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9. 24. 18:39

    주차권 거래는 어떨까

 

갯벌, 그리고 그 갯벌과 인접한 농어촌을 밀어내거나 매립한 인천시 연수구 일원의 아파트단지는 5층과 20층 내외의 아파트로 점철돼 있다. 5층은 연약 지반인 매립 갯벌 위에, 20층 가까운 고층은 육지에 세웠다. 한데 한결같이 성냥갑 같다. 전문가들이 판상형이라고 하는 아파트 건물을 직사각형으로 이어 세우고, 그 가운데 공간을 지하가 딸린 주차장으로 만든 연수구의 한 아파트단지는 최근 어린이 놀이터 한 군데를 없앴다. 빼곡한 이중 주차로 몸살을 앓던 어른들이 어린이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바꾼 것이다.


저녁 시간에서 조금만 늦어도 직사각형 주차장 내에 차 세울 곳이 없어 다른 주차장을 전전해야 했던 주민들은 이후 그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을까. 그런 거 같지 않다. 200여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차장이 잠시 숨통을 트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기껏 30여 대 더 세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고 원활해지지 않는다. 그 정도 차는 금방 늘어난다. 아침이면 이중 주차한 이웃의 차를 밀어내는 광경은 여전히 반복되지 않던가. 늦게 들어오면 직사각형 주차 공간들을 돌아다녀야 하지만, 어린이 놀이터가 있든 없든, 자신의 차는 단지 내에 세웠고 차를 더 구입하려는 유혹을 떨칠 수 있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놀이터에 통 나오지 못한다. 후미진 곳에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어린이 놀이터에 복장과 행동이 예사롭지 않은 청소년들이 방과 후 시간에 진을 치기 때문만이 아니다. 학교 다녀오자마자 가방 바꿔들고 학원을 전전해야하는 까닭인데, 그런다고 놀이터를 아주 외면하는 건 아니다. 학원가방 내팽기고 밧줄타기하다 엄마 손에 끌려가는 광경을 이따금 본다. 접근이 편리하고 키 큰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며 평상과 의자가 그늘에 배치된 어린이 놀이터는 아기를 데리고 나온 아낙들의 수다 공간으로 활용된다. 없어진 연수구의 어린이 놀이터가 그랬다. 깔린 모래도 깨끗했다.


놀이터 주변의 잣나무에 가을이면 청설모가 다가오고, 제주도 곶자왈에 어울릴 법한 삼광조가 날아온 적 있는 녹지 속의 어린이 놀이터, 그 놀이터는 시커먼 아스팔트로 뒤덮였다. 그래서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숨이 턱턱 막혔다. 삼광조는 언감생심. 청설모의 접근도 차단하는 새 주차장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 데리고 나온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발길을 끊었고 동네 아낙의 수다를 멈추게 했다. 어둑해지면 모여들어 작당을 하던 청소년들도 통 불 수 없다. 입시학원에 개근할 것 같지 않은 그들도 이웃이다. 그렇게 이웃을 몰아낸 주차장, 과연 합리적 대안이었을까.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 특히 독일은 주차장 바닥에 잔디를 깐다. 잔디밭에 차를 두는 게 아니다. 주차장 바닥용 벽돌에 적당한 구멍을 만들어 거기에 잔디를 심는데,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배기가스를 잘 흡수하는 나무를 주차장에 충분히 심고 나무 사이에 두 대 또는 석 대의 자동차를 두게 한다. 1972년 올림픽을 치룬 뮌헨 종합운동장의 주차장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주차장이 아니라 도시 속의 숲 같다. 사무공간이나 공장의 주차장도 마찬가진데,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태양 발전용 패널을 덮고 차는 그 그늘 아래 두는 경우가 늘어난다. 어떤 방식이든 도시는 그만큼 시원해지고 차도 쾌적할 것이다.


자동차는 많고 세울 공간이 아무리 좁아도, 우리 도시의 아파트 단지들은 자동차가 늘기만 한다. 가구 당 한 대 꼴로 주차장을 만든 아파트의 주민들은 주차 스트레스를 날마다 겪어야 한다. 새로 지어 여유 있던 아파트도 머지않아 주차 공간이 모자랄 수 있다. 그만큼 자동차 수는 주차장을 압도한다. 한데 가구의 아파트 관리비는 자동차 대 수와 관계가 없다. 어쩌다 온 삼광조 말고, 직박구리가 모이고 청설모가 다가오던 어린이 놀이터가 사라져 아쉽든 아니든, 관리비는 같다.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와 경노당, 이용자가 적은 테니스장을 모두 주차장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략 한 세대 전, 미국의 한 인구학자가 인구를 줄이기 위한 출산권 거래를 제안했다고 한다. 인구가 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출산권을 배정하고, 더 낳고 싶은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의 출산권을 구입하자는 경제학적 발상인데,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만일 공권력의 도움으로 실행했다면 배운 자, 부자들의 인구만 늘어났을 것이다. 출산권 거래 제안은 사람 생명을 거래 대상으로 여긴다는 거부감으로 실패했는지 모르는데, 요즘 탄소 배출권 거래는 국제적으로 적극 시도된다. 지구온난화 억제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효과는 의심스러운데, 배출하는 탄소가 많은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탄소 배출권을 구입하며 재정을 지원하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억제하는 취지라고 한다. 하지만 환경운동 진영의 비판은 거세다.


주차면 수를 늘리기 어려운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주차권 거래를 제안하면 어떨까. 자동차가 없거나 한 대 뿐인 가구는 여러 대를 보유하는 가구 때문에 차를 제대로 둘 수 없으니 약 오를 터. 총 주차 면수를 가구 수로 나눈 숫자만큼 기본 주차권을 개별 가구에 제공하면 어떨까. 차 더 세우고자 하는 가구는 이웃의 남는 주차권을 구입해 해결하자는 거다. 그렇다면 아파트 단지는 허용된 주차면 이상의 자동차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시민들에게 덜 미안할 것이다. 승용차보다 대중교통 이용이 지구온난화와 환경에 피해를 덜 준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될 이웃도 늘어날 것 같다.


     주차권 거래에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경쟁 원리가 도입된다면 주차권은 탄소 배출권처럼 거래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 부담스러운 가구는 차를 줄이려 할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에 자전거 전용 시설을 늘릴 수 있다. 기본 주차권은 줄어들 테고, 주차권 가격이 더 오르면 자전거 이용객이 늘지 않을까. 자전거로 등하교와 출퇴근이 이루어지고 시장과 관공서를 오가는 주민이 늘어나면 새로운 민원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지방자치단체는 자전거를 위한 행정에 적극 나설 것이다. 도시는 그만큼 쾌적하고 시원해지며 시민의 건강은 호전될 것이다. 비로소 눈을 마주하는 이웃은 서로 친해지며, 삶을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시민이 늘 것이다. 사회는 더욱 공평하고 지속가능해질 텐데. (작은책, 2012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