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8. 4. 2. 13:00

 

묘목 250그루로 뭉개진 산림 생태계가 복원될까? 묘목도 묘목 나름이고 생태계도 생태계 나름일 텐데, 알파인 할강 스키장을 위해 파헤친 가리왕산도 가능할까? 그도 10년 이내에? 프랑스의 한 텔레비전 뉴스 인터뷰에 출연한 담당 관료는 당당했다. 그리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게 아닌가. 그 전문가는 누굴까? 생태학자일까? 생태학자라면 가리왕산 복원을 요구하는 사람들 앞에 나와 같은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어떤 나무인지 모르지만, 묘목 250그루로 너비 55미터, 길이 2850미터의 스키 슬로프 모두를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닐지 모른다. 표고차이가 800미터에 경사가 17도라는데, 설마. 인터뷰 당시 눈에 띈 슬로프 일부의 생태계를 간신히 복원할 수 있다면 몰라도, 묘목으로 10년 만에 회복되는 산림 생태계는 없다. 게다가 가리왕산은 정부가 지정한 산림유전자원 보전지역이 아닌가? 일개 생태학자가 하느님처럼 “10년 내에 복원되어라!”하고 영광을 언도할 지역이 아니다.


뉴스 인터뷰에 출연한 담당 관료는 어떤 이의 속내를 대신 전했는지 모르지만, 전문가의 주장 뒤에 숨은 이는 누구일까? 궁금한데, 관료에게 당당함을 선사한 그 전문가는 평창동계올림픽 주관 부서에서 적잖은 연구비를 받았을까? 그렇더라도 학술적 뒷받침은 무척 약하다. 전문가의 여러 말 중, 듣고 싶은 내용만 기억하고 인터뷰에 나선 건 아닐까? 16개의 대형 보로 4대강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 어떤 생태학자도 있긴 있었지만.


식물 생태계에서 표토는 아주 중요하다. 온갖 뿌리가 안착하는 표토는 단순한 흙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미생물에서 버섯의 포자, 수많은 거미와 곤충의 터전으로, 그 자체가 생태계다. 다채로운 생물의 서식공간이기에 크고 작은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식물이 뿌리를 내리기에 크고 작은 동물이 먹이를 찾으며 오랜 세월 배설물을 내려놓았다. 그 역사는 스키 역사와 비교할 수 없다. 인류가 아니라 생물권의 장구한 역사와 맥을 같이할지 모른다. 가리왕산이 특히 그렇다.


안정된 숲은 키 큰 나무만 울창하지 않다. 전문가들이 상층수라 하는 키 큰 나무가 한 그루라면 그 나무의 중간 정도의 나무, 주위 비슷한 크기의 나무들과 생존경쟁을 하며 한참 자라올라가는 중층의 나무들이 상층수보다 수십 배 많다고 한다. 그뿐인가. 바닥의 낮은 나무들은 훨씬 많다. 하층림이라 전문가들이 말하는데, 살아남을지 초식동물에게 뜯겨 사라질지 모르는 키 작은 나무들은 중상층림의 수백 배에 달할 거로 추산한다. 그런 나무들이 뿌리 내리는 표토에 싹이 트지 않은 씨앗은 나무보다 현저히 많을 것이고 미생물과 포자는 그 수와 종류가 무한할 게 틀림없다.



사진? 평창동계올림픽 대할강을 위한 정선 가리왕산 슬로프.


문명을 등에 지는 사람이 지구 표면에 발을 붙이려면 아무리 조심해도 어느 정도의 개발은 불가피하다. 자연 생태계는 물론이고 근린공원에 시설물을 신축할 때,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그 지점의 표토를 따로 보관했다가 활용한다. 표토는 새로 심는 나무의 뿌리가 제대로 활착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독일의 표토 활용은 오랜 관행이다. 독일 유학생이 많은 우리나라도 이제 녹지를 개발하기에 앞서 표토를 실효성 있게 보관하리라 믿었는데 아니란다. 근린공원도 아닌 가리왕산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환경단체는 어처구니없어한다.


환경올림픽을 지향한다고 우리 당국은 누차 천명했는데, 공사 일정이 촉박했던 걸까? 가리왕산 슬로프 부지의 표토를 보관하지 않았다는 게 아닌가. 일부 지역은 표토를 떠놓았지만 보관이 부실해 활용할 수 없다고 한숨짓던 환경단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슬로프에서 표토는 아예 보관하지 않았다고 개탄한다. 그뿐이 아니다. 스키 슬로프 작업을 위한 도로는 6미터 정도로 충분하지만 그 3배나 넓게 파헤쳤다고 분개한다. 작업도로의 표토로 보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공사를 해놓고 환경올림픽을 참칭하도 무방한 걸까?


이제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마무리된 시점이므로 가리왕산에 대한 본격적인 복원을 요구하지만 환경단체의 걱정은 태산이다. 두꺼운 눈이 사라진 가리왕산의 슬로프 부지에 나무를 심어도 뿌리가 활착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리라. 나중에 다시 심겠다며 이식한 272그루의 전나무와 주목, 그리고 수려했던 천연의 나무들은 대부분 활력을 잃고 죽어간다. 애초 복원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 이식해 놓은 나무들의 관리가 부실했다.


철새 도래지를 보호하려고 스피드 스케이트장의 신설 장소를 바꾼 1994년 노르웨이 릴리함메르부터 환경은 올림픽 개최의 조건의 필수항목이 되었다. 2000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한 호주는 설계가 완성된 시드니의 주경기장을 옮겼다. 보호종인 호주 금개구리가 서식하기 때문이었는데, 우리는 어떤가? 가리왕산의 주목을 비롯해 수만 그루의 자연림은 사정없이 잘라놓고 수백 묘목으로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표토도 없이? 17도의 급경사에 심은 묘목은 세찬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디기 어려울 텐데?


가리왕산의 슬로프는 만들지 않아도 괜찮았다. 1990년 완공한 덕유산의 무주리조트에 국제경기가 충분히 가능한 슬로프가 있으므로.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사정에 따라 여러 도시에서 경기를 나누어 진행할 수 있다고 양해했건만 우리 당국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동 거리를 줄여 탄소 소비를 줄인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렇게 줄인 탄소는 가리왕산을 파괴하며 쏟아낸 탄소에 비할 바 못된다. 가리왕산 슬로프는 고작 8일 사용하고 수명을 다했다. 8일 동안 수백 명의 선수와 임원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덕유산에서 경기를 치렀다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와 환경 올림픽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사진: 며칠 동안 사용할 스키 슬로프를 위해 사라진 가리왕산 보호 산림유전자원의 모습.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환경을 신경 썼다고 나름 자부하는 모양이다. 친환경 소재를 일부 사용해 경기장을 짓고 태양광과 지열을 이용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지만, 거기까지다. 올림픽을 마친 경기장은 통째로 폐기물이 되었다. 북한과 동계 아시안게임을 공동 주최하겠다고 설레발쳤지만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20만 조금 넘는 강릉 인구가 즐길 규모의 방상경기장은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다. 결국 폐기물이 될 시설을 위해 자원과 에너지가 막대하게 허비되었다.


가리왕산과 빙상 경기장만이 아니다. 스키점프대 주변의 거대한 숙박시설인 알펜시아도 골칫거리다. 우리 사정이 딱했는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사후 활용 계획을 세워볼 것을 권유했다지만 지속적인 국제경기의 유치와 관리는 평창군과 강릉시의 재정과 인력으로 감당 가능한 행사가 아니다. 강원도는 물론이고 중앙정부가 주도하더라도 쉽지 않다. 올림픽도 아닌데, 지역 주민을 비롯한 전 국민의 관심이 느닷없이 샘솟을 리 없다.


198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전문부서를 두고 복원을 계속하고 있다. 훼손된 가리왕산 산림의 55%만이라도 복원되기를 희망한다는 정부는 시방 어떤 준비에 나서고 있을까? 2000억 원이 넘는 비용으로 1회용 스키 슬로프를 만든 강원도는 얼마 전 복원계획을 슬며시 제시한 모양인데, 산림청에서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애초 477억 원의 비용으로 복원하겠다고 약속하더니 고작 10억 원을 예산에 반영한 강원도는 부실한 복원계획을 내미는데 그치지 않았다는 소문도 들린다. 묘목 수백 그루 심고 자연에 맡기자는 배짱이라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단맛 잃은 가리왕산을 내팽개친 게 틀림없다. (작은책, 20184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7. 2. 20. 13:44


봄이 다가오면서 나뭇가지들은 생기가 돈다. 곧 펼쳐낼 잎사귀를 준비하나보다. 작년 가을 거리를 덮을 듯 떨어진 낙엽은 미화원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을 텐데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시에서 운영하는 양묘장의 퇴비로 활용되면 다행인데. 태워버리진 않았겠지?


봄을 준비하는 거리를 걷는데, 쓰레기가 한없이 눈에 띈다. 담배꽁초는 담뱃값 인상 전이나 다름없는데 요즘은 일회용 음료수 잔이 여기저기 널린다. 다 마시지 않은 커피도 보이는데, 처리하려는 미화원은 불쾌하겠다. 대부분 그대로 놔두면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든다. 낙엽과 달리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기에 일일이 수거해서 처리하느라 돈과 에너지를 적지 않게 사용해야 하리라.


경인고속도로 인천기점부터 서인천IC까지 10.38킬로미터 구간이 곧 한국도로공사에서 인천시로 관리가 이관된다. 인천시는 50년 가까이 인천을 분리해 소통을 방해해왔던 그 구간을 공원과 일반도로로 조성해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그를 위해 우선 고속도로 좌우의 방음벽부터 철거할 계획인데, 등잔 밑의 어두움이랄까? 승용차로 고속도로를 앞만 보며 이용하는 시민들은 미끈한 고속도로 너머의 사정을 거의 모르겠지만 열악하기 그지없다.


방음벽으로 차단된 응달에 숨죽이며 사는 주민들의 옹색함이 고속도로 일반화 이후 밝아질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은데, 방음벽에 온갖 쓰레기가 넘친다. 방치된 폐차와 더불어 수거하지 않은 생활쓰레기가 지저분하고 시효가 한참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온갖 광고 스티커는 거리를 후미진 곳으로 각인시키는데, 경인고속도로 일반화로 공원이 조성되면 쓰레기들은 말끔히 치워지겠지? 그런데, 대부분 가난한 세입자일 방음벽 주변의 주민들은 어떻게 될까?


버림받은 자동차에서 가로수 아래 반쯤 찬 일회용 커피 잔까지, 모두 돈을 지불해서 구입했고, 잠시 유용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런 물건을 만드느라 땀을 흘린 노동자가 있고, 그 노동자의 가족은 임금을 받아 오순도순 살아왔을 테지만, 과정에서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갔고 폐기물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적당한 가격으로 팔려나갈 때 크든 작든 기대감이 있었을 물건은 용도가 끝나자 쓰레기가 되었다. 재활용되려면 또 적지 않은 돈과 에너지를 요구할 것이다. 이래저래 엔트로피가 넘친다,


수려한 자동차가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남녀를 태우고 휘황찬란한 거리를 미끄러지는 광고는 소비자의 욕구를 고혹하게 부추기지만 그 자동차는 머지않아 폐차장에 내팽개쳐져 처리를 기다리겠지. 현란한 상품광고를 보면서 폐기되기 직전의 물건 모습을 미리 연상하는 이 드물겠지만, 의미 있는 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건을 구입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한다면, 겉보기 근사한 물건도 쉽게 구입하지 않을 것 같다. 유명한 상표를 가졌더라도 수선하기 어려운 물건은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싫증나지 않고 오래 사용할 물건을 선호하게 될 테지.


최근 미국 ABC방송은 모든 것이 멈췄고, 누구도 남아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이곳은 버려졌다.”는 제목으로 뉴스를 보낸 모양이다. 6개월 전에 운집한 관객이 열광했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공원에 발길이 뚝 끊기자 온갖 쓰레기들이 더미를 이룬다는 내용이었다. 수영장 풀은 폐수로 변한 물에서 악취가 진동하고 거액 들어간 골프장은 파리를 날리며 개폐회식이 열렸던 마라카낭 경기장은 도적떼의 소굴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쓸 만한 전자제품과 의자들을 떼어가면서 찬란했던 영광이 고통으로 변했다는 뉴스였다.



사진: 리우데지네이루 올핌픽 개폐회식이 화려했ㅓㄴ 마라카낭 주경기장이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자 도난이 횡행했고, 그 여파로 발생한 쓰레기들. 


돈과 에너지를 펑펑 소비하며 성대하게 꾸몄던 경기가 끝난 뒤에, 대책이 없었다. 리우 지방정부의 재정이 나빠지면서 방치한 결과라는데, 우리는 어떤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치룬 경기장에 요즘 쓰레기더미는 없지만, 쓸쓸하기 짝이 없다. 충분히 예상한 결과다. 인천에 하키 팀이 하나라도 있던가? 박태환수영장에 박태환은커녕 시민 한 사람 얼씬하지 못한다. 멀쩡한 문학경기장을 두고 거액을 들여 지은 주경기장은 2년 넘게 썰렁하기 그지없다. 근사했던 관람석들은 잠시 동계올림픽을 앞둔 평창으로 자리를 옮겼다는데, 다시 온전하게 돌려받아 열광을 준비할 수 있을까? 엔트로피가 그만큼 높아졌을 텐데?


평창 동계올림픽이 1년 남았으니 열광을 준비하자고 정부는 시민들을 다그친다. 벌써부터 지겨울 정도로 성공적 올림픽을 연호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평창은 어떤 모습을 연출할까? 평창은 재정자립을 운운하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도시다. 브라질의 최대인 리우데자네이루와 비교할 수 없는 처지다. 정부에서 뒷받침해준다지만, 화려해야 할 개폐회식 이후 평창은 고통을 면할 수 있을까? 면하려면 자존심은 내버려야 할 게 틀림없다. 경기장 운영은커녕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의 충당을 위해 기업과 정부에 손을 연실 벌려야할 테니까.


수많은 예를 미루어, 평창은 예외일 거라 믿지 않는다. 김연아 선수가 갈라쇼를 진력나게 계획하더라도 어쩔 수 없을 텐데, 책임질 자 누구일까? ‘한국동계스포츠영제센터는 물 건너갔다. 폐막 이후의 방안에 벌써부터 골머리 앓을 정부와 지방의 고위 공직자들과 별도로, 기업과 언론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유치 경정부터 덮어놓고 열광했고 경기 결과에 감격할 시민들은 경기 종류 후 허탈하고 말면 다행이다. 재정 악화는 납세자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칠 테니까.


겨울 운동을 거의 즐기지 않는 처지에 정부와 언론이 동계올림픽 게임의 열기를 아무리 북돋더라도 응원이나 구경을 위해 평창을 방문하지 않을 거 같다. 하지만 동계올림픽으로 인한 부담이 제발 최소화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하나 더! 다시는 감당할 수 없는 국제경기를 바보처럼 유치하고 열광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화려함 뒤로 쌓이고 또 쌓이는 쓰레기더미를 치우지도 못하는 주제가 아닌가. 도처에 넘치고 넘칠 엔트로피는 어찌할꼬. (지금여기, 2017.2.20.)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4. 10. 30. 23:53


 증권가의 상식.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분산투자로 위험성을 줄이라는 조언이라는데, 투전판과 닮은 투자환경의 변수는 복잡하니 한 종목에 올인하면 낭패를 볼 수 있으리라. 농사도 비슷하다. 다양한 농산물을 농토의 조건과 계절에 맞게 심으면 예기치 않은 가뭄이나 홍수가 닥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바싹 마르거나 휩쓸리는 작물도 있지만 멀쩡하게 잘 자라 실한 열매를 맺는 작물이 더 많으니 농부는 부담 없이 이듬해 농사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바나나가 멸종위기라고? 선망의 대상이던 바나나가 길거리 좌판에 널린 건 수입 양이 늘고 싸졌다는 반증이지만 그만큼 넓은 지역에서 많이 재배한 결과일 텐데, 왜 멸종위기라는 걸까? 바나나는 튤립처럼 뿌리를 분리해 포기 수를 늘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전문가는 세계 곳곳의 바나나 포기가 아무리 많더라도 사실상 한 뿌리라고 주장한다. 많은 열매를 매달고 맛이 괜찮은 현재의 바나나 품종은 치명적 곰팡이에 노출돼 있다. 곰팡이가 발생한 농장은 물론 그 주변의 광범위한 농토까지 모조리 불태워 확산을 막으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라고 한다.


해마다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겨울철새가 많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조류독감 때문에 떼로 죽는 사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대형 양계장은 다르다. 조류독감이 돌면 떼로 죽으니 축산당국은 곰팡이에 감염된 바나나처럼 예방적 살처분에 나선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본성대로 마당을 돌아다니며 짝짓기하던 닭은 시방 없다. 삼계탕과 치킨용으로 엄격히 품종이 구분돼 근친교배된다. 구제역이 돌자 맥없이 쓰러지는 돼지처럼 질병이 돌면 한꺼번에 몰살될 수 있다. 살코기용 돼지도 근친교배로 유지된다.


지난 929일부터 1017일까지 강원도 평창군에서 생물다양성 협약 제12차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1992년 리우 환경정상회담에서 생물다양성 보전, 자연 자산의 지속가능한 이용, 그리고 생물다양성과 유전다양성으로 발생한 이익을 공평하게 공유하자며 194개국이 가입한 협약이다. 생물다양성 협약에 가입한 국가의 관료들이 12번 째 회의를 위해 올해 모였는데, 하필 평창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생물종이 다양한 만큼 유전자원도 풍부한 평창이므로 할 이야기가 많았을까? 1992년 협약이 최초 발의되었을 때 가졌던 절박한 마음은 2014년 당사국들은 여전히 공유하고 있을까?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는 정부 대표의 협상 회의가 있고 고위급이 총회 주제와 주요 결정문에 관련된 회의에 나서게 되지만 시민단체도 모인다. 시민단체는 당사국 협약 자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국제 현안을 공유하며 함께 노력할 부분을 합의하고 경우에 따라 국제 행동에 나설 것에 동의하기도 한다. 올해는 생물다양성 관련해 두드러진 국제 현안이 눈에 띄지 않지만 4대강 사업의 여파로 생물상이 줄어드는 국내는 달랐다. 게다가 평창은 2018년 동계올림픽 알파인 활강 경기장 공사로 환경단체의 열기가 높은 곳이 아닌가.


국내 시민단체 참여 희망자 대부분의 출입을 통제한 상태에서 평창에서 개최된 생물다양성 협약 제12차 당사국 총회는 평화로웠다. 그렇다고 평창 주변의 생물다양성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가 보물이라 했던 가리왕산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국가 최고 수준으로 보호되었지만 2만 여 명이 운집하는 생물다양성 총회를 앞두고 너비 30미터 길이 3000미터를 뜯어내고 있지 않은가. 주로 유럽 선수들의 3일 경기를 위해 5000년 보전된 숲을 파괴하는 현장에서 어찌 감히 생물다양성을 거론할 수 있을까? 그 사실을 알리려는 시민단체의 참여가 차단된 회의 현장에 우리 언론 기자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스키점프대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당사국 총회장은 인천공항에서 셔틀버스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셔틀버스 이용자은 회의 참가 전부터 바가지를 경험해야 했다. 2배 가까이 높은 요금을 요구한 낡은 관광버스는 좌석이 좁고 시끄러웠으며 기사는 불친절했다. 총회장의 음식은 부실하기 짝이 없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았지만 국내외 시민단체의 열기는 뜨거웠는데, 당사국의 어느 정부 대표도 그 논의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개발로 사라지는 세계 자연 생태계의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주권자의 의견에 무관심한 각국 정부의 분위기는 생태계가 파괴되는 평창 알펜시아 현장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스키활강을 위한 길이가 모자라면 경기를 두 차례로 나눠 실시해 성적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는 분명히 알았지만 막무가내였다. 대안을 외면하고 3000미터의 산록을 모조리 파헤친 정부는 2018환경올림픽을 들먹일지 모르지만, 평창은 지난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우리 강처럼 현 정부가 저지른 생물다양성의 대표적 훼손지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는 강원도에 원시 생태계의 복원을 주문했다지만, 그따위 주문을 외운다고 훼손된 생태계가 복원되고 사라진 생물이 돌아올 리 없다.


조상이 물려준 다양한 유전자가 보전돼 있다면 혹독한 환경변화가 닥치더라도 그 생물종은 이겨낼 것이다. 맹렬히 매립되는 갯벌에 여전히 운집하는 철새들이 그렇다. 조류독감을 이겨낼 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견딜 유전자도 축적돼 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유전다양성이 지독하게 결여돼 있다. 그런 농작물은 엄밀한 재배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흉작을 피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후변화는 유전다양성을 잃은 농작물과 가축의 생존을 크게 위협할 것이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의존할수록 내일은 걱정스러워진다.


생물다양성을 잃은 생태계는 환경변화에 쉽게 허물어진다. 유구한 강이 품던 생물들을 일거에 내쫓은 4대강 사업은 금수강산의 안정성을 해쳤다. 생물이 단순해진 생태계는 기후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갯벌이 사라지고 남획이 심각해지자 해파리가 늘었다. 해파리가 늘면서 물고기 양식에 지장이 생길 뿐 아니라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의 터빈을 식힐 바닷물을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해 사고위험을 키운다. 생물다양성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생태계의 능력이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지금, 생물과 유전다양성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작은책, 2014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