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5. 7. 24. 11:30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면 물은 점점 차가워지고, 커다란 바위를 타고 넘는 물줄기는 오랜 세월 바위를 넓게 패어 웅덩이를 만들고, 잠시 고였다 넘쳐흐르는 계곡물은 투명하기 이를 데 없다. 거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버들잎 닮은 물고기들이 여기 저기 움직인다. 가장 흔한 종류는 버들치로 한반도의 서쪽과 남쪽으로 흐르는 강의 상류에 널리 분포한다. 맑은 계곡에 가야 볼 수 있는 까닭에 흔히 생태학자들은 일급수를 상징하는 지표로 활용한다.


우리나라 동쪽으로 흘러 나가는 하천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하다. 백두대간이 동쪽에 치우친 까닭인데, 백두대간 동쪽 계곡을 타고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의 상류에는 버들개가 산다. 버들개는 버들치와 생긴 모습이 거의 같다. 등지느러미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옆줄까지 이어지는 비닐의 수가 버들치보다 많다고 하는데, 그건 연구자들의 주장이고, 보통사람은 구별하기 어렵다. 등지느러미가 몸 가운데 쯤 있으면 버들개, 가운데에서 시작해 조금 뒤편으로 치우쳐있으면 버들치라지만 확실치 않다. 어디에 사는가가 가장 정확했다.


‘정확했다’는 과거형은 현재 예외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버들치가 동해안 남쪽부터 서서히 북상하더니 강릉 일원까지 버들개를 몰아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그뿐이 아니다. 버들개가 임진강 상류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이런 혼란은 거의 사람 때문이다. 격자형 도로로 산이 깎이고 계곡이 메워지면서 계곡의 흐름이 상류에서 변한 것이다. 동쪽으로 향할 계곡의 일부가 서쪽으로 이어지면서 임진강에 버들개가 나타나고, 백두대간의 낙동강 상류지대가 파헤쳐지면서 동해안 강줄기에 버들치가 등장한 것이리라.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 방생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버들치와 버들개와 사촌이면서 특이한 분포 양상을 보이는 금강모치도 있다. 한강 상류와 금강 상류에 뚝 떨어져 살고 있는데, 북한강과 남한강에는 넓게 분포하는 반면 금강은 오직 무주구천동 계곡만 고집한다. 번식기인 5월 이후 머리부터 꼬리까지 분홍 혼인색이 두 줄로 선명한 자태가 아름답고, 등지느러미 앞쪽에 검은 반점이 또렷한 게 특징이다. 버들치나 버들개나 금강모치는 모두 물이 맑고 차가운 상류에서 물속 곤충을 잡아먹으며 사는데, 엉성한 비닐어항에 된장만 묻혀도 쉽게 잡힌다. 그래도 그다지 맛이 없어 남획으로 인한 멸종은 염려되지 않아도 좋을성싶다. 문제는 도로다. 산허리를 볼썽사납게 긁거나 끊고, 터널로 땅 밑 물줄기를 사정없이 교란하는 대형 아스팔트 도로만이 아니다. 산등성이를 이리저리 훑고 지나는 임도도 계곡 상류의 생태계를 크게 교란한다.


비록 흔치 않은 1급수 지표동물이지만 마음먹으면 언제라도 찾아가 만날 수 있는 버들치, 버들개, 금강모치와 달리, 여간해서 만나기 어려운 이들의 사촌이 하나 더 이 땅에 존재한다. 이름도 예쁜 버들가지가 모로코(Moroco)라는 속명을 공유하는 네 번째 담수어류로,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다. 금강모치와 같이 등지느러미 앞 쪽 아래에 검은 반점이 있지만 사촌들에 비해 길이가 짧고 뭉뚝한 버들가지는 오직 비무장지대의 고성 쪽 상류 지점에 작은 몸을 조용히 의탁하고 있다. 금강산의 일부 물줄기에도 가녀리게 숨어있다고 전문가는 귀띔한다.


빙하기의 황하 지류에 속하는 한강과 금강과 낙동강 일대의 버들치, 그리고 빙하기의 아무르강 지류인 동해로 빠지는 하천에 사는 버들개와 달리, 서식하는 곳이 좁은 금강모치와 유난히 좁은 버들개는 우리 특산종이다. 금강모치는 설악산과 덕유산국립공원 당국에서 그나마 보존하고 있지만 버들가지는 비무장지대에 사는 관계로 살벌하게 보존되고 있다. 그래서 그 생태나 습성이 거의 알려져 있지 못하다. 그저 사촌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정하는 정도다. 지뢰지대를 뚫고 들어가 몇 달 동안 연구하면 베일을 벗길 수 있겠지만 유엔사가 포함된 양국 군사당국의 보호와 양해가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버들가지는 지금의 상황을 선호할지 모른다. 사는 곳만 확인되면 잡자며 덤벼드는 사람들 때문에 멸종위기에 몰린 열목어들의 고통어린 소식을 풍문, 아니 수문으로 들었을지 모른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마음에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기 위해 자연물에 상을 드리는 환경운동을 감성적으로 펼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2005년 제11회 풀꽃상을 비무장지대에 드리기로 결정했다. 남북 경제협력 분위기에 부응하는 차원으로 철도가 이어지면서 비무장지대의 일부 생태계가 무자비하게 파헤쳐지는 현상을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풀꽃세상의 회원들이 보존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남북 화해’의 가시적 성과도 없이 지방자치단체들의 개발계획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마구잡이로 발표되는 마당이 걱정스러운 까닭이기도 했다. 비록 민족 스스로가 결정한 일은 아니었지만, 50년 이상 접근하지 않아 겨우 마련된 이 땅의 분단 상흔을 끌어안은 자연생태계가 아니던가.


같은 민족인 남과 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불을 지르자 비무장지대 일부는 황량한 풀밭으로 변했지만 그 안에도 수많은 들꽃들이 뿌리를 내려 보기 드문 꽃봉오리를 사시사철 펼친다. 지뢰가 접근을 차단하는 가운데 많은 지역은 울창한 자연림으로 보전돼 있고 그 일부 계곡에는 버들가지가 산양과 함께 은둔한다. 보전을 생각하는 절박한 마음은 유네스코자연유산 지정을 서두르게 하는데, 그 과정이 오래 걸리고 쉽지 않은 모양이다. 유네스코자연유산으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통일 이후에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북한 인구의 이동도 보장되는 생태적 개발을 버들가지의 눈높이에서 기획될 수 있을 텐데.


버들치나 금강모치처럼 버들가지도 어쩌면 넓은 지역에 분포하지 않았을까. 주말마다 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등쌀로 다 사라져, 자연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는 것은 아닐까. 제11회 풀꽃상을 받게 된 비무장지대의 버들가지는 필시 1급수의 평화를 상징한다. 군사행동이 대한 평화도 물론이지만 사람과 생태계 사이의 평화도 지표한다. 버들가지의 허락 없이 그 막중한 역할을 덥석 안겨주어 미안하지만, 우리는 버들가지의 역할을 잊지 말기로 하자. 버들가지의 생존에 기대어 비무장지대의 생태평화만이라도 영원히 깃들기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한 까닭이다. (물푸레골에서, 200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