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7. 12. 5. 14:23

 

     낙엽이 진 가로수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 아침, 여기저기 흩어진 낙엽이 환경미화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거리를 걸으며 애국가 3절을 읊조린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높고 구름 없는 하늘은 가을에 나타나야 하는데, 지금은 절기상 겨울이다. 물론 이른 겨울인데, 깊어가는 가을부터 이번 하늘은 파랗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는 파란 하늘이 유난히 지각했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릴 때부터 하늘은 파래왔는데, 국지성호우가 장마철을 잇더니 얼토당토아니하게 ‘가을장마’가 빗발쳤고, 이제야 파란 하늘이 연일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11월 초순이 지나 파랗게 된 하늘, 애국가 3절을 바꿀까. “겨울 하늘 공활한데…”

 

언제부터인지 파란 하늘의 가장자리를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청명한 가운데와 달리 가장자리는 붉으죽죽한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억수 같은 비가 한바탕 퍼부은 뒤 드러난 파란 하늘도 서너 시간만 지나면 이내 붉으죽죽해진다. 대기오염 물질이 금방 농축되기 때문일 텐데, 이 땅의 대기오염 물질은 그 정도로 집요하고 드세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무리 세력을 확장하더라도 오염물질을 쉽사리 밀어내지 못한다. 난방이 철저한 요즘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어릴 적 기억에 남은 코발트 빛 하늘을 몇 년 전 스페인 남부에서 보았다. 요사이 하늘도 스페인 못지않아 기쁜데, 공연히 불안하다. 기상이변이 일상사가 된 기후변화 시대에 아파트 건물 사이로 더욱 짙게 드러나는 파란 하늘이 언제까지 이어지려는지 은근히 걱정하게 된다.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버스차가 늘고 디젤 자동차에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해도 영흥도에 유연탄 화력발전 설비가 증설되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도심에 나무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중국의 황사가 대기오염 품고 일면 우리 하늘은 일순 뿌옇게 될 게 아닌가. 앞으로 황사는 계절을 가리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는 예상하는데.

 

파란 하늘을 반기며 시화방조제를 지날 때였다. 문득 차창너머 하늘을 살펴보니 왼편, 그러니까 화성은 쪽빛 그대로인데 오른편 인천의 연수구 하늘은 거무튀튀하다. 누가 연무를 뿌렸는지 아파트 단지가 시커멓다. 어라 거기 내 집이 있는데. 갑자기 목이 칼칼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이들은 괜찮을까. 아이들은 겉보기 아무렇지 않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일까. 아이의 집중력은 어떤가. 전에 비해 떨어진 건 아닐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아토피와 천식은 도시에서 훨씬 흔하다는 사실이다. 도시의 대기가 오염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아이가 자라면 어떨까.

 

누군가 말했다. 도시의 낙엽은 통 썩지 않는다고. 대기오염 때문이라기보다 살충제를 하도 뒤집어써서 그렇단다. 맞다. 행인들 머리 위로 살충제 뿜어대는 인부를 올 여름에 몇 차례 보았다. 다음날부터 큰 비가 내릴 때까지 보도블록은 빗방울 묻은 듯 한동안 얼룩져 있었다. 살충제가 끈끈했기 때문인데 나뭇잎에 눌어붙은 살충제는 가로수 낙엽이 썩는 걸 방해할 게 틀림없다. 보행자 도로를 운치 있게 덮었다 마대자루에 담겨 도로 한 구석에 쌓여있는 저 수북한 낙엽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양묘사업소에서 퇴비로 재생되기 어려운 저 가로수 낙엽, 태울 것 모자란다는 소각장으로 직행하는 건 아닐까. 정겨운 가을 운치를 오래 즐기고 싶어 바스락 부서지는 낙엽을 일부러 밟지 않았는데 잘 했다 싶다. 가루로 날린 낙엽의 살충제가 보행자의 허파로 덜 스며들었을 테니. 퇴비가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다이옥신 처리 완벽한 소각장으로 가는 게 나을 성 싶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계절,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걷는데, 파란 하늘 아래 청설모 한 마리 가로수 가지에서 부지런을 떤다. 어디에서 이 삭막한 곳까지 찾아왔을까. 청량산이나 문학산이겠지. 낙엽 떨어진 가로수 가지를 타고 넘어왔을 텐데, 기특하기도 하다.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이 땅의 하늘은 더욱 오염되는데, 언제까지 하늘이 파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저 청설모, 2008년에도 자주 만나고 싶다. (인천신문, 2007.12.7)

�요풀님 사자의이빨입니다. 제 메일이나 문자로 주소 좀 보내주십시요. 전번 책 보내실 때 적어두었던 주소를 집정리하면서 잃어버렸습니다. ^-^ humint@hanmail.net 016-855-4355

 
 
 

도시·인천

디딤돌 2006. 5. 9. 12:57
 

하루 종일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더니, 하늘이 온통 파랗다. 이른 아침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파란색은 요즘의 기억에 없는 색이다. 적어도 어른이 된 후 저렇게 파란 하늘은 없었다. 태풍이 몰아친 다음날, 장마 사이에 구름 걷힌 날, 가슴을 잠시 시원하게 했던 하늘도 이처럼 파랗지 않았다. 가운데 하늘은 제법 파래도 가장자리엔 붉은 기운이 돌았는데, 이번은 다르다. 문득 어릴 적 하늘을 기억하게 한다.


‘코발트빛 파란 색’ 우리는 파랗디 파란 하늘을 그렇게 말했다. 금속인 코발트가 어떤 물질인지 알지 못했지만 코발트빛 파란 하늘은 나른 나라에서 누릴 수 없는 우리나라의 축복이라 여겼다. 짙푸른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뭉실뭉실 떠 있는 하늘, 그림엽서에나 등장할 것 같은 하늘은 어릴 적 우리 동네에 늘 있었고, 미당 서정주의 시구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어 어릴 적 이웃은 언제나 살가웠다.


어릴 적 가슴에 그렇게 각인된 파란 하늘, 그런 하늘은 비행기로 구름 위를 오르지 않고는 요즘 우리 시야에 들어오지 못한다. 한반도를 뒤덮는 스모그 층과 그 아래 수도권을 장악한 두터운 스모그 층이 이중으로 막고 있지만 영세한 공장이 밀집해 있는 인천은 그 정도가 더하다. 스모그 발생지역이 아니던가. 김포공항에 먼저 착륙하려 거무튀튀한 스모그 층 아래로 자맥질하는 비행기를 보며 나도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 답답했는데, 그 오염 발원지인 인천에서 모처럼 만나는 파란하늘은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아니 벅차게 한다.


티 없이 맑은 파란 하늘을 올 초 스페인 남부 해안에서 만났다. “아니 저 하늘은 우리 것이었는데” 한 손으로 가려야 할 정도로 눈이 부신 스페인의 하늘은 짙푸른 바다와 하나로 이어졌고 남의 나라 하늘에 대한 질투심으로 몸을 떨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우리 하늘도 스페인 하늘에 버금갈 정도는 된다. 어릴 적 기억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아도, 가장자리에 붉은 색이 거의 사라져 충분히 눈이 부시다. 저 하늘은 언제까지 푸를까. 얼마 못 갈 텐데. 하루? 채 반나절도 견디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무표정한 익명의 주민들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스쳐가는 아파트 단지에서나마, 가슴을 모처럼 펴고 심호흡을 하자.


그림자가 보이는 걸 보아 해가 있지만 하늘은 부옇던 황사의 나날, 평택 황새울은 미군의 침략 기지를 위해 강제로 주민을 몰아내고, 수천 년을 이어왔던 새만금 갯벌은 바닷물이 차단되자 쩍쩍 갈라져 악취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오랜 터전을 잃은 갯가의 뭇 생명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다 그만 목숨을 잃었고, 사람은 먹을거리 뿐 아니라 조상이 물려준 문화와 후손의 자산마저 잃었다. 농민 몰아내 황새울을 바치면 한미자유무역협정(FTA)까지 미국 프로그램에 따르는 참 기특한 나라이므로, 미국이 우리를 토실토실하게 먹일까.


미군기지가 있었던 인천, 현재에도 갯벌을 매립하고 있고 앞으로도 매립할 것이며 과거에 숱하게 매립한 인천의 오늘은 과연 맑았나. 시민에게 묻자 인천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절반 이상이 대답했다며 인천환경운동연합은 전한다. 한결같이 환경이 엉망이기 때문이란다. 세계 최대의 공항이 인천의 바다를 매립한 자리를 차지하고, 150층 쌍둥이 빌딩이 솟아오를 전망이라 해도 시큰둥한 시민들은 환경이 좋아지면 이사 가지 않겠노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시민들의 자부심은 참여할 수 있는 지역 문화가 자랑스러울 때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하늘이 눈이 부시게 푸를 때 비로소 반가운 이웃과 애정을 나눈다.


오염물질로 금방 채워질 파란 하늘이 더없이 반갑고 아쉬울 때, 이 땅에 뿌리내려 살아가야 할 후손의 내일을 생각한다. 파랗디 파란 하늘을 거친 개발로 몸살 앓던 유럽에서 만났다는 것은 가능성을 웅변한다. 맞다. 이웃이 반가운 내일을 위해 역시 오늘이 중요하다. 참여와 행동이 함께하는 오늘이다. 그래서 인천신문의 창간에 새삼 가슴 벅차고 싶다. (인천신문, 2006년 5월 ?일,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