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3. 23:44

 

우리나라의 시골로 시집온 외국 신부들이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제 나라 음식일 게 거의 분명하다. 분가했다면 자주 만들어 남편과 아이와 둘러앉아 오순도순 먹겠지만 다른 나라 음식을 입에 댄 적이 드문 시부모와 한 집에서 산다면 쉽지 않을 터. 어쩌다 특별한 날, 양해를 얻어 선보이는 정도에서 그쳐야 할 것 같다. 의복이나 주택 구조와 달리 음식문화는 특히 보수적인 까닭이다. 어쩌면 남편의 사정도 비슷할지 모른다. 어머니의 손맛에 길든 입은 이국 신부가 만들어내는 서툰 한식을 한동안 푸념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 국가의 다양한 음식이 우리 식탁에 선보인지 오래되면서 해외에서 먹을 게 없어 고생했다는 여행담을 들을 기회가 드물어졌지만 외국인의 방문이 드문 국가의 지방에 가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음식 재료는 그런대로 견딜만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가 고역 감수를 요구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경이로운 음식을 만날 수 있는 법. 재료와 만드는 방법을 세세하게 기록한 뒤 돌아온다면 불현듯 요리해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길 텐데, 그 맛을 재현해 내는 게 쉽지 않다. 마땅한 조리 도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무역이 활발한 시대이므로 조리 도구는 물론이고 재료와 향신료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지만 분위기가 음식과 영 맞지 않는다.

 

아주 특이하지 않다면 어지간한 식재료는 세계가 공통이지만 지역 특유의 음식 맛은 향신료가 좌우할 때가 많다. 음식의 주요 재료와 향신료는 지방 고유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즐겨 먹는 이가 없다면 독특한 음식문화가 자리 잡았을 리 없는 법. 그렇더라도 달리 생각할 수 있다. 대개 농산물인 음식 재료와 향신료가 일찍이 재배되지 않았다면 언감생심. 다시 말해 재료와 향신료의 재배를 지배하는 기후와 환경조건이 먼저 만족되었으므로 그에 맞는 음식문화가 나중에 이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거다.

 

내국인의 국제 여행과 외국인의 국내 거주가 일반화되면서 외국의 음식이 무척 늘어나고 그 중 몇 가지는 가정의 밥상에 자연스레 올라갈 정도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맛보는 외국의 음식은 본 고장과 다를 경우가 많다. 카레를 보라. 재료와 조리 방법이 인도와 상당히 다르고 맛과 향은 무척 변형돼 있다. 수입한 국가의 취향에 맞게 바뀐 건데, 중국 음식이 특히 그렇다. 그 나라의 취향에 아주 잘 맞추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퓨전 음식’이라 해서 외국 음식을 우리 취향에 맞게 변형한 메뉴를 내놓는 식당도 있다. 한데 아리송한 이름의 많은 음식들이 다른 식당으로 널리 펴지지 않는 거로 보아 음식문화를 뛰어 넘는 퓨전은 그저 호기심 차원의 주문에서 그치는 모양이다. 그만큼 음식문화는 보수적이다.

 

사과와 감의 재배 지역이 북으로 향하고 제주도에서 재배하던 감귤이 남녘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구온난화의 여파일 텐데 바다는 그 정도가 더하다. 차가운 물에 살던 명태와 대구가 떠난 자리를 고등어와 오징어가 차지하고 흔히 참치라고 말하는 다랑어가 심심치 않게 잡힌다고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섭씨 0.74도 오른 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아 1.5도가 상승한 곳이 우리나라다. 이런 추세로 2020년이 지나면 아열대 기후에 편입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편입되면 장차 열대과일을 재배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음식문화도 바뀌게 될까.

 

농산물이나 축산물도 품종을 개량하기에 따라 재배 환경의 범위를 어느 정도 확장시킬 수 있다. 국운이 쇠하던 조선조 마지막 시절, 삭풍이 부는 북간도에서 논농사를 지은 선조의 노력이 그를 반영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정 환경에 적응된 유전자를 가진 농작물은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농약이나 제초제, 그리고 화학비료를 아무리 동원해도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건 마찬가지고 재배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은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벼를 한 예로 살펴보자. 흔히 ‘안남미’라 하는 장립 품종의 벼를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 심는다면 수확을 제대로 얻지 못할 것이다. 따뜻한 남방에서 장립 쌀을, 쌀쌀한 북방에서 단립 쌀을 맛있게 먹는 건 그 쌀에 문화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이지만 그 이전에 그 쌀이 그 기후 조건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인데, 앞으로 기온이 계속 상승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수적인 음식문화는 예전의 벼를 한동안 고집하도록 이끌겠지만 온난화가 된 이후에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래 안정되었던 지역의 음식문화는 필연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뜻한 곳에서 쌀쌀한 지역으로 농경지가 광활하게 이어져 있는 중국과 같은 지역이라고 해도 열대 농작물이나 과일의 재배지를 옮기기 어려울 텐데 넓은 바다로 아열대 지역과 뚝 떨어진 우리나라에서 순조로울 리 없다. 기후만이 재배 환경의 변화를 요구하는 요인의 전부도 아니다. 계절과 더불어 일출과 일몰 시간의 변화나 햇볕의 강도가 중요한 요인일 것이며 토양 속의 수많은 미생물에서 꽃가루를 수정해주는 곤충과 새로 이어지는 생태 조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일 게 틀림없다. 새롭게 들어온 농작물에 맞게 여러 조건이 더불어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접어드는 2020년에 아열대 과일이 탈 없이 재배되거나 장립 품종의 벼를 마음 놓고 심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가 특히 급작스럽다는 점이다. 아열대 지역의 생물이나 농작물이 분포할만한 생태 조건이 만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통적으로 재배해온 농작물의 생태 조건이 느닷없이 무너진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밖에 없다. 농작물이 가진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예전처럼 보존되었다면 변화될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할 여력이 있겠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농가들은 유전자가 단순한 씨앗을 종자회사에서 구입해 일률적으로 심을 따름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이후 낭패가 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음식문화가 흔들리는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내 나라 뿐 아니라 남의 나라 사정도 비슷할 테니, 돈이 있어도 수입할 식량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크다. 더워진다고 열대과일을 값싸게 먹게 되리라는 낭만적 기대와 거리가 사뭇 멀다는 거다.

 

최근 제주도에서 아보카도나 망고와 같은 과일을, 경기도의 남양주와 안산 심지어 강원도 철원과 화천에서 구아바와 블루베리와 같은 과일을 재배할 수 있고, 머지않아 흔해질 것처럼 기대하는 여론이 있다. 단순한 상상에 불과하다. 난방이 완벽한 비닐하우스나 온실에 의존해서 그런 과일을 재배해야 한다면 지구온난화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완전한 아열대 기후로 바뀌기 전까지 그런 과일의 재배 조건을 억지로 유지하려면 온실이나 비닐하우스 이외에 다른 방법도 없다. 어떤 과학자들은 생명공학 기술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상상한다. 변화되는 기후에 적응이 가능한 유전자를 벼에 이식해 식량 위기를 대처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황당한 희망사항일 따름이다. 조작된 유전자의 수평이동으로 발생할 생태계의 치명적 교란은 둘째로 치고,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현저하게 위축시키는 유전자 조작으로 기후변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기다니. 생태적 상상력이 결여된 과학자의 단순함이 참으로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완고하기 이를 데 없는 음식문화를 최대한 보전하려면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적 충격을 최선을 다해 완충해야 한다. 그러자면 많은 기후 전문가들이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지구온난화를 최소화해야 할 텐데, 온난화되는 지구와 우리 지역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 바탕에서 행동할 때 그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배출을 과감히 억제하며 자연스러움을 잃은 생태계를 서둘러 복원하는 행동과 더불어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시킨 내 땅의 농작물을 제철에 심는 일이다. 근거 없이 늘어놓는 낭만적 희망사항은 문제 해결을 그르치는 무책임일 따름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11월)

좋은 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