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8. 9. 20. 11:28

 

한낮이 더운 스페인은 독특한 문화를 즐긴다. 정오 지나 두세 시간 집에 들어가 잠시 쉬는 직장인의 시에스타가 그것이다. 스페인만이 아니다.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 이탈리아와 그리스도 비슷하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시간 낭비라 생각해 금지한 적도 있지만 요즘은 관행으로 허용한다는데 30분 정도의 낮잠이 육체와 정신의 기운을 회복시켜 일의 능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이번 여름 무던히도 더웠다. 1994년을 넘어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고 언론은 혀를 내둘렀다. 일에 치었던 1994, 당시 더위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재작년 여름도 상당히 더웠다. 덜 더웠던 작년 여름이 이변이라고 가상 전문가는 분석했는데, 올해는 해거름인 걸까? 에어컨 없는 집에서 두 대의 선풍기가 토해내는 뜨거운 바람에 온몸이 젖어 밤잠을 설쳐야 했으니 낮 시간은 그저 몽롱하기만 했다. 시에스타가 필요했다. 하루 두세 시간 쉬는 시에스타가 아니다. 폭염경보가 지속되는 기간 내내 온종일 집에서 몸을 뒹굴려야 했다.


북위 1도에서 2도 사이에 걸쳐 있는 싱가포르는 계절 변화 없이 섭씨 30도가 넘는 기온을 유지하지만 시민들은 근면하고 부지런하다. 30년 넘게 초대 총리를 지낸 리콴유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칭송한 에어컨 덕분이다. 1902년 윌리스 캐리어가 에어컨을 발명하지 않았다면 현재 싱가포르는 한적한 어촌일까? 누구라도 비슷한 물건을 만들었겠지만, 에어컨은 전기 없이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싱가포르 남쪽 주롱 섬에 화력발전소가 대규모로 밀집돼 있기에 건물과 조명이 화려한 싱가포르는 근면성실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에어컨 실외기가 다닥다닥 붙은 뒷골목은 보행을 불쾌하게 만든다.


산업체에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은 가정에 높은 사용료를 책정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요금 누진제로 덧씌웠다. 이번 폭염에도 누진제 무서워 멀쩡한 에어컨 마음껏 켜지 못한 시민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정부는 누진세 한시적 완화로 화답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덕분에 한 달 1만 원 정도의 전기료가 감면된 시민들은 비로소 맘 편하게 잤을까? 누진제 폐지 법안을 내놓는 국회의원도 있던데, 여름철 밤낮없이 에어컨을 켜면 우리나라도 싱가포르 이상 근면성실해질까? 꼭 그래야 할까?


부엌이 덥다고 냉장고를 활짝 열어두는 주부는 없다. 열효율을 몰라도 그 정도 상식은 안다. 냉기가 빠져나가면 냉장고 뒤 방열판의 열기만큼 부엌은 더워질 테고 값비싼 냉장고가 망가질지 모른다. 내 집이 더우니 에어컨을 켰지만 실외기는 그 이상의 열기를 집밖으로 토해낸다. 에어컨이 집안 온도를 식히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보다 집밖으로 내놓는 열기의 에너지가 더 많다. 냉장고나 에어컨의 에너지 변환 효율은 100%보다 낮다. 바깥 공간이 넓으니 느끼지 못할 뿐인데, 발전소의 효율은 얼마나 되나? 가장 효율이 높은 화력발전이 대략 40%라고 하니 석탄에서 얻는 열량의 60%는 생태계를 데우는 셈이다.



그림: 지구온난화의 책임이 큰 지역을 보여주는 삽화. 북한 지역의 그림은 실수인 듯.


이번에 폭염은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열돔이 원인이라고 기상 전문가는 분석했다. 여름까지 쌓인 눈이 올해 일찌감치 녹았고, 땅이 드러나자 흰 눈에 반사되던 햇빛이 흡수돼 열기가 발생되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로인해 상층권의 제트기류가 느슨해지자 티베트 고원에서 발생한 뜨거운 열기가 한반도 상층을 체육관의 돔처럼 거대하게 덮었다는 것인데, 티베트 고원의 눈이 일찍 녹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빚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렇담 이번 폭염은 화력발전소와 자동차와 같은 내연기관들이 막대하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원인이다. 폭염은 부메랑이었다.


어찌되었든 올 여름의 더위는 지나갔다. 잠시 완화된 누진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가전회사가 에어컨 가격을 낮출 가능성은 거의 없다.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며 오히려 가격을 높일 텐데, 올 여름 온열환자의 대부분은 집에서 발생했다. 여유가 없는 가정의 60대 이상 노인이 주로 구급차 신세를 져야했고 30명 이상 사망하고 말았다. 내년 이후가 더 걱정이다. 정부가 저소득층의 에어컨 구입을 지원할까? 올 봄은 모처럼 비가 충분했어도 폭염은 농토를 메마르게 했다. 도시인들이 씻고 마실 물은 충분했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봄 가뭄 뒤에 폭염이 이어진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에너지제로 주택은 이번 폭염에 에어컨 가동이 필요 없을 정도인 섭씨 25도 전후를 유지했다고 최근 한 언론이 전했다. 겨울 혹한기에도 영상 22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에너지제로 주택은 전기와 같은 에너지의 소비를 대폭 낮추니 대안으로 자리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직 보급이 활발하지 못하다. 주택의 면적이 좁고 단지 내 주택의 수가 적어 분양가를 낮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속적인 연구로 에너지제로 주택의 보급이 독일처럼 늘어나길 바라지만, 에너지제로 주택은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건 어니다.


우리는 냉장고로 마실 물의 냉기를 유지하고 음식의 부패를 막지만 집안은 더워진다. 에어컨으로 집안의 열기를 낮추지만 집밖은 더욱 뜨거워진다. 냉장고와 에어컨 가동을 위한 발전소는 온실가스를 내뿜고 우리는 끔찍한 폭염을 감당해야 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면 지구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평균 4도 이상의 상승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학자들은 예상한다. 인류는 물론 생태계의 절멸로 이어질 것으로 걱정하는데,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 세례를 받은 우리는 전기료 누진제 완화로 대응했다.


2003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폭염은 7만 가까운 희생자를 요구했다. 주로 가난한 계층의 노인부터 사망했는데, 이후 유럽은 공공 폭염 피난처를 확보해 스마트폰으로 세세하게 안내하기 시작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도시에 위치하는 학교의 아스팔트를 뜯어내 녹지를 확보하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화력발전의 비중을 크게 줄이고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의 운행을 전면 금지하는 걸 고심한다는데, 우리는 그저 누진제 타령인가?


겨울은 추워야 옳고 여름엔 더워야 정상이다. 그땐 하던 일도 멈추고 뒹굴뒹굴 좀 게으를 필요가 있지만 어렵다면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주택과 건물을 연구해 적극 보급해야 한다. 그리고 녹지와 습지를 도시 곳곳에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를 위한 건축계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어지면 어떨까. 한시적 돈벌이보다 내 노후와 후손의 건강한 생존을 위한 일이므로 서두르면 참 좋겠다. (와이드, 2018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