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3. 11. 27. 23:28

 

경제성장을 위한 국민통합.” 석유위기를 맞은 21세기에 이런 속임수가 어찌 여전히 통할까. 남보다 더 많이 생산한 물건을 더 빨리 팔아 더 큰 부자가 되려는 꿈은 이제 가능하지 않다. 쓰레기가 우주까지 넘치는 세상은 한계를 만났다. 값 싼 석유와 경제성장의 시대는 지나갔다. 불가능한 경제성장을 계속 추진한다면 국제경제는 곤두박질칠 것으로 독립 경제학자와 지질학자들은 같은 목소리를 낸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탐욕은 기댈 언덕인 자연을 돌이킬 수 없게 파괴하고 말았다. 수질과 대기오염, 그리고 폐기물만이 아니다. 이 시대의 개발은 다음세대의 생존기반을 위축시켰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강줄기는 1년에 한 차례는 바싹 마르고 한 차례는 넘치며 굽이쳤건만, 직선으로 좁혀지면서 후손은 마실 물을 잃었다. 해일을 완충하고 온난화를 예방하던 갯벌은 초고층아파트, 산업단지와 공항으로 바뀌었는데, 해수면은 그 시설들을 삼킬 것이다.


흡혈귀 같은 탐욕은 헐벗은 자연 대신 후손의 생명을 노린다.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생명공학이 그렇다. 한 세대 흥청거리는 전기소비를 위해 수십만 년 방사능 떠넘기는 핵발전소가 그렇다. 대기권에 방사선이 횡행할 때 인간은 물론,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었는데, 한 줌 핵동맹을 위해 다음세대가 누려야 할 행복은 저당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제 자식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탐욕의 세습이 아니다.


핵과 석유와 전기가 없을 때, 조상은 불행하지 않았다. 속도와 목표만 숭상되지 않을 때, 우리는 주위를 편안하게 살피고 이웃을 배려할 수 있다. 다른 문화와 역사, 다른 언어와 종교를 이해하고 생태계의 이웃을 따뜻하게 보전할 수 있다. 이웃과 다음세대, 또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생태적 삶이 거기에 있다. 한계가 분명한 탐욕이 빚을 미증유의 재앙을 회피하려면, 늦기 전에 반성해야 하고, 반성은 생태적 상상력에서 비롯될 수 있다. 우선 녹색평론부터 펼치자.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씀, 녹색평론사)

미국계 일본인 더글러스 러미스는 분별없이 추구하는 경제성장은 침몰을 앞둔 타이타닉 호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물건 사기 바쁜 강남의 큰손들에 취해 손님 대피를 미루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낳으며 파산한 1995년의 서울 상품백화점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되뇌는 발전이라는 말은 누가 어떻게 만든 신화일까. 의식과 문화를 종속시키려는 1949년 미국의 의도가 제대로 먹힌 우리가 주목해 할 책을 러미스가 펴냈다. 자본과 권력의 끝없는 탐욕에 대한 저항이 억압으로 돌아오는 우리에게 무기력하면 민주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러미스의 혜안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애니 레너드 씀, 김영사)

일회용처럼 다루는 옷이 패스트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날개 돛인 듯 팔려나가는 요즘, 책임 있는 소비자가 되려는 이라면 물건이 생산돼 폐기되는 과정을 소상하게 알 필요가 있다. 자원을 채굴, 정제할 때 발생되는 오염물질, 생산 과정에서 낭비되는 자원과 착취되는 노동력, 없어도 그만인 물건의 구입을 부추기는 광고로 바보가 되어 다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지만, 그때 발생하는 독성물질이 다음세대의 숨 쉴 공간을 위축시킨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은가. 꼭 필요한 물건을 오래 사용할 내공을 갖고 싶다면, 폭 넓고 깊으며 재미있는 레너드의 물건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어떨까.

 

잡식동물의 딜레마(마이클 폴란 씀, 다른세상)

억센 턱과 날카로운 이도 없는 사람은 고기를 먹고 뿔도 없이 풀도 먹지만, 자칫 큰 탈이 나는 잡식동물이다. 음식에 대한 문화적 경험보다 광고를 앞세우는 식품산업이 만든 가공식품에 더욱 길들어진 소비는 잡식동물의 한계를 더욱 부추겼다.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를 만들기 위해 기업은 자연을 어떻게 교란시켰고 몸에 어떤 부담을 안길까. 유기농산물을 먹고 윤리적으로 사육한 가축의 고기를 먹어도 양심적 부담까지 덜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제와 먼 조상처럼 수렵채취로 돌아갈 수 없다. 인구가 많고 자연은 위축된 세상에서 자신과 생태계를 위한 책임 있는 소비는 무엇인지 폴란의 설명에 설득력이 넘친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최병성 씀, 오월의봄)

분별없는 개발로 치부해온 자본과 권력은 저항을 짓밟을 수 있다고 여겼는지 산골까지 탐욕의 촉수를 내밀었다. 영월 서강에서 목회하려던 목사 최병성은 시멘트에 마구 뒤섞는 시멘트공장과 그런 오염물질의 사용을 허락하는 행정에 분노했고, 그 분노는 하느님이 맡긴 청지기의 소임을 다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생존기반인 우리 4대강이 타락한 채 무너지는 현장을 카메라와 수첩을 들로 발이 닳도록 찾아다닌 최 목사는 하느님의 분노를 우리에게 전한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던 4대강의 은모래금모래가 자본과 권력의 삽자루 아래 얼마나 처참하게 버림받았는지 자식 키우는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한국탈핵(김익중 씀, 한티재)

위험 속에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핵폐기장이 허술하게 만들어지는 경주에 살아도 그렇지, 지금까지 안락한 삶을 등진 의학대학의 교수가 고단한 시민운동의 현장에 투신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그이는 달랐다. 전국 곳곳에서 500회 넘게 열정을 쏟아낸 김익중 교수의 목소리는 내일에도 건강하게 살고자하는 이를 흔들었고, 탈핵의 길로 움직이게 했다. 일본에서 치명적 사고가 발생했건만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우리의 내일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는 핵동맹의 속임수를 더욱 널리 알리고자 그는 책을 써야했다. 자식 키우는 시민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진실을 알고 각성해야 하지 않은가. 탈핵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일러주는 책이다<작은책>, 201212월호, ‘쉬엄쉬엄 가요-읽어 볼 책