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1. 6. 10:47

,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용 옮김, 삼천리, 2010.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테오티우아칸. 그곳은 바퀴도 철기도 없었던 중남미에서 서기 원년 경 10만 인구 이상 번성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광활한 역사 유적으로 현재에도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되는 멕시코 최대의 세계적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발굴되기 전까지 자그마치 83제곱킬로미터나 되는 면적에 고운 흙이 무덤처럼 덮여 있었는데, 그 흙이 언제 어떻게 쌓였는지 알려진 바 없다. 또한 왜 갑자기 10만의 인구가 유적을 온전히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는지 추정하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개 농사지을 만한 흙이 사라진 데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흔히 이스터라 하는 태평양의 고도 라파누이는 거대한 석상 모아이로 유명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땅에서 헐벗고 굶주린 주민들이 어떻게 100톤에 이르는 석상을 수백 개나 깎아 재단에 올려놓은 것인가. 몰랐을 때는 불가사이라 했지만 지금은 그 전후 사정을 파악했다. 라파누이는 야자나무가 어떤 땅보다 울창하고 흙이 기름져 풍요로운 섬이었다. 재생 가능한 자원의 한계 내에서 농사를 짓고 카누를 깎으며 모아이를 만들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한계를 넘어 위기에 닥쳐오자 그들은 오히려 역행했다. 두 부족은 서로 모아이를 더 많이 세우려는 경쟁으로 치달았고, 결국 나무가 모두 베어지자 황폐해진 것이었다.

 

나무가 없어지자 흙이 사라진 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작은 돌로 덮으며 농사지을 흙을 남기려했지만 태평양의 거센 바람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조상의 역사는 물론 언어까지 대부분 잃고 생존을 위해 식인을 일삼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석상을 올려놓을 수 있는 땅에도 흙이 없지 않았지만 지나친 개발은 경작 가능한 표층의 흙을 사라지게 했다. 흙이 사라져 발생한 재앙은 수백 년 전에만 있던 과거의 사례일 뿐이 아니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이 1939년에 발표한 분노의 포도는 흙을 잃어버리고 쫓겨나는 대공항 시대 미국 오클라호마 출신 농부들의 이야기다. 20세기 초, 미국은 흙의 소중함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흙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지금은 잘 보전하고 있을까.

 

지형의 변화가 생태계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미 워싱턴대학교의 데이비드 몽고메리 교수는 2007년에 발간한 자신의 책 에서 고개를 완강하게 젓는다.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이란 부재를 단 그 책을 빌려 이대로 가다가 우린 후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 거라고 태산 같이 걱정한다. 그는 정신 차리고 흙을 보전하려 노력한다면 아직 희망이 남았다는 따위로 책의 결론을 맺지 않는다. 불과 몇 센티미터의 흙이 생성되는데 천년 이상이 필요한데, 우린 이미 재앙을 예약해놓았다는 거다. 세계의 정부와 농민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보전 노력을 다한다 해도 세계 인구를 먹일 흙을 확보할 수 있을까 말까 한데, 흙으로 벽돌을 구워 파는 사람이 있다고 한탄한다. 그렇다 해도, “흙을 산업공정의 토대로 보지 말고 문명의 수명을 연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의 토대로 여겨 달라.” 부탁하며 맺는 몽고메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경작지에 같은 농작물만 계속 심으면 지력이 떨어진다고 많은 농민들은 말한다. 그래서 객토한다면서 다른 곳의 흙을 가져온다. 그런데 가져온 흙이 무엇인가에 따라 경작지는 개선되거나 더 척박해질 수 있다. 학자들은 흙을 셋으로 나눈다. 흙의 기반이 되는 암석, 그 위에 암석이 풍화된 밑흙, 구리고 밑흙 위에 유기물을 포함하는 겉흙이 그것이다. 겉흙 중에 실제 농작물이 뿌리를 내리는 표층의 흙을 몽고메리는 O층이라 했는데, O층의 흙이야말로 먼저 뿌리내렸던 유기물이 쌓이고 쌓인 영양분 덩어리라고 설명한다. 그 흙이 보전되어야 우리는 문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19세기 프랑스의 문호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은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고 일찍이 말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다윈은 지렁이들이 흙에 파묻히는 유기물을 먹으며 기름진 흙을 해마다 0.25에서 0.6센티미터 씩 밀어올리므로 에이커 당 10에서 20톤의 흙을 만들어낸다고 연구했는데, 미국 미시시피 강은 1초에 덤프트럭 한 대 분량의 겉흙을 카리브 해로 실어보낸다고 말한다. 이는 미국 모든 가정에 해마다 픽업트럭 한 대 씩 나누어줄 양이라는데, 세계적으로 최근 240억 톤의 겉흙이 침식돼 해마다 사라진다고 서글퍼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람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대략 11000년 전부터 침식은 있었다.

 

수렵채취에서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정착을 선택한 인류는 재배한 식량 이외에 따로 먹을 게 거의 없어졌고, 따라서 농사는 생존을 위한 필수 행동이 되었다. 그런데 한 번의 추수로 한해를 견뎌야 하는 조상이지만 갈무리 때 생기는 잉어 덕택에 인구를 조금씩 늘렸고, 늘어나는 인구만큼 경작에 대한 압박은 거셀 수밖에 없었다. 관개농업을 구상해 한숨 돌렸지만 그것도 잠시, 거듭되는 관개는 소금기를 흙에 올라가게 하면서 수확량이 감소하니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면 마을을 버릴 수밖에. 샤토브리앙은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을 염두에 두지 않았겠지만, 우리가 아는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문명을 위시로 대부분의 문명 뒷자리는 결국 사막으로 버림받았다.

 

쟁기가 발명되면서 경작 면적은 더욱 확대돼 나무로 뒤덮은 산기슭을 파헤치기에 이르렀고 인구는 그만큼 더 늘었지만 흙은 무자비하게 빗물에 쓸려내려가고 말았다. 그러자 빗물을 막아보자고 강 양안에 제방을 쌓고 강줄기를 댐으로 막았더니 그만, 흙이 저수지 바닥에 퇴적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강바닥의 높이가 점점 상승하는 게 아닌가. 중국 황하의 경우, 현재 많은 도시와 마을이 수면 수십 미터 아래 위태롭게 놓여 있는 실정이다.

 

물 수십억 톤을 모으는 대형 댐이 거대한 강을 틀어막는 요즘은 사정이 어떨까. 저수지 물을 도수관으로 흘려보내는 지역은 잠시 수확량이 늘어 인구 증가를 허용하지만 지나친 관개는 머지않아 흙에 소금이 베어들게 할 것이다. 까마득히 오래 전부터 상류에서 퇴적된 흙 속의 유기물로 풍요를 구가하던 지역은 댐이 완공되는 순간 버림받는다. 아스완 댐 완성 이후 퇴적되는 흙을 잃은 나일 강 삼각주가 오늘날 그렇다. 퇴적물이 지나치게 쌓이면 댐은 기능을 잃는다. 흙을 지키려면 강을 지키고, 강을 지키려면 산을 지켜야 하건만, 요즘 우리나 미국이나 전 세계 어디나, 그 반대로 가기만 한다.

 

가축이 끄는 쇠 쟁기가 깊은 곳의 유기물까지 쉬지 않고 뒤집으면서 겉흙이 쓸모없게 버림받자 일군의 과학자들은 녹색혁명이라는 기치로 화학농업을 도입했다. 하지만 화학농업은 얼마 가지 않아 흙에 독약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지금 많은 농경지는 그 독약이 없으면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문명국가들이 그렇지만 세계의 식량창고라 일컫는 미국이 특히 그렇다. 녹색혁명 초기, 농작물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재배되자 성급하게 환호했지만 화학비료가 없이 자라지 않는 다수확품종은 금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제 증산은커녕 감산을 면하기 위해 화학비료를 듬뿍 뿌려야 한다. 석유를 가공하여 만드는 살충제와 제초제도 여러 차례 뿌리지 않을 수 없다.

 

녹색혁명의 어파로 흙에 남으려던 가족농과 소농이 수입을 잃고 땅을 떠나자 그 땅마저 차지한 산업농은 석유를 펑펑 소비하는 무거운 경운기와 탈곡기와 콤바인을 사용해 땅을 꾹꾹 누르며 경작하지만, 흙이 유실된 상태에서 언제까지 소기의 수확이 가능할지, 몽고메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석유 위기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석유 농업을 계속 고집한다면 머지않아 인류에 큰 재앙이 닥친다고 걱정하는 거다. 유전자 조작이라는 생명공학이 해결책을 모색해줄까. ‘아서라!’고 손을 흔드는 의 저자는 생명공학을 화학농업의 선구자인 녹색혁명의 연장선으로 본다. 흙의 가치를 근본에서 말살하는, 아니 오히려 훨씬 위험천만한 방법이므로.

 

흙이 사라지자 서구문명은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 식민지의 흙을 착취해 자신의 문명 규모를 더욱 키웠지만 이내 더욱 큰 한계에 부딪혔고, 아프리카와 중남미에 들어가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흙을 착취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서구 문명의 규모는 감당할 수 없이 막대해졌다. 그러자 비로소 위기를 느낀 걸까, 신선한 농작물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어려운 도시에 고층의 수직 농장 빌딩을 지어 수경재배하자고 벼르는 이가 생겼다. 하지만 몽고메리는 그 알량한 효과는 한시적일 따름이라고 못 박는다. 초기 건설자본 이외에 누가 이익을 챙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 절박한 사정의 흙을 보전할 대안은 무엇이어야 할까. 몽고메리의 생각은 쿠바와 같은 도시농업이다. 자투리땅에 퇴비를 사용하는 유기농업으로 이웃과 자급하는 농업이다. 거기에 가축과 사람의 배설물을 사용하면서 흙에 유기물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행동이다. 덩치가 큰 산업농은 대안을 실천하기 부적당하다. 흙을 먼저 생각하는 소농이나 가족농이어야 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쳐 미국 독립혁명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패트릭 헨리는 가장 위대한 애국자는 흙의 침식을 가장 많이 막아낸 사람이라 했다고 몽고메리는 덧붙이면서 세계의 농부, 정부, 전문가들이 모두 힘을 모아 흙을 살리는 소농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강조한다. 탐욕으로 사라지게 만든 흙을 생존을 위한 책임감으로 되살려내지 않으면 내일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지금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이 누구일까. 기상이변은 세계 곳곳에서 해마다 심해지기만 하는데. (사이언스타임즈, 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