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6. 1. 26. 12:05


누가 마시려고 떠놓은 물에 똥 쌌어?”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위 내용이 담긴 어떤 시의 제목은 <양변기>라고 한다. 양변기에 끊임없이 고이는 맑은 물은 부엌 수도꼭지의 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맑은 물을 마시지 못해 위태로운 생명을 겨우 이어가는 지역의 사람들이 양변기에 대소변을 보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화를 낼까? 그냥 부러워할까?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칭송하는 양변기는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을 몰아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럽 이야기일 뿐이다. 화장실의 대소변을 모아 밭 가장자리에서 한참을 곰삭힌 후 비료로 사용한 우리네 삶에 수인성 전염병은 거의 없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 지 200년도 못돼 땅이 황폐한 미국과 달리 무슨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은 4000년이 넘게 풍작일까? 그 이유를 찾아 1800년대 말 아시아 3개국을 방문한 미국의 한 관료는 인분이 답이라는 걸 알아내고 4000년의 농부라는 책을 펴냈다.


양변기는 사람이 수천 년 이상 사용한 양질의 비료를 스위치 누르는 순간 사라지게 한다. 대신 들판에는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가 풍성하게 깔린다. 화학비료 뿐 아니라 독성을 거듭 강화해온 제초제와 살충제도 뿌린다. 그래야 종자회사에서 구입한 씨앗은 기대한 만큼의 소출을 보장해준다. 제초제와 살충제도 석유를 가공해 만들었다. 강이나 호수의 물을 정수장으로 보낸 뒤 마실 수 있게 정화처리하려면 적지 않은 전기가 필요하다. 그 물을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정전이 하루를 넘기면 주민들은 아파트를 탈출해야 한다.


집에 처음 양변기를 설치했을 때, 앉기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1980년대다. 그 무렵 부엌에 석유곤로가 사라지고 드디어 가스레인지가 들어왔다. 걸핏하면 그을음이 생기는 석유곤로의 심지를 조절하는 수고를 피할 수 있어 기뻤는데, 이후 한 세대 이상 가스레인지를 불편 없이 사용하는데 전기레인지가 대세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2005년 전후에 석유는 퍼올리는 양이 소비량보다 줄기 시작했다고, 고갈의 징후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가스는 얼마나 남았을까? 모르긴 해도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요리는 가스레인지 또는 전기레인지로 하는 것으로 이해하리라.


인천 앞바다에 갯벌이 드넓었다는 사실은 이미 희미해졌다. 너른 갯벌을 메워 조성한 남동공단, 연수구와 송도신도시에 묻혀 사라져간다. 송도신도시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은 갯벌을 기억할 리 없다. 매립지 가장자리의 거대한 제방 아래 바닷물이 늘 출렁이며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오르내리는 장면으로 인천 앞바다를 기억하겠지. 그런 아이, 아니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이는 양변기가 오랜 문화유산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한바탕 웃는다면, 하릴없는 중년의 고루한 농담일까?


흔히 이스터 섬으로 말하는 라파 누이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다. 지금은 목장으로 사용한다는 태평양의 외로운 섬에 30톤에서 10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 모아이가 600개 이상 조각돼 있어 세계의 불가사이로 거론되었지만 지금은 그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안다. 원래 야자수를 비롯해 다양한 나무의 숲이 울울창창했는데 두 종족 사이의 지나친 개발 경쟁과 모아이 만들어 세우기 경쟁이 섬 환경을 처참하게 만들었다는 걸 학자들의 연구로 밝힌 것이다. 비옥한 환경에서 인구가 늘고 씀씀이가 커지자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섬은 한계를 드러냈건만, 경쟁하던 두 종족은 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결과는 비참한 나락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라파 누이는 외부 지원이 끊어지면 즉각 나락에 떨어질지 모른다.


라파 누이의 슬픈 역사를 강의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 학생의 질문에 제 의견을 바로 전하지 못했다. “마지막 나무를 자른 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서글펐을까? 이 마지막 나무마저 자르면 더는 카누를 만들 수 없으니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겨웠을까? 답변을 다음 시간으로 미룬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풍경 기억상실이라는 화두를 꺼냈다고 자신의 책 문명의 종말에 썼다. 마지막 나무를 자르기 한참 전부터 이미 라파 누이는 처참했을 테고, 별 생각 없이 잘랐을 거라는 얘기. 다시 말해 예전의 울울창창했던 기억은 희미해지거나 선대의 기억이었다는 설명이었다.


곡선으로 이어진 리아스식 해안은 풍수해에 가장 안전할 게 틀림없다. 영겁의 세월 동안 모진 풍파를 받으며 형성되면서 가장 안정된 지형을 갖추었지만 사람의 토목건축은 거의 모조리 도륙했다. 파괴한 리아스식 해안 위에 핵발전소를 세운 일본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자초했는데,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리아스식 해안은 지리 교과서 이외에서 찾을 수 없다. 인천의 드넓었던 갯벌은 아파트와 공장에 짓밟혔다. 갯벌에 살던 조개들은 한참 뒤 화석으로 만날지 모른다. 사라진지 불과 30여 년이지만 인천으로 막 주민등록을 옮긴 시민, 매립 이후 태어난 신세대들은 인천 앞바다의 갯벌을 모른다. 그 풍경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갯벌만이 아니다. 이러다가 4대강의 본 모습을 계단식 호수로 기억하는 사람이 늘어날지 모른다. 자동차는 어느새 사회의 공기처럼 되었다. 없는 생활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게 되었지만 불과 100년 전에는 귀한 물건이었다. 전기, 석유, 가스, 통신, 도로 들도 마찬가지인데, 지금과 같은 편리한 세상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컴퓨터에 신기해하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인터넷과 이어지면서 컴퓨터는 손 안에 들어왔다. 100년 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100년 뒤에는 어떨지.


풍경 기억상실은 농작물의 씨앗으로 이어졌다. 이제 농민이 가을에 받아 봄에 뿌리는 씨앗은 자취를 감춰간다. 종자회사에서 파는 씨앗은 유전자가 조작된다. 조작된 유전자는 기업의 이익에 충성하는데, 기상이변은 그런 씨앗의 앞날을 불안하게 한다. 종자회사의 씨앗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데, 지구온난화가 심화될수록 거칠어지는 기상이변은 예측 불가능한 가뭄과 홍수를 안긴다. 지구라는 라파 누이의 막무가내 개발에 길들어진 우리는 과거를 몽땅 잊었는데, 호락호락하지 않을 내일은 이미 코앞이다. (작은책, 20162월호)

 
 
 

서평·추억

디딤돌 2010. 7. 19. 10:06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뤽 폴리에 지음, 안수연 옮김, 에코리브르, 2010.

 

“풍경기억상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이스터 섬의 비밀을 조명하면서 ‘풍경기억상실’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한 벌판에 거대한 석상, 모아이가 수백 개나 늘어선 모습이 이채로운 태평양의 외로운 섬 이스터는 원래 야자수가 울창할 정도로 기름진 땅에 먹을거리가 넘치는 낙원이었다. 안정된 환경에 정착한 최초의 인구가 서서히 늘어 자급의 경고등이 커지기 시작했건만,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작은 섬은 인구와 삶의 규모를 줄이며 안정을 모색하지 않았다. 생활 습관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면서 종족 갈등이 심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치달은 ‘모아이’ 세우기 경쟁은 야자수를 마구 자르는 무모함으로 이어졌다. 나무가 사라지자 거센 바닷바람과 뜨거운 태양에 노출된 섬은 기름진 흙과 마실 물을 잃었고 주민들은 고기 잡는 카누를 만들 수 없었다. 목숨과 더불어 조상에 대한 기억마저 잃은 역사는 이스터 섬에서 그치지 않았다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적한다.

 

“마지막 나무를 자른 주민의 기분은 그때 어떠했을까요?” 학생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연구실로 돌아가 생각했다. 비참했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다음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마지막 나무를 자르면서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어느덧 대부분의 나무를 잃은 섬은 이미 황폐화되었고,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섬의 모습은 풍요로움과 거리가 한참 멀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게 비참해진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뇌리에 울창했던 풍경은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며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풍경기억상실’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풍경기억상실.” 외부의 지원이 차단된 공간에서 지나친 개발이 빚는 풍족함의 한계가 음울한 신호를 보낼 때, 정신 차리지 못하는 사람은 망가지는 주변 풍경에 익숙하게 되면서 결국 과거의 기억마저 잊고 만다는 서글픈 용어다. 우린 어떤가.

 

이스터, 다시 말해 부활절에 방문한 19세기 서양인이 이름을 붙인 그 섬은 풍요로웠던 자신의 기억을 깡그리 잃었지만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우루공화국은 그리 멀지 않은 추억을 무력하게 되씹고 있다. 한 세대 전 만해도 퍼올리는 인광석으로 흥청거리지 않았던가. 매장량의 한계를 진작 알았고 발굴되는 양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돈으로 지탱되는 삶을 전혀 바꾸려 들지 않았다. 위기가 드러난 상태에서 더욱 탐욕스러워진 정부는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국제 사기꾼에 넘어가 남은 해외 자산마저 몽땅 잃자 급격히 쇠락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광석이 사라지자마자 국제사회에서 처참하게 버림받은 나우루공화국에서 ‘풍경기억상실’ 현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공동체의 종말은 참으로 비참하다는 현실은 지구촌에서 현재진행형이다.

 

프랑스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뤽 폴리에는 흔적만 남은 나우루공화국을 방문해 2009년 국제저널리즘회의에서 조사 및 탐구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을 썼다.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북동쪽으로 3500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 오세아니아 섬나라 나우루공화국은 초등학생의 지구본에 나오지 않는 21제곱킬로미터의 작은 바위섬이다. 1896년 나우루 섬에 잠깐 정박했던 선장이 가져온 나무처럼 생긴 돌 하나가 ‘한 여름 밤의 꿈’의 시원일 줄이야. 몇 년 동안 사무실을 굴러다니던 돌멩이가 순도 100퍼센트에 가까운 인광석이었고 이는 농토가 척박한 이웃 나라는 물론이고 전쟁을 준비하려는 유럽의 국가들도 눈을 크게 뜨고 찾던 물질이었다. 사람이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거의 오늘까지 북반구와 남반구를 가로지르는 철새들이 산호초 사이에 세세만년 배설해 형성된 인광석. 대략 2000년 전 정착한 주민들이 과일과 낚시로 유유자적할 때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지구촌이 산업화된 이후 나우루공화국에 화근이 되었다.

 

19세기 말 인광석을 발견한 뒤 마구 발굴한 서구 열강들의 탐욕에서 간신히 벗어난 나우루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우여곡절 속에 공화국으로 독립할 수 있었지만 국토는 이미 절반 이상 파헤쳐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1973년 석유 위기 이후 가격이 치솟은 인광석으로 GDP 2만 달러를 벌어들인 나우루공화국은 이후 국고가 달러로 넘쳤고 국가가 월급을 지불하는 가정부의 도움을 받는 국민들을 난생 처음 맞는 서구식 풍요로움을 꿈결처럼 만끽할 수 있었다. 세금이 없는 국민들은 초현대식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감당할 수 없는 환자가 호주 멜버른의 병원에 입원하는 사이 가족들이 머물 주거지역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순환도로에 고급 자동차를 몰고 나가 배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국민들은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중국음식을 주문해 먹었으며 고치기 귀찮아 자동차를 바꾸는 낭비를 일삼았다.

 

머지않아 인광석이 고갈되어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해외의 건물과 자금을 확보하고 걸핏하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자국민을 유학 보내 내일을 대비하려 했지만 면밀한 분석을 할 줄 몰랐던 벼락부자 나우루는 비상등이 커져도 도무지 자제할 줄 몰랐다. 확실한 보증이 없었던 해외투자는 적신호를 보였어도 사기꾼에 속아 실체도 없는 기금에 거액을 날렸고 대통령은 물론이고 장관과 그 부인들까지 국고를 개인 목적으로 낭비하거나 착복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급기야 “정치인들이 배를 불릴 때 국민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아이들은 말라간다!”며 여성들이 항의 시위에 나서자 해외에서 빌린 자금을 국민에게 나누어준 정부는 해외재산을 흥청망청 탕진했고, 돈이 없자 국제 테러리스트에게 여권을 팔아 챙겼으며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 망명자들을 수용할 난민촌을 짓는 대가로 호주에서 돈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0년 이후 캐낼 인광석이 거의 없는 나우루공화국은 아직도 옛 추억에 젖어 있다. 기름만 생기면 다 망가진 고급자동차를 몰고 순환도로를 달리거나 잡초가 무성한 골프장으로 향하는 주민들은 고도비만과 당뇨에 시달린다. 예측 없이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으로 아이들이 죽어나가던 시절 1000명으로 유지되던 인구는 느닷없이 쏟아진 달러 덕분에 열배로 늘었는데, 그만 성인병에 노출되고 만 것이다. “내일 일은 저절로 해결된다.”는 생각으로 과일과 낚시로 자족하던 때에도 비만이 많았던 나우루였는데, 지금은 쿠바에서 9명의 의사가 파견되어도 평균수명이 50세에 그친다. 늘어난 인구는 아직 한 여름 밤의 꿈이었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데 나우루공화국은 유유자적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권 수뇌부에 분노하지 않는 나우루 사람들은 30년 만에 자신의 고유문화를 잊고 말았는데, 돈 한 푼 없이 인공투석기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나우루의 내일은 저절로 해결될 수 있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나우루공화국이나 이스터 섬의 사례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뤽 폴리에는 취재 중에 만난 호주 사업가의 말을 빌려 “무엇보다 자신의 물질적이 안락이 보장되지 자신의 문화를 등한시하고,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자신의 환경을 돌아보지 않는 인간의 역사, 그것이 곧 나우루입니다. 이 점에서는 나우루인이건 서구인이건 중국인이건 모두 다를 바 없습니다.”하고 권말에 덧붙였다. 그 점에서 ‘타산지석’이라는 경구를 가진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점은 무엇인가. 석유위기와 지구온난화는 이미 첫 번째 경고등이 아닌데.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은 내일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우리의 절박한 행동을 시급히 요청한다. (사이언스타임즈, 201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