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1. 22. 03:04

 

1980년대 중반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빨간 옷 입은 여성들이 연이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봉준호 영화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2003년에 발표했지만 범인은 아직 검거되지 않았다. 경찰은 비슷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비상근무에 들어간다. 희생자의 행적을 CCTV로 확인하며 수상한 자의 접근을 살피는 건 물론이고 희생자와 동일한 교통수단을 이용한 모든 이를 검색하며 알리바이를 추적하느라 날밤을 샌다.

 

피해자와 동일한 버스를 타서 같이 내린 자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현금으로 차비를 내는 자는 제외하지만 요즘 거의 없을 터. 충전식 교통카드 사용자도 파악하기 몹시 번거로우니 뺄 수 있지만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자는 꼼짝없이 포함된다. 신용카드를 사용한 탓에 경찰에게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밝혀야할지 모른다. 횡설수설한다면 가해자로 의심받을 수 있다. 그렇듯, 편의를 도모하는 신용카드는 사용자의 행적을 누군가에게 시시때때로 노출시킨다.

 

18세기 제래미 벤담은 ‘파놉티콘’이란 개념을 제안했다. 자신이 감시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다수의 죄인을 몇 안 되는 간수가 관리할 수 있는 감옥의 구조로, 당시에 채택되지 않은 파놉티콘은 감시가 전자화된 요즘, 만개하고 있다. 신용카드가 그렇고 핸드폰이 그렇다. 회원을 가입한 뒤 특정 주제의 책을 구입하면 서점은 비슷한 주제의 책이 발간될 때마다 이메일을 보낼 것이다. 술 한 잔 뒤 얼큰해져 부른 대리운전은 대리운전회사의 평생 고객으로 즉각 등록될 것이다. 밤 10시가 되면 문자가 지겹게 전송된다. 일종의 감시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시민단체들은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을 반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당시 정부는 카드 한 장으로 온갖 일상이 간편해질 것이라는 장점을 내세웠지만 시민단체는 국가의 감시를 두려워하며 반대 목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그때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IC칩에 일상의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은행계좌와 인감, 의료보험 정보를 포함해 수십 가지의 정보를 담으려 했다. 또한 행정전산망과 연계해 사용자의 편의를 도모하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끝까지 선의를 강조했지만, 전자주민등록증이 채택되었더라면 국가권력은 개개 사용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 금전거래와 건강 여부를 시시콜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독재권력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개인의 행동과 사상을 감시 통제한다. 파놉티콘은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를 원활하게 돕는다. 김대중 당선자에 의해 공식 폐기된 전자주민등록증도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었다. 모든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등록한 경찰은 용의자의 행적을 컴퓨터 앞에서 살피며 알리바이를 캘 뿐 아니라 정치인과 사업자는 경쟁자의 행적을 파악해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보험회사는 시민의 건강 상태를 검토하고 가입을 선별할 수 있었다.

 

지난 10월 행정안전부는 전자주민등록증 다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공청회로 국민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여러 경험상 현 정권이 시민 의견을 공정하게 듣고 투명한 논의 결과를 정책에 반영할 것으로 믿기 어렵다.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표면에 성명, 생년월일, 성별, 사진, 유효기간, 발행번호와 같은 기본사항만 기재하고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처럼 민감한 정보는 보안장치가 내장된 IC칩에 암호화해 저장하므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차단할 수 있을 거로 장담했다. 하지만 그럴까.

 

현재 사용하는 플라스틱 이전의 주민등록증은 재료가 종이였다. 그 위에 두꺼운 비닐로 코팅을 한 주민등록증은 아무나 위변조할 수 있어도 누구나 그 사실을 알아챘다.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은 전문가가 위변조했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앞으로 나올 전자주민등록증은 위변조가 불가능할까. 매우 어렵겠지만 누군가가 위변조한 주민등록증은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결국 빅브라더 사이의 농간으로 시민들만 골탕 먹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 대다수 대학생들은 신용카드와 교통카드를 겸하는 학생증을 사용한다. 플라스틱 카드에 익숙한 그들은 머지않아 유비쿼터스 강의실에서 출석이 학생증으로 체크되고 수강태도가 평가될 것이다. 편의에 익숙해진 대다수 학생들은 학생증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전자주민등록증은 어떨까.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주민등록증의 IC칩에 주장처럼 주민등록번호만 들어갈까. 공청회에서 시민단체는 주민등록법 개정안 24조 2항에 의료보험과 운전면허 같은 민감한 정보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는 걸 주목했다. 전자주민등록증을 사용하는 시민들은 국가와 중앙 권력기관이라는 빅브라더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지 않을 수 있을까.

 

교통경찰이 바라보는 앞에서 횡단보도를 무단으로 건너보라. 자존심이 상한 경찰이 득달같이 다가와 “교로교통법 위반” 운운하며 주민등록증을 요구할 것이다. 마뜩치 않아도 제시해보라. 그들은 순찰차 안의 단말기에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할 거고, 잠시 후 모니터에서 경범이든 중범이든 전과기록을 찾으려 혈안이 될 것이다. 아무 것도 없더라도 눈을 위아래로 부라린 뒤, 태도가 공손하면 특별히 봐 주니 다신 무단횡단 말라고 으름장을 놓을 테고 불량하면 벌금 고지서를 발부할 것이다. 달리는 자동차가 없을 때 교통경찰이 보호해주는 길을 안심하고 건넜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소용없다.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에 익숙해지고 신용카드의 편의에 길든 시민들이 전자주민등록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면 빅브라더는 어떤 파놉티콘을 구상할 수 있을까. 1997년처럼 40가지가 넘는 개인정보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머지않아 IC칩은 DNA칩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데, 개개인의 유전정보가 고스란히 담긴 전자주민등록증이 편의를 대신하게 된 세상을 상상해보자. 어떤 장밋빛 인생이 보장될까. DNA칩이 들어간 플라스틱 전자주민등록증을 굳이 소지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잃어버리면 곤란하지 않은가.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 한 미래학자는 개인의 DNA칩을 피부에 삽입하는 장밋빛 내일을 예상했다. 은행과 병원의 컴퓨터와 연계된 DNA칩을 몸에 삽입한다면 일상이 아주 편리해질 것이라 장담했다. 톨게이트가 없어도 고속도로 통행료가 자동으로 인출되고 연인과 극장에 가도 입장권을 별도로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귀띔했다. 단말기에 삽입 부위를 가까이 대면 해결된다는 건데, 그 뿐이 아니다. 병원 옆을 지나갈 때 핸드폰 모니터에 혈압과 맥박수가 표시되면서 혈당과 알코올 수치에 맞는 약을 그때그때 처방한다는 게 아닌가. 참 끔찍하게 편리한 세상이 도래할 모양인데, 시민들은 마냥 행복할 수 있을까.

 

빅브라더는 지금도 고객이나 시민이나 용의자의 정보를 감시, 분류, 통제한다. 문제는 빅브라더가 당하는 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정보를 위변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알리바이도 함부로 창조할 수 있을 텐데, 중앙에서 집중적으로 제공되는 편의에 길든 개개인은 아무 생각이 없다. 전자주민등록증은 장차 어떤 내일을 안내할까. (작은책, 2011년 1월호)

 

행안부 작자들이 올해 8-9월에 다시 입법통과 시도한다는데 참 걱정입니다. 바퀴벌레같이 기어나오는 전자주민증을 이참에 완전 사망시켜버립시다. 영국이나 미국같은 선진국도 인권침해, 예산낭비등으로 포기한 것인데 이나라 공뭔과 관료들이란 작자들은 말이 안통하구 거짓과 기만의 달인이니 절대 주민증을 전자화하지 못하도록 무산시켜야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