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08. 1. 15. 10:04

 

     실로 오랜만에 실내 집회를 지켜보았다. 뜨거운 열기를 기대하면서.

 

지금부터 13년 전, 1995년 초. 그해 3월 인천광역시로 편입될 예정이던 당시 경기도 옹진군 덕적면 서포3리 굴업도에 과학기술부에서 핵폐기물처리장을 설치하려 할 때였다. 곧 인천광역시로 갈 곳이므로 경기도는 관심을 껐고, 아직 경기도이므로 당시 인천직할시는 몰라라 할 때였다. 과학기술부는 서해의 자그마한 섬 굴업도에 핵폐기물처리장을 건설하겠다며 절차를 착착 진행했고, 덕적도의 주민과 인천시민을 중심으로 한 반대운동 진영은 적법하다 규정한 절차의 진행을 막아야 했던 절체절명의 시각이었다.

 

어디서든 한 차례만 거치면 절차상 무방했던 공청회를 과학기술부는 하필 민방위본부 지하 벙커에서 실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공고했다. 절박했던 우린 어떻게 해서라도 그 공청회를 막아야 했다. 우리 측 발제자는 공청회 중간에 거부하고 퇴장하기로 정했고, 우리는 공청회장을 사전 점거해 이른바 ‘깽판’을 놓기로 다짐했다. 그러자면 다분히 구속될 테니 점심부터 든든히 먹기로 했다. 공청회는 오후 2시. 점심을 충분히 먹은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공청회 시작 한 시간 전에 민방위본부 벙커로 향했는데, 아니 이런! 경찰이 공청회장을 가로막고 있는 아닌가.

 

공청회장을 겹겹이 둘러막은 전투경찰에게 항의하며 들어가려하자 경찰 간부가 나섰다.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집회에 모습을 드러낸 활동가를 간부가 지목하니 벌떼 같이 달려든 전투경찰이 어디론가 끌고 가는 폭력을 집행한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수첩을 거머쥔 나는 기자인 줄 착각한 경찰 덕분에 포위망을 무사통과했지만 공청회장은 이미 전투경찰과 관계 공무원으로 만원이었다. 문밖에서 아우성치던 덕적도 노인네 중 일부가 겨우 들어갈 수 있었지만 공청회 중단은커녕 방해조차 불가항력이었다. 결국 그렇게 공청회는 마무리되었다. 반대하려던 발제자들이 공청회 불인정을 선언하고 퇴장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의 행동 모의를 어떻게 알았는지, 정부는 점잔께 “우리는 반대하오!” 하며 입을 다물었던 관제 반대자를 무대 뒤에 대기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에 젖어 2008년 1월 8일 오후 2시, 태안종합문화회관에서 열린 ‘기름 유출 피해에 따른 특별법 제정 여론 수렴회’장으로 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태안에 다녀왔느냐는 질문을 인사처럼 받던 나는 한국환경사회학회 회원이다. 아직 여러 핑계로 태안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마침 한국환경사회학회에서 자원봉사 일정을 마련했고, 학회의 일원으로 2008년 1월 8일 태안으로 떠났다. 만리포와 천리포를 지나면 나타나는 큰재산 옆의 아담한 구름포 해변에 주저앉은 회원들은 기름 묻은 바위와 돌을 닦았고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한데, 마침 공청회가 열린다니 참관하러 나선 거다. 벌써 60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 인파가 다녀간 태안은 겉보기 깨끗해졌더라도 방문하긴 해야 했다. 글로 환경운동하는 생태학자의 처지에서, 태안 원유 유출에 관한 글을 쓰려면 현장을 체험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일정을 비웠던 것인데 모처럼 뜨거울 공청회장은 절대 외면할 수 없었다.

 

군포의 한 자원활동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 점심을 서둘러 먹고 한국환경사회학회 회원들은 동행한 시민단체 회원과 함께 공청회장으로 향했다. 공청회장으로 가는 길목은 과연 긴장되었다. 주차해 놓은 자동차가 유난히 길게 늘어섰고 주민들은 계속 공청회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공청회장이 가까워지니 주위가 일순 뜨겁게 보인다. 13년 전 맡았던 공기 냄새를 느꼈다. 아니, 느끼고 싶었다.

 

지역 언론은 3천명이 운집했다고 보도했다. 과연, 태안종합문화회관 뜰에 모인 주민들은 많았다. 하나 같이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둘렀고 상당수의 주민은 피켓을 들었다. 펼침막들이 공청회장 입구의 바닥에 펼쳐 있었다. 삼성의 반성과 배상을 요구하는 내용도 간간이 보였지만 대부분 조속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밀려들어가는 주민 틈에 끼어 간신히 2층에 올라, 주민들 사이에서 용케 자리를 잡았다. 17개에 이르는 대책위원회 중 ‘태안군 해안 기름 유출 비상대책 연합위원회’와 ‘서산 수협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 피해 대책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공청회의 무대 양쪽에 각 6명 씩 12명이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한 쪽이 시민단체와 어민이 주축인 질의하는 패널이고, 마주보는 6명은 대답해야 하는 패널인 셈이었다.

 

지나고 보니 태안 주민들, 참 착하다. 고분고분하다. 열기가 후끈한 공청회를 주로 경험해서 그런지 이번 공청회는 그저 미적지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야유가 터지곤 했지만 그때마다 저지하는 사회자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게 아닌가. 사회자는 심지어 “소리 지른 저 사람 내보내세요!” 행사요원에게 부탁한다. 원활한 공청회를 위해 사회자의 지시에 순응하는 태안 주민들. 이렇게 착한 주민들의 요구가 공청회를 계기로 얼마나 관철될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간혹 질문이나 답변하는 패널이 주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발언을 할 때 박수가 터지긴 했지만 열광적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뜨는 주민도 많았고 발언이 끝나야 나오는 박수는 의례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붉은 머리띠가 상징하는 분위기와 달리 뜨겁지 않은 공청회 청중의 열기. 가해자에 대해 분기탱천하는 발언을 쏟아내기보다 정부에게 생계 해결을 요구하는 공청회에서 머리띠는 ‘생존권 보장’을 요구한다. 함께 간 학회의 한 회원이 옆 자리의 청중에게 물으니, 많은 주민은 내용도 모르고 공청회장에 따라왔노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국회의원과 차기 당선을 자신하는 유력한 정당 소속의 출마 예정자, 그리고 과거에 국회의원이었던 출마 예정자는 공청회의 의제에 충실하지 않았다. 공청회를 빌어 사전 선거운동에 나섰다고 해야 정확할 성 싶다. 다분히 표를 의식하는 선동으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발언시간을 어기며 공청회 의제와 관계없는 공약을 남발하는데 사회자는 제지하지 않았고, 어떤 청중도 야유하지 않았다. 자신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주민의 온갖 민원을 들어주겠다는 총선 출마 예정자의 발언은 귀담아 들을 대목이 거의 없었고, 원칙을 건조하게 강조하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은 무책임으로 보신하는 행태를 보였다. 어떤 총선 후보자는 어처구니없게 기름 유출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삼성중공업을 두둔하기도 했다. 삼성 측의 어떤 언질이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피해의 50퍼센트를 정부에서 선보상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질문이나 그에 대한 원칙적인 답변이 오고가는 공청회는 떠밀려 온 주민이나 구름포에서 돌 닦다 온 학회회원이나 지루한 건 똑같았다. 타르를 제거하려 날마다 바다로 나가는 고깃배를 위해 면세유를 더 달라는 한 어민의 요구를 들으며 공청회장을 빠져나가 천리포수목원의 한 가옥에 마련한 ‘서해안 기름 유출 시민대책단’ 사무실을 향했다. 지역과 중앙의 환경운동연합이 주축이 된 곳에서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천리포수목원에서 ‘서해안 기름 유출 시민대책단’을 위해 빌려준 작은 한옥은 이번 사고 이후 십여 명의 활동가들이 상근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태안환경운동연합 이평주 사무국장은 정부의 미숙한 초기대응을 증언해주었다. 물론 요즘 인터넷을 달구는 음모론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의혹보다 드러난 사실을 근거로 한국환경사회학회 회원에게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태안 만리포 해안에서 8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정박 중인 홍콩 선적 허베이스피리트호(14만 6800톤 급) 측면에 삼성중공업 소속 대형 크레인이 충돌했고, 그 충격으로 단일선체 유조선 6군데에 구멍이 뚫려 원유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그때가 2007년 12월 7일 새벽 7시 15분 경이다. 그날 아침부터 해안에서 주민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악취를 맡아야 했다. 주민들은 인근의 대산공업단지를 의심했으나, 해안에서 광범위하게 다가오는 냄새에 기겁, 태안환경운동연합과 해경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초기 보도된 바와 같이, 가지고 있는 장비가 충분해 해안에 도달하기 전에 전량 제거할 수 있다고 장담했던 해경은 오일펜스를 유조선을 둘러 펼치지 않고 해안 방향으로 800미터 막는데 그쳤다. 그건 경험미숙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사안일이었다. 초기 다부지게 대응했더라면 피해를 완화시킬 수 있었건만 실패한 것이다. 그를 반영했을 테지만, 충분히 수습 가능하다던 해경의 호언과 달리 원유는 13시간 만인 오후 8시 의항리 해변에 도달했고, 한 시간 뒤 만리포와 신두리 일원을 차례로 오염시켰다. 원유가 두껍게 얹힌 바닷물은 다음날 만조를 맞아 노도와 같이 만리포 주변 16킬로미터의 해안으로 몰려들었고 일대의 모래사장과 주변 해안은 치명적으로 오염되기에 이른 것이다.

 

해경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는 늑장처리와 무사안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원유가 줄줄 새는 유조산으로 해경은 긴급 수리를 위해 선박을 출동시켰는데, 구멍 뚫린 곳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어선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결국 유조선에 꽉 찬 원유 중 구멍 위에 선적된 12500톤의 원유가 모두 새나온 후에 해경은 긴급 수리를 마쳤고, 이미 태안 해안은 돌이킬 수 없게 죽어버린 뒤였다. 바다에 펼쳐야 할 흡착포를 뒤늦게 불충분하게 지급해놓고 부착포를 바다가 아닌 기름으로 범벅이 된 해안에 뿌린 부실행정에 주민들은 더욱 화가 났다. 부착포가 해안의 추가 피해를 줄이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그랬는지, 1월 8일 공청회에서 주민들은 정부에게 시혜를 바라는 게 아니었다. 사고 초기부터 허둥거려 주민에게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안겨준 만큼,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특별법을 근거로 하는 피해 50퍼센트 선보상은 주민들의 권리라는 점을 참석한 정부 관계자에게 강조하고 있었다.

 

원유가 해안으로 밀려들 무렵 주민들은 허겁지겁 양동이와 삽, 그리고 헌옷가지, 심지어 칫솔과 숟가락을 쥐고 기름제거에 나섰지만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정부는 어떠했던가. 완비되었다며 큰소리치던 방제 매뉴얼도 없이 허둥거린 정부는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를 효과적으로 안내하는 데에도 실패했다고 이평주 사무국장은 혹평한다. 찾아오는 봉사자들에게 제공한 장비가 제때 공급되지 않았지만 그에 그치지 않았다. 식사는 물론이고 자원봉사자에게 제공할 화장실과 휴식을 위한 장소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그래왔듯, 이번에도 군인들을 동원해 급한 방제에 서둘렀지만 안전에 소홀했다. 아무리 젊더라도 독성물질을 내뿜는 원유는 호흡기와 피부에 위험했건만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병사들을 추위와 악취 속에 고된 작업에 몇 시간이나 동원한 것이다. 안보의 차원에서 원유 제거에 장병들이 나서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의 건강을 생각할 때 무척 무모했다는 지적이었다.

 

전국에서 운집한 자원봉사자의 눈물겨운 방제가 시작된 지 한 달, 어느덧 태안 해안에서 눈에 띄는 원유는 보이지 않지만 일부 지역의 악취는 여전하다. 상당히 완화되긴 했어도 바위틈에서 조금씩 새나오는 기름은 그칠 줄 모른다. “이르면 1년, 늦어도 3년 정도면 태안지역에서 기름의 완전 제거가 가능할 것”으로 추측하는 태안국립공원사무소 박기환 소장은 “기름유출 피해지역의 경우 보통 10에서 20년 정도면 생태계가 회복되지만 이번 사고는 피해지역이 워낙 넓어 얼마나 걸릴지 예측이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1995년 전라남도 여천군 소리도 앞바다에서 좌초된 시프린스호도, 1989년 알라스카의 어장을 황폐화시킨 액손발데스호도 마찬가지다. 아직 생태계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이 공통이다. 태안국립공원사무소 박기환 소장은 생태계 회복 시기를 낙관한 것일지 모른다.

 

해안의 모래를 파니 군데군데 원유 흔적이 드러난다. 원유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위틈을 누비던 갯강구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도 움텄다. 그 와중에 총알고동이 모래톱 사이에 집을 짓고 있다. 해안의 기름이 어느 정도 제거되자 생명력이 강한 총알고동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데, 아직 태안의 해안은 적막하다. 태안해안국립공원 관계자는 갯벌에 분포하던 게의 40% 정도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살아 있어도 정상일 가능성은 낮게 점친다. “상당수가 체내에 기름 속 발암물질을 축적했을 것”으로 본다. “기름 사고 후 신두리에만 갈매기가 2∼3마리 목격됐을 뿐, 더 이상 이곳에선 새를 보기 힘들다.”는 ‘푸른 태안 21’의 임효상(60) 회장은 “갈매기들이 먹이가 사라진 이곳을 다시는 찾지 않을 수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언론을 전한다.

 

기름 제거를 도와주기 위해 방한한 해외 전문가는 우리의 자원봉사 물결에 감탄하면서도 남은 기름은 자연이 해결하도록 뇌둘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경험이 많은 그들의 의견은 존중될 수 있을 것인데, 문제는 유처리제다. 눈의 띄는 기름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힌 유처리제에 의한 피해는 생물체에게 항구적이다. 생명 활동에 주요 역할을 하는 생체막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소리도 앞바다는 아직 생물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데, 태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태안 해안을 중심으로 이어졌던 주민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고, 정부는 주민들의 민주적 동의를 거친 지원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30만의 기적’이라 칭송했다던 일본의 기름유출 자원봉사 인파를 훌쩍 넘어선 우리의 따뜻한 이웃의 열의는 보는 이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평일에도 해변 한쪽을 메우듯 늘어선 관광버스,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활기찬 행렬들, 헌 옷가지로 바위와 돌을 연실 닦는 자원봉사자의 헌신적인 행동은 오염원의 제거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어떤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광화문을 메운 인파를 연상하지만 아니길 기대한다. 그땐 애국심으로 포장된 궁중심리도 강했다. 또 어떤 이는 아이엠에프 경제신탁통치 시적의 ‘금 모의기’ 열기에 비유하지만, 그 이상이길 기대한다. 이번 기름 유출을 계기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시민사회에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까닭이다. 거기에 하나 더, 대량운송이 매개해야 하는 대량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원봉사 인파의 마음에 전파되었으면 좋겠다. 기후변화의 징후가 심상치 않은 현실이므로.

 

태안종합문화회관에 참여한 주민들은 이번 사고의 보상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한결같이 지적한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펀드에서 제공하는 보상액 한도가 3000억 원에 불과해 원유 유출로 인한 예상 피해가 할당될 액수를 크게 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보상 기금을 1조 원 이상 높일 기회가 있었지만 정부가 출연금 추가를 꺼리는 선사들의 이해를 반영함에 따라 보상기금을 높일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태안 주민들은 멀고 먼 민사재판에 막연해 한다. 액손발데스호 사건이 빚은 민사소송이 20년 가까이 계속되는데, 생계를 놓고 배상을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주민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예상 피해의 절반을 먼저 정부에서 보상하고, 정부와 가해자 사이의 정산을 민사소송 이후로 연장하는 특별법으로 피해보상이 선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17대 국회가 임기를 다하고 있으니 18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우선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 되었다.

 

문제는 책임소재다. 누가 보아도 피해자와 가해자는 분명해 보이건만 보상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제까지 발생한 지구촌의 원유 유출은 대부분 유조선에 있었지만 이번은 다르기 때문이라는 거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논의로 분명한 보상안이 명명백백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인데, 그건 어디까지나 관계 전문가들의 몫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도 주민과 시민들의 의문은 남는다. 삼성중공업 소속의 대형 크레인이 풍랑이 거센 그 시간 왜 항해에 나섰고, 어째서 2대의 예인선에 의존했는가, 궁금한 것이다. 그 규모의 바지선이라면 풍랑이 거센 밤에 4대의 예인선이 끌어야 한다는 거다. 해경은 공동주파수로 경고를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다는데, 그 연유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날 인천대교 상판식을 마치고 귀환하는 중이었다던데, 혹시 그 시간 예인선과 크레인 바지선에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거 아닐까.

 

‘서해안 기름 유출 시민대책단’은 삼성중공업의 사과를 요구한다. 자원봉사 행렬은 이어지는데 가해자는 뒷짐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한다. 시민대책단의 문제 제기는 타당하지만 그 정도에서 그치면 안 된다. 근본적 고민을 생략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태안 사고는 유출된 원유의 양을 기준으로 할 때 규모가 세계 100위 권 이하라고 한다. 그 만큼 원유 유출 사고는 잦고 규모가 크다. 환경단체인 시민대책단은 원유 유출 사고가 세계적으로 빈발하는 근본 원인에 천착해야 한다. 석유 매장량의 한계가 다가오는 ‘석유피크’와 지구온난화를 비웃는 석유 과소비 문제를 상정하고, 그 대안을 태안에 자원봉사를 위해 찾아온 시민들과 고민해야 한다. 한데,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자는 인식이 부각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가능할 것인가.

 

언론은 이번 원유 유출사고로 인근 해역에 분포하는 동식물 500여 종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하면서 한국판 ‘침묵의 봄’을 예고한다. 농약오염으로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는 현상을 1960대 미국의 레이첼 카슨은 경고했는데, 태안이 그리 될 가능성을 걱정한 것이다. 생물이 사라진 태안에 봄이 찾아와도 침묵이 드리워질까. 생활고를 걱정하는 어민의 자살이 현실화된 마당에 우리는 태안의 침묵 이상 내일을 두렵게 하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걱정해야 하는데, 겨울을 여름 같이 살고 여름을 겨울처럼 사는 우리는 태안의 끔찍한 경험을 계기로 에너지 과소비를 반성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묵시론적 재앙에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한국환경기자클럽이 ‘2007년 올해의 환경인’으로 태안 해안의 자원봉사자를 선정했다. 고마운 일이다. 곧 100만을 훌쩍 넘길 자원봉사자들이 뿌듯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는 건 아무래도 아쉽다. 이번 자원봉사는 애국심이나 일시적 보람으로 머물기에 무언가 부족하다. 어떤 반성과 교훈으로 이어질 필요가 충분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과다한 에너지 소비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공유해야 원유 유출과 같은 사고는 재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7년 올해의 환경인’ 시상식장에 대표로 나온 충남 홍성군 대평초등학교 6학년 구수라 학생의 소감처럼 “작은 손길 하나하나가 더해질 때 태안 바닷가가 하루 빨리 살아날 것”으로 함께 믿지만, 태안 바닷가의 복원이 시급한 것처럼 온난화되는 지구의 상처도 미래세대의 건강을 위해 하루속히 치유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에너지 과소비를 반성하면서 돌을 닦는 자원봉사자는 얼마나 될까. 자원봉사자들에게 기후변화와 원유 유출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기회가 있다고 성과가 있는 건 아니다. 오염 현장을 일부러 찾아온 자원봉사자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인원이 자신의 삶을 반성하자는 호소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공연히 불안하다. 오늘도 태안에는 자원봉사 인원으로 넘치지만 마음이 기껍기만 한 건 아니다. 그래서 고통받는 태안에 선뜻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다. (민주노동연구소 웹진, 2008년 1월)

오랜 만에 들어왔습니다. 두달여의 입원으로 심신이 많이 지칩니다. 그래도 동요풀님 글을 읽으니 그래도 속이 좀 풀립니다.
제가 올해의 환경인 상을 받았네요. 기쁘기보다 속이 더 상할 뿐입니다.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12. 13. 15:19
 

이번에는 뿔논병아리가 스타덤에 올랐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걸프전 이후 이게 몇 년 만인가. 실로 오랜만에 시커먼 원유를 뒤집어 쓴 철새가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시 세계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20007년 12월 8월, 환경운동연합의 카메라 오디션에 통과한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뿔논병아리는 전날 아침 만리포 서북쪽 10킬로미터 해상에 정박 중인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HEBEI SPIRIT, 14만6800톤급)에서 흘러나온 원유를 엉겁결에 뒤집어썼다. 수의사이기도 한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촬영한 후 구조한 뿔논병아리를 치료하려 서둘렀지만, 원유에 포함된 독성물질이 스며들고 그로 인한 탈수현상으로 끝내 죽고 말았다고 애통해 했다.

 

머리 위의 깃이 뿔처럼 솟은 뿔논병아리는 비교적 흔한 겨울철새다. 다리가 배 뒷부분에 있어 중심 잡으며 걷기 불편해 보이지만 수면에서 유영하기 편한 체형을 가진다. 그래서 그런지, 멀리 날아오르는 경우를 제외하고 물결이 없는 호수나 바다에 떠다니다 별안간 물속으로 들어가 먹이를 잡는데, 대부분의 잠수성 조류가 그렇듯이 뿔논병아리도 물에 젖지 않도록 깃털을 관리한다. 피부 샘에서 분비하는 기름을 부리에 묻혀 깃털에 비벼 수시로 바른다. 한데 원유가 몸에 묻으면 호흡과 날갯짓이 곤란할 뿐 아니라 기름 분비가 차단된다.

 

여름이면 시베리아 남부에서 몽골 일원에서 번식하고 겨울철 한국과 일본에서 버마 일원까지 날아가는 뿔논병아리는 논병아리 무리 중 체구가 가장 커 50센티미터가 넘는다. 오리 종류와 달리 물갈퀴는 없어도 잠수에 능해 나뭇잎 닮은 발로 수심 6미터까지 들어가 30초 이상 머물며 물고기를 낚아채는 습성을 물려받았다. 그런 면에서 얼음이 없거나 얇은 천수만이나 인근의 방조제로 막힌 대호는 뿔논병아리가 겨울 지내기에 이상적인데, 왜 신두리까지 원정 나섰다 참변을 당했을까.

 

서산 간척지 인근에 위치한 천수만은 안면도가 서편에서 바람을 막아주어 물결이 잔잔하니 겨우내 쉬기 적당하고 먹을거리가 많다. 기계로 농사짓는 드넓은 간척지에 떨어진 이삭도 풍부하지 않던가. 겨울철새에게 안성맞춤이다. 귀찮은 탐조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안내인을 따라 지정된 장소에서 질서 있게 관찰한다. 다른 호수나 습지에 비해 오염 정도가 낮고 개발 현장과 멀어 겨울철새가 대거 운집하는데, 그 밀도가 지나칠 정도다. 그러니 두세 마리로 분산돼 생활하는 뿔논병아리에게 천수만은 성가실 수 있겠다. 한갓진 곳을 찾아 인적 드문 신두리로 날아왔건만 원유를 뒤집어 쓸 줄이야. 잠수하고 올라왔다가 봉변을 당했으리라.

 

1995년 전남 소리도 앞바다에서 좌초된 시프린스호는 자체 연료인 벙커C유 5천 톤을 200킬로미터의 해상에 흘렸고 12년이 지난 현재에도 소리도 부근 바다의 생태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해수면 기름을 제거하려고 살포한 유처리제가 바닥에 가라앉아 독성을 내보내는 게 원인이라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태안 앞바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심할 가능성이 높다. 유출된 양이 시프린스호의 두 배에 달하지만 그 독성은 벙커C유에 비할 수 없다. 가솔린에서 찌꺼기인 아스팔트 원료까지 포함된 원유는 벙커C유와 질적으로 다르다. 언론은 오일볼(oil ball)을 걱정한다. 끈적끈적한 원유가 다양한 크기의 오일볼(oil ball)이 되어 바다 속을 돌다 떠올라 터지면 피해 범위와 기간을 종잡을 수 없다는 거다.

 

정부는 12월 11일 오후, 피해가 확산되는 태안군 일원을 포함하여 보령, 서천, 홍성, 당진 일원의 해안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 세제와 금융은 물론 인력과 장비의 지원을 약속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텐데, 속속 도착하는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의 노력에 따라 복구 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1989년 액손발데스호가 알라스카 해안에 흘린 3만 6천 톤의 원유의 흔적도 거의 사라졌다. 호흡곤란과 어지럼증과 두통이 심하고 피부병이 발생하는 자원봉사자도 휴식을 취하고 원유 독성에 대한 치료를 병행하면 회복될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뿔논병아리도 가마우지나 괭이갈매기와 더불어 다시 태안을 찾을 것이다. 양식사업도 활기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원유 뒤집어쓰고 죽은 뿔논병아리는 사람들이 덕담처럼 말하는 복원 가능성에 위안을 구할 리 없다.

 

겨우 100년 전부터 뽑아 쓰기 시작해 50년 내에 거덜내려는 석유. 햇빛발전 전도사인 박승옥은 얼마 전에 출간한 책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살까》 그 책의 한 페이지, 10센티미터 폭에 4000년을 나눈 그래프를 그린 박승옥은 서기 2000년 전후에 잠시 치솟다 사라지는 석유 소비량을 표시하면서 의미 있는 주석을 붙였다. “석유 생성 시기까지 연장해서 그리면 왼쪽으로 17킬로미터나 더 종이가 필요”하다고. 뿔논병아리는 단지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원유 때문에 죽었을까. 눈에 드러난 현상은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그 이유뿐인가.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광적인 소비풍조 때문에 죽은 건 아닐까.

 

수면에 떠다니다 위험을 느끼면 물속으로 획 들어가고, 잠망경처럼 머리만 쏙 내밀어 주위를 살피는 뿔논병아리는 기후변화 시대에 부응했는지 한반도에 남아 둥지를 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대호에서 처음 관찰된 이후 전국 호수에서 드물게 번식 사례가 보고된다는 것이다. 반갑다 해야 할까. 지구온난화를 부추길 가스전을 개발하느라 부산한 시베리아보다 즐겨 먹는 물고기와 올챙이와 곤충의 유충이 많은 한국 호수의 갈대밭에 정착해 암수와 가족을 지키는 편이 차라리 견딜 만했을지 모른다.

 

5월 이후 물풀로 접시 모양의 둥지를 틀어 알을 네댓 개를 3에서 4주 품는 뿔논병아리는 여름철 깃이 화려하다. 머리 뒤에 분홍 깃을 멋지게 두르고 머리와 목과 사이에 진한 갈색 목도리를 감싸, 눈 주변에서 뺨과 앞가슴까지 온통 흰 겨울 깃과 구별된다. 수초를 입에 물고 구애하는 모습이 수중발레 같다는 뿔논병아리는 당분간 태안 앞바다를 외면할 것이다. 원유 세례 없어도 멋진 뿔논병아리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어떤 행동에 나서야 하나. 원인공방과 보상협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속가능해야 할 후손의 내일을 위해 지금의 낭비를 반성하고 조상이 물려준 ‘삶의 방식’을 회복해야 한다. 걸프와 알라스카에서 먼저 죽은 가마우지처럼 신두리의 뿔논병아리도 그 점을 신신당부하고 싶을 게 틀림없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