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5. 9. 1. 14:25
 


《시민과학자로 살다》, 타까기 진자부로오 지음, 김원식 옮김, 녹색평론사 2000년



《시민과학자로 살다》를 쓴 타까기 진자부로오는 이공계 지성인이다. 리영희 선생은 이 사회에서 진정 필요한 존재는 지식인보다 행동하는 지성인이라고 말하는데, 사회가 갈망하는 지성인은 인문계에 비해 이공계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를 저질러 놓고 뉘우쳤던 노벨이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만이 아니다. 문제를 인식한 대부분의 이공계 연구자는 패권주의에 무릎 꿇거나 가치중립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버린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타까기 진자부로오는 자연스레 이공계를 지망했다. “일본은 과학 측면에서도 미영(美英)에 패했다” 또는 “과학이 낳은 원자폭탄으로 일본은 망했다”라는 당시의 신화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과학’이라는 관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핵화학을 전공한 타까기 진자부로오는 1960년대 대학시절, 양심의 정언명령을 학습한다. ‘안보투쟁’을 남들처럼 참여할 때였다. 시위 중에 숨진 학생을 놓고 과학의 가치중립을 들먹이면서 침묵하거나 냉소로 일관하는 교수들의 태도에 분개하면서도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기억이 깊은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원자력 사업’에 취직했지만 오래갈 수 없었다. 핵시대의 연금술로 자화자찬했던 플루토늄의 ‘위험한 마성(魔性)’을 집요하게 연구하려하자, 핵발전소 장사를 계획하던 상사는 회사에서 필요한 일이 아니라며 ‘옆으로 나란히’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잠재했던 양심은 보장된 직장과 안정된 대학교수 자리를 거푸 걷어차게 만들고 말았다.

 

불도저 같은 국가권력 앞에 나리따 공항 부지의 농토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원성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국가권력의 거대 시스템에 속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던 타까기 진자부로오는 농민운동가이자 문인이었던 마야자와 켄지의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을 우리의 과학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고뇌를 읽고 정신을 환기한다. 그 길로 대학교수를 그만둔 그는 시민과학자의 고난의 길을 자청했다.

 

원자력자료정보실을 창설 운영하면서 타까기 진자부로오는 아찔했던 1973년의 미하마 핵발전소 사건의 전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후 1979년 미국 드리마일 핵발전소 노심 용융 사고,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직시했고, 수많은 반핵 비정부기구의 전문가와 참여하는 시민으로 정렬을 쏟았다.

 

플루토늄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리고 시민 처지에서 활동한 공적을 인정받아 흔히 대안 노벨 평화상이라 일컫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1997년에 수상한 타까기 진자부로오는 무리한 탓에 대장암에 이어 간암 수술을 자초했지만, 죽음을 예감하는 가운데 ‘체념에서 희망으로’ 나가자고 힘주어 말한다. ‘과학의 비무장화’를 주장하는 이공계 지성인답게 시민과학자 양성하기 위한 타까기 학교를 창설한다.

 

언제 어디서나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교만떠는 인간은 사실 과학기술 도움 없이는 한시도 아무 데에도 살 수 없다. 생태계 도움 없이 인간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타까기 진자부로오는 고민 끝에 생태주의를 이야기한다. 《시민과학자로 살다》, 유혹을 기다리는 예비 과학자의 필독서이길 바란다. (발간 예정 서평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