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2. 4. 02:01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PET.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리콜을 축합중합해 얻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halate)는 내열성이 우수하고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덜 받으며 전기적 특성이 좋지만 사출성형이 어려워 비디오나 엑스레이필름 들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었는데 1970년대에 기술이 개발되면서 음료수 병으로 각광받게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PET를 재료로 만든 병을 그저 페트병이라 말하는 우리는 깨끗할 뿐 아니라 가벼워 자주 이용한다고 쉽게 생각한다.

 

페트병을 자주 이용하는 우리는 페트병에 무엇이든 최초로 담는 주체가 아니다. 물이나 음료수, 간장이나 식용유 들을 팔아 돈을 버는 기업이 담았다. 우리는 페트병의 실용성이나 안전성과 관계없이 당장 갈증을 느끼거나 잠시 후 느낄 갈증에 대비해 페트병을 구입한다. 주부는 식구와 둘러앉을 식탁의 풍미를 위해 구입할 테고. 물과 음료수와 간장과 식용유에 대한 주권을 기업에 내준 이후 우리에게 대안이 없어졌다. 집에서 물병을 들고 나오거나 예전처럼 집집마다 간장을 담고 들깨를 심어 이웃과 기름을 짜서 나눈다면 페트병은 요즘과 같이 도처에 넘칠 리 만무하다.

 

세계적으로 페트병에 가장 많이 담길 물을 생각해보자. 가벼울 뿐 아니라 여간해서 깨지지 않는 페트병이 다른 어떤 용기보다 물을 깨끗하게 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겠지만 그 믿음이 페트병을 들고 다니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성 싶다. 파는 물이 전부 페트병에 담겨 있는 것과 관계없이 은연중 내가 마시는 건 장삼이사의 물보다 지체가 높다는 걸 과시하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 넘치는 게 페트병인데 좀 지나친 상상일까.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페트병에는 수돗물보다 값이 훨씬 높은 ‘생수’가 담긴다. 물 건너온 훨씬 비싼 생수나 해양심층수도 담긴다. 그런 프리미엄 물이 담긴 페트병을 보란 듯 들고 다니는 이는 좀 그럴 걸.

 

그렇다면 페트병은 깨끗한가. 전문가들은 병뚜껑을 따기 전까지 그렇다고 말한다. 일단 병뚜껑을 따면 공기가 들어간다. 마신 물의 부피만큼 공기 중의 미생물도 숱하게 따라 들어간다. 그러므로 뚜껑을 딴 페트병의 물은 보관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그러고 보면 페트병의 물은 일회용인 셈이다. 비운지 오래 되었어도 겉보기 깨끗하니 아깝다고 다시 담는 물은 두고 마시기 부적합하다는 거다. 당분이 많은 음료수가 먼저 담겼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따뜻하면 20분마다 분열하는 미생물은 1시간에 8배, 2시간이면 64배, 5시간이면 3만 배가 넘고, 10시간이면 무려 5억 배 이상 늘어날 테니까.

 

흔히 환경호르몬이라고 말하는 내분비교란물질은 플라스틱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트병은 안전한 걸까. 가볍고 튼튼한 까닭에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드는 젖병에 분유를 담아 전자레인지로 데울 경우, 발육과 뇌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호르몬 비스페놀A가 나와 아기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담은 밥을 전자레인지로 데울 경우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가 검출된다고 한 텔레비전 특집방송이 경고한 적 있다. 이 암호와 같은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문가의 주장을 빌리면,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하는 까닭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첨가제로 아주 적은 양으로도 피부염과 생식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며 민감 체질일 경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특집방송은 올리브기름이 담긴 페트병에서도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가 다량 검출되었다고 주장한다. 생수 담긴 페트병은 상관없을까.

 

젖병에 담기는 분유의 온도는 대략 체온과 비슷하다. 그 정도 온도라면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제법 까다로운 국가도 플라스틱 젖병을 규제하지 않는다. 유리 젖병으로 생기는 사고와 비교할 때, 양해할 만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물론 모유를 먹인다면 괜한 걱정일 테지만, 대개의 자본주의 국가는 기업의 이익을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플라스틱 젖병 뿐 아니라 분유에 관련된 산업과 자본과 노동자를 생각해보라. 먹다 남은 밥을 담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는 보통 냉장실에 넣는다. 차가울 테니 별 문제가 없나본데, 대부분 냉장된 상태에서 파는 만큼 페트병은 안전한 걸까.

 

매장에 진열되기 전, 그러니까 공장에서 차가운 상태로 페트병에 담았다면 특집방송의 담당 프로듀서가 주목할 정도의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가 올리브기름에서 검출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압착이 아니라 화학적 방법으로 더 많이 더 빨리 추출한 올리브기름은 뜨거울 터. 뜨거운 올리브기름을 담은 페트병에서 문제의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가 배어나올 수밖에 없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은 추론이다. 암반에서 용출되는 생수가 위생적으로 안전하다면 모를까, 시중에서 파는 대부분의 생수는 ‘처리’한 것이다. 아무래도 끓였을 가능성이 높다. 음료수는 그 정도가 심할 것이다. 그렇다면 페트병에 담기는 생수나 음료수는 공장에서 차갑게 식힌 다음 담았을까. 일부러 돈과 시간을 더 들이며?

 

누가 지켜본 것도 아닌데, 페트병이 썩기 시작하는데 700년이 걸린다고 예상한다. 세상에 페트병이 나온 지 이제 40년. 재사용은 마다되어도 재활용이 권장되는 페트병의 90퍼센트가 그냥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상황에서 해마다 수십 억 개의 페트병이 사출성형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페트병이 자연에 쌓여야 비로소 썩는 신호를 보내려는지. 외국의 한 환경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 버린 페트병 다섯 개 중 하나에서 신경 독성을 유발하는 발암물질로 알려진 톨루엔 이외의 여러 유기화학물질이 검출되었다는데, 우리나라 서해안의 아름다운 섬의 모퉁이마다 더럽히는 페트병들은 한국 상표만 부착하는 게 아니다. 일본 해안과 호주 해안까지도. 그래서 일본 해안을 걸으며 한국 상표를 단 페트병을 수거하는 우리나라의 스님이 있었다.

 

생수라. 살아 있는 물인가. 그렇다면 수돗물은 죽었나. 한데 외국에서 파는 페트병 중에 수돗물을 정화처리한 물도 꽤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물은 광천수일 텐데, 광천수라고 마냥 믿을 수 없는 일. 만일 끓였다면 살아 있다 여길 수 없겠다. 물리화학적 정수 과정을 거친 수돗물은 살아 있지 않아도 안전한 물이다. 수도관이나 아파트의 물탱크에 이상이 없다면 누구나 가장 안심하고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몸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몸에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가장 잘 살아 있는 물은 나무가 울울창창한 숲이 보존된 계곡을 차갑게 흐를 것이다. 그 물이 페트병의 어떤 물보다 훨씬 맛있는 건 온갖 유기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괴나리봇짐을 맨 과객이 청할 때 부끄러워하던 아낙이 바가지에 버들 한 잎 띄우며 권했다던 예전의 우물물은 안전했을 것이다. 계곡과 이어진 강에서 오염물질이 없는 땅속을 지나며 충분히 정화되었을 터이므로. 불과 100년도 안 된 시간 만에 우린 그런 샘을 다 없앴다. 대신 물량 공세가 가능한 수돗물을 들여왔는데, 이제 생수를 마셔야한단다. 그런데 페트병에 든 생수는 수돗물보다 500에서 1000배나 비싸다. 페트병 물 값의 90퍼센트는 바로 페트병 자체에 있다. 페트병을 만드는 플라스틱, 다시 말해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를 1킬로그램 생산하려면 물 17.5킬로그램이 필요하다 하고, 그 과정에서 질소와 황산화물,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될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페트병을 재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지구온난화와 환경문제를 더 생각한다면 페트병보다 유리병, 생수보다 보리 넣고 끓인 수돗물을 넣은 유리병이 더 낫지 않을까.

 

프랑스의 대표 생수인 에비앙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피지 생수.’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배우들이 마시면서 명성을 드높인 그 물은 가격이 우리나라 생수의 3배다. 명성을 잘 아는 우리의 늘씬한 여성들이 피지 생수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강남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던데, 정작 피지 인들은 피지 생수를 마시지 못한다. 남태평양의 작은 영연방 국가 피지는 100만이 안 되는 인구가 한 해 평균 5천 달러 미만으로 살아가지만 관광에 투자하고 종사하는 일부 유럽 출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주민은 가난할 따름이다. 그래도 기름진 땅에서 농사가 잘 돼 예로부터 부족함이 없었고 깨끗한 물이 넘쳤는데, 외국의 생수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물을 뽑아대자 우물이 바싹 말라버린 것이다. 수출용 생수를 거액을 내고 마실 수 없으니 예전에 없던 수인성 질병이 만연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세계적 물 수출국을 꿈꾼다. 어떤 기업은 낙차를 이용 설악산의 물을 서울까지 옮겨올 구상을 한 적이 있다. 그 물은 모두 페트병에 담겠지. 그런 일이 앞으로 누구를 목마르게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그 따위 구상에 빠지는 이의 단견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아니 분노가 인다. 환경과 에너지 낭비의 문제, 일으키는 위화감 문제도 심각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물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편견을 사람들의 뇌리에 터무니없게 심기에 페트병이 싫다.

 

‘살리기’를 참칭하는 ‘4대강 사업’ 낙동강 구간인 어성천을 추위를 날마다 갱신할 때 다녀왔다. 넓고 넓은 낙동강의 모래에서 정화된 물이 살얼음 아래 투명하게 흘렀고, 일순 어린애가 된 일행은 얼음에 엎드려 흡수했다. 다신 그런 기회를 맞지 못할 수 있기에. 마시는 물을 플라스틱에 담는 걸 넘어, 조상이 물려준 ‘생명의 물’을 콘크리트에 담으려는 토목공사가 시방 밤을 새며 우리의 4대강에서 목하 진행되고 있다. 콘크리트 페트병은 장차 어떤 이웃을 목마르게 할까. (귀농통문, 201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