 새끼에게 먹일 벌레를 가로수에서 찾기 어렵겠지. 매화나무가 잎사귀를 펼치지 않았어도 개나리는 어느새 초록 잎을 선보인다. 그래도 노란 꽃잎을 많이 남겼는데, 그 아래 영산홍이 붉은 꽃봉오리를 열기 시작했다. 5월은 아직 멀었건만, 뒤죽박죽이다.


반듯반듯 아파트단지로 채워놓은 동네에서 자연을 음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프리미엄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재개발을 타진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나? 완공 30년이 지난 신도시에 조경수목의 뿌리는 활착했고, 코로나19를 무릅쓰고 봄은 찾아왔다. 여기저기 볼 게 많아 봄이라던데, 평일에도 인파가 모이는 벚꽃길을 피해 빠르게 걷는다. 마감 전에 원고 넘겨야 맘 편하기 때문인데,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얇은 점퍼를 벗고 교차로에 접어드니, 같은 옷을 입은 무리가 귀를 자극하는 스피커 장단에 몸을 맡긴다. 이윽고 트럭 단상에 오른 후보는 공약을 쏟아낸다. 이크! 길을 잘못 들었다.


마스크 쓰고 교차로를 점령한 선거운동원들과 거리두기하며 빠져나가는 일은 순조롭지 않다.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고막을 울리는 약속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전문성 있고 힘을 가진 자신으로 바꾸자는 말, 능력자인 자신이 이 지역을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말, 이러저러한 경험과 성과가 눈부신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말들이 허공을 가르며 흩어진다. 누군가 국회의원 선거를 대의제 민주주의의 축제의 장이라 했던가? 하지만 거리의 목소리들은 대의제를 진정성 있게 인식하지 못한다. 한결같이 자신이 적임자라고 거품을 무는 후보들은 개발과 경제성장을 외친다.


내가 도로를 놓았다! 무슨 소리냐? 그 도로는 지난 지방정부가 놓은 게 아닌가! 뭐라고? 알지 못하면 가만히 있어야지! 그때 여차여차해서 어렵사리 예산을 따왔고 굼뜬 지방정부를 움직이게 만든 게 누군데! 사과하지 않으면 고발할 테다! 발전의 기초를 쌓았고 성과를 낸 건 나잖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야! 나야 나! 그깟 도로? ! GTX노선을 놓을 거라고! 교육이면 교육. 경제면 경제, 낙후된 곳을 현대화할 적임자는 힘 있고 능력 있는 나라고! 발전, 상생, 행복, 복지, 명품도시를 만들 거라고!



사진: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될 해안의 도시를 상상한 그림.(출처는 인터넷) 콘크리트 일색인 도시는 생태적 완충력을 상실했고 기후위기와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이 되었다.


4년 전 거리에도 비슷비슷한 공약이 난무했다. 반복되므로, 4년 전은 거짓말을 했나? 이번 공약이 이루어진다면 4년 뒤에 어떤 공약이 쏟아질까? 실상 언제든 어느 지역이든, 공약은 엇비슷하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출마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나라 밖의 사정도 대략 비슷하리라. 누가 도로를 놓았나? 국회의원은 분명히 아니다. 개막식이 아니라면 현장에 국회의원은 없었다. 도로를 놓았으므로 시민이 행복해졌나? 도로를 놓기 전에 시민과 필요성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알려고 하지 않겠지.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왕을 선발하지 않는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의원을 뽑는다. 기원전 6세기 이솝은 왕을 보내달라 기도하는 개구리 우화를 썼다. 하늘에서 나무토막을 보내자 무시했다. 그러자 황새를 보냈다. 황새는 규칙을 제 마음대로 정하고 어기는 개구리를 잡아먹었다. 유권자는 개구리이고 황새는 국회의원인가? 민의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이건만 선출 이후의 행태를 보자니, 자신이 왕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선거운동할 때 잠깐 엎어져 절하며 표를 구걸하지만, 당선되기만 해봐라. 비켜! 난 왕이야!


여당 실세였던 자, 실력자 계파의 일원이 될 자는 국회의원감인가? 선망받는 대학 출신에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의 어떤 일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면 국회의원 자격을 득하는가? 어떤 권능을 노리고 출마하려는지 모르지만, 국회의원은 행정가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법과 제도를 만들거나 정비한다. 국회의원의 소임은 예산 끌어오기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대의원이다. 주권은 유권자가 가진다. 입법에 앞서, 주권자의 의견을 먼저 묻고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논의하는 자세가 대의원의 마땅한 덕목이다.


코로나19는 왜 요사이 만연한 걸까? 개발과 발전이 모자라기 때문일까? 밑도 끝도 없는 신기루, 선진국을 향해 GNP 상승과 경제성장으로 매진한 지금, 우리는 전례 없이 발전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다. 시방 코로나19 수렁에 빠진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모자란다고? 우리는 선조가 꿈꿀 수 없는 돈과 물건을 쌓아두고 허우적거린다. 석유위기와 기후변화의 혹독한 상황을 마주할 후손은 발전의 과실을 맛볼 수 있을까? 코로나바이러스는 없었던 존재가 아니다. 하필 이때 창궐해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는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강력하게 경고한다. 개발 공약에 정신 팔린 후보는 그 경고를 듣지 못한다. 목소리 큰 후보일수록 경각심은 무디다.


작은책5월호가 독자 손에 들어갈 때, 어떤 후보가 당선되었을까? 서울로 빨리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를 놓겠다는 후보일까? 그는 어떤 바람을 일으킬까? 모든 후보가 비슷한 공약을 남발했으니 지역의 정체성은 무시되고 후손의 삶은 더욱 어두워지겠군.


시민 대부분이 거리두기의 피로를 이겨내면서 코로나19도 진정될 것이다. 하지만 발전과 성장을 위해 생태계를 짓밟고 파괴하는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변화돼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바이러스뿐이겠는가? 뒤죽박죽인 계절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경고는 더욱 무서워질 텐데, 작년 지구촌은 겪어본 적 없는 기상이변으로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5월이 왔다. 어떤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올까? (작은책, 2020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