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4. 4. 25. 10:45


 나이 들면 눈물샘도 마른다는데, 열흘이 지났어도 세월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울컥 솟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운이 지독하게 나빴던 그 젊디젊은 생명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고 운이 좋아 건강하게 자란 내 집의 아이들에게 고맙기 그지없다. 자신의 잘잘못과 아무 관계없이, 앞으로 하루하루가 안전할지 자신할 수 없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은 예측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이 만든 선박과 교량과 건물과 핵발전소만이 아니다. 지금은 자연의 흐름도 예측 가능하지 않다. 이를 어쩌나.


세월호 사고는 아무리 생각하도 어처구니없다. 비슷한 사고가 도대체 몇 번인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장비나 매뉴얼은 진작 마련해놓았지만 번번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고나 재해를 바라보는 시각에 근원적 변화가 없는 이유는 뭘까. 물에 내보내는 부모의 마음으로 선박을 관리 운영해야 할 선사는 왜 비슷한 사고를 반복할까? 탐욕이다. 통제해야 할 기관도 비슷하다. 이익의 독점을 추구하든 권력 획득이나 유지를 추동하든, 자연의 결을 파괴한 탐욕 때문이다. 자연을 버린 우리는 재난을 자초했다.


핵발전소의 관리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이는 안전시설과 장비를 설치 운영하고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면 전기요금은 무척 내려갈 수 있다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전에 주장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으로 늘어놓은 주장을 그는 요즘도 계속하고 있을까? 은퇴 후 핵발전소 관련 업체에서 일한다면 바뀌지 않았을지 모른다. 기술로 재난을 극복할 것으로 여전히 세뇌되었기 때문이리라. 위험한 합리화가 아닐 수 없다.


백화점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불이 난다면 사람들은 허겁지겁 비상구를 찾을 텐데, 거기에는 물건이 잔뜩 쌓여있다. 지금 도심의 여느 다중이용 건물은 아니 그런가? 사람들이 모로 다녀야 할 정도로 통로에 물건을 내놓은 지하상가는 어떤가?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처럼 독가스 테러가 있거나, 누전으로 2003년 대구 지하철처럼 불이 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기 두렵다. 재난 대비 장비는 마련되었어도 물건이 가득한 통로에서 매뉴얼은 작동되기 어려울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지역과 일본, 그리고 지구촌에 안겨주었다. 자연이 만든 리아스식 해안을 지나치게 개발하자 재난은 규모가 커졌고, 피해는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하지만 일본은 제방의 높이를 더 높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가. 영화 해운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진과 쓰나미가 없다며 갯벌을 매립하고 핵발전소를 증설하지 않던가. 지구온난화는 해수면만 상승하게 만들지 않는다. 100년 전보다 섭씨 0.7도 오른 바다는 태풍과 해일을 더욱 위협적으로 늘렸다. 자연의 결을 잃은 우리는 언제까지나 예외일 수 있을까?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오만을 전제로 세계 최악으로 밀집시키는 우리 핵발전소는 어떨까? 고리핵발전소는 징후가 흉흉해도 재가동을 허용했다. ‘세월호침몰로 온 귀와 눈이 진도 앞바다로 쏠린 틈을 노렸다. 그런 자세로 관리 운영하는데, “가만히 앉아전기를 소비해야하는 우리는 내내 안전할 수 있을까?


조력발전은 어떤가. 짓고자하는 자본과 이해관계 없는 학자들은 많은 위험 요인을 지적하건만 밀어붙이려는 사람들은 안전을 덮어놓고 장담한다. 가로림만이 태초 이래 막아주던 해일은 조력발전소가 생긴 뒤 잔잔해질까? 온난화된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후손에게 참극을 안길 가능성은 높은데, 강화도 조력발전 계획은 아직 공식 폐기되지 않았다.


단원고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다녀온 친구가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아이가 걱정한다. 누구의 무슨 기준으로 미개하든 길들어졌든,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월호 사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자연의 결을 파괴한 탐욕은 지구온난화로 이어졌는데 우리는 아직도 근원적 반성과 행동이 없다. 사고의 잘잘못과 처벌 수위를 따지는 데에서 그칠 수 없다. 충분히 잘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이 후손에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 살피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호일보, 2014.4.25.)

또 놀러올꼐용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