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09. 10. 19. 23:31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지요? 오늘 처음 만나는 학생들도 있네요.

 

여러분도 연예인 좋아하지요? (네) 요즘 어떤 연예인들이 제일 인기가 있어요? 소시? 소시가 뭐죠? 아. 소녀시대요. 그리고 또 있잖아요. 여자들 많은 그룹요. (원걸요) 원걸은 뭐죠? 아, 원더걸스요. 그렇군요. 그럼 소녀시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친구가 누구에요? (서현요~ 티파니요~) 저는 누군지 모르겠어요.

 

그 소녀시대가 인천도시축제를 하는데 거기 홍보대사를 해요. 저는 집이 인천인데요. 인천시민들이 소녀시대가 어떤 홍보대사인지는 모르고, 그저 광고에 자주 나오는 가수라는 걸로만 알고 있더군요.

 

여러분들도 알지요? 강원래 라는 가수요. 그 사람이 클론이라는 인기그룹에서 활동했었죠. 강원래가 다쳤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안타까워했지요. 요즘 만약 소녀시대의 서현이가 다친다면 사람들이 많이 슬퍼하겠죠. 문병도 가구요.

 

클론이라는 게 생물학에서도 많이 나오는 용어에요. 저는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아는데 여러분들도 들어봤나요? 복제를 클론이라고 해요. 강원래와 구준엽은 생긴 모습이 서로 다르잖아요. 그런데 클론이라고 그래요. 아마 둘이서 단짝이라서 그런가 봐요. 클론이 활동할 때 ‘꿍따리샤바라’라는 노래로 인기가 있었잖아요. 노래가 아주 박력 있어 좋아했어요.

 

지금 강원래는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지금도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어요. 구준엽도 그룹 해체 이후 나름대로 활동을 잘 하고 있어요. 젊은이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좋아 보입니다.

 

저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인데요. 원래 글이라는 것은 제목이 재미있어야 사람들이 잘 봐요. 여러분들도 인터넷 많이 할 텐데, 제목 따라 글을 읽게 되잖아요. 그런데 실망할 때가 많죠. 제목을 짜릿하게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요. 한데 내용은 별 게 없거든요. 그런 식의 풍자가 우리 사회에서는 만연되어 있죠.

 

대학도 보면 그래요. 수업의 내용과 담당하는 교수도 바뀌지 않았는데 수업 이름이 달라져요. 농업대학들이 바꾸는 이름들도 참 야릇해요. 교수들이 바뀐 것도 아니고 구태의연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름만 싹 바꿔서 많은 학생들을 혼란시키고 속이죠. 일종의 작전입니다. 일단 학생들이 입학하면 되물릴 수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정책도 그렇죠. 운하한다고 사람들이 야단하니까 4대강 살리기 식으로 말을 바꿨죠. 제목을 재미있게 해야 인기가 있는데 저는 그런 것이 속임수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인터넷에 글을 쓰면 딱 보면 알아요. 조회수가 가장 적은 게 바로 제가 쓴 글이에요.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되었는데 예전에는 하이텔, 천리안이라는 공간이 있었어요. 플라자라고 제일 큰 광장이 있었어요. 일이십 분 지나면 다음 화면으로 바뀌는 정도로 영향력 있는 pc통신 공간이었는데 제가 글을 올리면 아주 적은 조회수가 나와요. 그런데 어느 날 봤더니 조회수가 6,000회에요. 다른 사람들은 2-300회 정도인데 말이에요. 그 때 그 글의 제목이 ‘위험천만한 클론’ 이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클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다쳤나 하고 본 거지요. 얼마나 실망을 했겠어요. 저는 그냥 생명공학에서 복제가 얼마나 위험하냐, 라는 글을 쓴 것이었어요. 다음부터는 더욱 솔직하게 제목을 써야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오늘 가수 강원래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어요. 휠체어를 타고 있고, 과거의 역동적인 춤은 출 수 없지만 여전히 멋진 가수라고 생각해요. 물론 역동적인 춤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못 춰요. 역동적인 춤도 아름답지만 나이 들고 늙어서 부르는 노래도 아름다울 거에요. 또 휠체어에 앉아서 노래 못 부르는 거 아니잖아요. 휠체어에 앉아서 노래 부르는 가수들 많아요.

 

박지성 선수 축구 잘하죠. 박지성 선수가 처음 나왔을 때 얼굴을 보고 별로 멋있다 라는 생각이 안 들었죠. 그렇지만 지금은 참 멋있어요. 얼굴이 아니라 축구를 하는 자세와 자신감, 긍정적 마음이 아름답죠. 박지성 선수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나가지 않고 2011년에 대표팀 은퇴를 한다고 했죠. 그것은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후배들은 나올 것인데 그때도 체력이 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솔직한 마음이었죠. 나이든 박지성은 여전히 멋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 긍정적인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은 살아가는 과정이나 체력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죠. 가수들 중에서는 나이 속이고, 성형 수술하고, 피부 고치고, 잡티 없앤다고 비싼 화장품 발라서 나이 마흔에 스무살 피부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아요. 오히려 추해 보이죠. 나이에 맞는 태도와 행동, 마음가짐을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아름답다고 봅니다. 젊음은 참 아름다워요. 봄의 신록은 참 아름다워요. 하지만 그 신록이 무르익는 여름도 아름다워요. 또 가을에 단풍이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가을에 신록이 있다면 참 불쌍하지요. 겨울에 앙상한 가지에 눈이 내리는 모습이 역시 아름다운거구요.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 ‘젊음’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상업주의에서는 위대할지 몰라도 아름다움을 그렇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강원래는 참 아름다워요.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있었어요. 강원래가 잘못해서 교통사고가 난 것은 아니었죠. 우리나라 교통시스템이 문제였고, 연예계의 빠듯한 스케줄이 문제였을 거예요. 결국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고 그 암담한 상황에서 손을 내민 곳이 생명공학이었죠. 제가 전에 쓴 ‘위험천만한 클론’은 강원래 사고와는 무관한 것이었는데 예언한 꼴이 됐어요. 정말 위험천만한 ‘클론’이 되어버렸잖아요. 강원래가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생명공학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너무 쉽게 현혹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어요.

 

처음에 물어봤지만 소녀시대의 서현이나 티파니가 다쳐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공학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하면 사회분위기는 어떨까요? 그 때 저 같은 사람이 ‘안 된다, 그것은 더 위험하다’고 말하면 나한테 어떤 공격이 들어올까요? 한 번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거예요.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은행에 처음 문 열 때 잘 안 들어가요. 은행 문 열고 처음 들어가면 은행원들이 서 있다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알지 못해요. 저는 그런 인사 받기가 싫어요.

 

그거와 똑같습니다. 나의 개성을 파악하지도 않고 덮어놓고 아는 척, 친한 척 하는 것은 상업주의에요. 우리가 티파니를 아름답게 보는 것은 노래를 잘 하고, 각선미가 좋고, 얼굴이 예뻐서이기도 하겠지만 티파니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각선미와 얼굴 때문이 아니라면 개성을 살펴봐야 해요. 우리 사회가 아직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아름다움의 전형을 만들어 놓고, 그런 전형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기에 엉뚱한 데 몰두하게 된 거죠.

 

그런 분위기에 과학이 앞장서고 있어요. 이런 것이 좋은 것이다, 식의 현혹된 얘기들을 많이 해요. 예를 들어보면 스페인과 아프리카 사이에 지부로터 해협이라고 있어요. 그곳은 상당히 물살이 빨라요. 거기엔 다리가 없습니다. 다리가 있으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넘어올까 봐서요.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밤에 배 타고 넘다가 많이 죽어요. 요즘 다리를 놓겠다고 하는데 다리를 놓는 이유도 재미있습니다. 다리를 놔야 그 사람들이 배를 안타고 올 것이고, 다리를 놔서 걸어오면 흑인들을 걸러낼 수 있다, 라는 것이죠. 결코 흑인을 받아주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리를 놓든 안 놓든 흑인들이 스페인을 넘게 되는 이유는 많이 있을 거예요. 흑인들이 유럽에 가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 아프리카가 정말 살기 어려우니까요. 왜 살기 어려워졌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덮어놓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난해, 불쌍해, 라고 보는 것은 우리가 생각을 너무 짧게 하는 거예요.

 

스페인은 그 다리를 건너 넘어오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먹고 자고 병 걸리면 치료하게 해준다는 것을 일단 내세웁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폭이 넓다는 것을 자랑하지요. 하지만 상대적인 가난이라는 것이 있어요. 아프리카에서는 당장 죽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라도 해주면 고마울 것 같지요. 그렇게라도 넘어가지만 유럽사회에 사는 게 참으로 비참하거든요. 손가락질 받고, 자기 자존심은 다 뭉개지는 것이죠. 그래서 심한 고통에 휩싸일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어디로 가냐 하면 농장으로 갑니다. 스페인은 15세기 제국주의가 시작될 때 범선을 만들고, 신의 이름으로 중남미를 지배했죠. 그 역사를 보면 참 끔찍해요. 여러분들이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세요. <바야돌리드 논쟁>이라는 책인데요. 라스카사스 신부와 기독교, 천주교 이론을 공부한 신학자의 논쟁이 담겨 있어요. 그 책을 보면 어떻게 사람을 놓고 저렇게 논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신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해석하면서 별 짓을 다 합니다. 그런 역사를 들춰보면 괴롭죠. 원주민들을 신의 이름으로 박해할 수 있냐라고 제기하는 신부와 교묘하게 정당화시키는 기독 신학자와의 논쟁 속에서 추기경이 개입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보면 생각이 많이 바뀔 것 같은데요.

 

스페인은 관광객이 많이 오는 나라에요. 울창한 숲이 많았던 나라인데 숲을 베어 범선을 만들고, 숲이 사라지니까 사막이 되었어요. 비가 안 오니까 유럽 사람들이 휴가를 오지요. 그대로 놔둔 사막이 돈벌이가 됐어요. 요즘은 사막을 그대로 두기 아까우니까 올리브 나무를 심어서 수출을 해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올리브를 그곳에서 수입을 하죠.

 

거기에 비닐하우스가 많아요. 우리나라에도 비닐하우스가 많죠. 우리나라 대통령은 비닐하우스를 걷어서 거기에 아파트를 짓자고 했죠. 스페인의 비닐하우스는 우리나라와 다릅니다. 그곳은 눈이 안 오잖아요. 여름에는 우리나라처럼 후덥지근하게 덥지도 않고 건조하게 더우니까 견딜만해요. 그리고 겨울에도 따뜻하구요. 그래서 그런지 해안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려요. 유럽 사람들이 잔뜩 와서요.

 

거기에 있는 비닐하우스는 작다면 이 교실 만할까요? 높이도 이 교실보다 조금 낮을 겁니다. 비닐을 하도 오래 사용해서 너덜거릴 정도지요. 이런 비닐하우스가 수없이 붙어 있어요. 아마 크기로 보면, 홍동면 전체가 비닐하우스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비닐하우수에선 흙에 씨를 심지 않아요. 유전자가 단순한 씨앗을 유리솜에 일제히 심어요. 수경재배를 하는 거죠. 유리솜에다 씨앗을 기계로 콕콕 심어놓고, 거기에 주사바늘이 나와서 잘 계산된 영양분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져요. 그 물은 씨앗이 나올 때 어떤 성분이 필요한지 온도와 습도량을 계산해서 과학적으로 연구해 식물에게 갈 수 있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동시에 싹이 나고, 동시에 넝쿨이 올라오죠. 동시에 우리가 자주 즐겨먹는 ‘가지’의 꽃이 피고 수많은 가지 줄기에 동시에 열매가 맺죠. 그리고 동시에 가지를 출하해야 해요. 출하기간은 한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그 넓은 곳을 동시에 일해야한다면 그 힘든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기계가 상당수 하겠지만 기계가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바로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이 그런 일에 동원됩니다. 순식간에 해야 되는 일이기에 흑인들이 과로사로 쓰러질 정도지요. 기계로 포장되고, 트럭에 모여서 전 세계로 갑니다.

 

원래 유럽의 알바니아 같은 나라는 옛날 전통방식으로 농사를 짓거든요. 노래도 부르고, 새참도 먹으면서요. 거기는 가지가 다양해요. 꽃피는 시기도 다르고,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어요. 그런 것은 비싸거든요.

 

근사하게 보이고, 누가 보아도 맛있어 보이는 것, 일률적으로 똑같은 가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과학이 한 일입니다. 그것은 유전자를 완벽하게 동일하게 조작해서 같은 시기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 만든 것이죠.

 

가지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는 많은 농작물이 그렇습니다. 계란도 그래요. 조금 있으면 삼계탕 많이 먹겠지요. 삼계탕의 닭은 35일 키우면 뚝배기에 쏙 들어갈 정도가 됩니다. 40일이 지나면 뚝배기에 안 들어간다고 그래요. 30일 키우면 또 너무 작아요. 삼계탕 집 뚝배기는 크기가 비슷하잖아요. 닭 크기를 뚝배기에 맞췄어요. 뚝배기에 맞게 암수를 개발하고 수백 만 마리로 늘려서 인공으로 부화시켜 조건에 맞게 온도, 습도, 물을 계산해서 35일 키워 밤중에 적외선 안경을 쓰고 들어가 확 잡아버린다고 해요. 기계로 처리하면 하룻밤에 100만 마리가 자동으로 처리되어서 마지막에 닭의 뱃속에 찹쌀이 들어간 과정을 거친 후에 묶여서 차곡차곡 쌓이죠. 그래야 중복 날 우리나라 전 국민이 점심시간에 닭 한 마리씩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만약 닭 크기가 제각각이면 난리가 나겠죠.

 

이렇게 만든 닭은 생명체가 아니에요. 닭은 그저 삼계탕 재료에 불과하죠. 그것만 그러나요? 소고기도 마찬가지죠. 아직 개는 그렇지 않은데 아마 합법화 되면 개고기도 그럴 거예요. 저는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데 합법화 하는 것은 반대해요. 그렇게 되면 아마도 과학이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그 이유는 뭐냐! 과학 뒤에 자본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과학은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어렸을 때 과학자 가운을 입고, 과학자들이 우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고 믿었잖아요. 드라마 보면 과학자들 근사하죠. 특히 생명공학자들 보면 얼굴도 잘 생기고 매너 있죠, 성격 좋죠, 돈 많죠. 그리고 또 전부 남자에요. 우리한테 부지불식간에 신호를 줍니다. 의사면 남자, 간호사면 여자라고 배워가죠. 사실 아닌 경우도 많은데요.

 

여러분들 주변에서 과학자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남자들이 많기는 해요. 여학생은 수학을 어려워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그것은 편견이에요. 여학생들도 충분히 수학 잘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남학생들도 수학 못할 수 있어요. 그 표본이 여기 있잖아요. 바로 저요. 수학 충분히 못하면서도 또 과학을 할 수 있어요. 그 편견 속에서 정형화되고, 그 틀 속에서 벗어난 사람을 이단아처럼 취급되는 분위기가 어렸을 때부터 주입되었어요.

 

그 틀을 정형화하고, 틀을 주입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과학을 이용할까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인문학자는 누구냐 하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은 과학을 잘 몰라요. 과학을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고, 이용할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만약 정책 결정자들이 돈을 가지고 ‘이런 과학’을 원한다고 하면, 과학자가 거기에 맞게 설계를 해서 제공을 하는 거죠.

 

 

 

인천의 작은 섬, 굴업도라고 있어요. 총 50만평 정도의 작은 섬이에요. 아름다운 해변이 4개나 있어요. 지질학자들이 보면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해안들인데, 거기에 핵폐기장을 만든다고 한 적이 있어요. 94년, 95년도였는데 열심히 싸워서 막아냈어요. 그 때 과학기술부 차관이 참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과학은 정치의 시녀다” 라구요. 그 말은, 정치가 결정하면 과학은 합리화시킨다라는 것이었죠.

 

과학으로 못할 게 어디 있겠어요? 과학으로 이미 우리나라와 일본이 터널을 만들려고 하잖아요. 일본 측에서 500m 정도 뚫었대요.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도보해협이 있죠. 도보해협이 생기면 좋을지도 모르지만 잃는 것도 많아요. 강에 다리가 생기면 나루터의 추억은 사라집니다. 나루터에 얽혀있는 많은 전설들은 사라져요. 그 곳에 어떤 물고기가 사는지, 어떻게 물이 흘러내리는지 관심이 없어져요.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도보해협을 만들 때 그 모든 것을 연구하느라고 몇 년이 걸렸고 몇 천 페이지가 되는 보고서를 썼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일본하고 연결하는 터널을 만는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지금 4대강을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도 잘 들리지가 않죠. 하여튼 ‘과학은 정치의 시녀다’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학자가 흰 가운을 입고, 멋있고, 똑똑하고 우리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것은 인문학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과학의 기호를 만들고 과학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가설을 만드는 것이죠.

 

우리는 자라오면서 과학이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으로 의식화 됐어요. 언제라도 박수 칠 준비가 되어 있고, 박수 칠 때 되면 박수를 쳐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한번 보세요. 우리가 BT, IT, NT 이런 이야기 하죠. 사실 뭔지 잘 모르죠? 환경 분야도 그래요. 한계치가 뭐고, PPM이 뭐고 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죠? 과학은 전공한 저도 잘 못 알아들어요. 제가 전공한 분야에 귀 기울여도 몇 개월만 소홀히 하면 잘 못 알아들어요. 일종의 진입장벽이라고 합니다. 자기들 끼리 암호인데요. 어려운 말로 일반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듣게 하는 거예요.

 

과학에도 그런 것이 있어요. 과학자가 인문학자들을 솔깃하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이것을 개발하면 큰 이익이 있다, 뭐 이런 식으로요. 특히 생명공학 분야가 그런 예이죠. “강원래를 치료해 줄 수 있어요. 휠체어를 타던 사람이 일어나서 박력 있게 춤을 출 수 있어요” 라고 현혹하는 거죠. 그런 내용의 우표까지 나왔다고 하네요.

 

강원래의 부인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성관계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된 남편을 위해 젊은 여성이 사랑을 버리지 않고 남편의 발이 되었잖아요. 그런데 과학자들의 솔깃한 말에 속아서 생명공학 문제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강원래 부인이 눈물로 호소를 한 적이 있어요. 반대하지 말아 달라구요. 당신의 아이가 그렇게 된다 해도 그럴 것이냐구요.

 

바로 그런 연구를 하는 연구단이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는 1년에 100억 정도의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연구단이 수십 개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연구를 제대로 하는지 파악하려면 윤리위원회가 있어야 되요. 그런 윤리위원회가 있는 연구단은 2-3곳 밖에 없어요. 저도 한 곳의 윤리위원입니다. 10년 짜리 연구의 윤리위원을 8년째 맡고 있는데요. 보통 연구비를 3년마다 주고 마지막에 평가하면서 주거든요. 보통 적게는 1억에서 많게는 6억씩 달라고 하죠. 연구비 신청서를 보면 요란하게 써 놨어요. 6억의 연구비를 투자하면 몇 년 후에는 수십억의 이익이 보장된데요. 그 연구계획서를 보고 연구비를 안 주면 매국노가 될 정도에요.

 

그런데 3년 뒤 연구 결과를 보면 참 터무니없이 나옵니다. “연구를 해 보니까 연구비가 너무 적어요. 연구 인력이 부족해요. 연구 장비가 너무 낡았어요.”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와요. 8년째인데 하나도 원래 장담했던 결과가 나온 게 없어요. 저는 그나마 비윤리적인 것을 하지 못하게 막아요. 연구자체를 하지는 못하게 막지는 못해요. 그런데 나머지 연구단은 그마저도 안 되요. 그런 연구비가 교육과학기술부만 있는 게 아니라, 환경부, 보건복지부에도 엄청나게 많아요. 그것은 과학자들이 인문사회학자들을 속이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황우석이죠. 시대의 사기꾼일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그 사람에게 속을 준비가 되게 배운 겁니다. 인문학자들이 교과서 그렇게 쓰고, 그것에 맞게 과학자들이 이야기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는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다보니까, 시민단체들로부터 많은 정보와 부탁을 받기도 해요. 나라에서 하는 국정감사라는 것이 있어요. 행정부가 얼마나 잘 하는지 감사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죠. 국정감사를 제대로 하는지 모니터하는 일을 부탁 받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파이저라는 회사가 만든 비아그라가 쟁점으로 떠올랐어요. 파이저는 그 약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이익을 남기고 세계 최고가 되었죠. 비아그라는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로 나왔다고 하지만 안 먹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약이에요. 부부간의 사랑은 둘만의 것이지, 그게 반드시 육체적인 관계에 있는 건 아니거든요. 육제만 따지다보면 나이 들면 다 이혼하게요? 파이저는 사람들의 불안을 건드리는 약품을 만들어 부자가 된 회사죠. 우리나라에서 그 약을 시판하게 되었을 때, 국회의원 중에서 의사는 함부로 팔면 안 되니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약사들은 자유롭게 팔아야 한다고 주장해 사회에 쟁점이 되었죠. 그거였어요. 결국은 이해집단한테 행정 처리를 맡기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입니다.

 

과학자들에게 과학이 제대로 가는지 판단해주세요, 라고 아무리 요구를 해도 제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되느냐! 바로 인문으로 보는 과학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인문만 아는 인문학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과학은 좋은 것, 인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힘이 세지면 과학은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죠.

 

또 이런 것도 있어요. 대륙간 탄도미사일 끔찍한 거죠? 그것은 과학자 한 사람이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과학자 수십 만 명이 참여했어요. 과학자 개개인은 탄도미사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연구를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화학 연구, 지질 연구, 지리 연구. 열역학 연구와 같이 많은 분야들이 쪼개져서 연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그 연구들을 모으고 모은 다음에 탄도미사일로 완성하는데, 마지막에 참여하는 과학자는 따로 있어요. 과학이 나누어졌다는 것이죠. 서울대학교 박사과정이 10명쯤 된다 하면 한 명 한 명이 연구 프로젝트를 맡아요. 박사과정 밑에 석사과정 사람들도 있겠지요. 박사과정들은 다른 박사과정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대충은 아는데 정확하게 어떤 연구를 하는지 몰라요. 석사과정들은 더 모릅니다. 다만 자신들의 연구만 할 뿐이지요. 옆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래층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이런 연구들을 모아모아 탄도미사일을 만들고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세계를 지배할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나노테크놀러지를 만든다는 거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되는가! 나노테크놀러지 위험성에 대해 알고, 마이크로소프트회사가 전 세계의 다양성을 해치는 것을 알고,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잖아요?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다시 이야기하지만 바로 인문으로 보는 과학이라는 겁니다.

 

저는 다른 나라 사정은 잘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인문계와 이공계로 갈라집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2009년 2월에 졸업한 박성곤 군의 아버지인 것은 알지요? 모르는 학생들도 있겠지만요. 성곤이에게 동생이 있어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에요. 옛날부터 풀무고등부에 입학하려고 살살 꼬셨는데 이놈이 이 학교는 안 간다 그래요. 오기 싫은 녀석 억지로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해서 안 보냈어요. 지금 그 아이가 일반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이공계로 갈지 인문계로 갈지 고민하고 있어요.

 

인생에서 무엇을 할지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생각하면서 이공계와 인문계 중 선택을 하겠죠. 그 때부터 이공계와 인문계는 대화가 안 됩니다. 장벽이 쌓입니다. 그리고 대학에 각자 들어가겠지요. 대학생이 되면 동창회를 하잖아요. 거기서 다른 전공을 택한 친구들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없게 되요. 인문계는 열역학도 모르는 바보들이고, 이공계는 칸트도 모르는 바보들이라며 서로 놀립니다. 결국 각자 자기 길을 가고 맙니다. 하나는 정책 결정자가 되어 과학을 이용하려고 하고, 하나는 정책결정자를 속여서 연구비를 받으려고 하는 거죠. 그렇게 탄도미사일을 만드는 자가 생기고 강원래 같은 순수한 사람을 속여서 과학은 좋은 거라고 막연히 알게 하죠. 실제로 과학에 대해 잘 모르고, 쉬운 이야기도 어려운 말로 푸니까 전문가들에게 맡기려고 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것을 극복해야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극복해야 되는가! 제가 원하는 건데, 이공계, 인문계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두 문화라고 해요. 영국의 스노우라는 사람이 70년 전에 한 말이에요. 이 두 문화를 극복해야 합니다. ‘나는 인문계를 가기 때문에 과학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죠. 정말 필요 없는 과학이 많기는 해요. 저는 명색이 생물학박사인데 DNA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라고 하면 대략 그릴 수 있어요. 꽈배기 그리면 되니까요. 대충 그 정도면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선생님들은 아데닌 구아닌 뭐 이중나선 몇 이런 거 달달 외우라고 하죠. 인터넷 다 나오고 교과서 다 나오는데 그것을 왜 외워야 하죠? 아미노산 구조를 왜 외워야 해요? 시험보고 나면 다 잊어버릴 텐데요. 암기로만 외우는 과학이 아니고 왜 그렇게 형성이 되었고 과학이 만들어지기까지 과학자가 무슨 역할을 했고, 한 사람이 과학자가 되기까지 사회구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DNA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인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문적인 과학입니다. 이런 공연히 복잡하게 만드는 걸 시민의 눈높이에서 흡수할 필요가 있어요. 과학을 아는 인문학자가 과학이 제멋대로 갈 때 문제를 지적해서 바람직하게 고쳐 나갈 수 있어야 해요. 약사하고 의사만 있는 상태에서는 자기들 이권다툼만 하지만, 인문을 아는 사람이 거기에 함께 있으면 그것을 올바르게 지적해서 과학이 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한다는 거죠. 과학이 너무 앞질러 가거나 놓치고 가는 것을 이야기 하면 됩니다. 그리 하려면 여러분들이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해요. 과학에 대해 무관심할수록 그들의 온상을 만들어준다는 거예요.

 

과학을 비판적인 자세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과학자도 마찬가지에요. 과학자들도 인문에 대해 관심이 많아야 해요. 우리가 아는 아인슈타인처럼 바이올린도 켤 수도 있고, 시도 쓰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시인 중에서는 과학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시인들이 덮어놓고 과학을 예찬하기도 해요. 그런 일이 황우석 사태 때 있었어요. 정현종이라는 아주 유명한 시인인데 환경시를 많이 쓴다는 그 시인이 황우석을 예찬한 것을 보면 정말 어의가 없어요. 아무리 유명해도 그 시인의 지식수준이 천박하구나, 를 재확인 한 것이죠.

 

 

 

지금부터라도 여러분들은 과학자, 혹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허상, 시스템을 깨우칠 필요가 있어요.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사람이에요. 등산도 가고 싶고, 놀랠 때 놀래고, 배고플 때 먹으며 사는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갖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그들이 깨어있는 과학자가 됩니다. 실제로 과학자들 앞에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고마워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은 그런 비판적인 생각을 가져볼 기회가 별로 없었답니다. 매일 실험실에서 보고서 준비를 위해 치우고 닦고, 쓰고 연구비 신청해서 또 연구하면서 세월을 보내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말해요. 어느새 나이는 5,60대가 됐는데 과학의 이면을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가수 클론의 사고를 보고도 생명공학 치료로는 위험하다는 것도, 일률적인 가지 생산이 지역사회를 어떻게 파괴하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는 거죠.

 

과학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편견과 인문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라는 편견을 버리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전공하던, 농부가 되던, 음악가가 되던 무엇이든 좋아요. 어떤 기호에 속지 않으려면 교양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어요. 과학에 대한 쉬운 책을 찾아 읽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기 바래요. 과학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질려하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또 속게 되요. 쉽사리 속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엉망으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현실에 대해 여러분들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문화시간 강연, 2009.7.2)

 
 
 

서평·추억

디딤돌 2006. 4. 29. 09:34
 

어떤 모습이든, 이웃과 행복하길 바란다




성곤아! 


엘리엇이라는 시인이 4월은 잔인하다고 했는데, 따스한 5월로 부드럽게 이어져야 하는 이번 봄 날씨가 오락가락 하는구나. 널뛰는 것처럼. 재곤이가 잠깐 열이 나서 엄마와 아빠를 놀라게 했는데 너는 어떨지 모르겠구나. ‘아이와 간장독은 밖에 내놓아도 겨우내 얼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내에 틀어박혀 컴퓨터게임이나 학원공부로 점철하는 요즘 아이들의 삶이 전 같지 않아 옛말도 믿을 수 없지. 그래도 아빠는 풀무학교 마당에서 선배와 친구들과 뒹굴 성곤이를 믿는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키도 더 컸지?


개교하고 처음 다녀가는 날, 앞으로 집에 자주 오지도, 전화도 자주 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엄마가 전하던데, 아빠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여겼어. 방과후는 물론 주말에도 늘어놓고 할 일이 많다는 건, 오늘의 고등학생에게 행운일 수 있기 때문이야. 아빤 어제 동주 아빠를 만났지. 아빠의 후배가 연수구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는데, 그 출정식장에 축하하러 갔다 만난 거야. 너 동주 잊지 않았지? 임동주. 그 녀석도 강화의 산마을고등학교에 신나게 다니고 있다고 동주 아빠는 말씀하시더구나. 그런데 역사가 짧은 산마을고등학교는 방과후 프로그램이 부족해 주말이면 집에 온다고 하신다. 동주 아빠를 비롯하여 아빠가 아는 많은 분들은 풀무학교의 연륜을 부러워한다. 성곤이 네가 집에 자주 오지 못하지만, 경험으로 빚은 연륜이 다져놓은 풀무학교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네가 능동적으로 참여한다고 믿기에, 아쉽더라도 아빠는 믿고 있는 거야. 이번 학부모 모임 때, 네가 보낸 초청엽서처럼 ‘푸르게’ 커가는 너희를 즐거운 마음으로 보려고 한다.


엄마와 아빠는 성곤이가 충분히 짐작하듯, 늘 그 모습 그대로 잘 지내고 있고, 재곤이도 그래. 다만 성곤이의 손길을 잘 타지 못하는 관상어류(성곤이는 매운탕 감이라고 ‘싸이’에 말하더구나. 말 나온 김에 네 싸이에 가끔 들어가렴. 인천중학교 동기, 미래학교의 친구와 후배들이 목 빠지겠더라)들이 좀 서러워하겠다 싶어. 가끔 엄마 아빠 재곤이가 살펴보곤 하지만 성곤이 마음 같지는 않아. 이번에 집에 오면 대대적인 보살핌이 필요하겠지. 엄마는 생명회의에서 요즘 삼국유사를 읽고, 아빠는 복잡했던 ‘풀꽃세상’의 일이 잘 풀려가 한 시름 놓고 있다. 인간관계는 어디 가나 쉽지 않다는 걸 덕분에 잘 깨닫고 있단다. 아빠가 자원활동으로 강의하는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에서 최근 새로운 제안을 받아 고민하고 있다. 만나 식구하고 그 이야기 해볼까?


참, 너, 전태일이 누구인지 『전태일 평전』 읽어보길 바란다. 전에도 이야기하고 책도 보여주었지만, ‘돌베개’ 출판사에서 발간한 그 책, 아마 풀무학교 도서관에 있을 거야. 함께 살아가야 할 민중의 권리가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짓밟히고 외면당했는지 모르는 너희들에게 좋은 양식이 될 우리시대의 고전이거든.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을 내건 기득권이 이기심과 오만으로 핍박하고 조롱했던 민중의 고통과 그 고통에서 해방되려는 민중의 고민을 다소라도 이해하게 만들어줄 거고, 그런 이해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평민을 만드는 풀무학교 정신과 잘 통할 거야. 그 이웃에는 가정, 친지, 선후배, 친구, 스승과 이웃은 물론이고, 그들이 살아가는데 서로 도움이 되는 생태계의 생명가치들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아빠가 좋아하는 녹색평론사에서 출간한 『경제발전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도 읽길 바란다. 역시 풀무학교 도서관이 있을 거야. 경제발전의 허구를 깨닫게 해주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확신하게 해줄 것으로 믿으니까.


재곤이 이야기를 빼놓았나? 요즘도 쑥쑥 자라는 재곤이는 형이 없는 방에서 조금은 쓸쓸해하고 있어. 말 수가 적어졌구나. 조금씩 변성 기미를 보이고 있는 재곤이지만 형과 많은 이야기 재재거리고 싶은 마음일 거야. 영어와 수학 공부를 더 시키려는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아빠지만, 바둑공부에 더 시간 내고 싶어하는 재곤이를 아빠는 충분히 이해하지. 그래서 그런지 재곤이 바둑 실력이 많이 늘었어. 하지만 그러다보니 피곤하고, 아빠가 읽기를 강요하는 <삼국지>도 제대로 손에 들지 못하는구나. 성곤이에게도 강요했던 삼국지는 내용이 좋아서 읽으라는 게 아니야. 삼국지를 알면 그 내용을 가지고 많은 이들과 대화할 때 평생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거지만, 그 보다 너와 재곤이에게 책읽기 습관이 생기길 아빠는 기대하기 때문이지. 책을 손에 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언제든 어디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 아빠가 늘 강조했지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아빠 말, 지금도 잊지 않았지? 전화로도 챙기지만, 요즘 책은 읽고 있겠지? 집에 와서도 재곤이를 위해서라도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지난 4월 9일, 한 주일 늦게 한식 성묘를 다녀왔단다. 너도 짐작했는지 모르지만, 아빠는 성곤이가 오는 놀토를 생각해 일주일 연기한 거야. 작은 아빠는 산소에 올 때 공부를 핑계로 수련이와 성재를 빼고 오곤 하지 않던? 아빠는 그런 모습이 내심 탐탁지 않았고, 성재와 수련이가 풀무학교에 간 성곤이를 보고 싶어하기도 해 일주일 연기했는데 성곤이가 그날 같이 성묘에 가지 못해 아빤 참 아쉬웠던 거야. 성곤이는 싫든 좋든 집안의 장손이다. 장손에 대한 기대는 집안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소라도 갖게 마련이거든. 그 중 아빠가 가장 그 기대가 크지. 그렇다고 집안일을 옛날처럼 몰두하라는 건 아니야. 학교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아빠도 올 설날에 유럽에 다녀오지 않던.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집안의 사정을 미리 알려고 하면서 일을 조정하지 못한 것이란다.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1학년이기 때문일 것으로 이해는 한단다. 학교에서 선배나 선생님들과 가진 약속을 지키는 건 매우 중요해. 하지만, 집안의 사정을 사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면 내용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는 학교일도 열심이지만 집의 사정도 미리 생각했으면 한다. 그래야 집안에서도 자랑스러워 할 성곤이로 성장하기 않겠니. 사회도 집안의 연장이거든.


아빠는 밖에서 자식 이야기 나올 때마다 흐뭇해지곤 한단다. 풀무학교를 아는 사람들은 다 부러워하거든.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분위기에서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는 데 아빠는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계산하지 않는 친구를 선후배를 선생님들을 만나는 학교가 아니겠니. 평생 큰 힘이 될 관계를 가지는 거지. 공부도 그래. 자신의 개성을 알고, 내 신념과 긍지를 지닐 내일을 생각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을 때 가장 재미가 있고 몸과 머리에 쏙쏙 들어가지 않겠니. 그러므로 일단 풀무학교를 즐기길 바란다. 그 가운데, 앞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이 어떤 부분일까를 충분히 고민하면서 말이야. 또한 그 삶이 ‘생태적’이길 아빠는 바란다. 아빠가 생각하는 생태적이라는 것, 나중에 도서관에서 아빠의 책을 찾아 읽어보렴.


고향을 잃은 세대에서 커가는 이 시대 대부분의 청소년과 인생의 짧은 시간, 하지만 인생관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시간에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성곤이를 아빠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재곤이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점철되는 회색도시에 맡겨져 있어. 그래서 아빠는 재곤이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단다. 성곤이가 재곤이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아빤 희망해. 어려서부터 크게 다투지 않으며 다정했던 형제애를 커가면서 새롭게 다져나가야지.


한 해 중 신록이 솟아오를 때 자연은 가장 아름답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바로 너희들의 세상이 열리는 때이기도 해. 평생에 걸쳐 아쉽고 자랑스러워하는 아주 짧은 시간이야. 그 시간 후회 없이 구가하길 바란다. 나중에 무슨 일을 하던, 이웃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바기 때문이야. 그럼 5월 4일, 학부모 모임 때 만나자꾸나.


2006년 5월 1일, 성곤이를 사랑하는 아빠가.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6. 3. 24. 17:10
 

제가 잘 알고 존경하는 영문학자 한 분이 계십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그 분은 지구는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타고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형국이라고 비유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사실 그런 측면이 강합니다. 기왕 떨어지는 것, 모르겠다, 에이 모르겠다, 즐기자? 그래야 할까요? 아닙니다. 세상이 그렇더라도 우리는 극복해야 합니다. 시민운동이 필요합니다.

 

시민운동은 그렇게 자포자기하지 않아야 가치가 있겠죠. 시민운동, 힘들어도 희망을 찾아 가는 행동입니다. 그런 시민운동은 따라서 낙천주의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민운동가만이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나서야 할 일이구요. 고등학교만 마치고 침팬지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나 제인 구달 여사는 현재 세계적인 침팬지 학자가 되었습니다. 그 분이 쓴 책 『희망의 이유』도 절망적인 상태에서 희망을 찾자는 절박한 마음의 발로입니다.

 

서로 개성을 존중하는 풀무학교의 건강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자라나는 학생들, 졸업, 아니 창업하면 사회로 나가게 됩니다. 대학도 부딪혀야 할 사회의 한 부분입니다. 사전에 충격을 견딜만한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늘은 여러분들께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현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창업하면 만날 환경이니까요.

 

『아픈 아이들의 세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세대’라고 한 시대의 특징을 잡아 이름을 붙이길 잘 하는데, 생태경제학을 공부한 저자는 2000년대 첫 세대인 지금을 그렇게 규정했어요. 아픈 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발생될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거지요. 아주 작은 입자에 해당하는 피엠텐(PM10-1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미세입자)의 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사람, 특히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아져요. 지금 태어나는 아이의 80%가 아토피라고도 하는데, 서울 시내만 해도 태어난 아이 주변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신도시 개발과 같은 대형 공사장이 있고, 피엠텐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건설공사장 만이 아닙니다.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굴뚝들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에서 많은데, 서울엔 피엠텐은 물론 그보다 위험이 큰 피엠2.5의 먼지도 많습니다. 거의 도시를 감싸고 있다는데, 여러분이 창업하고 맞아야 할 도시 대부분이 이런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죠.

 

공기만이 아닙니다. 공기와 더불어 먹을거리도 문제입니다. 막 입대한 젊은이 40%에서 정자 기형이 발견되고 정자의 활력도 떨어진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어두운 앞날을 말해주는 징후 아닙니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왜 아토피를 갖고 태어날까요? 아이보다 엄마와 아빠가 살아가면서 처해왔던 환경문제의 결과입니다. 오염된 공기와 먹을거리, 아이 낳기 전에 먹고 마시며 부딪힐 수밖에 없던 과정이 그렇게 피할 수 없게 하는 것이지요. 정자 기형원인도 술, 담배, 피로와 스트레스들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떠돌던 말을 말씀드려야겠군요. 부모 특히 임신 중인 엄마에게 들어온 오염물질은 태내의 아기의 몸에 높은 농도로 축적됩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졌을 때 수많은 방사성물질이 사방으로 날아갔습니다. 반경 8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일본도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니 유럽은 얼마나 심각했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암 걸리지 않으려면 아이를 가져라, 그러면 아이의 몸에 방사성물질이 축적될 것이다, 그 아이는 암에 걸려 태어나 불행해질 확률이 높으니 낙태해 지워라, 이런 식입니다. 방사성물질에는 요오드가 많고 요오드는 갑상선 호르몬의 주요 성분입니다. 갑상선 암이 체르노빌 폭발 후 구 소련에서 급증한 사실은 무엇을 웅변할까요.

 

여의도에 ‘엽기토끼’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키우다 지친 애완용 집토끼를 여의도에 슬쩍 풀어놨는데 그 녀석들은 어찌나 빠른지 통 잡을 수가 없답니다. 그놈들끼리 번식하면 생태계 교란이 생길 텐데 걱정입니다. 그 토끼들은 통 먹을 게 없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먹다버린 햄버거 조각, 통닭, 피자 조각 같은 걸 게걸스럽게 먹는다는데, 배가 고플 때에는 아기들이 들고 있는 음식도 뺏으려 덤비기까지 한다니 엽기토끼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반면에 태국 어떤 사원에서 호랑이를 키우는데 밥만 계속 줬더니 상당히 순하답니다. 개가 짖어도 무서워한대요. 먹는 음식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예는 많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성격형성에 환경과 문화의 영향이 크지만 먹을거리가 심신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겁니다.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과자나 사탕을 많이 먹으면 중금속이 몸속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결과 와 비슷하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판단력이 둔해져 매사에 신경질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따라서 범죄율도 높아지겠지요.

 

 조류독감 파동이 난 적 있죠? 텔레비전 화면에 죽어 널브러진 닭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카메라를 피하는 닭이 있었지요? 유행병이 돌면 거의 다 죽는데 몇 마리 사는 경우입니다. 왜 병이 돌만 거의 다 죽을까요? 영국에서 구제역이 돌 때 양을 키우는 목장은 모든 양을 강제로 도살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지역의 양에 옮겨지기 전에 죽이고 마는 것입니다. 양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구제역을 수습하고 나니 우연히 새끼 양 1마리가 살아 있었다는 걸 알았죠. 그 녀석은 어떻게 살았을까, 구제역에 이기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였기 때문입니다. 축산과학자들은 그 개체를 이용해 구제역을 이길 수 있는 품종을 개량할 수 있을 거라 좋아했다 합니다. 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류독감이 돌면 거의 죽어버리고, 어쩌다 살아남은 닭도 다른 지역에 감염되는 걸 막기 위해 강제로 죽입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개체는 질병에 이길 품종을 개량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극도의 품종개량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위축시킨다는 것입니다. 유전자 다양성이 줄어들수록 환경변화에 취약하고, 약간의 특이한 질병이 돌아도 몰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육하는 닭, 소, 돼지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용도에 맞게 극도로 품종 개량한 가축들은 엄격한 조건 속에서 세심하게 사육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많은 에너지, 유전자가 조작된 곡물사료들을 먹여야 합니다. 병에 걸리지 말라고 미리 항생제를 주고, 빨리 자라라고 성장호르몬도 먹입니다. 그런 가축과 가축에서 나오는 낙농제품과 가공식품을 결국 우리가 먹겠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패스트푸드, 똑같은 공부, 똑같은 생각을 강요당하면서 개성이 사라지지만 경쟁이 치열한 획일적 인간상이 만들어집니다. 만약 세계 농구 제패를 위해 키 큰 사람으로 품종 개량하는 일을 200년만 하면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똑같이 농구에 능한 키 큰 사람들이 되겠죠? 그런 특성이 유지되려면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하겠죠. 이런 세상을 예견해 쓴 것이 소설이 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입니다. 여기선 용도에 맞춰 사람을 공장에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약으로 모두 비슷한 수준의 행복한 느낌을 갖게 조절되며 규정된 행복을 강요당해 살다 나이 차면 스스로 화장터에 가서 죽습니다. 죽음 몸은 재활용되지요.

 

푸에르토리코라는 나라는 열대우림이 가득한 아름다운 섬인데, 미국 식민지죠. 미국 음식을 주로 수입해 먹습니다. 그곳에서 엽기적인 사례가 벌어졌습니다. 울거나 떼를 쓸 때마다 달걀노른자를 주면 조용해지는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생후 7개월 되자 몸 은밀한 곳에 2차성징의 상징인 털이 나옵니다. 그러더니, 세돌 되자 월경을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사먹는 미국산 계란에 여성호르몬이 과다하게 들어갔던 것입니다. 철망에 갇혀 죽을 때까지 계란을 낳는 닭의 사료에 계란을 더 낳으라고 여성호르몬을 지나치게 많이 주었던 거지요. 끔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초등학생 사이에 성폭행이 일어났습니다.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전에 없이 몸이 성숙해졌습니다. 아이다운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영악해지고 사나워집니다. 이는 먹을거리와 관계가 깊습니다.

 

소를 한 3년 키워 10년 정도 우유를 생산하던 때는 15마리 정도 키우는 목장이면 지역의 유지였습니다. 지금 그 정도의 작은 목장은 없습니다. 다 망하고 말았죠. 요즘 첨단으로 억지 품종 개량된 젖소는 2년이면 첫 임신을 하고 5년 동안에 우유를 쏟아냅니다. 착취된 소는 금방 지쳐버리지만 목장주는 곧 폐기처분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 고급 젖소는 유전자 다양성이 작아 관리하는데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십여 마리의 규모로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기업처럼 거대해진 목장은 유전자 조작한 곡물로 만든 사료를 기계화, 자동화된 시설로 주고, 움직임이 적게 관리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우유를 생산하겠지요. 소의 위장은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그런데 축산을 효율적으로 계산해내는 과학자들은 되새김질을 에너지 낭비로 생각합니다. 사료를 갈아서 줍니다. 이것저것 섞은 배합가루사료로 만들어 소한테 먹이니 소는 되새김질을 못해 안절부절 못하지요. 당연히 병에도 잘 걸리겠죠? 그러면 또 돈 들잖아요. 그러면 귀찮아지니까 아예 처음부터 항생제를 먹이에 섞어 줍니다. 그렇게 우유는 1.5배 나오지만 목장은 돈 더 벌고 행복해질까요? 아닙니다. 경쟁을 잃어 망하기 싫다면 큰 빚을 지며 새로 개발된 기술을 들이기 위해 최첨단 투자를 감행해야 합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원래 우유체질이 아닙니다. 우유를 끊은 사람은 어른이 되면 우유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우유 계속 먹으며 자라면 물론 소화를 시킬 수 있습니다만, 우유에 포함되는 성분이 걱정입니다. 소처럼 머리보다 몸이 먼저 자라는 아이들, 비타민이나 유기물보다 단순히 지방과 칼로리만이 높은 우유를 먹으면서 전쟁영화와 갱영화를 봅니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배려, 사랑, 우정의 가치보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화면에서 남에 대한 음모와 협잡, 인권 유린을 자기도 모르는 새 배우고 말죠. 획일적인 세상에서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가치에 매몰되니까요.

 

인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키 작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자기가 힘이 세다는 것을 키 큰 후배에게 보여주려고 다짜고짜 지나가던 초등학생을 때려죽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인천은 녹지가 가장 좁은 도시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 처음 만나는 사람이 좁은 등산로에서 어깨를 부딪치곤 합니다. 그럴 때 화를 내건가요? 아니죠. 서로 격려하며 물도 나누어줍니다. 녹지 속 인간의 아름답고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녹지가 없는 도시 뒷골목을 연상해봅시다. 모르는 이와 어깨가 부딪치면 우린 겁부터 먹지요. 회색도시는 그만큼 삭막한 것입니다. 인천에서 끔찍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잘 설명합니다. 인천만이 아닙니다. 불쌍한 도시인들은 아스팔트, 시멘트 공간에 갇혀 지내며 친구보다 컴퓨터에 빠지고, 내용물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무엇인지 모를 재료는 넣어 싸게 파는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웃음을 잃으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점점 음식은 맛이 있니, 없니 하며 이분법으로 구분합니다. 농작물 고유의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패스트푸드의 강력한 향기에 맛을 느끼는 능력이 단순해진 것이지요. 피자나 햄버거는 재료를 마구 섞어놓은 음식이죠. 어떤 상태의 것들이 얼마나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표준화와 예측가능을 위해 획일화시켰습니다. 맛도 모양도, 조리방법은 물론 종업원의 친절도, 손님이 줄서서 먹고 나가는 방식도 예측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맥도날드화’라고 말합니다. 전 세계가 획일적으로 단순해지는 거죠. 다국적기업이 만든 기준에 맞춰야 하니까 개성은 사라지고 개개인은 다국적기업이 원하는 대로 길들어집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광고도 세계가 똑같습니다. 1위를 롯데리아에 밀리는 우리나라만 광고가 조금 다릅니다. 불편한 의자에 셀프서비스, 주차도 무료가 아닌데도 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이 값이 싸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광고로 그렇게 교육받은 결과입니다. 손님도 맥도날드화의 일부가 되는 거죠.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고 하나요? 맥도날드화된 세상에서는 다양성이나 개성은 조금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디 맥도날드 햄버거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수  많은 정치, 경제, 문화, 제도, 사상, 교육들이 거의 표준화되었습니다. 그런 현상이 모여 나타난 결과가 아토피입니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마구잡이로 던진 부메랑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대책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더 큰 부메랑을 던지는 것일까요. 여기저기에서 우리가 던진 숱한 부메랑들이 윙윙거리며 달려드는데 말입니다.

 

속상하고 말 게 아니라 극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나를 찾으십시오. 휴대폰, 내방, 내 옷… 개성 있는 것 같지만 다 같아요. 그 안에 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 속에서도 나라는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이제 푸른 숲과 넓은 들과 함께 하는 풀무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개성을 찾아 만끽하세요. 장차 내가 살아가면서 후회하지 않을 개성을 찾아 벅차게 꾸며내세요. 식성, 취미, 특기도 물론 개성입니다. 개성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토피라는 걸 낳게 한 주어진 맥도날드화된 삶의 획일적 편의를 극복합시다. 나는 나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행운아입니다. 푸른 숲을 날마다 보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규격화되지 않은 공부를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살지 않습니까? 영어, 과학고, S대라는 그들이 만든 표준화에 주눅 들지 말고 나를 찾는 공부를 스스로 하면서 건강하게 먹고 숨 쉬면서 나를 찾는다면 창업 후 만날 험한 세상에서 이웃과 건강하고 자신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풀무농업고등실업학교, 2005년 강연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