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8. 4. 21. 00:18
 

《평등해야 건강하다》, 리처드 윌킨슨 지음, 김홍수영 옮김, 후마니타스, 2008


상식 하나. 가난한 사람에게 병이 많다. 상식 둘. 살찐 사람은 부자다. 가난할수록 영양상태가 낮고, 그래서 면역이 떨어지는데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되니 질병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 몸이 바싹 마르는 건 당연하다. 돈이 많으면 비축한 먹을거리를 충분히 먹을 수 있으니 어찌 뚱뚱하지 않겠는가. 그런 상식은 물으나마나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사회가 지금처럼 불평등하지 않았다.

 

지금은 비만이 가난의 상징이다. 적당히 섭취하고 운동으로 균형 잡힌 몸을 유지하는 부자와 달리 패스트푸드를 후다닥 먹고 일터로 달려가야 하는 계층은 자신의 몸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한데 요즘 가난한 사람도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놓고 산다. 가난해도 부자들보다 수명이 긴 경우는 많다.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이라고 리처드 윌킨슨은 주장한다. 불평등과 질병의 관계를 평생 연구한 그는 《평등해야 건강하다》를 펴냈다.

 

독일군에 포위당해 농산물과 의약품 공급이 한동안 차단되었던 덴마크에서, 사망률은 오히려 낮았다. 비축한 농작물을 나눴고 몸 관리에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기에 맞서는 덴마크 인들은 평등했다. 지금의 미국처럼, 굶주리는 계층을 무시하며 포식을 하는 부유층이 의료 처치를 독점하지 않았다.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보편적인 조건의 평등만큼이나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없었다.”하고 말했던 1831년과 현재의 미국을 리처드 윌킨슨은 비교한다. 지금의 미국은 불평등 때문에 평균수명이 낮은 국가가 되었다는 거다. 최근 개봉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 Sicko>를 보라. 우리가 본받으려는 미국의 의료보험은 돈 없는 자를 철저히 배제한다.

 

미국은 그렇다 치고, 의료비 부담이 없는 영국은 어떤가. 영국인인 리처드 윌킨슨은 영국도 불평등 국가로 규정하는데, 지불되는 의료비가 부자보다 많지만 가난한 이에게 병이 더 많은 이유가 불평등에 있다는 거다. 의료 불평등이 아니다. 리처드 윌킨슨은 불평등이 일으키는 사회적 불안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심리적 요인에서 사망률 차이를 찾는다. 무시당한다는 자의식이 폭력으로 이어진다며 빈곤층의 높은 사망률은 감금보다 비참한 사형집행에 비유한다.

 

영국의 경우, 말단 공무원의 심장병 사망률이 고위직의 4배, 일반 질병에 의한 사망률이 3배에 이른단다. 지위가 낮으면 혈액 응고에 관여하는 피브리노겐의 분비가 많아 동맥경화가 잘 발생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어떨까. 사회적 소수자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무리가 적은 지역에 있을수록 건강이 나빠진다고 한다. 백인 동네에 사는 흑인 부자가 동네 백인에 비해 일찍 죽는다는 것인데, 불평등을 인식하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 심리사회적 요인을 리처드 윌킨슨은 3가지로 분석한다. 낮은 사회적 지위와 빈약한 사회적 관계, 그리고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것이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경쟁이 커진다. 신자유주의처럼. 대처시절 영국의 청소년 범죄율이 높았다는데,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한 우리는 장차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기업을 지원하는 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을 줄인 우리나라를 리처드 윌킨슨은 평등한 국가로 분류했는데, 언제까지 유효할까. 사회적 약자는 자존심이 손상되면 자신보다 낮은 계층을 괴롭힌다고 주장한다. 부자가 돈을 벌어야 가난한 자에게 베풀 것처럼 현혹한 정권이 국회마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오늘의 불평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평등을 자유와 우애의 조건이라고 믿는 리처드 윌킨슨은 인위적 평등보다 기회균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를 위해 위계가 덜한 사회를 그리며,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은 노동자 지주제를 제안한다. 국내외의 공정한 무역과 교역을 촉구한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길들여지면 두드리지도 않는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 다시 말해 참여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을 더욱 절실히 가동해야 하지 않을까. 평등사회일수록 참여가 빛을 발한다고 리처드 윌킨슨은 덧붙이는데. (우리와다음, 2008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