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10. 14. 12:07

 

백두산에서 비롯돼 낭림산과 금강산을 지나 설악산과 오대산을 거쳐 태백산에 이른 산줄기가 남서쪽 방향으로 구부러져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을 연하다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1400여 킬로미터의 백두대간은 1개의 정간과 13개의 정맥으로 분지된다. 백두대간의 서남쪽 방향으로 갈라져 대성산, 광덕산, 백운산과 국망봉을 지나 청계산, 죽엽산, 도봉산으로 이어지다 고양시의 견달산과 교하의 장명산에 이르는 한북정맥은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경계인 추가령에서 기원한다. 백두대간을 누비는 동물이 신도시 공사가 한창인 파주시 교화읍까지 내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먼 거리 여행은 홀로 떠나기 두려운 법. 둘은 좋지만 넷은 적절하지 않다. 의견이 갈리면 쪼개지기 쉬우므로. 대화가 단조로워지는 둘은 다소 쓸쓸하니 아무래도 셋이 적당하다. 의견이 잠깐 나눠지더라도 금방 함께 할 테니. 백두대간에서 정간과 정맥들을 누비는 대륙목도리담비가 그렇다. 활엽수보다 침엽수가 우거진 숲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누빌 때 으레 둘 또는 세 마리가 일행이 된다. 천적을 살필 때도, 먹잇감을 찾을 때도 언제나 몸과 마음을 맞춘다.

 

그 대륙목도리담비가 파주의 한 숲에 잠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 바람이 을씨년스러운 초저녁, 인적이 없는 산길을 타고 낡아 허물어져가는 빈집 근처까지 내려왔다 그만 일단의 농부의 눈에 띄었고, 이내 산속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솔부엉이가 부슬부슬 우는 적막한 밤, 온기가 사라진 폐가의 툇마루에 모인 농부들은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밤새 지키려고 했다. 골프장 공사를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환경영향평가서를 보니 그 산을 파헤칠 골프장은 엄청난 지하수를 퍼올릴 거고 그래도 모자라면 저수지를 고갈시킬 태세인 게 아닌가. 지금도 물이 모자라 걸핏하면 농작물이 타들어갔는데, 골프장이라니. 대책위원회를 만든 농민들은 당번을 정해 빈집에 모인 것이다.

 

산길을 잰 걸음으로 내달리다 이내 멈칫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뒤로 몇 걸음 옮기다 이내 앞으로 내달리는 모습이 얼핏 족제비 같았지만 덩치가 수달만큼 커 범상치 않았는데, 하얀 목도리를 두른 듯 어두워지는 산속에서 목과 가슴 부위가 유난히 밝았다. 이런 산골에 수달도 아니고, 대체 어떤 동물일까. 저만치에서 한 마리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한 칠팔 미터 뒤? 한 마리가 더 나타나 눈길을 주고받는데, 그 뒤를 좀 작아 보이는 한 마리가 바싹 붙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다니는 게 아닌가. 아까부터 그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던 농부가 서툰 솜씨로 비디오카메라를 잡고 초점을 맞추려는 찰라, 인기척을 느낀 녀석들은 산속으로 줄행랑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신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은 농부는 그 녀석들이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는 대륙목도리담비라는 걸 알았다. 밤에도 시력이 빼어나고 후각이 예민한 만큼 사람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지만 오래 전 인적이 끊긴 빈집이고 그 툇마루에 스킨로션 바르지 않는 농부가 앉았기에 경계심을 풀었을 것이다. 거기는 얼마 전까지 목장이었다. 담비 무리 중에서 몸이 가장 크다고 해도 60센티미터 정도인데 제아무리 날쌔고 사나워도 송아지나 소를 잡아먹을 수 없는 일. 이제 소 배설물 냄새도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 등줄쥐는 남아 있을 터. 그래서 먹을 게 드물어진 겨울, 한북정맥을 타고 까마귀와 솔부엉이 우는 파주시 법원읍 상방리의 작은 산을 기웃거리게 되었을 것이다.

 

코를 꼭짓점으로 둔 역삼각형의 머리는 윤기가 흐르는 흑갈색이고 이등변 삼각형 좌우에 제법 커다란 귀는 사방의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쫑긋거린다, 암팡진 두 눈에 살기가 서렸는데, 코를 들썩이며 드러내는 이빨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엉덩이 아래부터 30센티미터에 가까운 꼬리까지, 그리고 짧은 다리도 온통 흑갈색인데 아래턱에서 가슴을 덮은 털은 유난히 희고 어깨의 환한 노란 색은 등과 허리로 이어지며 조금씩 짙어진다. 그런 대륙목도리담비의 가죽은 수달을 사라지게 만든 포수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텐데, 고맙게도 침엽수가 우거진 설악산이나 오대산, 지리산이나 월출산, 그리고 파주시의 한탄강과 영월군의 동강 일대의 숲에서 이따금 하얀 목도리를 휘날리는 모양이다.

 

나타난다는 사실만으로 생태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생태계 보전의 필요성을 웅변하게 만드는 대륙목도리담비는 표범과 늑대가 사라진 우리 산하에서 어느새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두세 마리가 힘을 합쳐 노루와 고라니를 습격하는 녀석들의 공격성은 너구리와 오소리, 심지어 삵까지 잡아먹을 정도라니 그 포악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는데, 가을철 잣나무를 기웃거리는 청설모는 대륙목도리담비가 없어 잣농가들을 울상지게 만드는지 모른다. 1960년대만 해도 시베리아와 북만주 헤이룽강 일대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분포했던 대륙목도리담비가 드물어진 것을 전문가는 대대적인 쥐약 살포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추론하지만 사람 냄새를 극도로 혐오하는 녀석들을 요사이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아스팔트와 골프장이 아닐까.

 

가족으로 추정되는 대륙목도리담비가 나타난 작은 산은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느라고 시방 한창 파헤쳐지고 있다. 이제 대륙목도리담비는 다신 그 산줄기를 찾지 않을 텐데, 이미 골프장은 그 산의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번뜻한 자동차로 하루 수백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한북정맥은 이제 대륙목도리담비를 완벽하게 가로막았다. 세 마리가 힘을 합치면 호랑이도 물리친다는 대륙목도리담비는 이제 밭작물을 해치는 고라니와 노루, 잣나무를 터는 청설모와 다람쥐, 한타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등줄쥐를 처치하지 못한다. 온난화로 침엽수림이 올라가면서 대한민국의 산하를 외면하겠지. 그저 백두대간 너머 대륙을 떠나지 않으려 할지 모른다.

 

어둑해지는 저녁에서 어스름 밝아지려는 새벽녘, 소박한 인가 근처까지 하얀 목도리를 펄럭이며 내려오던 대륙목도리담비를 더 보고 싶다면 백두대간, 그리고 백두대관과 이어지는 정맥과 정간을 보존해야 한다. 적어도 놀이를 위해 자연의 이웃을 위협하는 태도는 정말이지 그만두어야 한다. (전원생활, 2010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