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9. 4. 5. 21:11

 

비무장지대라는 가능성

 

우리나라 산악지대에 해안이 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이 그곳으로, 일명 펀치볼이라 부르는 곳이다. 海岸이 아니라 亥安이다. 돼지가 편안하다는 의미를 가진 23제곱킬로미터 규모의 커다란 분지로 해발 1000미터를 넘나드는 산으로 둘러싸였다. 한국전쟁 때 미국 종군기자가 화채를 담는 그릇처럼 생겼다고 말해,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별칭이 붙었다는 통설이 정설로 통하는 곳이다.


지난여름, 이인영 국회의원은 방학을 맞은 일단의 대학생들과 민통선을 걷는 행사를 진행했고, 양구군 해안면 일정에 동행할 기회를 얻었다. 왼 무릎에 통증이 오더라도 돼지가 편안한 지형을 한눈에 바라보려면 가칠봉 능선에 세운 을지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넓은 분지에 펼쳐진 농경지. 과연 돼지가 편안할 듯한데, 일설은 분지에 뱀이 많았다고 한다. 먹성 좋은 잡식동물인 돼지를 풀어놓으니 뱀이 없어졌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해안면이 되었다는데, 사실 펀치볼은 격전지다. 고지를 탈환하려는 8차례의 전투는 수천 명의 사상자를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고요하다.


을지전망대에 오르려면 군 당국에 출입을 사전 신청해야 한다. 신분증을 확인한 부대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을지전망대의 관람석은 해안면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인 북녘 땅을 향한다. 군사분계선에서 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을지전망대는 1998년부터 방문이 허용된 안보교육관이다. 날씨가 흐리지 않으면 금강산 비로봉이 멀리 보이지만 숲에 포근하게 안긴 비무장지대(DMZ)를 지척으로 펼쳐진다. 지난여름만 해도 양측의 감시초소(GP)가 긴장감을 높였는데, 지금 철거되었을까?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는지, 안보교육을 담당하는 젊은 장교의 표정은 다소 여유로워보였다. 얼마 전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을 텐데, 그건 북한도 마찬가지였겠지. 겉보기 평화로운 비무장지대에 얼마나 많은 전사자 유해가 묻혔을까? 반드시 발굴해 가족 또는 후손의 품에 안겨야 한다. 얼마나 많은 불발탄과 지뢰가 숨어 있을까? 안전하게 파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관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생태계가 무너지면 안 된다.


4킬로미터의 폭, 240킬로미터의 길이로 한반도 허리를 녹색으로 감싸는 비무장지대는 북미관계 긴장도 풀려가는 요즘,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올랐다. 찾아올 평화를 저마다 그려내는 희망의 그림은 다채롭다. 그렇기에 불안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람 발길이 50년 넘게 차단되면서 찾아온 자연이 눈부신 좁은 비무장지대에 경관을 펼쳐냈는데, 성급한 기대로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가 만들어내는 설렘은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비무장지대는 자신의 경관과 생태계를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독일의 경우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은 10여 년 전 비무장지대를 다녀갔다. 책을 쓰려는 이유였는데, 비무장지대가 주제는 아니다.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변할까? 하루가 지나지 않아 뉴욕 지하철은 지하수로 가득 찰 거라 예상한 와이즈먼은 1주일이 지나면 전 세계에서 여전히 가동되던 핵발전소들이 폭발하기 시작할 거로 보았다. 저널리스트의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었다. 인간 없는 세상을 쓰면서 그는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에게 자문을 구했고 참고가 될 현장을 찾아갔다. 와이즈먼은 비무장지대의 변화를 주목했다.


설악산을 비롯한 국립공원은 사람 등쌀로 훼손된 등산로를 일정 기간 폐쇄한다. 휴식년이다. 사람의 발길이 차단된 등산로는 1년 지나지 않아 풀과 작은 나무들이 들어서면서 등산화에 밟혔던 고통을 감춘다. 3년 이상 지나면 동물의 흔적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비무장지대도 마찬가지다. 고라니와 담비는 물론이고 설악산에서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는 산양이 오늘도 무리를 짓는다. 남쪽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사향노루가 서식할 뿐 아니라 멸종했다고 믿는 아무르표범이 은둔할 거로 기대한다.


빙하가 수 킬로미터 높이로 뒤덮였던 유럽은 그렇지 않던 우리나라에 비해 출현하는 생물종이 단순하다. 식물 종류는 특히 심해서 수천 종인 우리와 달리 200종도 못된다고 생태학자는 주장한다. 그런 지역도 사람이 한동안 참견하지 않으면 생태계는 어느 정도 회복되고 보전가치는 커진다. 철도차량기지였던 베를린의 쥐트겔뢴테 자연공원이 그렇다, 2차대전 이후 방치되었던 공간에 수풀이 스며들면서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자 베를린 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의를 받으며 자연공원으로 보전하게 되었다.


철도차량기지가 자연공원으로 보전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80년대 독일 철도당국은 예전의 차량기지로 되돌리려 했지만 1987년 보전을 요구한 시민들이 자연공원을 위한 시민행동위원회를 만들어 개발에 반대했고, 개발 찬반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진이 빠지도록 벌인 뒤 보전을 결정할 수 있었다. 현재 18ha 면적의 쥐트겔뢴테 자연공원은 회복된 생태 뿐 아니라 역사도 지켰다. 2차대전의 총탄 흔적을 간직한 기관차와 물탱크를 그대로 보전하는 공원은 과거의 철도역을 공연장과 작은 박물관으로 활용한다. 산책로로 꾸민 철도를 지나다 보면 침목을 뚫고 올라온 나무들을 만나지만 특별히 보전해야 할 희귀종은 아니다. 하지만 보전에 앞장선 시민들에게 쥐트겔뢴테는 각별한 공원으로 자리잡았다.


불타버린 베를린 한복판에 나무를 심어 조성한 티어가르텐 역시 시민에게 자랑스러운 공원이다. 과거 제후의 사냥터였지만 폭격으로 잿더미였던 흔적은 완벽한 숲으로 뒤덮인 지금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복잡한 도시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시민이 일터를 빠져나와 5분 걸으면 새소리로 한적해지는 200ha 숲으로 성큼 들어설 수 있다. 숲에서 만나는 낯선 이웃에게 시민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도시의 숲은 일상에 지친 시민에게 여유와 건강을 선사하는데, 긴장감으로 찌들었던 비무장지대는 어떤 모습으로 시민 앞에 나타나려나.



사진: 비무장지대 인근 민통선, 해안면의 전경으로, 흔히 '펀치볼'로 불리는 지역이다.

 

 

의미있는 행동들로 위협받는 비무장지대 생태계

 

비무장지대는 사실 비무장이 아니었다. 군인의 침투를 삼엄하게 감시하고 키보다 높게 차단하는 철조망이 덩치 큰 동물의 이동까지 방해하는 비무장지대지만 감시초소에 근무하는 장병은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지금은 완연하게 달라졌다. 감시초소를 모두 철거하되 남북 모두 1개는 원형으로 보전하기로 합의한 이후, 비무장지대에 무기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만든 고성군의 우리 쪽 동해안 감시초소는 역사의 증거로 남기려 철거하지 않았지만 무기는 모두 철수했다. “현재 평화와 번영을 여는 상징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철거하지 않은 감시초소를 문화재로 지정할 움직임이 보이는데, 순찰까지 포기한 건 아니다. 순찰은 비무장으로 진행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3년 방문했던 북한 까칠봉의 감시초소도 비슷하다. 비무장으로 순찰하면서 원형을 보전하고 있다.


비무장이므로 안전한 건 아니다.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고 일찍이 프랑스의 문호 샤토브리앙이 설파했다지 않던가. 문명은 사람이 만드는데, 번영을 여는 상징 공간이라니. 콕 짚어 비무장지대 그 공간을 번영의 무대로 만들겠다는 주장은 아니겠지만 행정안전부가 132000억이 예산으로 225개 사업이 뒤엉킬 접경지역 종합발전계획을 내놓은 마당이기에 조바심이 인다. 수많은 규제에 묶였던 접경지역 주민들이 그간 겪은 불편을 다분히 이해하고, 이제라도 해결해야 하는 타당성을 지지하지만 비무장지대의 생태공간까지 훼손해야 하는 건 아닐 텐데, 민원을 앞세우는 개발욕구는 거침이 없으니 안심하기 어렵다. 숱한 개발이 민통선 주변 접경지대에 한정되어도 비무장지대에 영향이 없을 리 없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경기도는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한다. 오는 4월 개최할 파주 개성 간 비무장지대 평화마라톤에 2만 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기존 도로를 활용하므로 괜찮겠지? 아무렴! 괜찮아야 한다. 9월에도 행사는 이어진다, ‘DMZ 평화포럼으로, 세계적 석학 물론 예술가의 공연도 펼칠 예정인 그 행사는 다보스포럼 규모로 해마다 계속할 계획이라는데, 설마 비무장지대에 무대를 꾸미는 건 아니겠지?


김영삼 정권부터 역대 정부마다 비무장지대 안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고 제안해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비무장지대 안에 궁예도성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북측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지지한다는 증거라고 전문가는 풀이하지만, 그렇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만은 없다. 평화가 비무장지대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정말이지 다보스에 견줄 포럼이 비무장지대에서 개최되지 않길 바란다.


DMZ평화인간띠운동본부는 판문점 선언’ 1주년이 되는 427, 비무장지대 500킬로미터 구간에서 평화 염원 인간띠잇기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일제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펼친 우리가 비무장지대가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민이 나서서 평화를 촉구한 사실을 기념하고 싶은 운동본부는 대회의 구호를 꽃피는 봄날 DMZ로 소풍가자로 정했다고 한다. 강화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소풍을 올 예상 인원은 50만 명이다. 50만 명이 손에 손을 잡고 북적인다면 분단의 상징이 평화의 상징으로 벅차게 떠오르겠지만 생태계는 돌이키기 어렵게 무너지지 않을까?


4.3항쟁의 고통을 안은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모이는 50만을 결코 많은 인원이 아니라고 운동본부는 생각한다.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이 50만에서 그칠 리 없으므로. 운동본부는 뉴욕 유엔본부도 인간띠로 둘러싸면서 우리의 평화 의지를 세계에 분명히 전하려고 마음먹는다. “평화를 향한 온 시민의 절절한 외침이 갈등과 분쟁의 아픔을 겪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의 큰 감동과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하며 남북이 함께 손잡고 인류문화와 문명을 바꾸자고 역설하는데, 그런 결기에 주눅이 들었는지, 생태계 보전 이야기는 끼어들 틈이 없다.


난무하는 비무장지대 활용방안의 실행에 앞서 범정부 차원의 종합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능동적으로 선도하려는 환경부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환경부가 수동적으로 포함되더라도 정부만의 의지와 논의로 진정성 있는 보전이 가능할까? 이제까지 경험은 긍정적 기대와 거리가 멀다. 환경단체를 포함한 민간의 구속력 있는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태계 실태 조사가 먼저다

 

서울과 평양이 2032년 하계올림픽을 공동 개최하겠다며 손을 잡았다. 지난 215일 우리와 북한 정부의 최고 담당자가 스위스 로잔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로 찾아가 공식 신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갑지만, 가슴이 무작정 뛰는 건 아니다. 서울-평양올림픽을 평화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마라톤을 비롯해 철인 3종 경기와 도로 사이클 경기를 비무장지대에서 개최하겠다고 서울시가 기염을 토한 마당이 아닌가. “국내외에 평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는데, 240킬로미터를 모두 활용하는 게 아니므로 비무장지대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을 거로 제안자는 믿었나 보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자도 역사적 제안이라면서 적극 호응하니 2032년 하계올림픽 서울 평양 공동 개최는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데, 올림픽 유치가 성사되려면 유해발굴과 지뢰제거가 선행되어야겠지.


작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대통령은 비무장지대 유해 발굴 작업을 남북이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65돌인 727일을 맞아 미군 유해 55구를 송환하면서 화답했다. 백악관은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모멘텀에 고무됐다.”고 공식 반응했는데, 비무장지대에 수습되지 않은 전사자가 국군만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1월 유해 발굴에 필요한 제재 면제결정을 내렸다.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텐데, 오는 4월부터 강원도 철원군의 화살머리 고지부터 시범 발굴이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원활한 유해발굴을 위해 12m의 도로를 개설한 발굴단은 근처의 지뢰와 폭발물을 이미 제거했다. 비록 폭이 좁지만 14년 만에 남북을 잇는 도로가 개설되었다는데 정부 관계자는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기까지였다. 훼손을 걱정하는 정부와 생태학자의 목소리는 미약하기만 했다.


끼워주지 않는다고 생태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숨죽이기만 한 건 아니다. 5929종의 생물종이 은둔하는 터전이 아닌가. 산양, 사향노루, 반달가슴곰, 담비, , 하늘다람쥐 같은 멸종위기종이 101종이 비무장지대에 분포한다. 국토의 1,6%에 지나지 않아도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생물종의 22.5%, 멸종위기종의 37.8%가 분포하는 비무장지대는 여태 체계적인 생태조사를 수행할 수 없었다. 조사할 때마다 생물종 목록은 늘어날 텐데, 파악하기도 전에 사라지도록 방관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지난해 1120일 서울시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DMZ 평화협력 국제포럼1211일 국회에서 경기도 비무장지대 야생동물 건강성 진단 토론회가 환경운동가와 생태학자, 그리고 평화 관련 연구자와 활동가의 참여로 잇달아 열렸다.


비무장지대를 이제까지 보호한 어쩌면 유일한 기제였던 역설적인 존재가 지뢰다. 그런 지뢰를 토목공사처럼 비무장지대를 파헤치는 방식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치료 부위를 최소화하며 가시에 찔린 부분을 수술하듯 지뢰 하나하나 제거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컸다. “전쟁범죄의 기억, 폭력의 잔재들, 분단과 폭력의 현장에서 왜곡된 인물의 가치들, 삶의 이야기 등을 보존하면 인류가 성찰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의 땅이 될 것이라며 세계평화공원 조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예외 없었지만 그 방법은 달랐다. 사람뿐 아니라 야생동물도 보호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이다. 인간 없는 50년 만에 한반도에 가늘게 보전된 공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없으므로.


비무장지대가 그리 넓은가? 평화공원과 생태공원으로 유지하되 제한된 지역에 친환경 첨단기술로 스마트시티를 만들자면서 유엔이 목표로 하는 세계 평화와 지속 가능 이슈에 관계하는 국제기구를 유치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다수의 참여자는 근사한 제안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세렝게티 안에 도시를 만들자는 이야기라며 비무장지대의 경관과 생태계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므로 환상을 거두자는 반론이 이어졌다. 유엔기구나 스마트시티는 비무장지대를 훼손하지 않는 인근 지역에 두어도 충분하지 않나 반문하면서.


불신과 낭비를 상징하는 사상 최대의 기념비적 공사라고 워싱턴포스트지가 평가했던 평화의 댐을 보전하자는데 동의하면서 통일 직후 혼선이 있었던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우리의 사정에 맞는 보전 계획을 세우자는 뜻을 모았다. 과정에서 접경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북한과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세계적 희귀종이 서식하는 공간인 만큼 남북은 물론 세계 각국의 관련 학자와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가져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환경부는 종합보전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회의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주장했고, 환경부는 전향적인 검토를 약속했다.


우리 특성을 살리고 환경과 생태, 역사, 문화적 가치를 보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나가겠다고 약속한 통일부 장관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남북 접경지역 협력벨트로 발전시켜 나가자며 아리송한 축사를 전했다는데, 참가자들은 남북이 서로 보여주려는 듯 서둘러 감시초소를 폭파한 일에 아쉬움을 표했다. 폭파 과정에 어느 정도 생태계 교란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철거와 매립 과정에서 발생한다. 막대한 폐 콘크리트를 운송 처리하면서 환경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매립을 위해 반입하는 흙을 조심해야 한다. 흙에 묻어오는 외래 동식물과 미생물이 생태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작년 1216일 행정안전부는 비무장지대와 인근 접경지역 456킬로미터를 걷는 한국판 산티아고 길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부터 4년 동안 286억 원의 예산을 들여 강화에서 고성에 이르는 도보 여행길을 조성하면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객으로 2500억 원의 경제효과 창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야무지지만 섣부른 꿈이다.


1000년이 넘는 순례 역사를 가진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한 해에 30만 정도의 여행자가 다녀간다. 우리는 그 3배를 넘기겠단다.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럿으로 나뉘며 세계에서 모이는 순례자를 분산한다. 중간 중간에 개인 또는 지방에서 운영하는 작고 저렴한 숙박시설인 알베르게가 마련돼 있다. 우리는? 논의와 준비도 없이 100만 명? 해마다 2500억 원의 수익? 터무니없다.

 

 

사람이 문제

 

지난해 여름 대학생들과 걸은 민통선도 좋았다. 길 가장자리 수풀에 접근을 가로막는 철조망에 걸린 역삼각형 지뢰표시가 비무장지대를 걷는 내내 적절한 긴장감을 전했다. 도시에서 긴 시간 걸을 기회가 거의 없는 젊은이들은 민통선에서 마음을 열었다. 만원 지하철에서 얼굴 마주치는 중장년을 살갑게 바라보지 않지만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흘러서 그런지 거리끼지 않았다. 나무 사이를 나는 새에 관심을 보이기에 간단하게 설명해주니 금세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자신의 장래를 설계하며 어른의 조언을 청취하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감시카메라가 곳곳에서 번득이는 도시에서 마음 나눌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지 못하는 젊은이와 장년들은 모처럼 벽을 헐었다. 휘황찬란한 초고층빌딩이 즐비하고 미끈한 승용차들이 질주하는 도시라면 어림도 없었겠지.


비무장지대를 걷고 싶어도 생태계를 짓밟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껏 우리 인간은 자연의 이웃에게 온전한 터전을 남겨주지 않았는데, 비무장지대까지 파고들어야 할까? 비무장지대의 좁다란 생태계는 상처받기 쉽다. 버들가지가 그렇다. 비무장지대의 계곡 일부에 몸을 숨기는 버들가지는 참 예쁘다. 상류 계곡에 토사가 밀려들면 맑은 물속의 바위는 돌이끼를 잃고 돌이끼를 먹는 수서곤충이 사라질 것이다. 버들가지는 멸종되겠지.


1960년대 인천의 녹지에도 나타나던 하늘다람쥐는 골프장이 늘어나는 강원도에도 요즘은 모습을 감추지만 비무장지대에서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하늘다람쥐가 없어도 걷는데 지장이 없다고? 그렇다면 민통선을 걷자. 그들은 사람들의 떠들썩한 자세를 극도로 싫어한다.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는 인간이 만든 시설에 치명적이다. 숙소와 식당은 아무래도 민통선에 어울린다. 접경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될 테지.


연간 100만 명이 들어오면 비무장지대는 물론이고 민통선의 생태계도 여지없게 무너질 것이다. 비무장지대가 궁금하더라도 영상으로 대신할 수 있다. 민통선에서 멀리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는 방법은 신중히 검토할 수 있겠는데, 연구자 이외에 비무장지대를 꼭 들어가고 싶은 사람을 일부라도 배려하고 싶다면 예약제로 시간과 장소와 인원을 제한해야 한다. 충분한 사전 연구로 잠시 머물 수 있는 장소를 확보했더라도 사람으로 인한 냄새와 소음과 빛이 차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비무장지대의 평화가 한반도의 미래

 

우리는 국토에서 온전하던 선형 생태계를 거의 잃었다. 백두대간은 난타공연에서 싹둑싹둑 잘라내는 단무지처럼 도로와 각종 개발로 난자당한지 오래되었다. 함경도에 주로 분포하는 무산쇠족제비가 자신의 새하얀 몸을 요즘 우리에게 다시는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가 그렇다. 이참에 비무장지대의 생태계와 백두대간의 선형 생태계를 이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남북과 동서로 생태계가 이어진다면 생물다양성이 그만큼 보전될 것이다. 앨런 와이즈먼은 아무르표범의 존재를 비무장지대에서 직접 확인한 건 아닐 텐데, 백두대간이 러시아 아무르 지역까지 이어지고 비무장지대가 보전된다면? 어쩌면 일제가 몰살시킨 아무르표범을 알현할 기회가 열릴지 모른다, 호랑이도 큰맘 먹는 건 아닐까?


호랑이까지? 잠시 단꿈에 젖었지만. 비무장지대 활용을 놓고 정부는 지나치게 단꿈에 젖는다. 우악스럽게 휘두를 굴삭기의 삽날을 이겨낼 비무장지대는 아무데도 없다. 가녀리게 남아 간신히 유지되는 생명인 비무장지대를 후손에게 온전히 전해야 옳지 않나? 비무장지대를 방문하고 싶은 세계인도 보전을 원할 게 틀림없다. 그러자면 우선, 그리고 반드시, 지뢰제거와 유해발굴에 보전을 염두에 두는 생태학자가 참여해야 하고, 그 생태학자의 자문을 기반으로 평화로운 생태공간과 경관이 보전되어야 한다. 그래야 남과 북도 평화롭게 살아갈 한반도의 후손에게 덜 미안할 것이다. (삶창, 201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