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2. 14. 11:26

 

깊어지는 겨울, 섭씨 23도에 맞춘 아파트 실내는 따뜻하다. 딱 한번 입은 내복은 몇 년째 장롱에서 나오지 못한다.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바깥으로 나갈 일이 있어도 내복은 기피한다. 아파트와 지하철과 도시의 모든 건물들이 따뜻하니 더위를 참지 못하는 몸은 어느새 땀으로 젖는 까닭이다. 땀에 젖은 채 밖에 나가면 공연히 신종플루 의심받을 감기에 걸릴지 모르니 내복 없이 잠시 떠는 게 낫다. 올겨울 들어 기온이 가장 차갑다는 오늘, 지금 이 시간, 맨발에 얇은 옷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우리의 주택은 거대한 인큐베이터다. 주택만이 아니다. 냉난방 자동 조절되는 자동차와 사무공간과 쇼핑센터로 이어지는 도시가 인큐베이터다. 바깥의 환경이 어떻든 도시는 시민들을 안락하게 양육하고 인큐베이터에 길들여진 시민들은 자연에 노출되기를 극도로 꺼린다. 인큐베이터는 거대한 기술이 지배하고, 거대한 기술일수록 에너지의 집약적 소비는 필수다. 인큐베이터에 길든 시민들은 바깥세상의 변화에 무감각하다. 지구온난화, 석유자원 고갈은 남의 일이다. 기술을 살 돈이 충분하다면 걱정할 게 없다.

 

인큐베이터에 길든 몸은 대비 없이 바깥환경에 노출되면 속수무책이 된다. 온도와 습도와 물과 사료가 자동 조절되는 양계장에 전기가 끊어지거나 우박으로 지붕이 찢어지면 닭들은 몰살하고 만다. 밀폐된 축사도 마찬가지다. 기계장치가 불시에 고장나면 목장주는 커다란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긴 외투에 부츠와 장갑도 모자라 모자에 목도리로 온몸을 칭칭 감은 도시의 아이들은 찬바람에 조금만 노출돼도 감기에 걸린다. 논술 과외 받지 않으면 독후감도 쓸 줄 모르는 학생과 컴퓨터 없이 한 줄의 원고도 작성할 수 없는 먹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12월 11일부터 3일 동안 서울 광화문 광장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색적인 운동경기로 북적였다. 높은 언덕을 뚝딱 만들고 그 위에 인공눈을 푹신하게 뿌려 ‘2009 스노우 잼’이라는 이름의 스노보드 대화를 개최한 거다. 외국인 5만 명을 포함해 25만이 넘는 관광객이 운집한 상태에서 세계 각국의 취재기자가 몰려와 서울과 광화문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리라고 담당자는 자랑했다고 우리 언론은 보도한다.

 

추운 날씨에 의자도 없이 모여든 시민들은 이색적인 경기에 호기심이 작동했을 테고, 도심 한복판에서 기량을 뽐낸 선수들은 상기될 수 있었지만 많은 이는 교통이 뒤엉키는 도심에서 시민 동의를 구하지 않고 거대한 국제행사를 느닷없이 진행하는 서울시의 태도에 불만을 제기했다. 한데 막대한 돈과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기술이 개입하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는 호화판 잔치였다는 걸 지적한 목소리는 없었다.

 

지금 덴마크 코펜하겐은 세계 105개 국가의 고위관료와 시민단체가 모인 가운데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열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합의를 강하게 희망하지만 개발된 국가와 개발하려는 국가 사이의 의견이 워낙에 첨예하게 대립해 합의가 순조로울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에 시민단체는 공허한 논의보다 행동에 나서줄 것을 각국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고 외신은 전한다.

 

온실가스는 대부분 인간의 기술이 배출한 오염물질이다. 그 때문에 더워진 지구에서 우리 후손은 건강할 수 없다. 우리는 선조가 물려준 상태로 환경을 회복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 당장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한데, 가장 확실한 행동은 삶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일부에서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거나 차단하려는 기술을 언급하지만 기술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 우리 정부의 주장처럼, 성장이 희생되지 않는 범위로 한정한다면 온실가스는 감축될 리 없다.

 

온난화를 극복한 지구를 후대에 넘겨주려면 우리는 길들어진 인큐베이터에서 서둘러 빠져나갈 궁리부터 해야 한다. 물이 꽁꽁 얼어붙는 방에서 옷 껴입고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요즘세상, 2009.12.?)

지난 주 갑자기 추워진 관악산에서 추위에 떨면서 컵라면을 먹던 생각이 나는군요. 인간이 무척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