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6. 7. 1. 07:44


부천 신시가지는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5.5킬로미터의 시민의 강10여 년 전부터 흐르기 때문이다. 강폭이 넓어야 5미터에 불과해도 제법 커다란 잉어가 떼를 이루며 움직이는 모습이 근사해 찾아온 친지에게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시민의 강은 인근의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정화한 물을 꾸준히 흘릴 수 있기에 가능했다.


프랑스 파리는 도로 가장자리에 언제나 일정 양의 물이 흐른다. 받아놓은 빗물이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처리한 하수를 흘리는 것이다. 그 물은 먼지를 제거하며 도시의 열을 식히거나 가로수와 공원의 나무와 잔디에 뿌리는 데 사용한다. 또한 시민들의 허드렛일이나 화장실의 대소변을 씻어내는데 사용할 수 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하수를 많은 돈과 에너지를 들여 정화한 뒤 강이나 바다에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다. 수자원을 절약하고 도시를 깨끗하게 만드는 프랑스의 하수 중간처리는 2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일부 복개한 하천에 흘리지만 인천의 하수 대부분은 처리한 뒤 바다로 버린다. 물론 바다와 하천이 오염돼 악취를 내뿜고 어획고에 차질이 생기므로 버리기 전에 정화해야 옳지만 활용하지 못하는 만큼 아까운 건 사실이다. 하수종말처리장이 바다 인근에 위치하는 만큼 정화한 물을 활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런 시설을 도시 한가운데 설치하기 어려울 것이다. 활용 가능성과 별도로 민원을 감당할 수 없겠지.


도시 곳곳에서 하수를 중간처리한다면 달라질 수 있다. 바다나 강으로 버리기 직전 지점에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하수종말처리 시설에 비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아파트단지와 공업단지의 크기에 맞게 짓고 그 시설의 주변 또는 지상에 습지를 가진 녹지를 조성하면 주민에게 공원이 추가로 제공될 수 있고 그만큼 미세먼지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중간처리인 만큼 완벽할 필요는 없다. 도시나 공원관리, 허드렛물로 사용할 정도면 충분하다.


연수구의 승기하수종말처리장은 설계용량보다 많이 들어오는 하수를 감당하기 어려워 시설을 확장해야 할 처지라고 한다. 처리되지 않은 하수까지 바다로 나갈 수 있으니 승기하수처리장의 시설을 확대하는 게 옳지만 어느 곳에 새로운 시설을 지어야하는지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모양이다. 스스로 찾아온 국제 보호조류인 저어새가 깃드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새로운 시설을 짓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국내외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생김새가 독특한 저어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과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700마리에서 3000마리 넘게 늘어났지만 아직도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그 저어새가 갯벌이 가까운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로 찾은 지 8년이 되어간다. 저어새를 가까이에서 쌍안경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에 납득할만한 대안 없이 하수종말처리장을 짓겠다는 발상은 국제적 우려를 낳을 것이고 밀어붙인다면 우리나라와 인천시에 항의가 빗발칠 뿐 아니라 조롱거리로 남을 게 틀림없다. 아시아장애인게임의 상징동물이 저어새 아니었나.


하수처리와 저어새 보전 모두 문제없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텐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저어새의 산란과 서식환경을 개선하면서 하수종말처리장을 개선할 합리적 대안을 시민사회와 전문가와 인천시 당국과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은데,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종말처리장으로 들어가는 하수를 어느 정도 곳곳에서 처리해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면 어떨까? 그게 가능하면 기존 하수처리장의 낡은 시설의 수선과 교체만으로 충분할 수 있고 연수구와 남동산업단지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현재 법적 제도적 장치의 한계로 하수 중간처리의 시설이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행동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에게 하수 중간처리의 타당성을 알리고 상황에 맞는 제도를 만들도록 요구하는 행동이다. 시민의 허파를 위협하는 미세먼지는 빗물에만 수동적으로 맡길 수 없다. 도시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씻어내려면 중간에서 처리한 하수가 적격이다. 도랑 치우며 가재 잡는 일이 아닐까? (기호일보, 2016.7.1.)

 
 
 

도시·인천

디딤돌 2016. 4. 14. 17:49


이맘때 잘 나가는 가요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아닐까? 10월 말 가수 이용이 “10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는 <잊혀진 계절>로 한해 수입을 벌어들인다던데, 버스커버스커는 어떨까? 길어야 보름 동안 흐드러졌던 벚나무들은 어느새 작은 꽃잎들을 떨어뜨린다. 꽃봉오리를 떨어뜨리는 동백처럼 처절하진 않아도 눈꽃처럼 쏟아지는 벚나무의 꽃잎들을 보는 이는 아쉽기만 하다. 1년을 기다려야 벚꽃의 숲 그늘을 만끽할 테니까.


4월 둘째 주말이면 인천대공원은 인파로 발 딛을 틈이 없어진다. 때마침 만개한 벚꽃은 환상적 아름다움을 상춘객에게 아낌없이 선사한다. 인천대공원의 벚나무는 건강하다. 자동차나 공장과 같은 대기오염원이 주변에 없을 뿐 아니라 햇살이 풍성하고 땅이 기름지다. 하지만 간선도로와 이어지는 이면도로의 벚나무는 지저분하다. 껍질이 시커멓게 갈라진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인파로 혼잡한 이면도로를 걷는다. 이 나이에 꽃구경 나갈 청승맞은 이유는 없다. 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에 이어 흐드러진 벚꽃에 얼마나 많은 꿀벌이 찾아오는지 궁금할 따름인데, 올해도 한 마리 볼 수 없었다. 한여름이면 분꽃 씨 크기의 열매가 보행자도로에 떨어져 구두나 운동화 바닥의 홈에 끼곤 하던데, 바람이 꽃가루를 수정해준 것일까? 꿀벌이 없는 만큼 벚나무의 건강이 전 같지 않겠지.


도시에 꿀벌이 찾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일까? 주변에 벌통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지만 외곽의 꿀벌을 유인할 생태계가 도시에 열악하기 때문일 것이다. 외곽 생태계가 녹지축을 타고 도심으로 연결되고, 녹지와 더불어 맑은 물이 흐르거나 머무는 습지가 도시 곳곳에 이어진다면 꿀벌은 물론 크고 작은 새와 청설모가 근린공원이나 봄꽃들이 만개한 가로수까지 다가온다. 하지만 도시의 숲과 가로수는 외롭다. 시민의 눈을 잠시 시원하게 하는데 그친다. 지속적 관리가 없으면 근린공원의 조경수도 오래 건강할 수 없다.


벚꽃이 아름답던 시간, 우리나라는 미세먼지로 고통을 받았다. 상춘객의 눈과 코, 그리고 기관지를 버석거리게 한 미세먼지는 대부분 오염물질 저감장치가 없거나 열악한 자동차에서 분출되었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극성이 아니었다. 간선도로의 느티나무 가로수들이 시름시름 앓는 이유 중의 하나일 텐데, 저감장치 없는 자동차의 도심 통행을 억제하고 제한속도를 줄이며 녹지와 습지가 도로 주위에 이어진다면 미세먼지는 줄어든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우리 정부는 그저 마스크 착용만 권한다.


드넓었던 갯벌이 인천과 서해안에 남았다면 중국의 미세먼지는 상당히 줄었겠지만 만시지탄이다. 항만을 오가는 대형트럭은 물론, 도심을 통행하는 디젤 차량에 확실한 저감장치의 부착해도 인천시민의 폐는 지금보다 건강했을 게 틀림없다. 간선도로 중앙에 가루수를 충분히 심어 상하행을 분리하면 완화되겠지. 유럽은 간선도로 뿐 아니라 이면도로의 중앙도 가로수로 분리한다.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하면 가능하다. 그뿐인가?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편한 도시에 미세먼지는 드물다.


도로 주위에 악취 없는 물이 흐른다면 도시는 더욱 깨끗할 수 있다. 프랑스가 그렇다. 도시에서 배출하는 막대한 하수를 중간에서 처리해 도로 옆으로 흐르게 유도한다면 가로수도 건강해지고 근린공원의 조경수도 건강해진다. 미세먼지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외곽 생태계가 물길과 더불어 생태축이 되어 이어진다면 많은 동식물을 도심으로 끌어들인다. 속도를 줄인 자동차마저 드물어진 도로에 자전거가 물결칠수록 시민은 더욱 건강해지겠지. 속도보다 중요한 여유가 생활에 깃들겠지.


초고층 빌딩 사이를 고속으로 이어주는 간선도로가 자랑으로 언급되는 도시에서 시민은 건강할 수 없다. 봄꽃이 아무리 화사해도 미세먼지로 시름시름 앓는다면 건강한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를 당장 줄이기 어렵다면 내 땅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부터 서둘러 억제해야 한다. 그를 위한 도시계획이 새롭게, 어쩌면 혁명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도시의 자연생태계획을 먼저 분명하게 만들고, 그 기반에서 도시의 생태계와 시민의 건강을 살피는 도시계획은 이제 시대적 사명이다. 다음세대 시민을 위한 정언명령이다. (인천in, 2016.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