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7. 24. 11:12

 

오스트리아 제1의 도시 비엔나의 인구는 160만 정도. 제2 도시 그라츠는 25만이다. 하루가 저물어 자정을 넘기면 신선한 빵을 하나 가득 실은 대형 트럭들이 줄을 지어 소각장을 행한다.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포장도 뜯지 않은 빵 더미를 소각로의 불길에 쏟아붓기 위한 일과다. 트럭에 실리기 직전에 백화점이나 대형 제과점 매장의 냉장 에어커튼 아래에 화려하게 진열되었던 그 빵들은 전혀 상하지 않았지만 버려야 한다. 오늘 실어내지 않으면 내일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늘어난다. 비엔나에서 하루에 태워버리는 빵은 그라츠 시민이 먹는 하루치와 일치한다.

 

관광객이 많은 비엔나가 특별히 까다롭거나 예외적인 도시는 아니다. 유럽뿐 아니라 북미나 일본도, 호주와 뉴질랜드도,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어도 선진국 레벨을 과시하고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이라면 사정이 엇비슷할 게 틀림없다. 시침과 분침이 동시에 오후 12시를 넘긴다고 멀쩡했던 빵이 일제히 상하기 시작하는 건 분명히 아니지만 버릴 수밖에 없는 건, 새벽에 배달되는 빵을 진열할 선반을 비워야하기 때문이고, 새벽에 배달되는 빵을 진열하지 않으면 계약 위반이기 때문이며, 유통기한이 지난 빵이 버젓이 진열돼 있으면 누군가 얼씨구나 고발할 게 아닌가. 식품위생을 소홀히 한 이유로 법적 조치를 당하면 한순간의 망신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경쟁업체로 옮기는 고객을 당분간 만회하기 어렵다. 그게 가장 두렵다.

 

규모와 관계없이 매장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유통기한이 다가온 식품을 헐값에 처리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남을 경우 불량 색소가 들어간 장난감처럼 한꺼번에 버릴 수밖에 없는데, 규모가 큰 식품매장은 대행업체의 의뢰해 치워버리겠지만 작은 가게는 큰 비닐봉투에 넣어 가까운 쓰레기통에 넣을 수밖에 없을 터. 그때를 기다렸다 쓰레기통을 능숙하게 뒤지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의 하나인 뉴욕, 그 중에서 맨해튼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모습이다. 이른바 ‘프리건’(freegun)으로 그들은 거지나 노숙자가 아니다. 직업이 번듯한 시민들로 대부분 환경주의자들이다. 멀쩡한 음식을 버릴 수밖에 없게 돼 있는 식품산업 체제에 대한 일종의 평화적 시위라고 볼 수 있다.

 

농산물을 포함한다면 멀쩡한 음식이 가장 많이 버려지는 곳은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비행기로 한참 날아야 끝이 보일 정도로 드넓은 농장에서 재배하는 농산물을 많은 국가로 수출하는 세계의 식량 창고가 아닌가. 그 과정 과정마다 설정된 유통기한을 넘길 수 있다. 사실상 미국에도 굶주리는 인구가 상당하다.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달한다는 통계가 제시되기도 한다. 오로지 넘쳐나는 음식을 구입할 돈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그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멀쩡한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을 무료로 제공할 수 없을까. 쉽지 않다. 식품회사들의 이윤 창출 기회가 그만큼 차단되지 않던가. 허락 없이 감행한다면 영업방해로 고발당할 수 있다. 어차피 구매하지 않을 계층이므로 무료로 준다고 회사가 손해 볼 일이 없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다. 식품매장의 시식 코너에 몰리는 중산층을 보라. 그들의 냉장고는 크다.

 

우리나라의 ‘푸드뱅크’는 보건복지부의 적극 지원으로 1990년대 말부터 시작해 현재 300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익운동단체다. 관련 누리집(http://www.foodbank1377.org)에서 “식품제조기업 또는 개인에게서 식품을 기부 받아 결식아동, 홀로 사는 노인, 재가 장애인, 무료급식소, 노숙자쉼터, 사회복지시설 등 소외계층에 대한 식품지원복지서비스를 전달하는 식품 나눔 제도”라고 정의하는 푸드뱅크는 대형식품업체가 참여하고 해마다 130만 명이 혜택을 본다고 전한다. 1967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되는 푸드뱅크 사업은 철저하게 식품업체와 개인의 기부로 식품 구입 능력이 결여된 계층에 한정해 공개적으로 음식을 제공한다. 결국 중산층의 접근이 차단되었다는 걸 확인한 식품업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작은 규모의 식품매장에서 버린 음식을 프리건이 뒤지는 걸 구태여 단속한다는 게 무척 귀찮은 일이겠지만, 프리건이든 푸드뱅크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다시 활용되는 건 다행이다. 한데 프리건은 몇 명 안 되고 푸드뱅크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가난한 이에게 골고루 나눠질 수 있는 건 아니다. 푸드뱅크가 아무리 늘어도 가난한 계층 한 사람 한 사람에까지 찾아가지 않는다. 자존심을 구기고 끼니때마다 줄을 서야 하는 고통까지 푸드뱅크가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나라 무료급식소는 대개 점심이나 저녁 한 끼를 제공한다. 급식소를 찾아가 줄을 선 그들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아무튼, 대부분의 남은 음식은 버려진다. 번뜻한 상품에서 소각장 연료로 둔갑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식품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산물도 막대하다. 어디 그뿐인가. 대량 생산, 유통, 저장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해 전국, 또는 세계 시장에 공급된 식품을 모조리 수거해 폐기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실상이 아닌가. 만두소 파동이 있었을 때, 상하지 않은 대부분의 음식이 버려졌다. 조류독감이 돌 때, 감염되지 않은 어린 닭들이 몰살당했다. 중국산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었을 때, 세계 도처에서 만들어 판매하던 수많은 과자류들이 버려졌다. 대단히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시장에 그대로 놔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리는 음식 쓰레기가 20조 원에 가깝다던데, 가정에서 나오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예식장 피로연장이나 장례식장에서 발생하는 양이 상당하지만 대부분은 식품회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전의 어머니들은 쌀 한 톨에 농부 99방울의 땀이 들어있다며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했다. 쌀과 배추를 논밭에서 재배하는 농부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억지로라도 먹어야했지만 슈퍼에서 쌀과 고기가 배달되는 요즘, 그릇에 얼마 담기도 않는 밥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긴다. 매점에서 햄버거를 파는 학교의 식당에서 버리는 양도 적지 않을 텐데, 광고를 앞세우는 가공식품의 맛과 향과 색에 말초적으로 길들여진 아이들은 배가 고파 밥상 앞에 앉을 때가 드물다. 음식 쓰레기의 발생 자체를 줄일 방법은 없을까. 아니 발생된 쓰레기라도 죄스럽지 않게 처리할 방법은 없을까. (사이언스올, 2009년 8월 ?일)

미군부대에서 유통기한이 넘어 버려지는 식품이 아까워서 몰래 빼돌려서 끓여 팔던 음식이 그 유명한 의정부 부대찌개지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다보면 좋은 방안이 나올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