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6. 1. 21. 12:00


막바지 방어 철이다. 횟감으로 그만인 방어. 하지만 꾹 참는다. 후쿠시마 앞바다를 회유하는 어류가 아닌가. 활성지진대인 후쿠시마에 핵발전소를 짓고 설계수명을 다 한 발전소의 가동을 연장한 사람이야 설마 지진과 쓰나미가 덮치리라 생각지 않았겠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4기에서 태평양으로 퍼져나가는 방사성 물질은 폭발 5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미국 서쪽해안에서 잡히는 커다란 생선을 기피하게 만든다.


몸에 축적되는 방사성 물질은 먹이사슬을 거칠수록 기하급수로 농축된다. 외신이 소개하는 태평양의 덩치 큰 생선, 참치의 몸에 암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사진으로 본 참치의 어긋난 몸은 흉측했지만 우리는 생선이 아니라 가공한 고기로 먹는다. 먹음직스럽게 조명 받는 고기를 식품매장에서 산다. 방사성 물질이 포함되었는지 미리 파악하고 그 여부를 표시하지 않는다면 알 도리가 없다. 소비자들은 그저 맛난 참치요리로 여길 따름인데, 방어는 어떨까?


부산 기장군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방사성 삼중수소는 핵발전소에서 나온다. 고리 앞바다에 삼중수소를 내보내는 발전소 중 하나는 머지않아 폐쇄할 텐데, 폐쇄 않으면 폭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문가들이 진작 경고했다. 설계수명 넘기며 가동되면서 핵연료가 쏟아내는 중성자로 탄력을 잃었고 약해진 20여 센티미터 두께의 강철 압력용기가 작은 사고에도 파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폭발한 핵발전소의 사고 원인은 다양했다. 5년 전 후쿠시마처럼 시설의 노후화 뿐 아니라 노무자의 단순한 실수가 37년 전 미국 드리마일 핵발전소 폭발의 원인이었고 과학자의 연구 과욕이 구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30년 전에 폭발하게 했다. 가동 초기 완벽해 보여도 설계처럼 안전을 장담하는 시설은 없다. 아무리 정교해도 사람의 모든 실수를 방어하지 못한다. 사람은 실수하는 법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체르노빌 사고 때 가졌던 경각심을 잃지 않은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자국의 핵발전소를 끄기 시작했다.


1920년대 보험회사 사원이던 허버트 하인리히는 75000건 발생한 미국의 교통사고의 통계를 분석하고 하인리히 법칙을 제시했다. 커다란 사고 1건이 발생하면 비슷하지만 경미했던 사고는 29, 같은 상황으로 사고를 당할 뻔한 경험이 300번 있다는 법칙이다. 129300이다.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경미한 사고는 600회가 넘는다. 외부에 알려진 사례만 그렇다. 사고가 날 뻔한 일은 얼마나 있었을까? 자료에 접근할 수 없는 우리는 모르는데, 중대한 사고는 얼마나 되었을까?


세계 442기 핵발전소 중 6기가 폭발했다. 간단하게 계산하면 한 기 당 사고 확률은 1.36%이고 우리나라에 지금 25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니 후쿠시마 급의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34%. 낮으므로 안심해도 좋을까? 1만분의1 확률은 분명히 낮다. 한 사람이 방사능으로 암에 걸릴 확률이 만분의1이고, 그게 방사능 안전기준치다. 3만 명 가득한 야구장 관중석에 총 3발 쏠 확률인데, 안심해야 할까? 피할 수 있어도 그런 야구장을 굳이 찾아가기 싫다. 34%의 확률은 결코 낮지 않다. 독일은 자국 17기 중 후쿠시마 사고 이후 9기를 즉각 껐고, 현재 5기만 가동하지만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기로 국민 앞에서 약속했다.


우리 핵발전소 주변은 특히 인구가 많다. 후쿠시마는 30킬로미터 반경에 10만이 조금 넘었지만 부산 기장군 고리 핵발전소 단지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 300만 이상의 인구가 몰려 있다. 우리보다 경제사정이 넉넉한 일본도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의 주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 20킬로미터로 슬며시 줄었지만 그건 무책임하다. 체르노빌은 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유럽에도 막대한 낙진을 떨어뜨렸다. 암에 걸리기 싫으면 아기를 갖고 낙태하라는 괴소문이 젊은 여성 사이에 돌았다. 몸으로 들어온 방사성 물질이 축적되기 전에 아기에게 돌아가면 산모는 그만큼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장군의 핵발전소가 폭발한다면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시설의 재산 가치는 그 순간 사라진다. 내일 인도할 수만 톤급 대형선박의 가치도, 해운대를 내려다보는 호화 아파트의 가치도 즉각 사라진다.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의 직장도 사라져 월급이 끊어지더라도 호화 아파트를 구입하려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데 들어간 상당한 은행자금은 그대로 빚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폭발 즉시 적어도 반경 30킬로미터 밖으로 서둘러 빠져나가야하는데, 어떤 수단이 있을까? 자동차? 자전거? 헬리콥터? 지하 안전시설은 변변한가?


유럽의 최대 산업국가인 독일이 핵발전소를 껐지만 산업이 마비되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다. 전기가 일상적으로 모자라 인근 프랑스에서 수입할 거라 짐작했던 에너지 전문가의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프랑스가 독일에서 전기를 긴급 수입해야 할 적이 더 많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50기가 넘던 자국의 핵발전소를 모두 가동 중단했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전기가 없어 산업이 마비된 사례는 없었다. 경각심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화하면서 소비 시간을 분산한 결과였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의 적극 발굴은 물론이었다.


강력한 리더십을 휘둘렀던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자국에 핵발전소를 집중시켰다. 그러자 전기는 남아돌았고 밤에 더욱 남는 전기를 과소비로 해결해야 했다. 프랑스는 취사와 난방에 생산하는 전기의 30% 이상을 소비한다. 프랑스 핵발전소들도 점점 낡아간다. 낡은 핵발전소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핵발전소 감시는 엄격해졌다. 프랑스 핵발전소의 운영은 감시부서와 철저히 분리돼 우리처럼 발생한 사고를 숨기기 급급하지 않다.


어느 기계나 낡으면 고장이 잦다. 핵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프랑스의 감시부서는 핵발전소 가동을 통제하고, 막대한 전기 공급이 일시에 끊긴다. 자가발전을 준비한 산업체보다 전기에 길들어 살던 시민들의 민원이 거세지니 프랑스 정부는 황급히 독일의 전기를 수입해야 했다.


마을 단위로 전력회사를 선택하는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핵발전소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초미세먼지를 걷잡을 수 없게 내보내는 석탄화력발전소마저 포기하면 어떻게 전기를 얻나? 그들은 재생 가능한 자원에서 답을 찾았다. 우리보다 햇볕이 분명히 약하지만 기술을 거듭 개발하며 태양광 발전 시설을 지붕마다 붙였고, 언덕에 풍차를 세웠다. 그러자 설치비용이 줄었고 2010년 전기 생산비가 핵발전소보다 낮아졌다.


핵발전소 하나가 멈추면 많은 가정과 공장에 공급되던 전기가 한꺼번에 사라지지만 태양과 바람은 다르다. 작은 발전 설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므로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나머지 시설로 충분히 완충한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고치며 기술을 개선하므로 전기 공급이 안정되고 이웃 사이에 신뢰가 쌓인다. 그래도 전기가 모자라면 절약하고 효율화하는데 머리를 맞댄다. 독일이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할 수 있는 이유가 그렇다.


가정에 누진세를 받고 기업은 원가 이하로 공급하자 외국의 에너지 과소비 기업이 모여드는 우리나라지만 전기는 모자라지 않는다. 설비가 점점 효율화되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핵발전소를 계속 지어 어느새 세계 최고 밀도가 되었다. 한데 왜 우리 핵산업체에 부정부패가 만연되었을까?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일 텐데, 우리는 언제까지 핵발전소의 안전을 신기루처럼 믿어야하나? (야곱의우물, 20162월호)


좋은글있어 남기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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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5. 12. 18:58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상인가. 이맘때 자연의 색이 점점 더 좋아진다. 신록이다. 부드럽게 펼친 초록은 자신 있어 보인다. 험난한 내일을 당차게 기약한다. “간첩은 녹음기를 노린다!”1980년대 6,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던 사환학생이 대학원생에게 간첩이 왜 카세트를 노리는지 물었는데, 산록과 도시 가로수를 찬란하게 빛내는 5월의 신록은 머지않아 짙은 녹색으로 단단해질 것이다.


지난 달 서울 서초구 어느 골목, 날씨 온화했던 밤이었다. 음악회 감상을 마치고 편의점 앞에 둘러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는데 교복 입은 청소년들이 일행 곁을 왁자지껄 삼삼오오 지나갔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밝은 얼굴들은 한결같이 건강해보였다. 야간학습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리라. 우리도 그런 시절을 거쳤다.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을 품고 하루하루 공부하고 뛰어놀던 시절이었는데, 야간 자육학습에 지치는 요즘도 마찬가지겠지.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 이 땅의 내일을 짊어졌다고 말한다.


한겨울에도 간장독과 청년은 밖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고 했다. 책상에 몸을 붙잡아매려 해도 시간이 생기면 몸을 따라 움직이는 그들은 에너지가 항상 넘친다. 피가 뜨겁다. 불의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들은 현장에 나가 의기를 불태운다. 그랬다. 광주에서, 부산에서, 인천에서, 그리고 서울과 북간도에서 젊음을 불태웠다. 그들은 사회의 소금이었다. 그들이 현장에서 뜨겁게 겅중거리기에 사회는 썩지 않았다. 얼어붙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힘의 원천이 거기에 있고, 이 땅의 민주화 역시 젊은이의 격정에 힘입었다.


사회의 소금인 젊은이들이 어느새 길들어졌다. 현장에서 겅중거리고 싶어도 모의고사가 발목을 잡는다. 학원이 휴식을 방해하고 입시가 희망하는 진로를 가로막는다. 길들어지지 않는 자들에게 허락이 되지 않는 대학에 들어가야 대기업에 취직해 혹사당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 길들어지라고 선생님이 다그치고 부모가 눈총을 준다. 언론은 학교 밖에서 일감 도모하는 청년들을 손가락질하니, 현장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의지는 원천봉쇄되었다. 오로지 입시에 대비하는 공부에 관심이 있든 없든, 뜨거운 이성과 정의는 저당 잡혀 그만 길들어지고 말았다.


이미 우리 사회에 규모가 작은 29차례의 세월호 참상, 시랜드 화재,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가 있었고 운이 좋아 300차례 피했을 것이다.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이다. 4년 전 제주도 수학여행을 다녀온 막내는 자신이나 후배를 신입생으로 환영하는 행사를 허접한 시설에서 해마다 해왔다. 유치원부터 지금까지. 큰애와 작은애도, 이웃집의 아이들도 그래왔다. 시민들은 안전한가? 지하상가에 큰불이 나면 펼쳐놓은 좌판을 요리조리 피하는 시민들은 매뉴얼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극장과 백화점, 병원과 지하철 환승역은 만발의 준비와 훈련을 마쳤을까? 어려서부터 길든 이들이 부대끼며 사는 도시에서 세월호는 멀지 않다.


출세와 취직, 졸업과 입학을 위해 좋은 게 좋은 것이므로 묵묵히 폭탄을 돌리는 일상에 길들어버린 우리는 청년들의 피마저 식혔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관심 갖지 말도록 눈을 부라리는 선생님의 호령에 길든 이 땅의 청소년들은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앉아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호기심에 고개를 돌리거나 궁금해 묻는다면 정 맞는다. 정 맞으면 구만리 같은 인생을 망치게 된다는 설교에 찌들었다. 좋은 직장을 위한 대학입시, 좋은 대학을 위한 중고등 과정의 수업, 그런 수업을 일찌감치 대비하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심지에 뱃속의 아이를 위한 학습까지.


누가 어떤 목적으로 길들인 걸까. 스스로 길들어졌을 리 없다. 누군가 그리 이끌었다. 욕심을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이다. 기득권이 재단한 인재가 돼 달라며 매뉴얼을 만들어 압박했다. 좋은 회사 취직하는 매뉴얼, 그런 회사에 잘 들어가는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매뉴얼들이지만 번지르르한 매뉴얼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좋은 회사에 취직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행복하다는 통계는 없다. 좋은 대학의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정의감이 더욱 뚜렷하다는 통계도 없다. 다만 길들어질수록 기득권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잘 알 뿐이다. 도대체 좋다는 게 무언가?


기득권의 소모품처럼 길들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기 두렵다. 요긴할 때 가동하지 않을 매뉴얼을 믿고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사고는 반복되고 하인리히 법칙은 계속된다. 말 뿐인 교훈은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못한다. 두드려야 문은 열린다. 젊었던 예수는 길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두드리라고 했다. 예스맨은 두드리지 못한다. 두드리려면 현장에 나와야 한다. 두드리라는 건, 정의롭지 못한 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라는 다그침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당부다.


혁신의 역사는 누군가 일어나 행동할 때 열렸다. 함석헌 선생은 청년을 향해 대들라고 했다. 다짜고짜 멱살 잡고 흔들라는 선동일 리 없다. 불합리하거나 정의롭지 못할 때 당당히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위한 행동에 나서달라는 의미다. 두드리라는 격려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요즘 젊은이들은 함석헌을 거의 모른다. 길들어졌기 때문이리라. 신록의 계절은 길지 않다. 그래서 더욱 서글퍼진다. (지금여기, 2014.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