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5. 8. 00:55

 

자연에 대한 존경심 회복을 운동 목표로 하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해마다 보전해야 할 자연에 풀꽃상을 드린다. 2006년 그 단체는 풀꽃상 본상을 자전거에 드렸다. 비록 자연물은 아니지만, 자연과 사람을 가장 부드럽게 이어주는 공산품이므로 자전거에 풀꽃상을 드린 그 환경단체의 선정 이유를 들어보자.

 

자전거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공간을 난폭하게 대하지 않고, 풍경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겸손하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더러 방귀를 뀌는 개인적인 사정 외에는 대기를 오염시킬 일이 전혀 없고, 정기적인 대인대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고, 운동부족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떠날 염려가 거의 없는, 인류가 만든 공산품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입니다. 달리다가 문득 한 발은 페달에, 한 발은 대지에 굳건히 딛고 서서 지나가는 이웃에게 밥 먹었니?” 하고 물을 수 있는 자전거는 사람과 사람을 정으로 연결시키기까지 합니다. 풀꽃세상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자주 자전거를 타기 바라는 마음에서 제8회 풀꽃상을 자전거에게 드립니다.”

 

우리나라 제일의 자전거 모범도시라는 이유로 경북 상주시가 당시 특별상을 받았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는 드물다. 자전거도로와 관련 편의시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아직 자전거에 대해 양보하고 배려하려는 운전자의 마음가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러니 그저 운동 삼아 식구들과 안전한 공간에서 잠시 페달을 밟을 뿐이다.

 

국토해양부는 경인운하 양측을 따라 폭 5미터 이상의 자전거도로를 부설해 기존 한강의 자전거도로와 연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20킬로미터의 자전거도로가 운하 양측에 부설되면 수도권의 주요 하천의 자전거도로에서 두서너 시간이면 인천에서 낙조도 즐기고 회도 곁들일 수 있는 레저와 여가문화의 획기적 변화를 만끽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기대를 부풀렸다. 이제 그 운하의 인천 쪽 터미널에 횟집을 잔뜩 유치할 일만 남은 셈인가.

 

지난 달 중순, 상주시에서 열린 자전거 축전 개막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자전거 산업과 자전거 이용을 녹색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언급하면서 “4대강이 다 되고 나면 4대강 유역에 전부 자전거길이 생긴다.”고 밝히고 상주에도 100만 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이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인근 4대강 사업의 낙동강 구간에서 노동자 2명이 사망한 지 불과 3시간이 지난 뒤 가진 축전 개막식에서 자전거 동호회와 네덜란드 대사를 포함한 내외빈이 1킬로미터를 달리며 대통령은 활짝 웃었지만, 100만의 외국 관광객들이 왜 상주까지, 무엇을 타고 올지 일체 설명하지 않았다. 차라리 선동이었다.

 

자전거 이용이 활발한 유럽과 일본의 많은 시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주로 이용한다. 그러니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작심하고 자전거로 여행을 즐기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 이용자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자전거 여행은 마을과 도시 내에 편리하고 안전한 자전거도로가 구비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처럼 마을에서 이용하기 불편한 상태에서 먼 도시와 관광지를 잇는 자전거도로는 고급 자전거를 소유하는 극히 일부 동호인의 잔치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

 

자동차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므로 자본이 생각하는 성장과 거리가 있는 자전거는 누구나 쉽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하는데, 마을을 벗어나는 자전거도로는 진정한 녹색과 거리가 있다. 출퇴근은 직장이 가까울 때나 가능한 일이다. 장거리를 위한 고가의 경량 자전거는 위화감을 일으키기 십상이고, 30분이 넘는 자전거 이용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레저를 위해 4대강 유역을 파헤치고 유기농단지를 매립하는 자전거도로는 토건족의 이익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전거는 마을에서 이웃을 이어주는 마음의 도구여야 한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이웃 사이의 위화감 유발시킬 자전거도로는 자전거의 존재가치를 위배할 따름이므로 예산이 있다면 마을의 자전거 문화부터 고양해야 한다. (기호일보, 2011.5.13)

 
 
 

도시·인천

디딤돌 2009. 8. 5. 12:53

 

지구온난화의 여파인가, 정말 올 여름 장마는 지루하다. 중국 양자강 쪽에서 몰려드는 수증기까지 포함해 국지성 호우마저 뿌리자 부산은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기도 했다. 올해는 이대로 물러서지만 내년에는 어떨지,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탐욕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 이런 건가 싶다.

 

장마가 온천지의 오염물질을 씻어내자 여기저기에서 맹꽁이가 운다. 오로지 장마철에만 우는 맹꽁이는 옛 가요에 나오듯 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는데, 요즘은 하필 녹지를 허는 대형 공사장이나 그 예정지에서 울어 사람의 막다른 탐욕의 진정을 요구한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2급인 까닭에 개발주체는 보전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뉴타운과 인천 굴포천 자연형 하천부지에서 일찌감치 공존을 요구한 맹꽁이는 얼마 전 인천 계양산 골프장 부지에서 생태계 복원을 청원해 그 추이가 궁금해지는데, 오페라하우스와 공존하자고 노들섬에서 울더니 최근에 신정동 아파트부지에서 복원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라졌다 여겼던 맹꽁이가 쓰레기매립장이었던 월드컵공원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더니 요즘은 여기저기 공사장에서 공존을 요구한다. 한밤의 억수 같은 빗속에서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울음소리가 분명하니 철근콘크리트에 둘러싸인 시민들은 반가워했고, 그를 반영해 맹꽁이가 출현하는 대부분의 공사장은 맹꽁이 서식공간을 다소 배려하며 공존을 모색해왔다. 그 낌새를 눈치챈 걸까. 올 장마철에는 유난히 맹꽁이 울음소리가 컸다. 이러다 환경부가 보호대상종에서 빼겠다 으름장 놓을까 덜컥 겁이 날 정도로.

 

한여름을 적신 장마는 한 보름 정도 여기저기 빗물을 모을 텐데, 맹꽁이는 알에서 올챙이를 거쳐 작은 맹꽁이까지, 모든 걸 그 시간 이내에 마쳐야 한다. 장마철 한 달 남짓, 맹꽁이에게 허용된 시간은 대략 그 정도다. 그때 사생결단으로 짝을 찾아야 하는 맹꽁이에 대한 우리의 체계적인 생태조사는 아직도 부실하다. 막 변태한 어린 맹꽁이가 이듬해 갑자기 자라서 나타나는 건 아닐 텐데, 어디에서 어떤 먹이를 어떻게 먹고 어디에 숨어 사는지 통 모른다. 생명공학에 붓는 연구비의 이자에 이자만 투자해도 될 일인데, 우리는 기초 없이 화려한 누각의 지붕부터 올리려 한다.

 

최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존경심 회복”을 위해 운동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맹꽁이에 제15회 풀꽃상을 드리기로 결정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감히 자연물에 상을 줄 수는 없는 일! 그 출현으로 우리의 탐욕을 반성하게 이끄는 맹꽁이에게 풀꽃상을 드리면서 사람도 자연과 공존할 때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바라고 있다. 맹꽁이가 여기저기에서 우는 건 농약이 드물어진 습지가 오로지 거기뿐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거기까지 와서 우는지 헤아리며 더는 삭막해질 수 없는 인간을 위해서라도, 도시 곳곳의 습지를 살려 맹꽁이를 내년 이후에도 만날 수 있길 희망해본다. (경향신문, 2009년 8월 12일)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2. 1. 08:50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거기는 우리의 고향이다. 거기에 엄마소를 닮은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칡소가 살았다. 칡소? 칡을 먹여 키웠나? 1930년대 이전에 10마리 중 한 마리였다는 칡소는 지금은 보존이 필요해질 정도로 매우 희귀해졌다.

 

우리가 쉽사리 생각하던 얼룩송아지는 어린 젖소다. 젖소에도 당연히 수컷이 있고, 종우로 간택되는 행운을 건지든 그렇지 못해 태어나자마자 고기용으로 팔려나가든, 그 수컷도 대비되는 희고 검은 무늬가 두드러진다. 한데 정지용의 ‘향수’에서 해설피 우는 얼룩빼기 황소는 우유 생산용 홀스타인 품종의 젖소 수컷이 아니다. 몸에 칡을 감은 듯 거무튀튀한 호랑이 무늬가 세로로 얼룩거린다. 그래서 칡소이며 호반우(虎斑牛)다.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1920년대 정지용의 기억에 뿌리내린 얼룩빼기 황소와 1916년에 태어난 박목월이 1930년대 노래한 얼룩송아지는 우리의 고향인 농촌을 상징한다. 칡소가 몹시 드물어졌다는 건 우리가 자신의 고향에 대한 관심을 그만큼 잃었다는 의미다.

 

가을걷이 마치고 볏짚은 물론이고 쌀겨와 콩깍지, 가끔 식욕 당기게 하려 고구마 순이나 무청을 잘 말려 보관하던 시절, 고향의 소는 오랜 살림 밑천이었는데, 우골탑이 농촌 공동체를 무너뜨리면서 소는 한낱 음식 재료가 되고 말았다. 우시장에서 들여온 비쩍 마른 수송아지를 밭이랑 갈고 써레질 도맡을 수 있을 만큼 듬직하게 살찌웠을 즈음, 맏상제 학자금으로 잘 키운 소 팔아넘겨야 했던 우리네 농군의 가슴은 미어졌을지 모른다. 그래서 당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했다. 고향을 발전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우골탑을 졸업한 청년이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에 최첨단 과학농산을 도입하면서 적막해진 농촌은 돈 앞에 무력해졌다. 이윽고 얼룩송아지를 어린 젖소라 생각하게 되었고.

 

전국에 몇 마리 남아 있지 않은 칡소는 호랑이 무늬가 어색하지 않게 용맹할 뿐 아니라 힘이 장사라서 소싸움에서 진가를 발휘하지만 사람에게 더 없이 온순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창원에서 열린 ‘전국 민속 소싸움 대회’에서 우승한 6살 칠성이가 바로 칡소 아닌가. 한우보다 사나워 사료를 먼저 차지하지만 초기 성장속도는 느린 칡소는 20개월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몸집이 불어나 800킬로그램 이상 나가는데, 육질이 좋고 고기 맛이 빼어나 수라상에 오를 정도라고 사육농가는 힘을 준다. 칡소에 대한 자부심이겠으나 비육 경제성에 한계도 있다. 번식은 빠르지만 사육 기간이 길어 사료값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칡소는 한우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니 보급이 쉽지 않은 것이다. 희귀하다 못해 차라리 멸종 위기인 칡소의 보존과 보급은 차원이 달라야 한다.

 

칡소를 모르는 육유 종사자에 의해 잡종 취급받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소연하는 10여 칡소 농가들은 ‘전통칡한우협의체’를 꾸려 보존과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 전국에 300두 남짓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와 동의보감에 기록돼 있으며 서기 357년 축조된 평양 소재 고구려 16대 고국원왕 안학3호분 벽화에 흑우와 황우 사이에 등장하는 칡소는 왜 자취를 감춘 것일까. 고구려 이전부터 일제 강점기 초기에도 두루 사육했던 칡소가 갑자기 사라진 연유는 삽살개가 자취를 감춘 까닭과 비슷할지 모른다. 어쩌면 삽살개보다 더욱 철저했을 수 있다. 화우(和牛)의 개량을 위해 흑우와 함께 칡소를 반출했다는 기록이 일본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일제가 물러간 이후에도 칡소는 정부에 의해 잡종 취급을 받았다. 1960년대 황우 단일화 정책으로 칡소의 씨를 말렸다는 게 아닌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강원도 영월, 정선, 태백과 같은 오지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칡소가 이제 토종의 존재로 인식돼 보급되기 시작한 데에는 고집스레 칡소를 사육해온 농가의 힘겨운 노력이 기반이었으며 그와 더불어 유전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축산위생연구소의 공로가 크다 하겠다. 그 연구소의 품질인증서 덕분에 고급 한우에 필적하는 가격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개체수가 적은만큼 유전자원이 절대 부족한 칡소의 안정된 보전을 위한다면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수정란을 이용한 인공증식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런 짝짓기를 유도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우울하다. 과학을 앞세우는 축산업은 칡소를 고급 한우 이상의 비육우로 품종을 개량해 보급하려 들기 때문이다.

 

볏짚과 고구마 순이 쇠죽이 되고 쇠똥이 거름이 되던 시절, 학교 다녀온 아이들이 방죽으로 몰고나가야 했던 소는 우리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나 경운기와 콤바인이 보급된 이후, 오늘의 소는 다음 세대를 스스로 이을 권리마저 빼앗겼다. 출산하자마자 한 방울의 우유도 제 새끼에 줄 수 없는 젖소와 달리 고기용 소는 젖니가 빠질 20개월 무렵이면 일제히 도살되지 않던가. 송아지에 성장호르몬을 주사하는 사람은 되새김질을 불가능하게 하는 옥수수와 콩을 먹일 뿐 아니라 심지어 먼저 죽은 소의 내장과 뼈까지 강제로 넘기게 했다. 그래서 소와 그 쇠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광우병이 거푸 발생했지만 과학이 진두지휘하는 축산업은 도무지 관성을 버리지 않는다. 떼죽나무를 구부린 코뚜레 대신 번호표를 귀에 다는 요즘, 소는 차라리 ‘숨 쉬는 햄버거’라고 한 시인은 탄식한다.

 

이중섭의 역동적인 그림에 숱하게 나타나는 칡소를 기억하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2008년 11월 16일 “쇠잔등의 파리를 쫓아주는 마음을 담아” 제14회 풀꽃상 본상을 칡소에 드리면서 칡소의 명맥을 잇느라 10년 이상 애써온 젊은 농부에게 그 부상을 전했다. “소가 풀을 뜯는 세상이 참세상”이라고 주장하는 환경단체답게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수천 년에 걸친 농경문화를 함께 일궈온 소를 오직 식용으로 취급하며 동물사료를 먹이는 만행을 저지른데 반성하면서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회원과 되새긴다. 2009 기축(己丑)년은 소띠의 해다. 이제라도 칡소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전원생활, 200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