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9. 11. 15:49

     엇나가는 집단급식의 안전

 

아직도 식당에서 내놓는 오렌지 후식에 손을 대기 싫다. 부의 상징으로 소개되었던 오렌지. 감귤보다 껍질이 두껍고 잘 벗겨지지 않아도, 맛도 사실 그리 빼어나지 않아도, 어쩌다 기회가 생기면 황송하게 먹어야 했던 오렌지가 웬만한 과일점은 물론이고 도심지 좌판에도 흔해진 세상이지만, 가벼운 정신적 외상이랄까. 여전히 마다한다. 일본에서 하역 거부한 분량만큼 더 수입한 까닭에 넘쳤던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왜 수입 거부했을까. 그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오렌지들, 싸긴 참 쌌다.


오렌지는 겉이 시퍼럴 때 수확한다. 큰 배에 실어 먼 나라로 수출할 오렌지는 그리해야 한다. 물론 수확하자마자 비행기를 타는 오렌지는 고급 호텔로 직행할 테니 살짝 예외다. 귀 티내는 오렌지는 식품매장에 나오지 않아 우리네 입과 거리가 멀다. 미국의 뉴욕 중산층이 먹는 플로리라 산 오렌지도 껍질에 퍼런 기운이 남았을 때 수확하는데 지갑이 얇은 주제에 어찌 감히 비행기 탄 오렌지를 탐할 수 있으랴. 수만 톤 급 화물선에 실려 짧으면 한 달, 길면 6개월 이상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오렌지를 선적하면 십중팔구 오래지 않아 상한다. 상품성을 생각해 시퍼런 상태로 싣고 오며 익히는데, 그 과정에서 상할 수 있으므로 화학약품을 처리해야 한다. 수확 후에 뿌리는, 이른바 포스트 하비스트 농약이다.


시퍼럴 때 수출하는 중남미의 바나나도 포스트 하비스트 농약 세례를 받는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마이클 폴란은 그런 바나나를 먹으며 거림직스러워했다. 중남미와 가까운 미국도 그러는데 한국은 오죽할까.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 나물과 채소를 멀리하는 식습관을 가졌거나 가계 부담 때문에 채소에 선뜻 손이 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바나나는 참 좋은 과일이다. 풍부한 섬유소는 물론이고 적지 않은 탄수화물을 공급해줄 뿐 아니라 달콤한 맛과 향을 지녔다. 그럼에도 흔쾌할 수 없는 건 아무래도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농약이 과육에 스몄을 거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대양 육대주를 거치며 수입되는 열대과일의 사정이 비슷할 텐데, 이상타. 저렴하기 이를 데 없다. 얼마나 막대한 양을 한꺼번에 선적하기에 그럴까. 작은 창고의 농산물도 상하기 쉬운데 공기 순환이 어려운 커다란 배에 실려 이 나라와 저 나라의 부두에 하역해야 하는 농산물은 어떨 것인가. 그냥 놔두면 과정에서 상품성을 잃을 가능성은 높을 수밖에 없으니 상인들은 당연히 대책을 세웠다. 썩거나 벌레나 쥐가 접근하지 말라고 농약을 미리 뿌려둔다. ‘포스트 하비스트. 선박의 운항 거리와 시간과 포스트 하비스트 농약의 양은 비례할 텐데, 요즘 오렌지 한 망이 얼마인지 못한다. 아침이면 고속도로 진입하는 도로 가장자리에 늘어놓은 바나나는 한 송이에 3천 원이면 충분하다. 저녁이면 천 원이 더 내려간다.


강화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분은 먹지 않을 수입 밀가루를 굳이 구비해놓는다. 인분이 중요한 유기농업이지만 귀찮은 건 파리다. 12일 회의를 위해 그 집을 자주 방문했던 일행은 유기농 포도를 사와 회의하며 먹었는데, 아침에 창문을 열자 적지 않은 파리가 날아 들어와 새벽까지 회의 마치고 늦잠 자는 일행을 괴롭혔다. 희한하게 그 파리들은 두 무더기의 포도 껍질 중 하나에 바글거릴 뿐이었는데, 파리들이 외면하는 덩어리는 회의에 늦게 참석한 이가 미안해 사온 관행 포도의 껍질들이었다. 파리들마저 외면하는 포도를 먹고 끄떡없다 착각하는 이들은 뒤뜰 화장실에 구물거리는 구더기를 보며 불안해했다. 그러자 수입 밀가루가 위력을 발휘했다.


대변 위에 뿌리자 이내 구더기들의 움직임을 둔해지게 만든 수입 밀가루에 포스트 하비스트 농약이 남았을 것이다. 그 밀가루를 뒤집어쓰자 죽어버리는 구더기들은 파리로 변태하지 못할 텐데, 그 집의 파리들은 동네의 가게에 오래토록 쌓아놓아도 빛과 향을 잃지 말라고 뿌린 농약을 외면했다. 파리들이 외면한 포도의 농약을 먹은 이는 괜찮았을까. 유기농업을 하는 이는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지만 도시에서 온 일행은 겉보기 아무렇지 않았다. 과연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320킬로그램에 해당하는 가공식품의 온갖 첨가물을 먹고 지내므로 감지하지 못할 뿐, 몸에 무리가 생기는 건 분명하다. 도시 어린이에게 많이 발생하는 아토피는 우연도 확률도 아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중국식당에서 면 음식을 주문하길 거리끼는 이가 드물지 않다. 한여름이면 단백질도 보충할 겸 냉 콩국수 즐기지만, 의외로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이를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 유기농업으로 생산한 우리 밀과 우리 콩으로 차린 콩국수를 대접해보자. 대부분은 소화에 문제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경작 과정과 수확 이후에 농약을 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가끔 회의를 위해 들리는 강화도의 그 집은 아토피가 심한 도시의 아이들의 식이요법을 도와준다. 윤기 잃은 피부에 긁힌 상처가 더께로 앉은 아이들은 보기 안쓰러웠는데, 식이요법 6개월 정도 지나자 피부는 물론이고 웃음도 되찾았다. 하도 많고 다양한 농약과 색소들은 몸에 들어와 대사를 방해하는 인공 화학물질이다. 석유를 가공한 그 물질을 가공음식과 더불어 먹다보니 모르고 지나갈 뿐, 건강에 문제없는 건 아니다.


수입 밀가루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이라도 쌀국수를 먹으면 괜찮을까. 논에서 경작하는 쌀을 밭작물과 비교해보자. 벼에 달라붙는 곤충의 종류나 그 개체는 밭작물보다 적은 게 일반적이다. 시중에 베트남 쌀국수 식당이 적지 않은데, 베트남 쌀국수에 들어가는 국수를 수입하는지 베트남 쌀을 수입해 여기에서 국수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 국수에 들어가는 쌀이 유기농업으로 재배했는지 아닌지, 흩날리는 인디카 계열인지 쫀득한 자포니카 계열인지, 알지 못한다. 어찌 되었든 이제까지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이에 대한 소식도 듣지 못했는데, 우리 쌀로 만든 우리 국수는 어떨까. 대형 상가의 지하 식품매장에서 파는 우리 쌀국수는 내 땅에서 우리 농부들이 재배한 만큼 안전하다고 확신해도 좋을까.


베트남 쌀국수가 괜찮으니 우리 쌀국수는 당연히 안전해야 옳겠는데, 오호 애제라. 생활협동조합에서 판매하는 쌀국수나 현미국수가 아니라면 덮어놓고 안심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다른 곳도 아니라 정부의 쌀 저장창고에 포스트 하비스트를 위한 농약, ‘에피흄으로 훈증한다는 게 아닌가. 오렌지와 바나나 이상 많은 양을 대형 선박으로 수입하는 밀도 포스트 하비스트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후식이나 부식으로 가끔 먹는 오렌지나 바나나와 달리 끼니를 위해 먹는 수입 밀가루는 소화불량을 일으켜왔는데, 이젠 우리 쌀마저 안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정부미를 보관하는 우리나라 창고에 의해. 학살을 위해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에 넣었다던 에피흄은 곤충이나 쥐만 죽일 뿐일까.


매우 고독성이라 함부로 아무에게 팔지 않는 에피흄은 침투력이 강해 포장된 쌀 속에 바구미와 그 알까지 죽인다고 한다. 그런 농약에 훈증된 쌀은 괜찮을까. 관련 공직자는 괜찮다고 했지만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 쌀을 먹는 사람에 정녕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정부는 기준치 이하라고 했는데 기준치의 근거는 없다. 지난 20년 동안 경기도의 정부 양곡 보관창고를 비롯해 전국의 창고에서 벌레가 많이 생기는 6월에서 9월이면 에피흄을 사용해왔다고 한다. 사전 교육도 받지 않은 인부들이 보관된 맹독성 물질의 잔류조사도 실시하지 않고 암암리에 다량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격이 싸고 효과가 강력하다는 이유로 쌀이 보관된 창고에 가스실에 사용했던 맹독성 농약을 훈증하는 행위, 과연 정부가 할 일인가. 그 창고에 보관된 쌀은 누가 먹을까. 공무원인가. 각급학교의 급식은 아닐까. 그 사실을 알 수 없고, 알아도 저항이 불가능한 군부대로 직행하는 건 아닐까.


위험성이 높아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제한하고 사용자는 사전에 반드시 교육을 받도록 규정된 에피흄이 정부미에 얼마나 잔류하는지 정부와 창고 담당자는 여태 조사하지 않았다. 독점 제조해 판매하는 회사 역시 소비자에게 당연히 알려야 할 위험성 정보와 잘 못 사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에 대한 일체의 자료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인체에 미치는 독성과 환경에 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가 없다고 일관하는 가운데 20년 이상 에피흄에 정부미에 훈증되었고, 그 정부미는 학교와 군부대의 급식소로 빠져나갔다.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안전하다 강조하는 정부 관계자는 최소한의 문제의식도 없는데,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지속되면 위험할 수 있다. 아직 젊어 느끼지 못하지만 만성 피해가 나이 들어 발생한다면 그때 그 피해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오렌지나 바나나처럼 개인이 조심할 수 있는 과일도 문제지만 급식이 걱정이다. 정부미가 관청의 구내식당에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지 못하는데, 아직도 많은 학교는 급식비용을 줄이려고 정부미를 사용한다. 에피흄 소식에 아연실색한 학부모들은 해당 교육청에 지역 유기농산물로 급식 재료의 변경을 요구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인데, 군인들이 큰 걱정이다. 제대 후 결혼할 사병들은 희생양이 아니다. 군인에게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일은 최첨단 전투기보다 급한 국방의 의무다. (푸른두레생협, 2012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